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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로 나이 한계 극복… “미래는 고령 인력에 달려”
- 가치 있는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모습. 허송세월의 정의다. 새해를 허송세월로 지내고 싶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보다는 매 순간 의미 있는 일들로 꽉 찬 한 해를 바랄 테다. 윤정구(64)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이를 위해선 체험하는 시간의 개념인 ‘카이로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카이로스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기회의 신’으로도 불린다. 인생의 기회는 경험의 시간을 사는 가운데 맞이하는 선물과도 같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일정한 속도와 방향을 갖고 기계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크로노스(Kronos)라 한다. 윤정구 교수가 언급한 카이로스(Kairos)는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특별한 시간이다. 가령 똑같은 10년이라도 허송세월로 보내는 이에게는 마치 100년처럼 길게 느껴지겠지만,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바삐 사는 이에게는 1년처럼 짧게 여겨질 수 있다. 절대적인 시간(크로노스)은 10년이더라도, 상대적 시간(카이로스)이 저마다 다른 것이다. 즉 크로노스는 양적인 시간,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인사조직 전략, 조직경영 개발 등을 연구해온 윤 교수는 이런 차원에서 접근할 때, 현재 노동 현장에서 적용하는 시간의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이 바뀌는데, 여전히 시간 개념은 산업화 시대 생산 노동자에게 적용했던 방식에 머물러 있어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를 벗어나지 못한 거죠. 아직은 주 5일 근무가 일반적인데요. 가령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활용해 회사에 약속한 일을 끝내는 데 4일이 걸렸다고 쳐요. 주 5일이라는 크로노스의 시간을 채우지 않았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으로는 목표를 달성한 거잖아요. 그런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혁신은 일어날 수 없어요. 시간으로 산정한 임금이 책정되는데, 근로자가 애써 생산성을 늘리는 혁신을 감행할 이유가 있나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재택근무 등 일터에서의 논쟁 대부분이 본질을 벗어났다는 걸 알 수 있죠.” 기술의 민주화 시대,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현재, 일자리 이슈 중 하나는 ‘정년 연장’이다. 윤 교수는 카이로스의 개념에서 볼 때 은퇴 기준점을 ‘나이’로 책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 지적했다. “양적인 시간으로 책정된 나이만 고려한 거예요. 개인의 경험이나 노력 등 질적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카이로스 개념에서의 나이는 다를 수 있죠. 결국 회사가 고객에게 약속한 가치를 자신의 인적 자원을 통해 누가 더 많이 창출하느냐가 관건이잖아요. 한때는 젊은 직원들이 기술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나 인정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생성형 AI나 로봇 등이 보편적으로 보급되면서 누구나 기술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죠. 코딩, 알고리즘 등에 대한 지식이나 전문 자격증이 없어도 챗GPT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처럼요. 이러한 기술의 민주화, 전문성의 민주화로 나이와 같은 태생적 요인이 인적 자본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줄었어요.” 최근 인공지능의 발달로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거나 대체되리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고령자 일자리가 더욱 위협을 받으리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윤 교수는 이러한 시대 변화가 고령자에겐 기회라고 역설했다. 카이로스의 또 다른 이름(기회)처럼 말이다. “그동안 기술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수단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왔다면, 이제는 조직의 공유된 목적을 위해 기술과 인간이 협업하는 관계로 설정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이와 무관하게 생산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는 대안적 방법들이 마련될 수 있죠. 이때의 기술은 고령자에게 오히려 득이 됩니다. 고령 인력이 지닌 체력이나 모빌리티(기동성·유동성)의 한계를 상당 부분 해결해주니까요. 즉 정년을 따질 것 없이 기술과 잘 협력하면 장기간 안정적인 직장생활도 가능하리라 예상해요.” 대한민국의 미래는 고령 인력에 달렸다 지난해 말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부양비(20~64세 100명당 65세 이상 인구)는 날로 증가하며, 2075년에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한편 고령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주요국을 웃도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급증하는 노인 부양비를 감당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해 윤 교수는 고령 인력 활용이 단초 역할을 해낼 수 있으리라 진단했다. “당장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그 아이들이 경제활동 인구로 성장하려면 20년을 기다려야 해요.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 고령자 중 아직 활용되지 않은 인력을 동원하는 겁니다. 최근 매킨지 보고서를 보면 정년퇴임을 했는데 일을 안 하거나, 정년퇴임을 준비하는 이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면 GDP가 얼마나 올라갈지를 예측했어요. 그 결과 우리나라의 경우 GDP의 14.7%가 성장한다고 나와요. 비교된 20여 개 국가 중 1위를 차지했을 만큼(일본 8.6%, 미국 7.2%, 영국 4.8% 등) 월등히 높은 수치죠. 우리가 매년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경제성장률이 2% 미만이잖아요. 고령 인력의 활용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예요. 그렇게 당분간 대한민국의 미래는 고령 인력에서 찾아야 합니다.” 고령 인력은 조직원으로 일하기도 하지만 리더의 위치에 놓인 이가 상당수다. 저서 ‘진성 리더십’을 펴내고 대한리더십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리더십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온 윤 교수는 중장년·고령 리더들이 거버넌스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 세계적으로 거버넌스가 역피라미드 구조로 바뀌고 있어요. 가령 글로벌 기업 리더들은 조직원들에게 이렇게 설명해요. 회사는 일종의 플랫폼이고, 리더는 그런 플랫폼을 디자인하는 사람이고, 이것들을 이용해서 네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 증명해보라는 식이죠. 즉 회사보다는 개인의 성장을 위한다는 취지인데, 이렇게 말해도 직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분들도 있어요. 솔직히 말해 그건 진정성이 없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속으로는 회사의 성장과 이익을 우선하면서 겉으로만 그 직원을 위하는 것처럼 포장했기 때문이죠. 말뿐인 독려라는 걸 직원들도 느낄 텐데,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 수밖에요.” 리더 입장에서 진정성을 갖기 힘든 건 직원에 대한 신뢰가 영글지 않은 탓도 있겠다. 신뢰라는 건 상호의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윤 교수는 서로 간의 ‘신뢰 자본’을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A라는 사람이 내게 100만 원을 빌려달라 했을 때 그 돈을 못 받을 걸 전제로 손해를 감수하고 빌려준다면, 신뢰 자본 100만 원이 생긴 셈이에요. 반대로 A도 나에게 그렇게 해준다면 둘 사이의 신뢰 자본은 200만 원이 되죠. 그렇게 신뢰라는 건 서로가 상처받을 개연성에 대해 인정하는 거예요. 그러니 손해를 전혀 안 보겠다고 생각하는 관계에서는 신뢰가 생길 방법이 없어요. 그런 신뢰의 결여 때문에 요즘 젊은 조직원 중에는 공정성 같은 덕목을 따지는 이들이 많은 편입니다. 서로가 손익 계산기를 두드리는 거죠. 결국 그런 상황에서는 건강한 조직을 기대하기 어려워요. 이럴 때 리더가 할 수 있는 일은 긍휼감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긍휼감은 공감이나 연민을 넘어서는 행동 지향의 도덕적 정서인데요. 긍휼감을 가진 리더는 조직원의 고통도 자신의 것으로 내재화해 함께 풀어가려 하죠. 이런 태도를 보였을 때 조직원들도 리더에게 진정성과 신뢰를 느낄 수 있다고 봐요.” 우리 사회 빙산의 밑동을 복원하는 시간 현실적으로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 앞에 윤 교수의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건강한 조직과 리더십, 지속 가능한 기업에 대한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특히 기업의 근간이 되는 조직원들의 고통을 눈여겨보고자 한다. “조직에서 직면한 거의 모든 문제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고통을 해결하지 않고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결과예요. 돌봄을 받지 못한 고통이 문제로 터져 나왔을 때, 많은 리더가 원인인 ‘고통’을 해결하지 않고 밖으로 드러난 ‘결과’만 봉합하려 하죠. 일단 그렇게 문제를 덮고 시작하기 때문에 근원적 해결이 불가능하고, 반복되는 거예요. 조직과 경영을 연구한 학자로서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빙산의 형상에 비유해 설명을 이어갔다. 기업의 경우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 즉 핵심 사업이나 수익을 키우는 데 주목한다. 그러나 이러한 빙산의 윗동이 잘 성장하려면 이를 잘 지탱하는 수면 아래 밑동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밑동에 비유할 수 있는 게 바로 조직원이다. “눈에 보이는 비즈니스 모델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밑동을 이루는 조직원들의 고충이나 아픔에 대해 인정하고 치유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이러한 현상은 기업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정치•종교 등 우리 사회 전 분야에서 이런 밑동을 간과한다고 생각해요. 정년퇴임 후에는 잃어버린 밑동을 어떻게 복원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며 카이로스의 시간을 채워가려 합니다.”
