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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디자이너가 반한 동묘 스타일
- 1 “서병구 동서대학교 뮤지컬과 교수님. 만난 어르신 가운데 최고 멋쟁이!” 2 “타이다이(옷을 끈으로 묶은 다음 염색하는 방식) 청바지를 입고 계신 아버님.” 3 “인사동에서 만난 이상홍 아버님. 패션에는 나이가 없고 스타일만 존재한다…!” 4 “첼시 부츠 아버님. 목도리부터 부츠까지 이어지는 갈색 톤이 깔끔.” 5 “방한 부츠 아버님. 눈 내리는 추운 날씨도 끄떡없어 보였다.” 6 “민호근 아버님. 지팡이만 100여 개 있으신데, 스타일에 따라 바꿔 드신다고!” 7 “불꽃 반스 아버님. 패션만 보면 영락없는 젊은이다.” 8 “닥터마틴 워커 어머님.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잘 아는 분!” 김동현 시니어 스트리트 패션 전문 사진작가. 2019년 멋진 할아버지를 찍은 뒤 ‘나만 할 수 있는 일’에 셔터를 누르고 있다. 작업 반경은 동묘에서 남대문 인근, 인사동까지. 50대에서 80대 사이의 멋쟁이 어르신을 발견하면 슬금슬금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저서로는 사진집 이 있다. 에디터 조형애 출처 김동현 사진작가 디자인 유영현
- 2024-05-0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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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우리도 커플룩 입을 줄 안다
- 1 “잠시 고국에 들른 파독 부부. 나란히 가죽 재킷과 연청 바지를 입고 계셨다.” 2 “멀리서부터 시선을 집중시키는 패셔너블한 부부!” 3 “인사동 단짝. 두 분의 오랜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4 “안국 꽃집 부부. 한눈에도 금실 좋아 보인다. 마침 꽃집이 있어 찰칵.” 5 “경복궁 부부. 어머님을 찍어주려는 아버님을 발견하고 인사했다. ‘찍어드릴까요?’” 김동현 시니어 스트리트 패션 전문 사진작가. 2019년 멋진 할아버지를 찍은 뒤 ‘나만 할 수 있는 일’에 셔터를 누르고 있다. 작업 반경은 동묘에서 남대문 인근, 인사동까지. 50대에서 80대 사이의 멋쟁이 어르신을 발견하면 슬금슬금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저서로는 사진집 이 있다. 에디터 조형애 출처 김동현 사진작가 디자인 유영현
- 2024-04-2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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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으로 되새긴 삶의 의미, 임종 체험 현장을 가다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임종 체험’은 죽음을 미리 맞이해보는 과정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전국 다양한 기관에서 체험할 수 있는데, 충청남도 천안시 백석웰다잉힐링센터(백석대 부속 웰다잉힐링센터)에 국내 최대 수준의 임종 체험관을 갖췄다고 해서 직접 찾아가 봤다. 11월 16일 백석웰다잉힐링센터. 임종 체험을 하기 위해 30여 명이 모였다. 평택남부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이 단체로 참가, 절반 이상은 60세 이상 어르신들이었다. 최연소 참가자는 초등학생이었다. 한 중년 여성이 고등학생·중학생·초등학생인 세 아들을 데리고 와서다. 연령대와 사연은 다르지만, 이들 모두 삶의 의미를 찾고자 이곳을 찾았을 터. 생생한 후기를 전달하고자 기자도 직접 임종 체험에 참여했다. 영정사진 촬영부터 입관까지 임종 체험은 센터에 도착해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책상에 놓여 있는 ‘힐다잉(임종) 체험 신청서’는 인적 정보를 묻고 ‘행복하십니까?’, ‘사후 세계가 있을까요?’,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나요?’라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신청서 작성이 끝나면 영정사진 촬영을 진행한다. 외모 점검을 할 수 있도록 한편에는 거울과 빗, 화장품 등이 준비되어 있다. 직원들은 어르신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보다 사진 촬영을 할 때 “밝게 웃으세요”라고 말한다. 기자도 사진 촬영할 때 웃고는 있었지만, 셔터가 터지는 순간 조금은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으로 정용문 백석웰다잉힐링센터장(백석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강연이 이어졌다. 마음 편히 살다가 잘 죽는 ‘힐다잉’을 강조하는 그는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얘기했다. 특히 ‘죽을 때 후회하는 세 가지’에 대해 ‘건강을 미처 챙기지 못한 것’,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지 못한 것’,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에는 영정사진과 유언서가 배부되고, 마침내 ‘임종 체험관’에 입장했다. 촛불 앞에 영정사진과 유언서를 놓으니 죽음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명상 타임을 갖고 여러 영상 자료를 보면서 삶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가사를 그림으로 재구성한 영상, 가족을 두고 세상을 떠나는 중년 남성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니 이곳저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음에는 유언서를 작성했다. 다들 눈물 닦으랴, 글 쓰랴 바빴다. 일부는 센터장의 요청으로 유언서 낭독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 가족, 배우자와 자식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한 여성 어르신은 가족 중 ‘엄마’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내가 엄마보다 먼저 떠난다는 게 너무 불효인 것 같다”고 사과를 전하며, “여생 편하게 살다가 오세요. 먼저 가 기다릴게요”라고 말했다. 유언서까지 작성한 후에는 준비된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갔다. 살아 있는데 이런 경험을 해보다니, 너무 이상했다. 관에 누우면 관 뚜껑을 닫아주고, 실제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 위해 망치질 소리까지 낸다. 그리고 정용문 센터장은 “이제 여러분은 죽었습니다”라고 알려준다. 관 속에서는 5분 정도 시간을 보낸다. 암전 속에서 ‘정말 이 세상과 이별한다’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 지난 삶을 돌아봤다. 가족의 소중함 깨달아 관이 열린 후 다시 밝은 세상을 마주했다. 참가자들은 생환과 앞으로의 행복한 삶을 축복하는 의미에서 서로에게 박수를 보냈다. 정용문 센터장은 “행복한 사람, 아프지 않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다. 또한 “참 모진 세월, 가족이 있어 버텨왔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오늘만큼은 가족들에게 ‘사랑한다’, ‘고맙다’고 말해줘라”라고 덧붙였다. 앞서 강연에서도 정용문 센터장은 가족의 소중함을 얘기했다. 그는 “과거 장례지도사로 일하면서 입관식 때가 가장 안타까웠다. 유족에게 마지막으로 고인의 손을 잡아주고, ‘사랑한다, 고맙다’라고 말해주라고 한다. 