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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론으로 바라본 봄 풍경
- 우리는 행복해지려 산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도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야 행복해진다. 행복했던 기억, 경험, 방법을 모르면 행복도 배워야 한다. 행복은 순간의 만족에서 느끼는 감정은 아닐지. 봄이 되어 경쟁적으로 이곳저곳에서 피는 꽃을 본다. 허리를 굽혀 가까이 들여다봐야 눈에 들어오는 야생화에서부터 뒤로 자빠질 듯 몸을 젖혀야 보이는 꽃나무까지 만상이 합창하는 봄이다. 함부로 찾아온 봄 필자는 단지 내에서 자주 산책을 한다. 야간에도 조명을 잘해놓아 꽃들은 낮과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매일매일 피어난다. 자목련, 백목련, 벚꽃, 개나리, 산수유 등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이름을 모르는 꽃들도 있다. 이름표 팻말을 만들어달라고 관리실에 부탁해야겠다. 요즘 새롭게 재미를 붙인 놀이는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꽃 감상이다. 드론이 유행처럼 인기를 끌면서 위에서 시원하게 보여주는 풍경들이 많아졌고 TV 화면도 그만큼 화려해졌다. 산책길에서 우러러보듯 감상하는 꽃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꽃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이제까지의 꽃구경은 새소리와 어우러져 듀엣으로 눈을 현혹시키는 꽃을 목 젖히고 올려보며 하는 감상이 전부였다. 그러나 내려다보는 꽃은 마치 묵언의 고요함 같은 시간 속에서 한 번도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던 숨겨진 속살을 수줍게 펼쳐내 보이는 꽃나무의 사랑 언어를 듣는 듯하다. 유리알처럼 맑은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꽃구경인 것이다. 꽃나무들도 올려다 보이는 부위는 누군가에게 보여야 하기에 인간으로 치면 파마도 하고 드라이도 하고 젤도 발라 멋을 부렸겠다. 하지만 정수리를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기에 준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소란 없는 민낯 그대로 부스스한 얼굴 그대로를 들키는 셈인데 드론 앞에서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위에서 찍은 정글 사진을 보면 마치 손오공의 근두운처럼 폭신하고 두툼한 솜이불 같다. 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무릉도원을 찾는다면 단연 꽃나무 위의 포근함이 아닐는지. 물론 꽃나무 정수리를 보기 위해 드론이 필요한 건 아니고, 반드시 봐야 하는 것 역시 아니지만 위에서 바라본 낯설고 특별한 아름다운 풍경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
- 2017-04-2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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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울가의 징검다리
- 우리 아파트 뒤편의 산책로는 개울을 따라 2km나 이어져 있다. 시니어들의 운동량으로 최적이라는 왕복 4km 걷기 산책길은 동네 사람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걸으러 오는 명소가 되었다. 산책로를 따라 개천이 이어지고 유명한 절도 지나니 구경하기 좋고 경치 따라 걷다가 삼삼오오 벤치에서 담소를 즐기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도 흐뭇하게 해준다. 요즘 필자도 틈나는 대로 모자에 선글라스로 중무장하고 열심히 걷고 있다. 운동하러 나선 길이어서 대체로 앞만 보고 빠른 걸음으로 갔다 오기 때문에 양옆에 펼쳐지는 사계절의 풍경을 감상할 여유를 갖지 못할 때가 많지만, 어느 땐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속에 놀고 있는 작은 물고기도 들여다보고 새끼오리를 거느린 청둥오리 가족의 자맥질도 즐겁게 바라보곤 한다. 어느 날 걷기 운동 중 개울을 지나다가 이제까지 관심 두지 않았던 나무로 만든 징검다리를 발견했다. 개천이 길어서 군데군데 돌로 만든 징검다리는 여러 곳 있었는데 나무로 만든 징검다리는 처음 보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나온 아빠가 서로 손을 잡아주며 건너는 징검다리의 모습, 그 풍경은 무언가 아련한 징검다리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정겹게 보였다. 이쪽저쪽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의 추억은 필자를 어린 시절로 이끌어 주었다. 10살까지 필자는 대전에 살았다. 어린 날 우리 집보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가 사는 번잡한 외갓집을 더 좋아해서 그곳에서 지낸 시간이 많았다. 우리 집은 대흥동이었는데 자주 놀러 간 외가는 삼십 분 정도 걷는 거리의 문창동이었고 그곳에서 지낸 시간이 많은 만큼 어린 시절 친구들도 문창동에 더 많았다. 일본강점기가 끝나고 본국으로 돌아간 일본인의 집인 적산가옥이었던 외가는 어린 날 필자 눈엔 궁궐같이 넓어 보였다. 마당엔 연못이 있고 돌로 만든 거북이도 있었으며 다리 건너편의 작은 동산은 동네 아이들과 숨바꼭질할 정도의 크기였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에게 우리 외가는 들어와 보고 싶은 꿈의 동산 같아서 필자는 덩달아 아이들이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우상처럼 군림할 수 있었다. 문창동의 큰길 쪽으로 보문산으로부터 흘러내려 오는 대전천이 흘렀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모르지만, 그 당시엔 아주 넓은 냇가였다. 냇물 건너편에 있던 동화극장이라는 삼류극장도 생각난다. 벌써 몇 십 년 전이니 개발로 그 동네 풍경이 변하지 않았을 리 없겠다는 마음에 서운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장마철이 아니면 대전천에 물이 그리 깊지는 않았다. 항상 햇빛에 반사해 반짝거리는 맑은 물이 동네 꼬마들이 물놀이하기에 좋을 만큼 흘렀다. 친구들과 빨래를 한다면서 손수건을 들고 냇가의 넓적한 돌에 비벼대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방울을 튀기는 물싸움으로 깔깔대며 한바탕 옷을 적시기도 했다. 젖은 옷으로 냇물 가운데에 놓인 징검다리 돌 위에 서서 발아래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필자 자신이 마구마구 물 위에서 떠내려가는 착각이 들었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균형을 잡으려 버티는 동안 어느만큼 멀리 떠나온 듯한 기분은 정말 스릴 있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러다 올려다본 하늘은 너무나도 파랗고 높았고 뭉실 떠 있는 흰 구름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가슴에 남았다. 그렇게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놀았던 어린 시절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비록 대전천처럼 크고 넓은 냇가는 아니어도 우리 동네 개울에 놓인 징검다리를 보며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다. 순수했던 날들, 그 시간들이 참으로 그립다.