- 2024-01-18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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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촌과 함께 누리는, 시골 카페의 소박한 나날
- 창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보기 좋다. 비경이 펼쳐져서가 아니다. 새파란 하늘과 금빛으로 일렁거리는 가을 논, 그리고 저 멀리 있는 초록 산….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관이지만 안락감을 불러일으키며 눈에 살갑게 다가온다. 여긴 충북 괴산군 소수면에 위치한 카페의 창가다. 오가는 이도, 차량도 드물어 종일 고즈넉한 시골에, 조막만 한 동네에 모던한 카페라니. 대체 무슨 묘한 역발상에 이끌려 차린 찻집일까? 다들 눈을 끔벅거리며 의아해하기 십상이다. 카페 주인은 2020년에 이 지역으로 귀촌한 이지영(66, ‘카페 산이다’ 대표)이다. 지난 5월 개업했다. 그러니까 아직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장사는 잘되나? 잘된다. 이지영 본인조차 예상하지 못한 호조다. 이지영에게 시골은 낯설지 않다. 그는 서울에서 주로 살았지만 한때 남편과 함께 전북 무주군으로 내려가 시골살이를 했다. 부부가 합심해 산골에 대안학교를 설립하고서였다. 남편 김경남 목사는 교장직을 맡았고, 이지영은 조역처럼 뒤에서 거들었으며 때로는 농부처럼 논밭에서 일했다. 그러다 불운이 닥쳤다. 2019년 김경남 목사가 심혈관 질환으로 타계한 것. 이지영의 고통이 자심해 더 이상 무주에 머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대안학교 교사들의 심적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미국에 사는 자식들은 어머니를 불러들여 함께 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지영은 오랫동안 해온 일을 지속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일본을 드나드는 걸로 전환점을 삼았다. 일본은 그에게 익숙한 나라다. 오랫동안 해온 일이란 사회운동이다. 그는 일찍이 민주화운동의 전위에 섰던 김경남 목사와 가치관을 공유하며 노동, 인권, 복지 분야 활동가로 활약했다. 일본 여성 활동가들과 연대해 위안부 문제나 일본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공동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일본을 빈번히 드나들었던 거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에 가로막혀 일본행이 어려워졌고, 그는 숙고 끝에 이곳 괴산 땅을 정처로 삼아 무주에 이은 두 번째 귀촌을 했다. 숱하게 생긴 좋은 인연들 “괴산 소수면엔 귀촌을 원하는 지인들의 공동체 단지가 이미 마련돼 있어 이주가 쉬웠다. 집터에다 집을 짓기만 하면 됐으니까. 공동체 구성원들은 모두 김경남 목사가 만든 ‘들꽃마을 협동조합’ 멤버들이다. 대부분 서울에서 사회운동을 했던 사람들로, 귀촌을 통해 자연과 함께 살고 싶다는 동일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둘 이곳에 내려왔다. 현재 11가구가 거주한다. 앞으로 더 늘어나 30가구가 모여 살게 될 것이다. 난 3번 타자로 입주했다.” 공동체라면 입주자마다 지켜야 할 기본 룰이 있겠지? “하나가 있다. 집에 대문과 담장을 설치하지 말자는 거. 나머지는 다 자유롭다.” 귀촌 직후엔 어떤 일을 했나? 살아온 이력으로 보면 산골에 홀로 산다 해도 아무 일 없이 지낼 것 같지는 않은데. “처음부터 바쁘게 살았다. 그게 성향에 맞는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공동체에 먼저 들어온 아낙들이 있어 지루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그들이 말하더라.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라. 넌 이제 우리가 지켜줄 테니까!’(웃음) 그들과 함께 텃밭에서 웃고 떠들다 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고는 했다.” 사별의 아픔은 깊은 곳에 새겨져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짝을 잃은 상심은 대부분 오래간다. “가슴 한쪽이 텅 빈 것 같고, 원망도 생기고, 심란한 게 있긴 했다. 반면 뭔가 새로운 기분에 들썩이기도 했다. 왜 사람에게는 이런 거 있지 않나? 혼자 좀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 말이다. 여행가방 하나 들고 떠돌이처럼 살까? 그런 생각도 잠깐 했었다.” 떠돌이 대신 텃밭을 택했다? 처음엔 텃밭 농사를 즐길 만하지만 시간이 가면 귀찮아질 수 있다. 늘 풀을 뽑아야 하니까.(웃음) “내겐 여전히 즐겁다.(웃음) 지난봄엔 강낭콩 씨앗 3000원어치를 사다 심었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수확이 나와 놀랐다.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고도 남더라. 야, 이거야말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구나! 속으로 찬탄했다. 그런데 텃밭 농사는 일상의 일부일 뿐 내겐 더 분주한 스케줄이 있었다 어떤 일을 했기에? “평생학습매니저 자격증을 딴 뒤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학습과 상담 활동을 했다. ‘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를 통한 공부 역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초등학생부터 노인대학 어르신들까지, 2년여 동안 참 많은 이들에게 강의를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오히려 그들에게 많은 걸 배웠다. 괴산 전역을 샅샅이 알게 되었고. 더 즐거웠던 건 좋은 인연이 숱하게 생겼다는 데 있다.” 노력으로도 쉬 얻을 수 없는 게 좋은 인연이다. 그러나 이지영에겐 인연이 자주 맺어진다. 순해 보이는 인상의 후원을 받은 덕분일까? 아니면 타고난 사교성으로 상대를 일거에 무장 해제시키나? 그의 얘긴 이렇다. “내겐 왠지 사람이 잘 꼬인다.” 괴산뿐만이 아니라 좋은 지인들이 멀고 가까운 곳에 원래 많단다. 그는 24평짜리 집에 산다. 집 앞으로 냇물이 흘러 졸졸졸 명랑하게 노래한다. 기분이 밝아지는 집이다. 하지만 그는 좀 후회스럽다. 왜 더 작은 집을 짓지 않았나,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가급적 단순하게, 가급적 소박하게, 가급적 실용적으로 살자 했건만 다소 오버해서 집을 지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집엔 작은 방이 여럿이다. 화장실도 두 개다. 이건 지인들의 방문을 고려한 구성이다.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좋은 배려가 좋은 삶의 비결이라고 여기는 이지영의 신념이 반영된 집인 셈이다. 그는 귀촌의 날들을 웃음과 함께 느긋하게 누리고 있다. 이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타자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선의로 자연스럽게 거둔 결실일지도 모른다. 그가 카페를 차려 단기간에 일군 안정적인 상황도 평소의 좋은 인간관계가 데리고 온 행운의 산물일 테다. 지인이 측근이 되고, 조력자가 되는 법이며, 그들은 어떤 일에든 관심과 지지를 보내 힘을 실어주지 않던가. 그런데 카페를 차린 연유가 궁금하다. “이곳 소수면 소재지엔 지난날 다방이 네댓 개나 있었다지만 주민 수가 급감하면서 다 사라졌다. 그렇다면 뭔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할 만한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카페 운영을 구상했다. 나에게도 좋고 주민들에게도 좋은 일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 마침 한 식품회사 건물에 적당한 공간이 있어 오래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을 중심에 둔 건 아니었나? “수입원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장사가 될지 미지수였기 때문에 기대를 걸진 않았다. 뭐든 머리 싸매고 궁리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모았다. 그런데 예상대로 잘 돌아가지 않더라. 손님이 별로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처음 두어 달에 그친 부진이었을 뿐이다. 뜻밖에도 손님이 늘면서 석 달째부터 수익이 늘기 시작했다. 빠르게 자리 잡은 셈이다. 오픈한 지 반년이 지난 현재는 직원 두 사람과 함께 일하고 있다.” 소수면 인구는 겨우 2000여 명에 불과하다. 괴산군청 소재지는 멀리 있고, 인근에 사람들이 몰리는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로 어떤 이들이 카페에 오나? “대부분 면내 주민들이다. 동네 중년과 노년들이 찾아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데, 분위기가 매우 화기애애하다. 요즘은 읍내나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입소문이 나는 것 같다. 얼마 전엔 시골에서 좀체 볼 수 없는 차림새를 한 청년이 혼자 들어와 노트북을 펼치고 커피를 마시더라. 그건 내게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웃음) 머잖아 청년들을 자주 볼 수 있으리라는 예감도 들었다.” 불편을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여 이지영은 카페의 매력과 개성을 돋워 문화공간으로 가꿔나갈 참이다. 시골 사람들도 문화 향유 욕구가 강하다는 걸 확인하기도 했다. 이미 두 차례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영화 상영을 위한 스크린도 설치했다. 미술 전시회나 북 콘서트도 준비하고 있다. 지역민이 생산한 농산물이나 공예품 등을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채널로 카페를 개방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판이 커질 조짐이 완연하다.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함께 이루고 함께 걸어가는 일의 기쁨을 추구하는 이지영은 카페의 활력에 힘입어 물 만난 고기처럼 생동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귀촌 생활에 만족을 느낀다. 만족은커녕 귀촌을 통해 우울증에 걸려 고생하는 경우까지 있지만 그는 차원이 다르다. 시골에 적응하지 못해 원점으로 돌아가는 귀촌인들도 있다. 원주민과 불화하는 최악의 사태를 맞아 고통을 겪기도 한다.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자세를 좀 낮추면 된다. 