살아생전에 그런 얘기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임종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임종 체험 소감을 묻자 평택남부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은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고, 남은 인생 잘 살아야겠다 생각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올해 70세가 된 윤재웅 씨는 “나는 잘 살아왔고, 즐거운 소풍 왔다 간다고 생각한다. 가족들도 웃으면서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40대 부부 지승혁·김시나 씨는 “오늘이 결혼기념일인데 임종 체험을 해서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뜻깊었다”면서 “앞으로 죽을 만큼 사랑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옥경 백석웰다잉힐링센터 팀장은 “매일 임종 체험을 보지만 매일 눈물이 난다. 최근에 친구가 세상을 떠나서 감정이 더욱 올라오는 것 같다”면서 “정말 삶과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고,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후회가 남지 않도록 죽음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웰다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2023-12-18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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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 한풀이, 마음 편해져” 글쓰기 현장서 만난 중장년들
- 시니어에게 글쓰기가 그렇게 좋다던데, 정말일까. 글쓰기 강사, 출간 작가, 출판 전문가 이야기까지 듣고도 글쓰기 교실의 생생한 목소리가 궁금해 책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서울 양천구 개울건강도서관의 시니어 특화 프로그램 ‘마음이 치유되는 글쓰기’ 일일 수강생으로 함께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살면서 있었던 일을 다시 곰곰이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내 인생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뭐랄까, 단단해지는 느낌? 사방에 생각의 조각들이 흩어진 채 정신없이 살았는데 이제 정돈되는 것 같아요.” - 성영옥 씨 “한풀이가 되더라고요. 내 마음에서 다 끄집어 내놓으니까 병이 낫는 거죠. 정말이에요. 그동안 꽤 아팠어요. 그게 다 ‘내가 소심해서 오해하고 곡해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먼저 손을 내밀게 되더라고요. 몇 년간 껄끄러운 관계였던 지인과 최근 다시 가까워졌어요.” - 이정임 씨 “이런 게 마음 치유구나 싶어요. 이젠 ‘어디까지 오픈해야 하나’ 하는 고민으로 넘어갔어요. 마음의 옷을 하나하나 벗다가 발가벗게 될 것 같아서요.(웃음)” - 김용희 씨 간증이 아니다. 글쓰기를 시작한 뒤로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냐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온 고백이다. “어 맞아, 맞아. 그런 게 있어!” 중간중간 수차례의 맞장구가 오간 열띤 증언이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찾은 곳은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개울건강도서관 2층 어울림실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필기구를 챙겨 든 시니어들이 빼곡한 책 사이를 가로질러 도서관 내 아담한 교실에 모이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독서 문화 프로그램 ‘마음이 치유되는 글쓰기’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마음이 치유되는 글쓰기’는 고령 이용자가 많은 개울건강도서관이 마련한 시니어 특화 프로그램이다. 노년을 대상으로 한 시니어 인문학으로 ‘서울형 독서문화 프로그램’ 우수 사례에 선정되기도 했던 개울건강도서관은 지난해부터 자체적으로 시니어 특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올해 개설한 프로그램은 ‘마음 건강’을 키워드로 한 글쓰기 교실이다. 박혜옥 도서관운영팀 주임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했다. “시니어층의 독서문화 프로그램 수요는 꾸준히 있었어요. 강의실 규모 때문에 10분만 모집하기로 했는데, 초과 접수됐습니다. 현재 11분이 해나가고 있고요. 이따 보세요. 출석률이 되게 높아요.” 맨 뒤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숨을 고르자 자리가 속속 채워지기 시작했다. 박 주임이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었다. 8회 차 수업 역시 출석률 100%로 막이 올랐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가 이미지 카드를 가지고 왔어요. 본인을 가장 잘 표현하는 이미지를 골라보시겠어요? 나와서 한 장씩 가져가세요. 고른 이유도 말씀해주시고요.” 박경숙 강사의 안내에 수강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학자가 꿈이었습니다. 거기까지 못 갔는데, 책이 쌓여 있는 이미지를 보니 그때 생각이 딱 났습니다.” “제 인생에 장기 해외여행은 2~3번 남았을까요? 손녀딸, 며느리와 이탈리아 여행 가는 것이 꿈입니다. 제가 비용을 다 지불하더라도 여자들끼리만 한번 가보고 싶어요.” 글쓰기는 돌아가며 발표를 마친 뒤 짧게는 2분, 길게는 10분씩 이어졌다. 박경숙 강사의 교수법이다.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말하듯이 쓰라’는 거예요. 다들 말은 재밌게 잘하는데 막상 글로 쓰면 그렇지 않거든요. 특히 시니어들은 어렵고 고급스러운 글이 좋은 글이라는 고정관념이 다들 조금씩 있어요. 어려운 어휘나 고사성어를 넣으려고 하죠. 저는 그걸 빼는 쪽으로 피드백해요.” 나쁜 습관 덜어내기를 한 지 어느덧 두어 달. 수강생들은 글쓰기 실력이 나아졌다며 눈을 밝혔다. 수업 내내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른 ‘열혈 수강생’ 성영옥 씨도 그중 한 명이다. “블로그를 하고 있어요. 그동안은 생각나는 대로 써서 올렸는데, 이제는 어떻게 풀어나갈지 구상하고 써요.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더 잘 전달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짝꿍 김용희 씨도 얼른 말을 보탰다. “저도 수백 번 글을 썼지만, 다 내 맘대로 쓴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가이드라인이 생겼어요. 내 글을 피드백 받아보는 경험도 했고요. 배운 점을 유의해서 쓰니까 사실 글쓰기는 더 어려운데(웃음) 참 유익한 것 같아요.” 며느리의 권유에 가벼운 마음으로 등록한 이정임 씨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자서전 쓰기를 버킷리스트에 넣었어요. 한동안 어딜 가든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드니까 괜히 위축됐는데 여기 와서 생각이 바뀌었거든요. 글쓰기는 정년이 없잖아요.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연장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수강생들은 글쓰기 실력 외에 마음 처방전을 각자 하나씩 챙겨 들고 어울림실을 나섰다. 10월, 그 손에는 4개월 동안 써낸 글을 모은 문집까지 쥐어질 예정이다.