- 2017-03-2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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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소재, 이렇게 찾으세요!
- 이제 사진은 대중화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답게 보이는 장면이 있으면 스마트폰을 바로 꺼내 촬영을 망설이지 않는다. 반면에 사진을 취미로 막 시작했거나, 조금 배운 사람들은 무엇을 찍어야 할지 망설인다. 사진 소재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이다. 또 사진을 시작한 지 꽤 됐고 사진 찍기가 취미인 사람들도 촬영지에 가면 주변을 휙 둘러본 후 “찍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며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일쑤다. 하지만 피사체를 보는 마음과 시선을 달리하면 주변에 사진 소재가 널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보기 나름’이란 말과 같이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 그대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눈높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위치를 달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습관의 이면에는 변화를 싫어하는 인간의 속성이 있다.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고 뭘 계획해도 작심삼일이 된다. 현재 상황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더 괜찮은 사진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변화를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 자기 편한 대로 한다면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성장은 없다. 사진에도 마찬가지다. 사진 찍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다. 새로운 시선이나 마음으로 접근하면 주변에 찍을 거리, 즉 사진 소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상생활 중에 사진 소재를 발견해 촬영한다면 사진 작품을 위해 별도의 시간을 낼 필요가 없게 되어 귀중한 시간을 아낄 수 있다. 필자는 그런 방법으로 작품을 만든다. 사진작가나 사진을 취미로 하는 분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서너 번은 다녀왔을, 해외도 간 적이 거의 없다. 해외 사진 촬영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 부담할 여력이 없는 이유도 있지만, 일상에서 소재 찾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생활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침 산책길에서 만나는 풍광이나 물체가 곧 사진 소재다. 매일 다니는 같은 곳이어도 사계절에 따라, 아침저녁 시간대에 따라 다르다. 해가 맑게 뜨는 날과 흐린 날, 눈이 쌓인 모습과 꽃이 흐드러지게 핀 풍경은 같은 길이어도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비가 내린 다음 날도 아침 풍경이 다르다. 줄곧 다니는 길도 시간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소재는 많다는 의미다. 주변의 소소한 것들이 모두 사진 소재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모습도 찍어보자. 눈이나 눈썹, 발가락이나 불거진 힘줄, 발등도 찍어보자. 앞의 사진은 이른 아침 창틀 사이로 비친 한 줄기 햇살이 너무 좋아 냉장고에서 사과 한 알을 꺼내 필자의 발 옆에 놓고 찍은 사진이다. 늘 함께 생활하는 가족과 자주 만나는 친구의 환하게 웃는 모습도 훌륭한 소재다. 일부러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도 좋다. 강아지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도 훌륭한 사진 소재가 된다. 그리고 집집마다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을 한두 개의 오래된 인형도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찍어도 된다.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오토바이를, 기타를 좋아하면 기타를 사진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 집 안에서 가꾸는 화분과 장식품도 소재가 된다. 바깥에서도 직장 주변의 오가는 길목에서 수없이 만나는 자연과 사람들,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 홀씨, 서산에 걸려 있는 초승달과 하현달, 보름이 되면 창문 사이로 찾아드는 둥그런 보름달도 창틀을 액자로 해서 찍을 수 있는 좋은 소재다. 이러한 시선으로 다가가면 언제 어디에 있든 찍을 거리는 수없이 많다. 더불어 피사체를 바라보는 눈높이(사진 전문용어로 앵글)를 다양하게 해서 보면 피사체는 더 늘어난다.