내가 먼저 낮추면 상대방도 낮추게 마련이다. 이건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던가? 내 경험으로 보면 시골의 인심엔 여전히 순박성이 깔려 있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 단순하고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게 시골이다.” 독신 여성의 귀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위험요소가 적지 않은데. “상황을 헤쳐나갈 강한 의지가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그러나 심사숙고하는 게 좋다. 가능하다면 지인이 있는 곳으로, 또는 친구나 선후배와 동반 귀촌을 하는 게 한결 안전하다.” 물신을 주님으로 섬기는 세상이다. 이건 시골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흔히 소박한 시골살이를 권장하지만, 믿을 만한 자금력이 없을 경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적은 소유로도 좋은 시골 생활이 지속 가능하다고 보나? “가능하지 않을 이유가 뭘까. 자연에서 느끼는 행복감이라든가, 돈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정서적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시골이다. 난 물질이든 욕망이든 덜 가지고자 했다. 그게 정직하게 사는 방법이라 믿는다. 내겐 오랫동안 통장과 휴대폰이 없었다. 이런 나를 두고 아이들은 ‘대책 없이 사는 엄마’라며 걱정한다. 아닌 게 아니라 가끔은 아하, 내가 너무 허당으로 살았나? 이건 좀 그렇네!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웃음) 하지만 이미 몸에 붙은 생활방식이다. 적게 가진 불편을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능력도 생긴 것 같고.” 이미 가졌으면서도 더 가지기 위해 진땀 빼다가 무너지는 게 인생이다. ‘모름지기 소박한 길을 따라 느긋하게 걷는 게 어떤가?’ 이지영의 얘기를 난 그런 제안으로 들었다. 이지영이 주는 귀농•귀촌 Tip •낭만적인 전원생활에 관한 동경은 버려라. 시골 역시 냉정한 삶의 현장이다. •귀농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풍부한 자금력과 강인한 도전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귀농보다 귀촌을 하는 게 현명하다. •귀농•귀촌지를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자. 후보지에서 미리 살아보고 정해야 리스크를 예방할 수 있다. 지자체들이 운영하는 ‘한 달 살아보기’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해 시골살이의 물정부터 익히는 게 필요하다. •귀농•귀촌에 따른 사전준비는 철저할수록 정착이 쉬워진다. 특히 귀농의 경우엔 농산물 유통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해두는 게 중요하다. •시골 생활은 당당한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보는 사람’에서 ‘하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
- 2023-11-1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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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담은 서툰 그림, 영화로 빛을 발하다
- 동화책 삽화처럼 알록달록한 그림과 아이에게 옛이야기 들려주듯 담담한 내레이션은 5·18 민주화운동, 노인, 장애라는 주제를 훑는다.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입버릇처럼 들먹이지만 정작 시선 주는 데는 박한 세상,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펼쳐 보이는 시도가 빛날 수밖에. 영화 ‘양림동 소녀’가 2023 서울국제노인영화제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영화제의 막이 내린 대한극장 한켠에서 임영희, 오재형 감독을 만났다. 기나긴 코로나 시국, 아들은 집에만 있느라 답답해하는 어머니에게 크레파스와 사인펜을 선물했다. 그림으로나마 답답함을 풀고 세상과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된 어머니는 왼손으로 펜을 쥐었다.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로 이사 왔을 때의 기억들이 한 장, 두 장 그림이 되어 쌓였다. 미술을 전공한 아들은 삐뚤빼뚤한 그림에서 가능성을 엿봤고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왼손으로도 괜찮을까?” 자신 없어 하는 어머니를 아들은 꾸준히 격려하고 설득했다. 어머니의 생애를 영화로 제작하는 것은 영화감독 아들의 오랜 꿈이었다.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약 7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그림을 그렸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촬영했다. 어머니의 인터뷰 영상을 편집하고, 직접 연주한 배경음악을 삽입했다. 딸은 영어 자막을 위한 번역을, 아버지는 영화 타이틀 로고 제작을 맡았다. 분류는 다큐메이션(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글자 그대로 ‘독립영화’인 30분 08초 분량의 ‘양림동 소녀’는 이렇게 탄생했다. 빛나는 소녀 뒤엔 양림동이 있었다 영화는 온전히 어머니 임영희 씨의 기억에 의존해 만들어졌다. 영화의 다른 요소는 모두 배제하고 그림으로만 밀고 나갔다. 어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영화도 어머니의 그림으로 승부할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절대 잊지 못할 사건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유년 시절의 추억은 대체로 오래 기억되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벌써 40년이 지났지만, 제가 광주에서의 기억을 어떻게 잊겠어요? 영광스러운 한때로, 또 트라우마를 남긴 끔찍한 순간으로 죽는 날까지 품고 갈 수밖에 없죠. 나이 들어 마주하게 된 장애인의 삶은 또 어떻고요. 남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쩌면 기억력이 이렇게 좋냐 묻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장면들만 영화에 담았을 뿐이에요.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순간이니 당연히 기억하는 거고요.” (임영희 감독)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임 감독이 생애 가장 주체적이던 시기의 배경이었다. 제목이 ‘진도 소녀’, ‘광주 소녀’가 아닌 ‘양림동 소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생지인 진도는 옛 추억거리가 있고, 어린 시절 광주로 이사 온 것도 맞다. 하지만 문인의 꿈을 키우던 중고등학교 시절 사회운동과 5·18 민주화운동을 겪은 지역은 양림동이다. 남편을 만난 곳, 아들 오재형 감독이 태어난 곳 또한 양림동이다. 정체성을 결정지은 순간이 거리에 즐비하다. 그중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지 임 감독에게 물었다. ‘보프룩 까페’를 드나들던 20대 시절을 꼽는 목소리에 망설임이 없었다. “보프룩 까페는 프랑스 소설가이자 시민운동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보’, 미국 여성학자 베티 프리단의 ‘프’, 폴란드 철학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룩’을 따온 별명이에요. 제가 지었죠. 실제 카페는 아니었고, 제가 20대 당시 동경하던 언니의 집이었어요. 당시 마음 맞는 친구들과 모여 저 여성 학자들의 책을 읽으며 생각을 나누곤 했습니다. 보프룩 까페에는 언제나 뜨거운 커피와 사과 한 조각이 있었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어요. 제겐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었죠.” (임영희 감독) 그 밖에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학교에서 상을 받거나, 아버지와 남편이 옷을 만들어줬던 것 등. 떠올리면 즐거워지는 순간은 많다. 다만 영화에서 주가 되는 것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기억이다. 임 감독은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밤중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5·18민주광장(구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이웃이 국가권력에 의해 죽임당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와 남편 오정묵 씨는 황석영 작가의 집 2층 거실에서 담요를 둘러쓴 채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첫 테이프 녹음에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고통스러웠으리라는 추측과 달리 임 감독은 영광이라 표현한다. 난리통에 누구 하나 싸우거나 도둑질하지 않았고, 서로를 챙기고 보살피는 ‘신성한 공동체’를 몸소 체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약자를 통합시킨 양림동 소녀의 이야기 어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아들의 기대대로 혹은 그 이상이다. ‘양림동 소녀’는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상영 후 GV(영화 상영 후 감독이나 배우가 관객들과 갖는 대화)가 시작되기 전 기립박수를 받았다. 서울국제노인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기 전에는 2022년 제13회 광주 여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안았다. 김영우 서울국제노인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본심 심사위원은 “노인이라는 단어에 따라다니는 편견과 한계에 갇히지 않고, 노인에 대한 인식과 관점의 변화, 태도의 확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어르신이 직접 창작의 주체로 나서 기획, 촬영, 편집까지 맡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냈다는 사실이 특히나 감동적이었다”는 심사평을 대표로 전했다. 