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무대 장악력으로 고유한 예술세계를 구축해온 김영희(金映希·61)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작품들은 존재의 자각 내지는 삶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제시해왔다. 1980년대 ‘나의 대답’, ‘어디만치 왔니’ 등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던 무대 뒤에는 늘 ‘독보적인 존재감’, ‘강력한 아우라’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단순히 ‘
시어머니는 처음 뵈었을 때부터 쪽진 머리였다. 동그스름하고 몽똑하게 붙은 뒷머리 가운데로 은빛 비녀가 반짝였다. 농사일로 두 손을 호미 삼아 거의 평생을 사신 어머니. 그 시절 부녀자들에게 달리 돈이 될 유일한 게 머리카락을 파는 거였다. 젊은 시절엔 당신의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내주고 항아리나 그릇 등을 장만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만든 바늘꽂이
조선왕실의 뿌리 '전주'를 떠나다
전주(全州)는 전주 이씨의 시조(始祖)와 조상들이 태어나고 자란 조선왕실의 뿌리라 할 수 있는데, 대대로 살아오던 이곳에서 이성계의 4대 조상 이안사에 이르러 전주를 떠나게 된다.
훗날 이성계에 의하여 목조대왕으로 추존된 이안사는 시조 이한의 18세가 되며 전주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지금의 이목대(梨木臺)가 그곳인
10여 년 전, ‘한국죽음학회’를 설립하고 ‘웰다잉’과 관련해 선구자 역할을 해온 최준식(崔俊植·63)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당시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그는 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정도를 넘어 성장의 계기로 적극 활용하자고 말한다.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등의 질문들
이제야 비로소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고 했다. 삐걱대던 시절을 지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대했더니 희망이 찾아들었다. 나이 먹고 퇴역 군인처럼 산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이 사람.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는 이유? 일이 더 하고 싶어서란다. 멋진 목소리의 DJ, 활기찬 시니어 기자 소리 듣는 게 좋다는 윤종국 동년기자를 만났다. 화창했던 어느 화요일 낮.
친애하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 여러분. 저는 바상자브 주한 몽골대사입니다. 지난 5월 16일부터 7월 17일까지 한국·몽골 공동학술조사 20주년을 기념한 ‘칸의 제국 몽골’ 특별전을 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몽골 제국의 역사와 유목문화를 주제로 기획되고,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전시된 유물들을 소개합니다. 몽골의 유물들을
풍패지향(豊沛之鄕) '전주'
전주(全州)는 조선 왕실 가문의 관향(貫鄕)으로 전주 이씨의 시조(始祖)와 조상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즉, 조선 왕실의 뿌리가 그곳인데 전라도의 수부(首府) 전주(全州)로 부르기보다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고 부르는 것을 더 높이 섬기고 받든다.
이는 천하를 최초로 통일한 중국의 진(秦) 나라가 3대를 넘기지 못하
해마다 6월이 되면 우리 가족은 60년 전 납북된 시아버지를 떠올리며 착잡한 마음에 휩싸이게 된다. 한국전쟁 발발 뒤 얼마 되지 않아 시아버지는 북으로 납치됐다. 여태껏 한 번도 시아버지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살아 계셨다면 지금 아마 100세는 넘기셨을 텐데. 살아계실 거라는 기대를 뒤로하고 5년 전 향년 95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시어머니 기일에 맞춰
3년 전, 공기업 지방 지점장을 할 때 일이다. 서른 살 후반인 사무실 여직원 K양이 나에게 자동차 구매에 대한 자문을 구해왔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여자상업고등학교를 나와 근검절약하며 어렵게 살아온 K양이었다. 집도 회사에서 가까웠기에 자동을 왜 사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 물어봤다. 자동차를 사면 주로 어디에 쓸 거냐고 말이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궁벽한 서해안의 한촌(閑村)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까지 보냈다. 소나무가 아주 많은 곳이었다.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 ?~1866)도 이곳을 다녀간 후 “그곳에 소나무가 많다”고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적었다. 장터 옆 중학교까지는 시오리 길이라 왕복 30리 길을 매일 걸어 다녔다. 신작로 주변의 야트막한 산에도 소나무가 지천이었다. 운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