- 2017-02-0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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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의 하루
- 혈당 관리 때문에 억지로라도 운동을 해야 하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 뒤편에 마침 운동에 딱 좋은 왕복 한 시간 거리의 산책로가 생겼다. 몇 해 전에 그렇게나 시끄러운 굉음으로 필자를 괴롭혔던 공사가, 끝나고 보니 이렇게 멋진 운동 코스가 되었다. 참기 힘든 소음 때문에 일부러 외출하는 등 불편을 겪었지만, 결과로 이런 혜택을 받게 되어 짜증을 냈던 게 슬그머니 미안 해 지기도 한다. 북한산 국립공원에서부터 시작되어 2km 되는 정릉 입구까지 큰길 뒤편으로 바닥에 초록색의 폭신한 산책길이 만들어졌는데 담당 의사선생님으로부터 왕복 4km면 하루 운동량에 알맞다는 이야기를 들은지라 매우 기쁜 마음으로 걷기 운동을 하게 되었다. 개천을 따라 걷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경치와 자연 생태를 볼 수 있어 주민이나 운동하러 나오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은 곳이다. 오늘은 기온이 많이 내려갔지만 단단히 차려입고 걸으러 나갔다. 쨍한 차가움이 콧마루를 시큰하게 한다. 그러나 일단 나와 보니 의외로 상쾌하다. 옆쪽의 개천이 한여름엔 북한산에서 흘러내린 물로 폭포처럼 요란한 물줄기를 보이지만 지금은 얼음이 꽁꽁 얼어있다. 개울에 솟아 있는 대로 바위나 작은 돌멩이가 삐쭉 나온 곳을 빼고는 모두 하얀 얼음투성이인데 어느 한 곳을 보니 반반한 얼음판이 보인다. 겨울방학을 맞은 어린이들을 위해 누군가 일부러 물을 채워서 썰매장을 만들어 주신듯하다. 며칠 전엔 그곳에서 몇몇 아이가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비닐봉지를 깔고 앉아 언니가 끌어주는 대로 신 난다고 꺅꺅대던 아이도 있었고 제법 반듯한 나무로 썰매의 모습을 갖추고 씽씽 얼음 지치는 아이도 있었다. 필자도 어릴 적 대전에 살 때 삼촌이 만들어주신 네모난 나무에 쇠붙이를 바닥에 붙인 썰매를 타 본 적이 있다. 친할아버지댁 포도밭 근처에는 겨울에 빈 들판이 많았다. 잘라 낸 볏짚 밑동이 삐죽 솟은 바닥에 물을 대고 차가운 날씨를 기다리면 널따란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졌었다. 간혹 스케이트를 타는 어른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방학을 맞은 동네 아이들이 썰매를 타는 신 나는 놀이터가 되었다. 삼촌은 긴 꼬챙이의 끝에 뾰족한 못을 박은 썰매 손잡이도 만들어 주었지만 필자는 그걸 사용하지는 않았고 삼촌이 줄을 매어 끌어주는 썰매 타기를 좋아했다. 나무 썰매에 앉아 삼촌이 마구 달리며 끌어주면 스르르 밀려나가던 그 짜릿하고 아슬아슬한 느낌이 잊히지 않으며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오늘은 너무 추워서인지 아무도 나와 놀지 않는 빈 얼음 터를 보니 쓸쓸하다. 역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노는 모습이 보여야 누군가 만들어 주신 썰매장의 진가가 보일 것 같다. 그래도 몇 명의 아이들이 얼음 덮인 개울에 앉아 노는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추운 날 얼음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궁금해지기도 해서 “애들아, 거기서 뭐하니?”하고 물었다. “얼음 속에 물고기 있나 보려고요.” 날씨도 추운데 자연 속에서 노는 아이들이 귀엽기도 하고 필자 오지랖에 미소가 떠오른다. 개천이 깨끗해지면서 물속에 작은 고기떼가 많이 생겼다. 그래도 이렇게 추운데 물고기들이 그대로 있는지 필자도 궁금하긴 하다. 이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개울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놀고 있는 사이좋은 청둥오리 한 쌍을 볼 수 있다. 꼭 청둥오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록색과 여러 색이 섞여서 반짝거리는 털을 가졌으니 아마 청둥오리일 것이다. 지난번에 보였던 이 오리 부부도 오늘은 너무 추워서 나오지 않았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 길지 않은 도심 속 산책로에서 그림 같은 멋진 풍경을 볼 수도 있는데 무리 지어 있는 갈색의 억새풀 숲이다. 이곳을 보면 어디 아주 먼 곳에 여행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빠른 걸음으로 산책로를 왕복하니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다음번엔 얼음판에서 신 나게 노는 썰매 타는 아이들도 보고 싶고 개울물 속에서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노는 청둥오리도 보고 싶다. 필자 어린 날 삼촌이 끌어주던 나무썰매를 씽씽타며 즐거워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어 본다. 차가운 겨울날의 하루이다.