두 감독이 스스로 평가하는 영화의 강점은 무엇일까. “어머니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말이 어눌하고 오른쪽 손을 쓰지 못하세요. 그래서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셔야 했죠. 그 때문인지 선이 삐뚤빼뚤한데, 보통의 경우 약점이 되는 부분이 어머니의 그림과 영화에서는 강점으로 작용했어요. 이게 미술 전공자가 봐도 흥미로운 부분이었죠. 무엇보다 작화가 수준급이었고요. 덕분에 영화의 장르를 애니메이션으로 결정했죠.” (오재형 감독) “요즘 세상은 약자를 어린이, 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으로 잘게 구분해 갈라내고 있죠. 그런데 ‘양림동 소녀’에는 이들 모두가 들어 있어요. 어린이 임영희, 청소년 임영희, 여성 임영희, 노인 임영희, 장애인 임영희의 모습으로요.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을 거예요. 노인뿐 아니라 모든 약자를 대통합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엄마가 아들의 도움을 받고, 온 가족이 힘을 합쳐 만든 영화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 같네요.(웃음)” (임영희 감독) 귀여운 그림체와 담담하게 과거를 되짚는 목소리는 불행한 이 한 명 없는 동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는 생존 기록에 가깝다. 이 부조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여운을 느끼게 한다. 영화 제작자가 되면서 임 감독은 영화 한 편을 봐도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풀이 죽어 있던 어린 시절의 임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직접 옷을 지어줬던 아버지와의 행복한 기억을 다룬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사랑이 떠올라서’가 이유였다. ‘양림동 소녀’는 여성 인물이 사회의 갈등과 구조를 해결해나가는 ‘여성 서사’라는 점에서도 호응을 얻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실제 증언,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션 작품은 남성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 대부분이다. 또 비극적 참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애도하고 슬퍼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죄책감을 느끼게끔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 나이가 어리거나 심신 미약자라면 접하기 꺼려할 수 있다. 잔혹한 참상까지 담담하게 귀여운 그림으로 풀어낸 영화 ‘양림동 소녀’는 그 지점을 비껴간다. 덕분에 더 여운이 남고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사회에는 턱없이 부족한 장애 서사에 대한 갈증도 해소해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으로 한 차례 이목이 집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장애 극복으로 흐르면 편견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임 감독은 장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덤덤한 태도를 유지한다. 장애를 한계로 받아들이고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대신,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시인이자 화가인 자신이 이번 영화를 통해 영화감독으로도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는 점을 기뻐할 뿐이다. 이웃과 사회, 공동체에 보탬이 되기 위해 아들 오재형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그의 어머니가 국가폭력, 장애의 관점에서 ‘생존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단다. 자라면서 어머니의 생애를 접할 기회는 많았지만, 그림을 매개로 하니 느껴지는 바가 달랐다는 것. 말로 전해 들을 때와는 또 다른 상흔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지금은 어머니의 생애가 앞으로 오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대상 수상작 감독이라면 으레 가질 법한 차기작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두 감독 모두 고개를 저었다. 5월 18일에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전남 순천시 ‘골목책방 서성이다’에서 영화 상영회 및 GV 행사를 소소히 가졌다. 아직 세상에 한 권뿐인 ‘양림동 소녀’ 그림책은 올해 안에 삽화 위주의 에세이로 정식 출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어머니의 생애를 널리 알리는 데 굳이 영화 상영 만을 고집할 생각은 없다. 오 감독은 다음 일정이 잡히거든 연락드리겠다며 웃었다. 임영희 감독은 누룽지 같은 노년을 보내고 싶단다.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조각내는 세상이지만, 누렇게 눌어붙는 한이 있어도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노년을 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임 감독이 생의 마지막까지 지킬 가치는 단 하나다. ‘내가 이웃과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는가?’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여성과 장애인, 공동체 문화를 위한 활동이지 않을까 싶다. 섬초롱 꽃에/ 시원하고 달콤하게 왔어/ 고양이는 웃고/ 까치는 종종거려/ 물 마시는 산/ 춤추는 빗방울/ 나는 단비를 마시며/ 아침을 맞는다 ‘양림동 소녀’ 마지막 장면에서 임영희 감독이 낭독한 시로 글을 마무리한다. 임 감독의 이야기가 수많은 마음을 아침 단비처럼 시원하고 달콤하게 적실 수 있길 기원한다.
- 2023-06-0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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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리 시대 현명한 노후 자금 관리법은?
- 새해에도 금리 인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빚이 없고 예적금 위주로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은퇴자들에게 고금리 기조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그렇다고 무작정 고금리만 좇다가 돈을 맡겨놓은 금융회사가 망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낭패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11년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를 경험했던 은퇴자 강 씨가 고금리 시대에 현명한 노후자금 관리 방법을 알아보고자 상담을 신청해왔다. 더 높은 금리를 찾아서, 금리노마드 2022년 6월 말 803조 원이었던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잔고가 불과 넉 달 만에 84조 원이 빠져 2022년 10월에 719조 원이 되었다. 반면에 2년 만기 정기예금 잔고는 2021년 11월 말 1271조 원에서 출발해 1년 만에 약 267조 원이 늘어 1538조원이 되었다. 이런 자금 이동의 가장 큰 원인은 단연 금리다. 2021년 11월 1%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해 2022년 11월 말 현재 3.25%까지 인상되었다. 이로 인해 2021년 말까지 1.5% 내외였던 은행권의 정기예금 금리가 2022년 말에는 5~6%대 수준까지 올랐고, 한때 저축은행이나 신협 및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기관 중에서는 10%대 금리를 제시하는 곳도 있었다. 금융당국의 지도로 금리 경쟁 과열은 한풀 꺾였지만, 2023년에도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고금리 행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금리 인상이 계속되면서 ‘금리노마드족’의 움직임이 더욱 왕성해졌다. 금리와 유랑자라는 뜻의 노마드(Nomad)의 합성어인 ‘금리노마드’는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주는 예적금을 찾아 이동하는 행태를 말한다. 과거에 이들 금리노마드족은 일일이 금융회사를 방문하여 금리를 확인했지만, 이제는 금리를 비교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을 통해 금융회사별 금리를 앉아서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다. 대표적인 금리 비교 사이트로는 금융감독원에서 운영하는 금융소비자 정보포털 ‘파인’(fine.fss.or.kr)이 있다. 파인에서는 은행과 저축은행에서 취급하는 예적금의 금리를 비교해볼 수 있다. 신협이나 새마을금고 등 기타 상호금융기관의 금리까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모네타’(www.moneta.co.kr)나 ‘마이뱅’(www.mibank.me)에서 제공하는 금리 비교 사이트를 활용하면 된다. 금리 비교 사이트는 특판 상품 정보 반영이 늦을 수도 있다. 때문에 고금리 상품에 관심이 있다면 상품 정보를 수시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안전한 금융회사 찾아 재무건전성 확인 저금리에 목말라 있던 사람들에게 요즘의 고금리는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 고금리만 쫓을 일은 아니다. 돈을 맡긴 금융회사가 망하면 원금을 다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우체국에 맡긴 돈은 국가가 전액 지급보장을 한다. 하지만 은행과 상호저축은행에 맡긴 돈은 예금자보호제도에 의해 예금보험공사가 예금과 이자를 합하여 5000만 원까지 책임진다. 새마을금고는 새마을금고중앙회, 농협·수협·신협·산림조합 등 각 지역 조합은 해당 조합 중앙회가 원금과 이자를 합해 5000만 원까지 예금자보호를 한다. 