- 2023-10-1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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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탄강 따라 시간이 빚어낸 연천 백학마을
- 지지난해엔가 가을에 갔던 연천은햇살이 바삭하고 고요했던 산하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번에 찾아간 봄날의 연천은 조금 달라진 기분이다. 충분히 봄날인데도 바람이 차서 자꾸만 옷깃을 여몄다. 더구나 휴전선과 가까운 최북단이라는 이유로 사진 한 장 담아보지 못한 채 느낌이 확연히 달랐던 봄바람을 맞으며 산을 내려왔다. 마침 전방 마을의 주민께서 안내해주신 덕에 고맙게도 최전방 마을을 잠시 돌아볼 수 있었다. 백학면이라는 연천의 최전방 마을은 아무리 둘러봐도 인적이 드물다. 마을 길 옆으로 자그마한 단층 지하에 백학역사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게 보였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나 3.1 독립운동 시절에 몸과 마음을 바쳐 대항했던 이 지역 영웅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그들만의 소중한 공간이었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의 소중한 이야기다. 바로 맞은편 작은 광장에는 영웅정신계승마을이라는 탑이 우뚝하다. 그 옆으로 전장(戰場)에서 총을 잡는 대신 지게를 짊어진 민간인들의 활약을 새겨놓은 긴 설명이 있어서 꼼꼼히 읽어보았다. 호국보훈의 달, 최북단의 접경지역 연천을 가다 한국전쟁 당시 접전지역이 산악지형이었기 때문에 전투물품 운반에 어려움이 컸다. 이때 5시간씩 걸리는 험한 길을 민간인들이 45kg 정도의 포탄을 지게로 짊어지고 날라다준 덕분에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마을이었다. 지게부대로 연인원 30만 명이 투입되었다 하니 주민이라면 누구나 지게를 짊어지고 날마다 나선 셈이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는 애국자들이다. 지게 모양이 영어의 A와 비슷하다 하여 미군들은 A부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내 나라를 지켜내겠다는 마음으로 탄약을 지어 나르는 이들을 보면서 유엔군들은 이들이 자신들의 생명줄이며 전투의 절반은 이들의 공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고 한다. 피복이나 총기도 지급되지 않았고 가파른 절벽을 걸어 다니느라 희생되신 분들도 적지 않았다 하니 마음이 못내 안타깝다. 다크 투어리즘의 증표, 레클리스 하사 이야기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지게부대 이야기 옆으로 숨은 영웅 레클리스(Reckless) 하사와 한국전쟁 이야기가 그림으로 남아있다. 레클리스는 전쟁 당시 군인이 아니라 군마(軍馬)다.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중에 포탄 운반용 말이 필요했다. 이때 미군들이 신설동 경마장에서 구입한 퇴역 경주마의 이름이 바로 ‘아침 해’였다. 미군들은 아침 해의 별명을 레클리스라고 지었다. 레클리스는 영리한 전투마로 미 해병들과 지내면서 우수한 전투병이 되어갔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통에 엄청난 양의 포탄을 짊어지고 옮기는 용기와 헌신은 전쟁 영웅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사람이 없을 때는 혼자서도 고지를 왕복했다고 한다. 병사들과도 친구처럼 지냈던 전우 레클리스는 정전협정 후 미국 버지니아 본부로 데려갔다. 그리고 미 역사상 처음으로 군마인 레클리스를 하사관으로 진급시켰고 성대한 전역식으로 예우를 다했다고 전한다. 레클리스는 해외 유명 언론에서도 특집기사로 다루었다. ‘라이프 매거진’ 특집에서는 ‘세계 100대 영웅’에 선정되었다. 한국에서도 2013년 우리의 전쟁영웅 레클리스의 실물 크기 동상을 세워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살게 했다. 이른바 연천 백학마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증표, 한국전쟁의 영웅 레클리스 동상이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북녘을 향해 우뚝 서 있다. 고랑포구는 1930년대에 최고의 무역항으로 번창했다. 한국전쟁 때는 최대 격전지이기도 했고 휴전 후에도 통일 한국을 위한 접경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고랑포구 역사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전시실과 VR, AR 체험은 물론이고, 저잣거리와 카페테리아 등이 마련되어 있다. 교역이 왕성했던 고랑포구는 옛 명성과 달리 역사공원 앞으로 임진강변의 강물만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백학면에서 들러볼 곳이 또 하나 있다. DMZ백학문화활용소라는 갤러리는 연천만의 지역적 특색도 있지만 전시물도 특별하다. 현재는 정전 70주년을 맞아 ‘백학역사박물관 유물 다시 보기’ 전시를 진행 중이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치열했던 전쟁과 그 상흔을 더듬어볼 수 있는 기회다. 행사는 6월 30일까지다. 한탄강 주상절리 천혜의 지질 여행 연천은 한탄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주상절리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을 중심으로 세계지질공원 투어도 있고, 힐링을 겸한 트레킹 코스도 연결되어 있어서 많은 이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주상절리라는 특이한 지질 구조는 화산 지형인 제주도를 비롯해 우리나라에 여러 군데 분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수직의 주상절리는 병풍처럼 독특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드는 지질 명소다. 물결은 잔잔하고 봄볕은 화사한데 한두 명의 강태공이 낚싯줄을 던져놓고 하세월이다. 평화로운 풍경 속에 바람은 아직 차다. 주상절리 바로 위쪽으로 숭의전을 올라가 봐도 좋다. 홍살문 입구에서 찬 우물물 한 바가지 시원하게 들이켜고 숲길을 걸어 올라가면 조선시대에 고려의 태조, 현종, 문종, 원종과 공신들의 제사를 지냈던 고려의 종묘인 숭의전이다. 주변으로 수백 년 수령의 나무들이 에워싸고 있고 담장이나 기와에서 자라는 잡풀과 푸른 이끼가 세월을 말해준다. 한탄강 지질 명소 중에 연천 전곡리 유적은 이 땅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기록에 따르면 1977년 주한미군 그렉 보웬이 데이트를 하던 중 한국인 연인이 주워온 ‘이상한 돌’을 보고 전문가에게 조사를 요청해, 이곳이 중요한 유적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때의 돌이 30만 년 전의 돌로 추정되는 전기 구석기 유물인 전곡리 주먹도끼라고 한다.