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원식 소설가
대전에서 은행원으로 살았던 홍성규씨(75)가 명퇴 뒤 귀촌을 서둘렀던 건 도시생활에 멀미를 느껴서다. 그는 술과 향락이 있는 도회의 풍습에 착실히 부응하며 살았던 것 같다. 어지럽고 진부한 일상의 난리블루스,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돼 있는 게 삶이라는 행사이지 않던가. 그러나 문득 쇠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정색을 하고 화드득 나를 돌아
저출산으로 인한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 다니던 초등학교가 문을 닫는다. 언제나 찾아가면 어릴 때 왁자지껄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릴 듯한데 잡초만 무성하다. 마음의 안식처를 잃은 듯 한참이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전국 시골 어디를 가봐도 이러한 폐교의 모습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저출산은 생산의 동력을 잃어
늘 땀이 많은 체질이다. 군대 있을 때는 잡초 제거 작업을 하던 중이었는데 내가 땀을 많이 흘리자 작업관이 나는 그만하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농땡이 치느라고 땀도 안 났는데 나는 열심히 했으므로 땀이 많이 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겉보기로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 그 덕을 본 셈이다.
피부가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땀이 노폐물을 빨리 빼주기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에어비앤비가 내세우는 여행 방법이다. 친구, 가족이 아닌 현지 주민과 하루 정도 살아보는 건 어떨까? 여름휴가 시즌을 맞아 외국을 가보고 싶었으나, 강원도 영월의 한 에어비앤비를 찾아가 숙박했다. 혼자 떠난 여행. 역시 그곳에는 기분 좋은 만남이 있었다는 사실! 웃음 가득했던 시간이 벌써 그리울 따름이다.
서울에서 고속버
불화살이 쏟아지듯 뙤약볕이 내리쬐는 7월의 풀밭.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질식할 듯한 폭염 속에서 저 홀로 화사한 선홍색 꽃을 피우는 야생 난초가 있습니다. 자신을 집어삼킬 듯 이글거리는 태양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맞서기에는 힘이 부친 듯, 온몸을 비틀어 마지막 한 방울의 색소까지 짜내어 보는 이를 한눈에 사로잡기에 충분히 매혹적인 꽃다발을 선사합니다. 그
몽골은 봄이 아주 늦게 시작된다. 이토록 어렵게 온 봄인데도 그 기간이 아주 짧다. 그래서 이때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안부보다 꽃에 대한 안부를 묻는다. “진달래가 어느 길목에 모여 피었다던데 보셨나요?” “보라색 할미꽃은 자이산 기슭에 있어요.” “거기엔 에델바이스가 한창 올라오던데 비가 한 번 더 내려주었으면 좋겠어요.”
거의 8개월의 거친 바람과
필자는 남편과 한 달에 한 번 실갱이하는 날이 있다. 바로 머리 깎는 날이다.
남편은 그날이 오면 지루하게 앉아 있을 접이 식 조그만 의자, 싹싹 갈아 보관한 날렵한 가위, 미국에서 사온 100V짜리 전기 바리 깡, 주섬주섬 주어 모은 각양각색 못 생긴 빗들, 한국의 220V에 끼우려면 다운 트렌스까지 좁아 터진 목욕탕 변기뚜껑 위에 늘어놓는다. 총 출동
“저 매화 화분에 물 주어라[灌盆梅].” 우리의 옛 선비들이 매화를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아끼고 좋아했는지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마디 말입니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퇴계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라고 제자 이덕홍(李德弘)이 이란 문집에 전하고 있습니다. 생전 100여 편이 넘는 매화시를 짓기
800km 국토종단, 4200km 국내 해안 일주, 24시간 밤새 100km를 걷는 울트라 걷기 등 젊은이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을 65세가 넘어서 이뤄낸 도보여행가 황안나(본명:황경화(黃慶花)·76)씨. 그녀는 국내뿐만 아니라 산티아고, 네팔, 홍콩, 몽골, 부탄, 동티베트, 베트남, 아이슬란드, 시칠리아 등 50개 국의 길을 밟았다. 지리산 종주도 벌
옛날 한 임금님이 있었는데 왼쪽 눈이 애꾸눈이었다. 그는 생전에 자기의 초상화를 남기고 싶어 전국의 화가들을 모두 불러 모아 자기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하였다. 전국에서 내노라 하는 화가들 중 세 명을 최종 선발하여 초상화를 그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고민 끝에 결국 한사람은 애꾸눈을 정상적인 눈으로 그렸고, 또 한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