새마을금고 등 단위 조합에 돈을 맡길 때 주의할 점은 예적금이나 정기예탹금은 예금자보호 대상이 되지만 조합원이 되기 위해 납입한 출자금은 예금자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예적금 등에 저축을 하는 경우에는 금리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해당 금융회사의 안정성까지 따져봐야 한다. 금융회사의 재무건전성은 일반적으로 자본적정성, 자산건전성, 수익성, 유동성 등 4개 부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한다. 각 부분을 나타내는 주요 재무지표로는 BIS자기자분비율(자본적정성), 자산건전성은 고정이하여신비율(자산건전성), 총자산수익률(ROA, 수익성), 유동성은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유동성) 등이 있다. 은행과 상호저축은행의 재무건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재무지표들은 예금보험공사(www.kdic.or.kr)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지역 새마을금고나 지역 조합 등의 재무건전성은 새마을금고중앙회나 해당 조합 중앙회 홈페이지에 접속한 후 ‘전자공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더 적은 세금을 찾아서, 절세 금융상품 활용 이렇게 노력을 기울여 확보한 이자에 절세 혜택까지 있다면 금상첨화다. 대표적 절세 상품은 다음과 같다. 비과세종합저축 조세특례제한법에 의해 금융회사가 취급하는 저축상품을 ‘비과세종합저축’으로 가입할 경우, 전 금융회사(은행, 보험, 증권, 상호저축은행 등)를 통틀어 5000만 원 범위 내의 해당 저축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 특별히 정해진 의무 가입 기간은 없다. 비과세종합저축으로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의 범위도 넓다. 제외되는 상품으로는 증서가 발행되고 유통될 수 있는 예금(CD, 표지어음 등), 당좌예금, 외화예금, 기존에 이미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 장기주택마련저축 등이다. 비과세종합저축에 가입할 수 있는 사람은 만 65세 이상,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장애인,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 또는 가족,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한 상이자, 국민기초생활수급자,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 등이다. 정기예탁금과 출자금 새마을금고나 신협 등 조합은 예적금 이외에 정기예탁금도 취급한다. 정기예탁금의 만기는 1년 이상이고 금리는 정기예금 수준이다. 3000만 원 범위 내의 정기예탁금에서 발생한 이자에 대한 이자소득세는 비과세하고 1.4%의 농어촌특별세만 부과한다. 정기예탁금은 조합원만 가입 가능하고,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는 1좌 이상의 출자금을 납부해야 한다. 1좌당 출자금은 5만 원 정도 수준이다. 출자금에 대해서는 해당 조합의 이익을 배당하는데, 조합원 1인당 1000만 원 범위 내의 출자금에 대한 배당은 전액 비과세한다.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만 15세 이상이면서 근로소득이 있거나 만 19세 이상의 대한민국 거주자이면서 직전 3개년 중 1회 이상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아닌 자가 가입할 수 있다. 연간 납입 금액 한도는 2000만 원이고 최대 5년간 합계 1억 원까지 가입할 수 있다. 3년 이상 가입하면 일반형일 경우 계좌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소득 중 200만 원까지 비과세하고, 총급여 5000만 원 이하 혹은 종합소득 3800만 원 이하의 서민형인 경우에는 이자와 배당소득 400만 원까지 비과세한다. 비과세를 초과하는 이자 및 배당은 9.9%로 분리과세하고 납세의무를 종결한다. ISA는 전 금융회사를 통틀어 1인 1계좌만 가입 가능하다.
- 2023-01-1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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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인 단상] 요즘 어른
- MZ세대(Millennial Z)는 1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 세대를 말한다.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요즘 MZ세대는 과거와 사뭇 다르다. 작가 김영기는 저서 ‘MZ세대와 꼰대 리더’에서 MZ세대의 특성을 6가지로 요약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수평적 소통, 빠른 보상(을 원하고), IT 원주민(으로), 사생활(을) 중시(하며), 모바일(에) 연결(돼 있다)”이라고 했다. MZ세대는 ‘공정’을 중시하고, 자기 목소리가 분명하다. 삶을 독립적으로 설계한다. 일터는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발휘하는 곳’으로 본다. 남녀 간 차이도 공정의 틀 안에서 해석한다. MZ세대의 이런 가치관은 정부 정책과 기업 문화, 정치 문화의 변화를 몰고 왔다. 기업은 수평적 조직 문화 조성, 새로운 리더십 찾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앞다투어 청년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차기 당권주자의 덕목 중 하나로 ‘MZ세대 인기’를 꼽았을 정도다. 이들이 곧 ‘우리의 미래’라는 점에서 이런 대응은 당연해 보인다.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할 ‘요즘 어른’들은 어떤가. “라떼는(나 때는)~” 하면 바로 ‘꼰대’라는 낙인이 찍힌다. 권위주의에 똘똘 뭉친 어른으로 몰린다. 빈곤, 무능의 평가도 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나이가 들면 신체 능력 저하, 기억력 감퇴 등 노화로 인해 상대적 무능력자가 된다”는 등의 주장이다. ‘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의 저자 김용섭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우리는 요즘 애들뿐만 아니라 요즘 어른들도 잘 모른다”며 “4060세대 역시 변화와 진화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0년대 출생)는 사라진 것이 아니고, 거대한 인구 집단으로 경제사회적 영향력도 여전하다”며 “MZ세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뉴식스티’로 거듭났다. 현재 시점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트렌드 연구 집단 ‘샌드박스네트워크 데이터랩’은 최근 펴낸 ‘뉴미디어 트렌드 리포트 2023’에서 1964년생의 삶을 이렇게 정리했다. “한국전쟁 종식 11년 후에 태어나 높은 경제성장률을 일구는 데 일조했다. 17세에 광주민주화운동을 경험했고, 25세에 서울올림픽을 지켜봤다. 30대에 무선호출기를 사용했고, 35세에 외환위기를 겪었으며, 45세에 스마트폰을 처음 접했다.” 정리하면 ‘60세 어른’은 전후 세대에 태어나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개최한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는 데 일조했다. 그 과정에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이겨냈다. 군부독재를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뤄낸 주역이고, 디지털 전환의 가교를 탄탄하게 놓은 세대다. 통계청이 지난달 내놓은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자.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 부채, 소득 수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다. 이를 보면 국내 가계 평균치는 자산 5.47억 원, 부채 0.92억 원, 소득(이하 2021년 기준) 0.64억 원이다. 누가 돈을 많이 버는지, 부자인지 살펴보니 50대가 자산 6.42억 원, 소득 0.81억 원으로 최고였다. 60세 이상은 자산 규모에서 40대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5.43억 원이다. 소득은 20대에 이어 두 번째로 적었지만, 연간 4000만 원 이상(0.46억 원) 벌었다. 50대가 가장 부자 세대이고, 60+ 세대도 살 만한 세대라는 결론은 자연스럽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고 늘 그래왔다. 50+ 세대의 경제사회적 영향력을 입증하는 연구 자료는 더 있다. 5060세대 10가구 중 7가구 이상이 자기 집을 가지고 있다(통계청). 순자산 상위 1%의 평균 연령을 살펴봤더니 63.5세다. 60대 비중도 35%나 된다(NH투자증권). 자산만 많은 게 아니다. 50+ 세대는 생각보다 젊다. ‘뉴미디어 트렌드 리포트 2023’의 내용을 인용하면, 20대 여성들이 사용하는 패션 앱 광고 모델로 등장한 대한민국 최초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자 윤여정 씨의 나이는 76세다. 개그맨 유재석, 배우 장동건, 문소리, 오나라, 신하균, 곽도원, 가수 서태지, 박진영 씨 모두 50대다. 생각보다 젊기만 한 것도 아니다. 통계청 인구 추계를 보면, 2023년 50세 이상 인구는 223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43%에 달한다. 5060세대로 좁혀도 31%나 된다.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나이 들기를 거부하는 피터팬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나이 듦을 거부하며 과거의 삶을 다시 가꾸고, 아이처럼 놀고 싶어 하는 어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토끼해를 주도할 세대는 MZ세대가 아닌 시니어 세대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경제가 나빠지면서 MZ세대는 지갑을 닫고 있다. 50+ 세대는 자산도 많고, 소득도 괜찮고, 여전히 젊고 더 젊어지려 한다. 노동(勞動)이 아닌 노동(老動)의 시대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경험과 높은 완성도를 앞세워 일자리 시장의 주요 공급 세대로 부상하고 있다. 구매력과 노동력을 갖추고 소비력이 왕성한 50+ 세대는 한국 사회의 주류 세대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정치권, 기업은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청년 정책과 더불어 젊어진 50+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려면 말이다. 당장 시작하기 바란다.