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지질 명소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전곡선사박물관에는 그 옛날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유적공원이 형성돼 있는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당시를 상상해볼 만하다. 넓은 잔디광장에서 다양한 조형물을 보면서 까마득한 옛 시간을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볼거리도 많고 공기도 맑아서 산책길이 더없이 즐겁다. 돌아가는 길에는 한탄강 인접 지류인 재인폭포(才人瀑布)를 들러봐야 하지 않을까. 몇 년 전만 해도 물길 아래로 내려가서 시원한 물줄기를 구경하거나 길 옆 절벽 위에 서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주차장도 넓어졌고 넓은 캠핑장도 생겨났다. 전망대와 출렁다리가 이어졌으며, 데크를 따라 양옆으로 편리하게 내려갈 수 있다. 비가 많이 온 후에는 엄청난 수량이 쏟아지며 물소리가 귀를 때린다. 그렇지 않을 때도 직선의 길쭉한 물기둥이 소리를 내며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다. 폭포 이름이 재인인 것은 옛날에 줄타기를 잘하던 재인(才人)의 이름으로, 그에게는 예쁜 부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을 수령이 부인을 탐하여 재인에게 폭포에서 줄타기를 하게 한 후 줄을 끊어 죽게 한 것이다. 부인은 수령의 코를 물고 폭포에서 자결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연천은 경기도 최북단 접경지역이다. 길을 가다 보면 군부대가 심심찮게 보이기도 하지만 인구밀도가 낮아 사방으로 한적하고 여유롭다. 울창한 산림자원도 풍부하고, 호로고루성이나 당포성, 은대리성 등 옛 성곽이 보여주는 오랜 세월의 이야기도 품고 있는 고장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지금껏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은 연천이어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 2023-06-1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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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브만으로도 상쾌한 대청호반의 매력 속으로
- 숨 가쁘게 시간이 흘러간다. 어느덧 겨울의 한가운데 서 있다. 한겨울 차디찬 공기와 그 풍경 속으로 데려다주는 대청호의 새벽을 찾아간다. 자동차로 어두운 새벽길을 두 시간여 달려 쨍한 추위 속에 호수의 새벽 공기를 맞는 일, 신선하다. 엄동설한의 캄캄한 새벽길은 생각처럼 어렵진 않다. 달려갈수록 조금씩 걷혀가는 어둠을 확인하는 일도, 중간에 잠깐 들른 휴게소의 적막함도 어두운 길을 달리는 사람들만의 즐거움이다. 서울이나 수도권 기준으로 두 시간 정도 새벽길을 달리면 시골길 드문드문 몇 채의 농가와 들판이 내다보이고 대청호를 향한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청호 오백리길 제4구간 출발점인 윗말뫼 주차장은 한적하다. 대청호 오백리길은 총 21개 구간으로 이루어졌다. 이 구간 안에 대전, 청주, 충북 옥천군과 보은군이 경유한다. 그 속에 마을과 산과 들과 강과 호수가 오백리길을 이어준다. 원래는 대덕군과 청원군 사이에 있다고 하여 대청호라 이름 붙였다. 이 지역에 생활 및 공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1980년 대청댐 완공과 함께 지역 마을 담수화가 시작되면서 생겨난 인공 호수가 대청호다. 이때 수몰 지역은 86개 마을로 4000세대가 넘었고, 주민은 2만 6000여 명이나 되었다.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생긴 대청호로 인해 어릴 적 따뜻했던 추억 속 아름다운 시골 마을은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대청호는 인공 저수지로는 저수량 기준으로 소양호와 충주호에 이어 국내 세 번째다. 스무 개가 넘는 대청호 오백리길 구간을 편안히 즐기는 방법은 호수 둘레길을 산책하듯 걷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4코스 호반 낭만길은 대청호수를 가까이에 두고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습지공원과 자연생태관 등이 걷는 길마다 이어지며, 총길이는 약 12.5㎞이고 5~6시간 정도 걸린다. 물론 지금도 호반길을 걷기 위해 찾아드는 이들에게 큰 불편은 없는 편이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2023년 열린관광지 조성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대청호 일대는 장애인, 노약자 등 이동 약자들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무장애 관광 환경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이제는 이동 약자의 문턱이 더욱 낮아진 대청호 오백리길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정보취약계층이 불편 없이 관련 홈페이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웹 접근성도 개선한다. 취향에 따른 구간별 길을 걷다가 갈대숲이나 호숫가에 멈춰서 조용히 대청호를 즐길 수도 있고, 또는 드라이브만으로도 좋다. 굳이 걷기에만 집중하지 않고 발걸음에 따라 또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선택해서 일부를 걷거나 쉼을 택하면 된다. 걷는 속도나 그 길을 모두 걸었다는 것에 의미를 둘 일인가. 단 한두 시간을 걸었어도 그저 자연 속에서 음미하는 시간이 의미 있다. 온몸의 세포를 깨우고 다독이는 그 순간만으로도 충만하다. 동이 트기 전 호수에 도착하는 이들에겐 새벽 물안개에 대한 기대가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날은 마냥 맑고 쾌청한 호수를 보게 된다. 일교차가 큰 봄과 가을에 주로 발생하는 물안개가 이날따라 피어오르지 않았다고 글렀구나 생각할 일은 아니다. 새벽의 거대한 호숫가에 서보았는가. 온몸이 떨리고 시리도록 쨍한 상쾌함으로 간단하게 마음의 평안을 던져준다. 이렇게 겨울과 마주한다. 호수 주변에 들면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공기 맛이 다르다. 건너편의 산과 능선이 호수 안으로 잠겨 흔들림 없는 반영으로 여행자를 맞는다. 호반 둘레길에 깊숙하게 들어가면 질퍽한 습지 위로 풍성한 억새가 숲을 이루었다. 가끔 바스락거리며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가 나곤 한다.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철새가 푸드덕 날고 먹잇감을 찾는 백로의 날갯짓을 보게 된다. 계절에 따라 개구리는 물론이고 메뚜기나 거북도 볼 수 있다. 자연환경이 청정해 구간 안에 자연생태관도 운영한다. 수변탐방로에서 한없이 호수에 취했다가 명상정원 방향으로 향하면 무엇이 기다릴까. 호수와 숲이 함께하는 곳이다 보니 발밑에는 여전히 낙엽이 바스락거린다. 10분여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숲길의 자연스러움에 젖어든다. 