- 2017-02-0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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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유재 미술품 수집 이야기] 설핏, 마음 물들이는 풍경
- 이내가 가득 고인 시골길을 걷노라면, 산비둘기 소리도 베이스로 가라앉는다. 늦사리가 한창인 밭머리에, 부룩소 한 마리 잠자리 따라 뛰놀고, 건듯 바람이 지나가면 잠시 마른 풀 먼지가 일어난다. 소루쟁이 금빛 씨알도 후루루 흩어져 발등을 덮는다. 미루나무 잎에 어느새 가을빛이 스며들어 가지 끝은 설핏 채색이 시작되었다. 이제 산과 들에 가을을 거역하는 것은 그 아무것도 없다. 이내가 걷히고 달이 떠오르면, 풍경은 점멸되고 보랏빛 침잠의 장막 속에 작은 시냇물 소리만 밤을 지새우리. 그래도 소소한 풍경들은 그 잔영(殘影)이 머릿속에 남아 여러 공간에 자국을 남긴다. 화가들은 그 한순간의 풍경을 화폭에 옮기려 한다. 시인들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생각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듯, 화가들은 색칠로, 응축된 감성을 풀어낸다. 우리들은 비록 좁은 그들의 화폭에서도 눈 가득 넘실대던 풍경을 떠올리며 기꺼이 그림과 하나가 된다. 이동훈(李東勳, 1903~1984) 화백의 그림 속에서 우리들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의 맑고 그윽한 풍경을 만난다. 그는 평북 태천에서 태어나 의주농업학교를 졸업, ‘평북사범학교 강습과’ 수료 후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한다. 미술 공부는 이미 훨씬 전부터 이루어져, 1928년에 선전(鮮展)에 입선함으로써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1935년에 서울로 이사, 교직에 있으면서 4년간 도다 시게오(遠田運雄, 1891~1955)라는 유명한 일본 화가를 사사(師事)하여 그림 그리기의 확고한 틀을 구축하였다. 1945년에 대전으로 이사해 대전공업학교, 1947년부터 1963년까지 16년간 대전 사범학교, 학교 이름은 충남고등학교로 바뀌었지만 정년퇴임까지 6년간 더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미술문화의 불모지였던 대전지방에 빛나는 미술중흥을 이룩하였다. 1969년부터는 다시 서울의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에서 12년간 강의하며 활발한 동인전, 개인전을 통해 진솔한 화업을 이어갔다. 1984년 잔설이 깔린 새벽 산책길에서 낙상, 골절상의 후유증으로 그해 5월 서거하였다. 이듬해 유족들은 유작 171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였다. 하여 그의 작품을 수집하기가 어려웠다. 이 그림 는 대구의 동원화랑에서 구입한 것이다. 이 작가의 풍경화 두 점이 있었는데, 돈이 모자라 이 그림만 수집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다른 한 점은 유명한 도예가가 얼른 가져가버려,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아직도 그 그림 이 눈에 어린다. 한순간의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그 작품을 수집할 기회가 닿지 않는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동구 밖으로 걷던 가을날이 아련하다. 이동훈의 그림은 풍경화가 주류이지만 그는 키우던 꽃을 소재로 한 정물 소품도 많이 그렸다. 어쩌면 이 화가의 그림 속에는 숭고한 신앙의 성스러움까지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다. 역사의 격랑을 겪어오면서도 성실하고 벗어남이 없는 자기 수양이 그대로 화폭에 녹아들었기 때문일 터이다. 대전사범학교 시절의 제자 최종태(崔鍾泰, 1932~ )조각가는 인생 진로의 사표(師表)였다며 늘 존경의 념(念)을 말하였다. “이동훈 선생의 생애야말로 큰 수도자의 삶이었으며, 그림이 깨끗하고 즐겁고, 밝고 튼튼하여 1세대 화가 중 가장 큰 예술가였다.”고 ‘탄생 100주년 기념 이동훈 회고전’ 도록에 쓰고 있다. 많은 제자들이 ‘이동훈 미술상’을 제정하여 해마다 후배 미술가들을 격려하고 있다. 늘봄 전영택(田榮澤, 1894~1968)은 소설가이며 목사로 소설 등으로, 김동인(金東仁, 1900~1951 소설가) 주요한(朱耀翰, 1900~1979 시인)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동인지 를 만들어 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긴 분이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장남 전상범(田相範, 1926~1999)은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한 유명한 조각가로, 차남 전상수(田相秀, 1929~ )는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서양화가로 예술인 가족이 되었다. 전상수 화백은 1968년 첫 개인전 이래 22회의 전시회와 구순(九旬)에 가까운 현재도 꾸준히 과슈(gouache 불투명 수채화) 작업을 하고 있는 분이다. 1978년부터 1981년까지 프랑스 몽파르나스(Montparnasse)의 아카데미 드 라 그랑 쇼미에르(Academie de la Grande-Chaumiere)에서 미술 공부를 하며 유럽 풍경을 화폭 가득 담았다. 