- 2023-01-0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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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42주년 특별전… 옛 전남도청서 진압 탄흔·탄두 공개
- 5·18민주화운동이 제42주년을 맞는 가운데, 1980년 5월 전남도청 진압 당시 사용된 탄의 흔적과 탄두가 공개된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은 5·18 민주화운동 제42주년 특별전을 옛 전남도청 별관 2층에서 열고 1980년 5월 전남도청 진압 시 탄의 흔적과 탄두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전시 기간은 16일부터 오는 6월 30일까지다. 문체부는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현장인 옛 전남도청 건물의 탄흔을 찾기 위해 지난 2020년 7월부터 2021년 3월까지 기초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41년 만에 엠(M) 16 탄두 10개와 탄흔으로 의심되는 흔적 535개를 발견했다. 이후 5·18 관계자와 시민사회단체가 정밀 조사를 추가로 요청해(2021년 4월) 2021년 12월부터 오는 7월까지 1차 정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어 9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2차 정밀 조사를 한 후에 식별된 탄흔을 보존 처리할 계획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과학적 조사 방법으로 민주화운동 당시의 전남도청 내외부 촬영 사진 자료를 분석하여 발견한,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 등으로 사라진 탄흔과 탄두 자료를 볼 수 있다. 특히 ‘특별영상실’을 설치해 탄흔 조사과정을 영상으로도 공개한다.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 정책 담당자는 “5·18민주화운동의 가치를 공유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복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이번 특별전을 마련했다”라며 “확인된 탄두 자료들은 보존 처리를 거쳐 영구 보존하고, 옛 전남도청 복원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 2022-05-1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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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4월 공연 추천 셋
- 2022년 기대작으로 꼽히는 뮤지컬들이 4월 베일을 벗는다. 먼저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 등 화려한 스타 캐스팅을 자랑하는 ‘데스노트’가 돌아온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몬드’는 뮤지컬로 어떻게 재탄생했을지 기대를 모은다. ‘광주’는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뮤지컬로 깊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데스노트 일정 4월 1일 ~ 6월 26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김동연 출연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 김선영, 장은아, 강홍석, 서경수, 케이, 장민제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으는 뮤지컬 ‘데스노트’는 동명의 일본 만화가 원작이다. 천재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가 이름을 쓰면 죽는 ‘데스노트’를 우연히 주우면서, 전 세계의 미제 사건을 해결해온 베일에 싸인 명탐정 ‘엘’(L)과 맞서게 된다. 두 주인공의 흥미진진한 갈등과 대결에 프랭크 와일드혼의 트렌디하고 팝스러운 넘버가 시너지를 더해 극적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이번 시즌은 논레플리카(Non-Replica) 버전으로 무대의 완성도를 더한다. 아몬드 일정 4월 2일 ~ 5월 1일 장소 코엑스아티움 연출 김태형 출연 문태유, 홍승안, 이해준, 조환지, 임찬민, 송영미, 김선경, 오진영, 유보영, 김태한 등 뮤지컬 ‘아몬드’는 2017년 출간 이후 해외 20개국 출간, 국내 판매 90만 부를 돌파하며 지금까지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는 동명의 소설(손원평 저)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 2월 뮤지컬 개막 소식이 알려진 후 2022년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혔다. ‘아몬드’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감정조절 역할을 담당하는 뇌 부위)에 문제가 생겨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질병인 알렉시티미아를 앓고 있는 주인공이 주변인들과 갈등을 겪고 화해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광주 일정 4월 15일 ~ 5월 1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출 고선웅 출연 이지훈, 조휘, 정동화, 신성민, 문진아, 김나영, 효은, 최지혜 등 ‘광주’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광주를 평화의 땅으로 일궈낸 열사들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감동적인 서사와 ‘님을 위한 행진곡’, ‘투쟁가’ 등 웅장한 멜로디는 그날의 열기를 고스란히 전한다. ‘광주’는 2020년 초연됐으며, 2년간 공연 횟수만 총 74회, 관람객 수는 2만 명이 넘는다. 미국 뉴욕 진출도 예정되어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뮤지컬이자 아시아의 ‘레미제라블’로 극찬받고 있다.
- 2022-04-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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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처럼 화려해" 4월 문화 소식
- ●Exhibition ◇박래현, 사색세계 일정 4월 23일까지 장소 아트조선스페이스 “수많은 장벽에 부닥치고 가혹한 시련 앞에 몸부림치며 이를 넘길 수 있는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생존의 권리… 봄이라는 뽀얀 계절은 때때로 나를 이런 부질없는 사색세계에 몰아버린다.” 한국 근대 화단의 대표 여성 미술가 우향 박래현(1920~1976). 1959년 조선일보 주최 ‘현대작가초대미술전’에 출품하며 에세이 ‘봄이면 생각나는 일, 삶과 마주 섰던 계절’을 함께 기고했다. 에세이의 한 구절인 ‘사색세계’가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 됐다. 에세이에서 그녀는 지난 몇 년간의 봄을 상기하며 식민국가의 운명 속에서 마음의 어두운 흔적과 불안한 감정을 더듬어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국의 봄은 아름다웠다고 술회했다. ‘박래현, 사색세계’ 전시는 ‘생동하다’, ‘피어나다’라는 주제로 1, 2부를 나누어 그녀의 작품세계를 돌아본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대대적인 회고전 이후 선보이는 첫 전시로, 초기 대작부터 대표적인 추상 연작, 그리고 미공개 작품까지 80여 점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박래현은 운보 김기창 화백의 아내로, 남편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화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운보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 그리고 여류라는 굴레를 넘어 한국화의 현대화를 개척한 박래현을 만나볼 수 있다. ◇사빈 모리츠 : RAGING MOON 일정 4월 24일까지 장소 갤러리 현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독일 여성 화가 사빈 모리츠(53)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다. 사빈 모리츠는 개인과 집단의 기억, 그 기억으로부터 형성된 추상의 풍경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펼치는 작가다. 독일 추상미술의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부인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전시는 그녀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제작한 회화, 에칭 연작 등 50여 점을 소개한다. 동독에서 보낸 유년기의 경험과 전쟁의 참상을 표현한 구상 작업을 하던 작가는 2015년부터 추상 회화로 ‘정신적 풍경’을 다뤘다. 과감한 붓질과 풍성한 색채로 완성된 매혹적인 추상의 이미지로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다. ●Book ◇백만장자와 승려(비보르 쿠마르 싱·다산초당) 사찰을 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존경받는 승려와 고급 호텔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해온 백만장자가 있다. 백만장자는 물질의 정점에, 승려는 정신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극과 극인 두 사람이 호텔에서 21일간 함께 머물며 행복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당신은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간소한 삶은 성공으로 가는 첫 단계다”, “명상으로 머릿속을 정리하라”,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 있다” 등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넘나든다. 백만장자와 승려가 서로 배우며 깨닫는 인생의 본질을 통해 독자는 ‘지금 행복한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비보르 쿠마르 싱은 히말라야산맥에 위치한 산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인도의 전통 명문인 셔우드대학과 스리람상경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영국의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재무회계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금융 최전선에서 일하는 그는 물질적 풍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자연과 여유 있는 삶이 주는 정신적 행복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맞추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온전한 행복을 누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책은 인도에서 출간 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12개국에 판권이 팔릴 정도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부자가 아니라서, 마음이 공허해서 행복을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특히 추천하는 책이다. ◇울다가 웃었다(김영철·김영사) 대한민국 대표 라디오 DJ이자 코미디언, 김영철의 웃픈 휴먼 에세이다. 그는 “나의 명랑은 수없이 노력하고 연습한 결과”라고 고백하며 가족, 일상, 방송담을 풀어놓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깨달은 ‘웃음과 울음이 균형을 이룰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페스트의 밤(오르한 파묵·민음사)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이 5년간 매진해 써낸 신작. 코로나 이후 최초의 팬데믹 소설로 역사소설에 미스터리를 결합했다. 소설은 1901년 오스만제국의 민게르라는 가상의 섬을 배경으로 하며, 페스트로 인한 종교적·정치적 분열을 그린다. ◇쓸모 있는 음악책(마르쿠스 헨리크·웨일북) 저자는 독일에서 독창적인 음악 테라피를 통해 대중의 고민을 해결하고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해왔다. 그는 음악을 제대로 들으면 더 나은 일상을 꾸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뇌 기능 활성, 창의력과 영감 자극 등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Stage ◇데스노트 일정 4월 1일 ~ 6월 26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연출 김동연 출연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 김선영, 장은아, 강홍석, 서경수, 케이, 장민제 등 ‘데스노트’는 2022년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뮤지컬로, 동명의 일본 만화가 원작이다. 법과 정의에 대해 고민하던 천재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가 이름을 쓰면 죽는 ‘데스노트’를 우연히 주우면서, 전 세계의 미제 사건을 해결해온 베일에 싸인 명탐정 ‘엘’(L)과 맞서게 된다. 각자의 정의를 위한 라이토와 엘의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 긴장감 넘치게 펼쳐진다. 두 주인공의 흥미진진한 갈등과 대결에 프랭크 와일드혼의 트렌디하고 팝스러운 넘버가 시너지를 더해 극적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인다. 특히 이번 시즌은 논레플리카(Non-Replica) 버전으로 작품의 고유한 매력과 더불어 더욱 긴장감 넘치는 연출, 디테일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무대로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다. 여기에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 김선영, 장은아, 강홍석, 서경수, 케이, 장민제 등 역대급 라인업을 자랑해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몬드 일정 4월 2일 ~ 5월 1일 장소 코엑스아티움 연출 김태형 출연 문태유, 홍승안, 이해준, 조환지, 임찬민, 송영미, 김선경, 오진영, 유보영, 김태한 등 뮤지컬 ‘아몬드’는 2017년 출간 이후 해외 20개국 출간, 국내 판매 90만 부를 돌파하며 지금까지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는 동명의 소설(손원평 저)을 원작으로 한다. 지난 2월 뮤지컬 개막 소식이 알려진 후 2022년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혔다. ‘아몬드’는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감정조절 역할을 담당하는 뇌 부위)에 문제가 생겨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질병인 알렉시티미아를 앓고 있는 주인공이 주변인들과 갈등을 겪고 화해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광주 일정 4월 15일 ~ 5월 1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출 고선웅 출연 이지훈, 조휘, 정동화, 신성민, 문진아, 김나영, 효은, 최지혜 등 ‘광주’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광주를 평화의 땅으로 일궈낸 열사들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감동적인 서사와 ‘님을 위한 행진곡’, ‘투쟁가’ 등 웅장한 멜로디는 그날의 열기를 고스란히 전한다. ‘광주’는 2020년 초연됐으며, 2년간 공연 횟수만 총 74회, 관람객 수는 2만 명이 넘는다. 미국 뉴욕 진출도 예정되어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뮤지컬이자 아시아의 ‘레미제라블’로 극찬받고 있다.