호수와 정원 사이 언덕처럼 완만한 등성이에 ‘대청호 오백리길’ 표지판이 보인다. 쉼을 제공하는 벤치와 정자가 호수를 앞두고 나무 아래 고즈넉하다. 이곳에서 호수를 빙 돌아보며 각자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명상정원은 물속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건네주는 공간인 듯싶다. 한 번쯤 들러서 간단하게라도 그리움을 풀어보도록 전통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옛 마을길의 한옥 담장, 장독대, 널찍한 평상 등으로 그들의 깊은 그리움이 해소될까마는 수몰민들을 위로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마을 어귀에서 자라던 나무였는지 여전히 우뚝 서 있는 나무는 사진가들의 피사체가 되어 언제까지나 물속에 잠겨 있는 모습이 애잔하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물속의 작은 섬들이 이루는 반영의 멋과 함께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명상정원에는 드라마 ‘슬픈 연가’, 영화 ‘역린’, ‘창궐’, ‘7년의 밤’ 등의 촬영지였다는 안내가 줄을 잇는다. 이런 이유 말고도 이곳에 서면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아련한 마음이 생겨난다. 세상의 흐름 속에서 변화해가는 현장과 그들의 어제와 오늘, 그뿐 아니라 이 모습을 대하는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사람들은 힐링의 장소로 이곳을 찾는다. 포토존에서 셔터를 누르고 나무 그네에 앉아 눈앞의 호수를 마냥 누리며 새벽의 호수를 만끽한다. 4구간 호반 낭만길은 계속 이어지는데, 명상공원에서 조붓한 길을 따라 1km쯤 거리에 자연생태공원과 추동 취수탑이 자리 잡고 있다. 상수원 취수구역이다. 가래울 마을과 황새바위와 연꽃마을에 이어진 오리골 제방이 시원하다. 철 지난 논과 밭을 끼고 걷는 길에 몇 가구 안 되는 작은 마을도 지나고, 데크로 연결되는 길도 나온다. 감나무에 넉넉히 남겨둔 까치밥의 푸근함을 올려다보면서 마을 옆 데크를 걷다가 예닐곱 단쯤 되어 보이는 알타리 무더기를 보았다. 필요하신 분은 가져가라는 인심이었다. 이런 인정 넘치는 구경은 여행의 덤이다. 도로 옆으로 나오니 자전거 부대들이 씽씽 달린다. 시골길을 달리는 라이딩족들의 활기찬 질주가 상쾌함을 듬뿍 얹어준다. 대청호 오백리길 4구간을 찾는 이들이 들르는 곳이 또 있다. 3구간 종착지인 윗말뫼의 더리스. 호수를 앞에 두고 탁 트인 풍경이 압도한다. 더리스&테라베오는 슈하스코 브라질 바비큐 전통요리 레스토랑이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진 대청호 오백리길 산책로와 호숫가의 전경을 보려고 찾아온다. 더리스 정원 아래로 계단을 내려가면 프라이빗한 장소가 나타난다. 커플 의자에 앉아 마음껏 물멍에 빠져들면 된다. 때가 맞으면 거위 떼가 찾아와 물속에서 노니는 모습도 볼 수 있는 평온한 시간이다. 혹시나 비가 많이 내린 후라면 벤치와 나무가 물속에 잠긴 그림 같은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추운 겨울날 그리움 속 마을을 찾아 떠난 여행지에서 문득 유년의 시간을 발견한다. 그 길 위에서 기억 저편의 할머니와 내 부모 형제들을 만난 듯 뭉클함도 얻는다. 소박한 자연 속에서 비로소 들여다보는 내면 깊숙이에 위로 한 줌 들여놓았다. 떠돌던 마음은 차분히 잦아들고 한없이 따뜻하다. 세상 소음 따윈 잊고 호숫가를 걷는 내 발밑에서 마른 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전부였던 하루가 한동안 몇 알의 비타민이 되어줄 것이다. 여행 정보 자동차로 서울 기준 두 시간 정도 소요. 특히 청주에서 출발해 근교 문의문화재단지와 대청호를 함께 둘러보는 코스도 좋다. 전통문화와 호수의 멋을 제대로 느껴볼 만한 곳이다. 대청호 코스 대전역발 시티투어 순환버스가 토·일 주말에 있다.(2시간 반 정도 소요)
- 2023-02-1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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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성된 힙함이 있다… 필름 위에 올린 ‘노인의 멋’
- 세상은 늙음을 가리켜 ‘지루하고 멋지지 않다’고 말한다. 탄성을 자아내는 멋진 패션은 오롯이 젊음의 몫인 양 분리한다. 영어 문화권에서는 유행에 뒤떨어진, 구식의 무언가를 칭할 때 ‘Old-fashioned’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다. 여기에 젊은 작가가 반기를 들었다. 김동현(30) 사진작가는 노인 ‘스트리트 패션’을 필름 사진에 담았다. 그의 사진을 접하면 감탄하게 될 것이다. ‘참 멋있다.’ 스트리트 패션(Street Fashion)이란 단어 뜻 그대로 길거리 사람들의 패션이다. 젊은 세대의 유행에서 시작되는 영역이라, 수많은 잡지를 장식한 스트리트 패션 사진에는 옷차림에 신경 쓴 청년들이 가득했다. 노인과 묶어 생각하는 경우는 없었다. 김동현 작가는 2019년 동묘에서 우연히 그럴 기회를 얻었다. 가볍게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가 멋진 할아버지를 찍게 된 것. 그는 젊은 멋쟁이 사진을 찍던 때와는 다른 종류의 떨림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게 시니어의 스트리트 패션을 주구장창 찍는 전문 사진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국내에선 단발성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그가 최초다. ‘나만 찍을 수 있다’는 확신 작업 반경은 동묘에서 남대문 인근, 인사동까지다. 50대에서 80대 사이의 멋쟁이 어르신을 발견하면 슬금슬금 다가간다. 인사와 함께 명함을 건넨다. “저는 이런 사진을 찍는 사람인데, 선생님 사진을 멋지게 찍어드리고 싶습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려둔 사진 중 피사체로 점찍은 분이 좋아할 만한 사진을 골라 보여드린다. 운 좋게 허락이 떨어지면 신중히 촬영을 한다. 촬영 후에는 초상권 사용 허가와 출판에 대한 동의를 무조건 받는다. 혹 촬영한 다음이라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사진은 폐기한다. 그의 연장은 필름 카메라다. 필름 위에 사진 36장을 다 찍고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쳐야만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지만 계속해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할 생각이다. 필름 카메라 사진의 투박함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멋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서다. 인화한 사진은 선물하거나, 사진 파일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낸다. 