후배 화가 김정(金正, 1940~ )은 “전상수 화백은 보헤미안처럼 항구와 부두와, 강변의 물결과, 구름과, 숲의 바람과, 산 너머로 한없이 뻗는, 포물선 같은 그리움의 정을 화폭에 담는다”고 평한다. 또한 그는 성악에 천부적인 재질이 있어 모임을 격조 높고 즐겁게 한다고 일컫는다. 스페인 여행 중 어느 카페에서 ‘베사메 무초(besame mucho; kiss me much)’를 무대에 나가 열창하자 전속 여가수가 아예 자리를 내주어 열화와 같은 박수세례를 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요즈음 인사동 화가들 모임에서도 오페라 아리아 곡들을 열창한다니 그 자리 끝에 앉아볼 궁량을 해본다. 이 그림 는 4호(33.4cm×24.2cm)의 작은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린 가을 풍경인데, 여느 작가의 대작에 견주어도 될, 깊은 밀도로 가슴 벅차오르게 한다. 경매회사의 온라인 경매에서 17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낙찰 받은 작품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자락 아래 둔덕 위에 시골집 두 채가 있고 그 앞으로는 논밭 같은 농지와 작은 개울과 물가를 따라 수초들이 듬성하다. 노을을 앞둔 저녁 무렵의 구름이 산의 능선을 빗기고 둑길에 선 서너 그루 나무는 잎이 바람에 날려 일순간 긴장감이 풀리며 스산하다. 산등성이 바위에도 가을빛이 번져 있다. 원숙한 붓 터치 사이에서 풍경에 실린 마음을 읽는다. 초등학교 1학년 늦가을, 황토의 좁은 운동장 둘레로, 미루나무 긴 그림자가 붉은 노을빛에 스밀 때, 초가의 교실에서 울려오는 풍금소리, 어느새 다가가 창틈으로 들여다본 우리 교실, 흰 저고리 검정치마의 담임선생님이 건반 위에 엎드려 있던 그 처연한 뒷모습, 육십 년이 흐른 지금도 선연히 떠오르는데, 북녘에서 부모를 잃고 두 동생과 남하했다는 가족사가 짓누르던, 그 야윈 어깨 들먹이던 정경을, 어떻게 그릴 수는 없을까? 어느덧 그림자도 사라진 빈 길 위, 발자국마다 애달픔만 쌓이는데.... >> 이재준(李載俊)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리뷰어.
- 2016-11-2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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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경기 여성들 걷기운동 하세요
- 폐경 후 5년이 지나면 골밀도가 50%로 감소한다고 한다. 골밀도가 감소하면 골다공증으로 골절 위험이 높다. 30세가 지나면 근육량도 일 년에 1%씩 감소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운동밖에 대책이 없다. 중·장년 여성들에게 권하는 운동으로 체중부하 운동으로는 달리기, 줄넘기가 있고 심폐기능강화 운동으로는 걷기, 수영, 에어로빅이 좋다고 한다. 근력운동으로는 볼 맨드, 덤벨이 좋고 유연성 운동으로는 요가, 필라테스, 요통체조가 좋다고 한다. 그런데 달리기는 걷기운동 단계를 거쳐야 한다. 줄넘기는 제자리에서 하는 운동이라 금방 식상해진다. 수영, 에어로빅 등은 수영장이나 에어로빅을 가르치는 곳에 가서 배워야 한다. 볼, 밴드, 덤벨 등은 헬스클럽에 가서 하는 운동이다. 요가, 필라테스, 요통체조도 마찬가지다. 단체로 배우는 운동은 남들과 어울려야 한다.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연령대가 안 맞아 힘겹거나 지루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걷기운동이다. 요즘은 양재천, 성내천, 탄천, 안양천, 중랑천 등 개울 옆에 산책길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걷기운동을 할 수 있다. 걷기운동하는 사람들은 제법 많다. 그런데 걷기운동도 매번 장소가 똑같으면 흥미가 떨어진다. 다른 곳에서도 해봐야 하는데 혼자 계획을 짜기가 쉽지 않다. 계획을 짰다 해도 실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동호회 회원들이나 지인들과 약속을 정해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좋다. 개울가나 시내 길은 대체적으로 평탄하다. 운동 효과를 높이려면 약간의 높낮이가 있는 둘레길이 좋다. 평탄한 길을 걸을 때 사용하는 근육과 오르막 또는 내리막을 걸을 때 사용하는 근육은 다르다. 심폐량도 다르다. 그런데 둘레길에서는 중년 여성들이 잘 안 보인다. 부부가 손 잡고 오는 모습은 종종 보이지만, 중년 여성들끼리 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둘레길은 인적이 드물어 안전상의 문제가 있기는 하다. 어떤 코스는 남자 혼자 가는데도 너무 호젓해서 신경이 쓰인다. 신문이나 뉴스에 종종 오르내리는 멧돼지와 조우할 수도 있다. 이런 길은 여러 사람이 함께 다니는 게 안전하다. 둘레길 걷기는 좋은 운동이지만, 날씨에도 영향을 받는다. 비바람 불면 가기 싫고 가더라도 고생한다. 혹서기나 혹한기도 그렇다. 실내운동으로 댄스스포츠를 겸하면 좋다. 지루하지 않고 체중부하 및 근력 강화, 심폐지구력까지 골고루 좋은 운동이다.
- 2016-11-0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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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노천카페 풍경.
