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제대로 되겠어?” 하는 의심부터 한다. 그것도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흙 한 번 밟기 힘든 서울 한복판에서 농사 얘기를 꺼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밥상에서 곁들일 채소 몇 가지 정도 심는 그런 텃밭이 아니다. 제대로 수익도 올리고 양봉까지 한다. 행촌마을 사람들 이야기다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에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했다. 얼마나 울렸을까. 급하게 수화기를 들었다.
“이경숙씨 댁 맞나요?”
“○○여고 나온 그분 맞으세요?”
익숙한 목소리. 뒤이어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기억이 나냐고 물었다. 순간 30여 년 전 시간들이 확 몰려왔다. 그와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서클에서 활동을 했다. 광화문 근처 4개 학교의 학생들
곁에 있는 가족, 평범했던 하루 등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연극 . 교사 퇴임 후 치매 아내를 돌보는 남편 역을 연기한 배우 이순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바쁜 일정에도 이번 작품에 참여한 계기는?
을 끝내고 마침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났고, 작품도 마음에 들었어요. 아내가 치매에 걸린 남편 역할인데, 실제로 겪어본 적
벚꽃이 지고 이젠 겹벚꽃, 복숭아꽃, 살구꽃이 한창이다. 겹벚꽃과 복숭아꽃은 둘 다 묘한 화려함이 엿보인다. 겹벚꽃은 일반 벚꽃보다 꽃잎이 풍성하다. 겹복숭아꽃도 겹벚꽃과 비슷하게 풍성하다. 농악대의 고깔에 쓰이는 꽃 모양으로도 보던 것이라 촌스러운 느낌도 든다. 색깔도 분홍색이다. 복숭아꽃은 도화(桃花), 또는 복사꽃이라고도 한다. 분홍색이면서 가운데 암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나 저세상으로 가시게 되면 우리는 어떤 옷을 입혀드려야 할까? 물론 수의를 입고 가시지만 때가 되면 갈아입으실 다른 옷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버지께서 당시에 공부만 하던 5남매를 이 세상에 남겨두시고 1976년 엄동설한에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으니 올해로 만 41년이 된다. 중국의 천자가 쉬어갔다는 천자봉 아래 명당자리에 아버지를 모셨
웅장하게 펼쳐진 겹겹의 산속에는 지난날의 기억들이 어른거렸다.
미국에서 돌아와 자리 잡은 곳이 태릉과 멀지 않은 퇴계원이었다. 복잡한 도심과는 거리가 먼듯하고 경기도가 시작되는 서울의 끝자락이다. 여기저기 뚫려있는 도로와 교통량이 그나마 적고 어딘가 모르게 미국의 정서가 남아있는 듯해서 선택한 곳이었다.
더구나 공기가 맑고 쾌청해서 바로 옆 서울과는
최근의 여행 트렌드는 친구나 연인과의 여행보다는 가족과 함께 떠나는 테마 여행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여행의 보편화와 맞물리는 현상으로 보인다. 여행이 일상이 된 현재, 보다 일상적인 이벤트로서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시인 류시호씨는 며느리, 사위, 손주 등 온 가족과 자주 여행을 떠난다. 이번 5월에
허비되기 쉬운 건 청춘만은 아니다. 황혼의 나날도 허비되기 쉽다. 손에 쥔 게 많고 사교를 다채롭게 누리더라도, 남몰래 허망하고 외로운 게 도시생활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에 들어온 지식, 가슴에 채워진 지혜의 수효가 많아지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은하계를 덧없이 떠도는 한 점 먼지이지 않던가.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한다.
6성급 크루즈 선이 인천 항구에 들어왔는데 인천에 볼 것이 없어 승객들이 내리지 않는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그나마 이 크루즈 선은 한국에서 인천이 유일한 항구란다. 동남아 관광객을 부른다면서 명동에 할랄 식당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기사도 있었다.
도대체 그동안 인천 시장들은 무엇을 했는지, 관광공사는 무엇을 한 건지 한심한 일이다. 관계자들이 현장
친구가 밥이나 먹자고 전화를 걸어 왔다.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던 필자는 청첩장을 챙겨들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모바일 청첩장을 이미 보낸 터라 따로 종이 청첩장을 챙기지 않아도 됐지만 얼굴을 대면해서 직접 건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친구는 딸의 결혼에 적당한 덕담을 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결혼식에 참석해 못해 미리 준비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