이 모든 과정이 사진 촬영의 과정이자 소통이라고 생각하기에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덕분에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는 촬영 날짜와 ‘디올 어머님’, ‘힙스터 아버님’, ‘부족장 아버님’ 같은 별칭으로 기록된 멋쟁이 노인들이 빼곡하다. 가끔은 ‘오늘 옷을 멋지게 입었는데 촬영하러 나오지 않느냐’는 연락을 받기도 한다. “2021년에 유명 패션 잡지 ‘보그 코리아’에서 연락을 받고 작업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제 자신을 갈아 넣다시피 작업했어요. 걸어 다니는 그 잠깐 사이에 피사체를 놓칠까봐 자전거를 타고 다녔죠. 동묘앞역에서 시작해 남대문, 청계천,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 사거리를 매일같이 다녔어요. 마땅한 벌이가 없던 때라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200번 거절당하면 10장은 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매일 거리에 나갔어요. ‘이 일은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죠.” 이렇다 할 경력이 없던 그가 시니어 스트리트 패션 전문 사진작가로 거듭나는 과정은 고난의 길 그 자체였다. 건설 현장에서 막일을 하고, 동대문 창고에서 짐을 날랐다. 그렇게 번 돈을 모두 촬영하는 데 썼다. 하지만 고생스러운 촬영을 거듭할수록 그에게는 확신이 생겼다. 이런 사진을 ‘나만큼 노력해서 찍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 인스타그램 피드를 채워가는 결과물에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유명인의 사진 몇 장으로 동묘가 한순간 ‘힙’의 성지로 재탄생하는 것을 지켜보며 다시금 확신을 얻었다. 2018년 세계적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직접 찍은 동묘의 어르신들 사진 몇 장과 ‘세계에서 가장 멋진 거리’(best street in the world)라고 적어 올리자 언론이 해당 소식을 일제히 퍼 날랐다. 그렇게 동묘는 새로운 패션의 성지로, 노인의 패션이 ‘힙’한 것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동묘는 ‘고루한 노인들만 모여 있는 동네’이고, 그곳의 패션은 ‘멋지지 않은 것’이었어요. 그런데 낯선 거리를 흥미롭게 여겼던 유명한 외국인의 게시글 하나로 인식이 한순간에 뒤집혔죠.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각했어요. 이 사진을 계속 찍다 보면 나도, 내 작업물도 언젠가 빛을 보겠구나.” 3년이 넘어가는 요즘도 운이 좋아야 하루에 서너 명의 어르신을 찍는다. 주말 내내 사진 한 장 못 건질 때도 있다. 스트리트 패션 사진의 특성상 처음 보는 일반인을 붙들고 사진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허탕 치는 날이 많다. 하지만 김동현 작가는 굴하지 않고 서울의 멋쟁이 노인들을 찾아 주말마다 거리로 나선다. 젊음은 따라 할 수 없는 ‘멋’ 그가 피사체를 선정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젊은 사람도 공감 가능한 스타일(왼쪽 사진)이거나 스타일에 신경 썼다는 것이 느껴질 때(중간 사진), 혹은 독특하고 뚜렷한 스타일이 있다면(오른쪽 사진) 섭외를 시도한다. 세 번째는 스타일만큼 성격이나 주관이 단단한 분들이 많다. 맷집과 시간을 무기로 내세우는, 수천 번 거절당해본 김 작가도 섭외하기 만만치 않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절대 시도하지 않을 천연색 정장, 과감한 단청 무늬 티셔츠 차림은 작가로서 가장 욕심나는 피사체다. 또 한 번 거절당할 각오를 하며 명함을 내밀 수밖에. 젊은 사람 눈에도 멋있어 보이고, 누가 봐도 신경 썼음이 느껴지는 옷차림도 마찬가지다. 거울 앞에서 고민했을 모습이 그려지면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어떤 양말을 신을지’, 혹은 ‘오늘 입은 옷에는 어떤 형태의 모자를 써야 좋을지’. 웬만한 20대보다 옷 잘 입는 어르신들을 수두룩하게 만난 그로서는 나이 듦으로 멋의 유무를 구분 짓는 사회가 잘못됐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그는 나이 듦에 관계없이 자신만의 태도를 유지하는 어른을 존경한다. 그래서인지 6000장이 넘는 사진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옷에 대한 태도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추한 건 아닐까. 나이가 들면 멋짐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당당한 자세를 취한 노인들의 사진은 공연한 걱정을 지운다. 멋짐은 나이가 아니라 당당한 태도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제 사진 속 어르신들은 지금보다 힘든 시절에도 옷차림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분들이에요. 지금보다 패션을 등한시하던 시대, 남들과 다르면 눈총을 받던 시대를 살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해왔던 거죠. 그건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멋이에요. 젊은 사람은 옷을 똑같이 따라 입는다 해도 따라갈 수 없죠. 옷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거의 반평생 패션에 진심인 분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어요.” 3년, 6000장의 멋, 그 이상을 위하여 그는 어릴 적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자신의 패션 세계를 개척해나갔던 친할머니 덕분이다. 김동현 작가의 친할머니는 ‘교통비를 아끼려 2km를 걸어 다니더라도 고급 모피 코트를 사서 입을 줄 아시는 분’이었다. 작은 돈은 아껴도 옷은 좋은 것을 입고 다녀야 한다고 이르던 멋진 할머니 덕분에 옷을 챙겨 입는 즐거움을 일찍이 깨달았다. 하지만 미디어는 노인을 지루하고 추한 존재로 그려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항 없이 그 이미지를 받아들였다. 김동현 작가가 자라면서 보고 겪은 것과 달랐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고, 반박하고 싶었다. “사회에서 가장 젊다고 여겨지는 영역인 패션 산업을 이끄는 건 나이 든 사람들이에요. 실제로 명품 브랜드의 수장, 디자이너들 대다수가 40대 이상의 중장년이죠.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명품 컬렉션을 발표하고 있어요. 우리는 젊은 사람이 입는 옷을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옷은 나이 든 사람이 디자인한 결과물이에요. 그런데도 패션은 젊음의 것이라고 여기는 세상이 이상하지 않나요?” 그래서 누가 봐도 멋있다고 느낄 사진을 찍었다. ‘멋’(mut_jpg)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짤막한 대화를 갈무리한 글과 함께 사진을 쌓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 노인이 멋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그를 찾는 사람들, 사진의 좋아요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동조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서 그는 뿌듯함을 느낀다. 