- 2022-04-0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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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세대 너무 큰 자부심, 권력자 만들어”
- 86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니며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세력을 말한다. 86세대인 그들이 학생운동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별난 학생들이었기 때문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세상을 꿈꿨을까. 19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경험을 녹여 그래픽 노블(만화책) ‘비밀 독서 동아리’를 펴낸 김현숙(58)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현숙 작가는 1964년생이고, 1983년에 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어머니는 대학교를 굳이 가야 하냐는 입장이었고, 김 작가는 집에서 가까운 창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로 진학했다. 입학 첫날부터 김현숙 작가는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학생운동이 펼쳐지는 충격적인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김 작가는 겁 많고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우연히 비밀 독서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면서 민주화운동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더불어 당시 중앙정보부의 감시와 진압, 고문 등의 고초를 겪은 친구들의 모습을 옆에서 생생하게 봤다. 이 모든 이야기를 책 ‘비밀 독서 동아리’에 담았다. 김현숙 작가는 스스로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편은 아니라고 평했다. 김 작가는 그때 학생들의 외침이 현재 대한민국 민주주의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며,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적극적으로, 더 당당하게 학생운동에 참여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금서 읽는 비밀 독서 동아리 ‘비밀 독서 동아리’의 주인공 이름도 현숙이다. 김 작가는 현숙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실제 자신과 거의 흡사하다고 밝혔다. 책에서는 창원대학교가 ‘안전대학교’로 나온다. 당시 안전하지 않은 시대를 반영해 반어적인 의미로 ‘안전대학교’라고 했다. 1980년대의 대학교는 화약 냄새가 진동하고, “전두환은 물러나라”고 민주화운동을 벌이는 학생들과 경찰의 대치로 혼잡스러웠다. 그 속에서 현숙은 “나는 공부하러 대학교에 왔다”며 시위 동참을 원치 않았다. 김현숙 작가는 “당시 학교에서 ‘데모하면 안 되고 공부만 해라’라고 일종의 세뇌를 했다. 앞장서서 학생운동을 하면 빨갱이로 낙인찍힌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괜히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것이 무서웠던 현숙은 ‘학생운동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탈춤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러나 탈춤 동아리마저 과거 양반을 풍자하던 탈춤을 추며 현 정권을 꼬집었다. 현숙은 실체를 알고 도망가려고 하지만, 독서 동아리 가입을 제안받는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현숙은 이를 수락했다. 그런데 그 동아리는 ‘금서(禁書) 동아리’였다. 금서란 국가나 종교상의 최고 권력자에 의해 출판 또는 판매가 금지된 책을 말한다. 만화 속 캐릭터들은 ‘임꺽정’,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 선언’, ‘영혼의 죽음’ 등의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경찰에 잡혀갈 수 있었던 시대, 현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마음이 바뀌었다. 현숙은 동아리 친구들을 통해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이유와 진실을 감추기 위해 언론 탄압이 자행된 사실을 알게 된다. 친구들이 왜 목숨 걸고 싸우는지도 깨달았다. 이에 각성한 현숙은 보다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며 친구들과 뜻을 함께했다. “전두환 정권의 우민화 정책이라고 하죠.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려고 3S(스크린, 스포츠, 섹스) 정책을 펼쳤죠. 책을 보면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해서 깨우치고 자기한테 저항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것이 싫어서 책 자체를 못 읽게 한 거죠.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북 클럽을 통해서 조금씩 눈을 떴어요. 나중에는 직접 책을 찾아서 보고, 더 나아가서 학생회 참여도 하고. 광주, 서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직접 가보고 공부도 했죠.” ‘비밀 독서 동아리’에는 중앙정보부의 눈총 아래에서도 새로운 세상을 향한 외침을 포기하지 않는 학생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온다. 김현숙 작가는 검열을 해야만 하는 대학 신문(학보), 이유도 없이 끌려가 고문당한 학우들, 장학금 때문에 밀고자가 된 학생의 모습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김현숙 작가 역시 정보부의 시선을 피하기 어려웠다. 책에 나온 대로 정보부는 김 작가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스테이크 가게로 전화를 했다. 김 작가는 실제로도 정보부의 전화를 친구의 전화인 척 받고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나는 기지를 발휘했다. “현숙이는 화려한 말솜씨로 정보부 옥 형사를 당황케 하죠. 실제로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어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정보부를 만나기 전에 고압적이고 강압적으로 나를 몰아세울 것 같아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사복을 입고 와서 그런지 의외로 평범해 보였고 질문도 조곤조곤 하시더라고요. 정보를 하나라도 더 캐보려는 느낌은 받았죠. 그런데 그분도 어쨌거나 그게 직업이고 사랑하는 가족들도 있을 텐데, 한편으로는 애처로운 생각도 들더라고요. 양면성이 있는 거죠.” 촛불집회, 미국인 남편의 출판 제의 ‘비밀 독서 동아리’는 학생운동을 함께한 친구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촛불집회(2016년 9월~2017년 5월)에서 다시 모여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라고. 김 작가는 “촛불집회 동창회 신을 넣은 이유는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려는 의도가 컸다. 1980년대에는 학생, 지식인 위주로 운동을 했지만, 그때는 모든 시민이 참여했으니까. 그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동창회는 허구지만 촛불집회는 ‘비밀 독서 동아리’와 연관성이 깊다. 촛불집회는 책이 세상 밖에 나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김현숙 작가는 부산 서면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미국인 남편 라이언 씨는 한국의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당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돼 ‘멘붕’에 빠져 있던 상황이었다. “남편은 트럼프, 저는 박근혜. 그때 미국과 한국의 상황에 대해 서로 얘기를 많이 했어요. 남편이 촛불집회를 보면서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어요.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이 지도자로 아니다 싶으니까 국민의 힘으로 끌어내리는 촛불집회를 펼친 것이 놀랍고 대단하대요. 폭력적이지도 않고, 남녀노소 모두 목소리를 냈으니까요. 미국은 불평 불만은 많지만 정작 그렇게 못 해서 더 대단하게 보였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김현숙 작가는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한 이야기도 남편에게 하게 됐다. 라이언 씨는 아내의 과거를 매우 흥미 있게 들었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 자료를 찾아본 그는 자신의 아내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썼다는 사실에 존경심을 느낀 것 같다. 라이언 씨는 ‘대한민국 대단하다,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트위터에 아내의 이야기를 썼다. 이를 본 미국 출판사 아이언 서커스 코믹스에서 정식 출판 제의를 해왔다. 김현숙 작가는 학생운동은 이미 많이 나와 있는 얘기이고, 자신은 작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고민이 깊었다.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영어 번역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러자 남편이 “같이 써보자”면서 힘을 줬다. 자신이 느낀 것처럼 미국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나 보다. 이에 본격적인 책 작업이 진행됐다. 김현숙 작가는 오랜만에 동아리 친구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부분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정치인이 된 이도 있다. 책에 ‘유니’로 등장하는 김경영 경남도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김 작가는 “졸업하고 공장에 위장 취업해서 노조 활동을 오래 했고, 여성운동도 하다가 현재는 의회에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는 여러 캐릭터로 파생돼 녹아 있다. 동창들은 자신이 모델이 된 것에 대해 뿌듯해했다고. 책의 스토리는 아내가 해준 이야기를 토대로 라이언 씨가 썼다. 김현숙 작가는 자문과 검토를 맡고 이야기를 보충했다. 그림은 라이언 씨가 직접 그릴 수 있었지만 한국적 색채를 살리기 위해 고형주 만화가가 맡았다. 이색적인 것은 영어 책이 먼저 쓰였고, 그 다음에 한국판이 나왔다. 한국판이 번역본이 된 셈이다. 책은 2020년 5월 18일 세상 밖에 나왔다.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출판됐다. 