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은 워낙 적은 편이다. 영화관에선 저녁시간에 딱 한 회만 상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영화관은 거의 텅 비었다. 그 때문에 조용히 영화에 몰입할 수 있긴 했지만, 영화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폭격 소리에 초반엔 몇 번씩 놀라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그동안 우리네 삶이 비교적 평온하기만 했던 것 같아 영화를 보며 미안하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사마의 엄마인 ‘와드 알-카팁’은 카메라 영상을 통해 어린 딸 사마에게 시리아 내전의 실상을 내레이션 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저항하는 반군들과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군과의 대립이 심화된다. 그러면서 걷잡을 수 없는 전쟁이 일상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화면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보는 내내 민주화 열망을 위해 피와 땀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의 역사가 간간이 겹쳐진다.
2012년, 시리아 북부 도시 알레포 대학의 학생이던 와드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마주한 참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고 마지막 남은 병원의 의사 '함자 알 카팁‘과 뜻을 함께 하던 와드는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소중한 생명 '사마'가 태어난다.
“사마는 하늘이란 뜻입니다. 저희가 사랑하고 원하는 하늘, 공군도 공습도 없는 깨끗한 하늘요. 태양과 구름이 떠 있고 새가 지저귀는 하늘요.”
고통과 절망의 순간이 낱낱이 기록되는 영상은 사마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전하기 위한 모성이다. '전쟁은 무섭지 않지만 사마, 너와 함께 하지 못할까 봐 두렵다'라고 와드는 말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위태로운 행복은 지속된다. 갈수록 폭탄이 빗발치고 하늘로 치솟는 연기와 폭음 속에서도 딸을 향한 마음이 애틋하고 절절하다.
“사마, 넌 우리 삶의 단비였단다. 하지만 널 이런 곳에서 낳다니, 네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엄마를 용서해줄래?”
엄마 와드는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나서고 아빠 함자는 날마다 총탄과 폭격에 쓰러지고 죽어가는 수백 명의 사람을 치료하며 그들만의 신념을 지켜나간다. 핏자국으로 얼룩진 건물 바닥에 환자를 눕혀놓고 치료하고 주검의 한쪽에서는 새 생명이 태어난다. 목숨을 위협당하면서도 비명을 질러대는 아수라장 속에서 또 다른 목숨을 구하고, 공포감 속에서도 전쟁의 깊숙한 곳까지 카메라는 파고든다.
폭격으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피범벅이 되어 죽어가는 어린 동생을 바라보는 아이, 폭격 맞은 아이를 안고 함자의 병원에 온 어머니는 카메라를 보며 울부짖는다. “이거 지금 찍고 있어? 어떻게 저들이 우리한테 이럴 수 있어? 이거 빠짐없이 다 찍어.” 저널리스트들이나 매스컴에서 보도하지 않은 참상들이 와드의 카메라에 거침없이 고스란히 담긴다. 팔다리가 잘리고 온몸에 흘러내리는 피와 폭격 먼지가 뒤덮인 얼굴이랑 여과되지 않은 아비규환의 현실이 무방비로 노출된다. 연출되지 않은 생생한 참상에 할 말을 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전쟁을 경험 중인 느낌이다. 잘 만들어진 전쟁영화만 보아왔던 무지함에 가슴이 무너진다. 안타까운 희생과 뜨거운 피로 써나가는 역사를 본다.
시리아 내전이 장기전이 되면서 강대국들까지 끼어든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자신들이 살아가던 터전을 지키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알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대학생이었던 와드가 결혼을 하고 딸 사마를 낳고 전쟁을 겪는 5년 동안 시리아 내전의 기록을 위해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마지막에 와드는 말한다.
"이 모든 건 사마, 너를 위해서야."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카메라에 담아 세상에 알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프지만 감동이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는데도 몇 명 되지 않는 관객들은 선뜻 일어서질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