지난해 5월 그는 첫 사진집 ‘멋’(MUT : the fasion of Seoul)을 냈다. 2019년부터 3년간 촬영한 약 6000장의 사진 중 400여 장을 추려서 책으로 출판했다. 사진집에는 한국어와 영어가 함께 쓰였다. 한국의 시니어 패션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김동현 작가의 목표가 반영된 것. 책을 제작하기 위해 한 달간 크라우드 펀딩을 열었는데, 목표액인 200만 원을 훌쩍 넘긴 2225만 원이 모였다. 책을 내고 나서는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영국 ‘가디언’지가 그의 이야기와 사진을 취재해 갔고, 지난 11월에는 영국 TV 방송사 채널5의 다큐멘터리에 소개돼 우리나라의 시니어 패션을 직접 알리기도 했다. 그의 꿈은 현대 패션사(史)에 이름 석 자를 남기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그의 사진과 ‘멋 작가’를 알리기 위해 모든 인터뷰에 응했지만, 앞으로는 보다 더 작업에 집중하려 한다. 지난해에는 해외 출판 에이전시와 출판 계약을 맺었다. 올해 안에 ‘멋’ 사진집을 전 세계에 선보이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시니어 헤어스타일 아카이빙 북 제작을 위한 촬영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그가 프레임에 담는 ‘동묘 스타일’에 세계가 반할 날이 머지않았다.
- 2023-01-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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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담하고 덤덤하게 영주가 주는 위로
- 어릴 적 주입식 교육의 힘은 아주 세다. 우리 모두가 흔히들 아는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말고도 그 시절엔 각 지역의 특색이나 지역명은 모두 머릿속에 집어넣지 않았나 싶다. 그중에 영주도 있었다. 영주라 하면 무조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부석사 무량수전이 따라붙었다. 강산이 무수히 바뀌고 세상은 달라졌어도 부석사 무량수전의 고장, 경북 영주다. 또는 영주 사과일까. 선비의 고장답게 사찰이나 서원은 당연하다. 추억의 풍경이 곳곳에 남겨져 있어 도심과 골목길에서 가슴 뭉클한 그리움도 솟는다. 그리고 무섬마을을 지키며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둘러보면 어디서든 수백 년 혹은 수십 년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영주 여행은 옛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해도 괜찮을 듯하다. 물 위에 뜬 섬,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 영주의 내성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너른 모래톱, 그 위로 S라인의 곡선이 길게 이어진 무섬마을 외나무다리의 풍경이 무심하다. 물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해서 무섬마을이다. 물 수(水), 섬 도(島). 수도리의 물섬이 무섬이 되었고,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가 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준다. 외나무다리 저편으로 수도교라는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300년 넘도록 무섬마을과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이 다리였다. 홍수라도 나면 다리는 강물에 잠겼고 휩쓸려 내려가, 그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다리를 다시 놓곤 했다. 폭 20~30cm, 높이 60cm, 총길이 150m. 폭이 좁아 걸을 때면 아슬아슬해서 장대에 의지하기도 했다. 한 사람만 걸을 수 있는 폭이어서 예전에는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이 보이면 지레 모래톱에 앉아 기다렸다고 한다. 지금은 외나무다리 중간의 몇 군데에 마주 오는 이를 피할 수 있는 ‘비껴다리’가 놓여 있다. 걷다가 어질하거나 자칫 기우뚱하다가는 물에 빠질 듯한 두려움도 생긴다. 다리 위를 걷는 발끝만 보며 걷다가 강의 물결에 취하면 낭패다. 그래서 강 건너를 잇는 이 다리는 그 옛날엔 시집올 때 가마 한 번 타고, 죽어서야 상여 타고 한 번 지나간다는 애환이 서려 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물돌이 마을, 무섬의 느린 시간 속에 잠겨 모래톱에 주저앉아 저편을 바라보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랫빛…’ 이 노래가 절로 입안에 맴돈다.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운 외나무다리는 이제 영화나 드라마, TV 예능과 CF 등의 촬영지로 알려지고 있다. 잠시 숨을 고르며, 무섬마을 “십 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에 밀어 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고운 뫼아리”. 시인 조지훈은 서울로 유학을 떠나면서 무섬에 남겨둔 아내와의 이별을 ‘별리’(別離)라는 시에 담았다. 조지훈 시인의 처가로 알려진 김뢰진 가옥은 마을 첫머리쯤에 있었다. 무섬의 집들은 새롭게 조성된 한옥마을과는 달리 늘 그 자리에 있던 풍경이다. 한때 100여 가구가 살았는데 지금은 50여 가구만 사는 작은 마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무섬마을은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다.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라고 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선정되었다. 만죽재(晩竹齋), 해우당(海愚堂)을 비롯해 지정문화재가 10곳이고, 100년 넘는 고택도 그대로 남아 있다. 울 밑에 선 봉숭아도, 풀숲 가득한 곳에 피어난 들꽃들도 물씬한 그리움을 소환한다. 수백 년 켜켜이 쌓인 깊은 역사가 그대로 전해지는 옛집들이 고스란히 무섬마을이었다. 마을이 어찌 이리도 조용할까. 발소리조차 민망하다. 걷다가 호박이 매달린 담장을 향해 셔터를 누르니, 마당에서 일하시던 어르신이 “그게 뭐 볼 게 있기나 한가. 쓸데 있으면 그 호박 따가”란다. 그래도 되는지 싶어서 괜찮다고 하니 직접 두 개나 따주셔서 황송한 마음에 보물처럼 잘 모시고 왔다. 영주라 하면 부석사 유홍준 교수는 자연과 건축이 제자리를 지키며 조화를 이루는 최고의 문화유산 부석사는 그 어떤 표현으로도 나타내지 못한다고, 오직 한마디 위대한 건축이라고 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조선 땅 최고의 명상로’라 칭송한 부석사 당간지주 인근 은행나무 산책로는 여전하고, 그 길 위에서 홀로 명상에 잠겨볼 만하다. 