미국에서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아마존 청소년 부문 베스트셀러(Bestseller on Amazon - YA History Comics)를 차지했고, 청소년도서관협회 올해의 최우수 그래픽 노블(YALSA Great Graphic Novels 2021)로 뽑혔다. 이밖에 미국 학교 도서관 저널, 스미스소니언, 북리스트, 미국 잡지 Publishers Weekly 등에서 최우수 리뷰를 받았다. “트럼프가 인종차별 발언으로 대통령이 됐잖아요. 미국은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국민들은 후퇴해간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미국에서는 아직도 책을 검수하고, 성 평등, 인종차별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책이 호응을 얻은 것은 영감을 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특히 청소년 권장도서로 많이 읽힌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저항을 하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나가는지 보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가만히 있으면 변화되는 것은 없잖아요.” 김현숙 작가와 라이언 씨는 다음 책으로 ‘노 룰스 투나잇’(No Rules Tonight)을 준비하고 있다. 1980년대 통금 제도를 다룰 예정이다. 책의 ‘투나잇’은 크리스마스로, 커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비밀 독서 동아리’의 캐릭터들과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유명 출판사 펭귄북스에서 출판되며, 2024년 크리스마스 이전에 나올 예정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중심 1980년대에는 학생운동을, 2010년대에는 촛불집회를. 86세대는 분명 민주주의의 중심에 있다. 그들은 왜 이전 세대와 구별되는 것일까. 김현숙 작가는 “이전 세대인 베이비부머(1955 ~ 1963년)는 전쟁도 겪었고 많이 힘들었다. 경제적으로 터전을 잡고 발전해야 하니 독재가 용인됐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김 작가는 자신과 같은 86세대는 민주주의를 이룬 세대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권위주의적인 사람, 꼰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줬다. “같은 소용돌이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는 86세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그들이 자유를 외치고 권위주의 독재에 맞서 투쟁을 한 거잖아요. 그런데 저도 물론이겠지만 그들에게는 권위주의적인 성향이 있더라고요. 술도 마시라면 마셨고, 군사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체화된 게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어린 사람들이 보기엔 ‘학생운동 했으면 다야?’, ‘리더면 다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죠. 너무 자부심이 크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권력자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고칠 점은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19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변화는 젊은 세대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김현숙 작가는 “젊은 세대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도 투쟁을 할 때 윗세대가 목소리를 잘 들어주기를 바랐다. 젊은 세대의 마음을 듣고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2022-03-0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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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전환기 맞이한 86세대
- 86세대, 최초에는 ‘386세대’라 불렸던 이들은 잘 알려진 것처럼 30대의 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생이었던 시대에 등장했다. 1990년대 새로운 담론이 요구되던 시기에. 6월 항쟁을 이끌었던 386세대의 등장은 사회 각계에서 ‘수혈’이란 표현을 쓸 정도로 반가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기성세대와 차별화된 386세대의 활약은 산업화를 거치며 우리 사회를 성장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밟고 서 있던 무대에서 조금씩 밀려나고 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서 있나. 최근 86세대의 위기가 표면화된 장소는 바로 그들이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데뷔했던 정치권이었다. 지난해 30대인 이준석 대표가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면서, 여권의 주류 세력이었던 ‘86그룹’이 다시 조명됐다. 젊은 야당의 당대표와 대비되는 기득권 그룹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는 86그룹의 용퇴론으로 이어지며 기정사실화되는 듯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여권에서는 86그룹이 당의 주류가 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만큼 세대교체를 위해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과, 당의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면서 젊은 세대의 성장을 막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총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우리가 원한 것은 더 나은 세상이지 기득권이 아니다”라며 “동일 지역구 국회의원 연속 3선 초과 금지 조항의 제도화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86세대 용퇴론에 대한 화답으로 평가받는다. 사실상 86세대의 정치 일선에서 활약은 다음 총선에서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재계에서 ‘빠른 퇴장’ 요구받아 86세대는 6월 항쟁에서의 활약과 함께 투사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주역으로도 인정받는다. 한국 경제가 IMF 외환위기의 어려움을 극복한 동력의 핵심에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재계에서 이들의 그림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은 지난해 연말 인사를 통해 경영진을 젊은 임원들로 대폭 물갈이했다. 비교적 보수적인 인사 성향으로 평가받던 현대차까지 임원들의 평균 연령을 크게 낮췄다. X세대로 불리는 1970년대생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86세대가 설 곳은 많이 남지 않았다. 4대 그룹의 한 인사는 “이미 일부에서는 1970년대 초반생들도 인사 때 눈치를 보는 시기가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86세대의 퇴장은 이미 자연스러운 수순이 됐다”고 평가한다. 사회의 주류에서, 주요 무대에서 내려오기를 강요받고 있는 86세대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고도성장 속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한 모든 책임론을 끌어안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한국 사회 만악의 근원 언론을 통해 평가되는 86세대는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 선민의식, 과잉 정치화, 낙관적 진보주의 등의 특성을 가진 집단으로 묘사된다. 독재정권을 끝냈다는 승리감에 도취돼 자기 최면에 걸렸고, 이는 선민의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언론의 평가뿐만 아니라 86세대를 겨냥한 서적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86 세대유감’이나 ‘불평등의 세대’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저자들의 86세대에 대한 평가 역시 냉정하다. 이들이 주류로 성장한 이면에는 ‘자신만의 끈끈한 네트워크’가 바탕이 됐고, 오히려 불공정함의 상징이 돼 ‘실패를 모르는 혜택을 입은 세대’가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시민사회 운동은 86세대에 의해 일궈졌지만, 이 세대에 의해 문이 닫혔다는 평가도 찾아볼 수 있다. 86은 쉬웠지만 우리는 어렵다 젊은 세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사용자 참여형 온라인 백과사전에서의 86세대에 대한 기록은 더욱 처참하다.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와 이로 인한 저출산 문제에서 연금 문제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의 원흉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은 “86세대가 노력하면 당연히 얻을 수 있었던 요소들, 연애·결혼·집·가족·노후 안정이 어느 순간 사치재가 되어버렸다”고 강변한다. 자신들에 대한 박한 평가를 86세대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86세대와 함께 활약했던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유튜브 프로그램 ‘알릴레오’를 통해 “386 책임론은 다분히 보수 언론이 지어낸 프레임”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86세대가 물러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 86그룹이 주류인 여당과 현 정부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적극적으로 ‘386 책임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유시민 전 이사장은 그의 방송 말미에 386세대가 이런 책임론에 상처받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위로를 전했다. 그는 “후세대가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말자. 민주화의 역사 사회적인 운동, 산업화 과정에서 겪었던 많은 일들에 대해, 그런 인생을 산 것이 괜찮았던 것 같다라는 감정을 느끼면서 세월을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도 부모 세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우리끼리 공감하면서 마무리해도 괜찮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 2022-03-02 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