- 우리 집에서 버스 세 정거장 아래에 전통 재래시장이 있다. 이 시장은 새로 난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운동하러 갈 때 배낭을 메고 나가서 오는 길에 시장도 보고 올 수 있어 좋다. 아파트 뒤편으로 몇 년 전 새로 산책로가 생겼는데 우리 동네는 청계천 복원처럼 서울의 예전 개천을 정비하여 깨끗한 하천으로 바꾸는 사업이 끝나 참으로 깔끔하고 예쁜 산책길을 갖게 되었다. 북한산 국립공원에서부터 흘러내린 개천물을 따라 정릉 초입까지 2km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이제 무릎이 고장 나 산이 가까이 있음에도 올라갈 수 없는 시니어들에게 최적의 운동코스로 환영받고 있다. 왕복 4km면 시니어의 하루 운동량에 적합하다고 하여 필자도 열심히 걷는 중이다. 사계절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도 멋져서 고운 색의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가 자태를 자랑하는 봄철과 한여름엔 녹음이 싱그럽고 콸콸 웅장하게 쏟아져 내려가는 계곡물이 장관이어서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해 주기도 하고 차분한 갈색 세상으로 바뀌는 가을철, 새하얀 눈이 꽁꽁 언 계곡물 위로 살포시 쌓여 온통 순백의 세상이 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런데 낮에는 몰랐는데 어느 날 저녁 무렵 산책길을 따라 걷다가 시장쯤 오니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와 와글와글 사람들이 재미있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산책길 위쪽 시장통 거리에서 각각 음식점마다 자기 집 마당 쪽으로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노천카페 겸 식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치킨집, 주꾸미볶음집, 삼겹살집, 피자집 등 다양한 업종의 가게 앞에 테이블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 노천카페라면 그림이나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멋있는 가게 앞 길가에 예쁜 공간이 있어 많은 사람이 차를 마시거나 맥주와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우리 동네 노천카페는 그렇게 세련되지는 않지만 친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맥주잔을 부딪치는 모습을 보니 어느 멋진 노천카페 부럽지 않을 듯하다. 이웃집 가족들이 함께 나왔는지 산책로 아래에서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개울 속의 작은 물고기를 관찰하기도 하고 돌 징검다리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수풀 속 곤충을 탐색하기도 하며 놀고 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엄마아빠들 끼리는 시원한 맥주잔으로 건배도 하며 친목을 갖는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인다. 남자들끼리 또는 여자들끼리 모여앉아 길가에서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그들의 소속감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필자는 살면서 한 번도 직장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나 실제로도 열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동료끼리 몰려가 회식을 하거나 모이는 장면은 부럽기만 한 일이었다. 어느 곳에 속해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마음이 든든할 것이다. 일부러 산책길에서 계단을 통해 올라와 무리지어 담소하는 그들을 지나쳤다. 산책로가 생기기 전 이곳은 더러운 하천으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하천정비가 끝나고 조성된 산책로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나와 길가에서의 담소를 즐길 수도 있게 되었으니 매우 고맙고 만족스러운 풍경이다. 여기저기 자리 잡고 즐겁게 떠드는 무리를 지나면서 필자도 저 속에 끼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참으로 즐겁고 정겨워 보이는 노천카페 풍경이다.
- 2016-10-1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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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마당 조경수 아래 수목장
- 그녀는 집 마당 매실나무 아래 영원히 잠들었다. 며칠 전 내가 사는 마을의 한 젊은 부인이 오밤중에 갑작스러운 지병의 악화로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시도했으나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마흔다섯의 정말 꽃다운 나이었다. 가족도 가족이지만 마을 주민들은 슬픔에 빠졌다. 화장으로 장례절차를 마친 그 여인의 유골은 주민들의 생각을 넘어 살던 집안 마당의 작은 매실나무 아래 묻혔다. 남편의 지고한 아내 사랑이지 싶다. 너무 짧은 나이로 멀리 보내기에 안타까움이었는지 남편은 아내와 함께 심었던 마당 한쪽의 매실나무 아래를 아내의 안식처로 정했다. 살아있을 때처럼 늘 가까이 두고 싶은 남편의 사랑으로 보고 싶다. 언덕배기의 그 집 위로 하늘은 높아지고 하얀 구름이 흐른다. 대문 밖의 연못에 핀 연꽃의 연밥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저녁이면 그 여인이 밤늦게 켜놓았던 창문의 불빛도 여전하다. 까치도 여느 때와 같이 지저귀고 참새도 이 나무 저 나뭇가지로 우르르 옮겨 다닌다. 글을 쓰다 창밖을 보니 서쪽에 해가 나고 동편에 구름이 덥혀 비가 내리나 보다. 무지개가 둥그렇게 그 집 위를 감싸고 있다. 내가 사는 마을은 4년 전부터 터를 만들기 시작하여 한두 집 짓기 시작했고 지금은 50여 채가 들어선 새로 이뤄진 전원풍의 마을이다. 나이가 든 사람보다 젊은 층이 많이 산다. 67세 나는 늙은이에 속한다. 마을의 동남쪽과 서남쪽은 나지막한 동산으로 둘러쳐졌고 북동쪽과 서북쪽은 논밭에 비닐하우스가 즐비하다. 세상에 잘 알려진 “일산 열무” 재배단지다. 산등성이를 개발하여 전원 마을이 되었다. 마을이 만들어질 즈음에 40 중반의 젊은 부부가 6학년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마을 중간쯤 언덕배기에 아담한 2층 단독 주택을 지었다. 3층 옥탑방이 있어 외양이 서구풍이다. 마을 행사에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젊은 층이다. 마당엔 텃밭을 만들고 대문 앞쪽에 작은 연못을 파고 연꽃을 심었다. 마당 한쪽 양지바른 곳에 매실나무도 한 그루 심었다. 봄이면 그 매실나무에 매화도 소담스럽게 핀다. 부인은 매화를 무척 좋아하였다. 2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온 나는 아침 산책길에 이곳을 지나며 예쁘게 핀 연꽃이나 연잎에 영롱하게 맺힌 물방울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며 텃밭을 가꾸는 젊은이와 살가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3년의 세월 속에 연잎이 너울거리게 되었고 여름이면 홍련이 저 멀리 하늘을 향해 큰 미소를 보낸다. 젊은 주인은 마당 텃밭에 먹거리로 채소를 가꾸었다. 고구마도 심고 토마토도 심는다. 지난해 가을에는 재배한 고구마라며 큼직한 녀석을 서너 뿌리 건네주어 맛있게 먹었다. 행복한 부부가 사는 집 중의 하나였다. 그 젊은이는 이제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우리의 세대가 생각할 수 없는 집안 마당에 안사람의 유골을 안치한 최초의 사람이 아닐까? 아침저녁이면 미소가 보일 것만 같은 아내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갈 매실나무 아래를 물끄러미 바라볼 그 젊은이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별이 총총한 자정 무렵 어슴푸레 윤곽을 드러내는 매실나무를 계속하여 지켜볼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평생을 살지 않고 이사를 갈 경유엔 어떻게 할까? 영혼이 있다면 남편의 그러한 애틋한 사랑을 지켜보며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이승을 맴돌고 있지나 않을까? 그 자체의 옳고 그름이나 따라올 여러 가지 문제점을 차치하고 살아생전처럼 옆에 두고 싶은 남편의 사랑만을 얘기하고 싶다. 살아갈 세월이 그 젊은이와 확연히 다르지만, 과연 나와 안사람은 우리 집 마당의 과실나무 아래 나나 안사람의 유골을 안치할 생각이라도 해 볼 수 있을까?
- 2016-08-2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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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 할머니 이야기
- 우리 이웃에는 일흔이 지난 할머니 한 분이 아들과 함께 산다. 주변에 밭을 가지고 있다. 김장배추며 무, 파, 고추, 들깨, 상추, 시금치 등을 가꾸어 먹고 이웃에 나눠준다. 요즘엔 들깨가 초등학생 키만치 자랐고 김장할 무씨를 파종하여 꽤 긴 이랑에 싹이 터서 귀엽기조차 하다. 이른 아침 산책길을 나서면 밭에서 아침 먹거리를 위해 파를 뽑거나 오이를 따기도 하고 밭을 둘러본다. 아침 인사에 기뻐하며 화답을 빼놓지 않는다. “늙은이에게 늘 인사를 건네주는 것만으로 고맙다.” 밝게 웃는다. 내 사진 속의 등장인물이 될 때도 있다. 간혹 밭에서 딴 가지며 오이를 건네주기도 한다. 일궈 놓은 상추밭에 상추를 따서 먹으라 성화다. 무가 익어갈 무렵이면 먹음직스러운 녀석을 뽑아 준다. 집을 비웠을 때는 나눠줄 채소를 담은 검정 봉지를 현관문에 매달아 두고 간다. 안사람도 맛있는 것을 사서 건네준다. 주고받는 세상인심이다. “이웃사촌”인 셈이다. 농촌으로 외지에서 농촌으로 귀촌이나 귀농을 하면 먼저 정착해 사는 마을 사람들과의 친화 문제가 뉴스거리로 자주 등장한다. 예전의 여유롭고 넉넉한 시골 인심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환경이 달라짐에 따른 시대의 변화이지 싶다. 그러나 자기 하기 나름이다. 남남이지만, 사촌과 같은 가까운 관계가 이웃이다. 떨어져 사는 자식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 그렇게 가까운 이웃을 이르는 말이 “이웃사촌”이다. 다급한 일을 상의할 사람도 이웃이다. 이처럼 삶에 있어서 중요한 관계망의 하나가 이웃임엔 틀림없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미우나 고우나 이웃은 있기 마련이다. 요즘은 층간 소음 문제로 원수지간이 된 경우가 없지 않아도 멀리 있는 가족이나 친인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의 소중함을 느낀다. 근대산업화가 진행하면서 할 일이 많아지고 대체로 시간에 쪼들린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편과 아내가 함께 직장을 다녀야 가정경제가 유지된다. 1983년에 스위스 취리히에서 해외보험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휴일을 이용하여 영국을 방문하여 교포 집에 하룻밤을 잔 적이 있다. 그때 안주인이 이런 얘기를 했다. “영국에서는 일손이 있으면 누구든 일을 해야 먹고 산다. 남편 혼자 일해 먹고 살 수 있는 한국 부인들이 부럽다.” 20여 년이 지난 우리나라도 그런 상황이 됐다. 그렇기에 휴일은 그야말로 직장인의 황금 휴식시간이다. 맞벌이하여야 하는 시대이고 자기 일을 찾아 함으로써 보람을 갖는 시대를 산다. 그 시간을 쪼개어 부모를 방문하기는 마음 같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웃은 중요한 관계망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개인주의와 아파트 문화가 확산하면서 이웃이 멀어지는 듯도 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지내기 예사였고 함께 쓰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그저 그랬다. 서양의 외국인처럼 낯선 사람을 만나도 어깨를 들썩이며 눈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동경하기도 했다. 근래에 이르러 이웃은 더 중요하게 주목받는다. 홀몸노인을 비롯하여 홀로 사는 사람과 세대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다. 특히 나이 들어 외로움을 더 타는 시니어에 꼭 필요한 인간관계다. “이웃사촌”으로 내가 먼저 나서야 한다. “늙은이에게 정답게 인사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우니 점심 사시겠다.”고 나서는 우리 이웃 할머니처럼 말이다.
- 2016-08-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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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장마철 풍경
- 필자는 서울 변두리 끝자락 동네에 살고 있다. 비록 땅값 집값은 별로 안 나가지만 이 동네가 좋아 떠나지 못하고 벌써 몇십 년째 산다. 필자 동네는 바로 코앞에 북한산 국립공원이 있다. 남들은 이 산에 오르기 위해 버스 타고 자동차 타고 몰려들지만, 필자는 운동화 끈만 조여 매면 언제라도 오를 수 있으니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 아파트 뒤편으로 북한산으로부터 흐르는 개천이 있고 그 너머에 아직 개발되지 않아 무허가 집이 많은 산동네가 있다. 예전에는 지저분했지만, 이제는 무허가 집이라 해도 지붕도 고치고 텃밭도 가꾸어 우리 집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보기 좋은 전원주택 느낌이 물씬하다. 약간 불만은 TV 드라마에서 부자 동네로 평창동이나 성북동이 나오는데 우리 뒷동네는 주인공이 어릴 때 못살던 시절이나 형편 어려운 사람이 사는 곳으로 촬영되곤 하는 점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도 허름한 집으로 뒷동네가 나와서 어쩐지 떨떠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그 분위기가 좋아 일부러 가끔은 그 동네로 산책하러 가기도 하는데 담장에 늘어뜨린 덩굴이나 예쁜 꽃이 핀 화분으로 집 앞을 치장한 조촐한 풍경이 마음에 든다. 지난해에는 북한산에서부터 개천을 따라 2㎞의 산책길이 조성되었다. 청계천처럼 옛 물길을 튼다는 의미로 정비되어서 동네 사람이나 다른 동네에서도 걷기 운동하기 위해 찾아드는 명소가 되었다. 시니어에 하루 걷는 운동량으로 적당한 왕복 4km 거리라 필자도 운동하러 열심히 이 길을 걷고 있다. 개천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길은 사계절 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봄이면 화사한 꽃이 지천으로 피어 즐겁게 하고 녹음이 우거진 여름,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과 흰 눈이라도 펄펄 내리는 겨울날은 그야말로 낭만을 만끽한다. 특히 그중 가장 멋진 일은 한여름 장마철의 동네 풍경이다. 내린 후 우리 집은 바로 설악산 계곡에 와 있는 것처럼 웅장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이 멋지다며 매우 부러워한다. 콸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소리는 설악산 못지않은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비가 그친 후 베란다에서 폭포처럼 휘몰아치는 개울물을 내려다보는 건 참으로 시원하고 즐거운 일이다. 산책하러 나가니 바로 옆에서 깨끗하고 맑은 시냇물이 신나게 노래하는 듯하다. 물이 너무 맑아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맑은 물을 들여다보니 어릴 때 생각이 난다. 필자는 어린 시절 대전에 살았는데 외가 동네에 대전천이 있었다.폭이 무척 넓은 개천으로 물이 그리 깊지 않아 동네 꼬마들 물놀이하기에 좋았다.어린 마음에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빛 시냇물이 너무나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과 빨래한다고 손수건 따위를 들고 넓적한 돌을 찾아 비비며 즐거웠다. 그때 시냇물 돌 위에 서서 흐르는 물결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몸이 배를 탄 것처럼 마구마구 흘러가는 착각이 들었다. 좀 어지럽긴 해도 참으로 스릴 있고 재미있는 놀이였다. 오늘 이렇게 맑은 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어린 날 느꼈던 감상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한참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 집값이 좀 싸면 어떻겠는가? 바로 집 가까이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어 무엇보다도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 2016-07-19 1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