천년고찰 부석사의 하이라이트 무량수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중 하나다.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그 앞으로 펼쳐진 백두대간 능선의 풍광에 넋을 잃어보는 것도 부석사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온통 경사진 경내를 돌기엔 다리가 뻐근하고 숨찰 때도 있다. 하지만 영주까지 와서 어찌 유구한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목조건물 부석사에 들지 않을 수가 있을까. 마음 내려놓고, 소수서원과 선비촌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공인된 사립 고등교육기관으로 인정받았던 곳이다. 조선 중종 때 주세붕이 세운 서원의 효시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당시 향교나 서원은 지금의 중고등학교에 해당되는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국립인 반면 서원은 사립학교라 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한 소수서원의 역사와 향기가 물씬하다. 서원 안으로 들어서면 때맞추어 선비 복장으로 글을 읽는 이들의 소리도 들을 수 있고,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한 그 뜰에 앉아 가만히 옛 선비들의 기운을 전해 받을 수도 있다. 선비교를 따라 너른 뜰을 지나면 선비촌으로 접어든다. 옛 선비정신과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고래등 같은 양반님네 고택의 안마당과 대청마루, 담 너머로 철 따라 피어나는 꽃들과 배롱나무, 그리고 강학 시설과 저잣거리도 조성되어 있어 옛 선비마을의 풍취가 가득하다. 오래된 골목길을 걷다, 근대역사문화거리 현대 일상에서 찬찬히 되돌아보기 좋은 곳으로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가 있다. 영주 원도심에 가면 근대 생활 모습과 건축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근대 산업 시기의 양곡가공업을 짐작해볼 만한 풍국정미소, 문을 밀고 들어가니 여전히 동네 주민의 머리를 깎고 계시던 80년 전통의 영광이발소, 몇 걸음 건너편에 고딕 건축양식의 영주 제일교회가 붙어 있고, 근대 시기의 주거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영주동 근대 한옥은 주변으로 풀밭이 무성하다. 또한 관사마을은 역사문화의 공간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이다. 일제강점기에 영주-안동 간 중앙선 철도가 개통되고 철도 역무원들의 관사가 지어지면서 형성된 마을이 바로 이곳이다. 그래서 불리게 된 관사골은 반세기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칠이 벗겨지고 낡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일식 목조 관사 주택의 전형인 5호와 7호 관사를 볼 수 있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니 집주인이 수리를 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집 안에 욕실과 화장실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신기해하던 집이었지만, 근대 건축이라고 지정만 되면 뭐하냐 넋두리 한다. 낡고 헐어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수리를 할 수밖에 없다는데 곤란한 점이 많은 모양이다. 도시생활사적 가치가 크다지만 변화에 따른 관사골 주민들의 환경과 지속 가능한 삶의 여건도 염두에 둘 일인 듯하다. 그럼에도 낡은 지붕과 담벼락, 포도가 주렁주렁 달리던 안마당의 텃밭에서 정 깊은 추억이 솟는다. 관사골 저편 언덕 위로 부용공원이 내려다보고 있다. 흑백 필름 같은 풍경 속에서도 현재와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은 계속된다.
- 2022-12-1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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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을 더욱 풍요롭게” 10월 문화소식
- ●Exhibition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사진전 일정 8월 4일 ~ 11월 13일 장소 그라운드시소 성수 사후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미국 뉴욕 출신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1926~2009)의 사진전이다. 지난해 9월 시작한 유럽 투어 이후 첫 아시아 투어다. 비비안 마이어가 직접 인화한 빈티지 작품과 미공개작을 포함한 사진 270여 점과 생전 사용했던 롤라이플렉스, 라이카 카메라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마이어가 1959년 필리핀·홍콩·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 등을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들이 최초로 공개됐다.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여러 가정에서 보모로 일했다. 하루에 필름 한 통씩 50년간 많은 양의 작품을 남겼으나, 생전에 그녀의 사진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마이어는 영화감독 존 말루프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말루프는 2007년 마이어의 사진 필름 뭉텅이를 경매장에서 헐값에 사들인 후 2년간 방치하다 사진 일부를 자신의 SNS에 올렸다. 네티즌은 그녀의 사진에 열광했다. 이후 마이어는 전시회·사진집을 통해 명성을 쌓았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다룬 책과 영화가 나왔다. 마이어의 이야기는 영화 ‘캐롤’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셔터를 누른 마이어는 ‘거리의 사진가’로 불린다. 그녀의 사진에는 위트, 사랑, 빈곤, 우울, 죽음의 이미지가 섞여 있고,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이 살아 있다. 마이어는 ‘셀피(Selfie)의 원조’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거리의 쇼윈도나 유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주 찍었기 때문이다. ◇이승조 개인전 ‘LEE SEUNG JIO’ 일정 9월 1일 ~ 10월 30일 장소 국제갤러리 ‘파이프 화가’로 불리는 이승조(1941~1990)의 개인전이다. 국제갤러리에서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도한 작가의 주요 작품 30여 점을 소개하며 그만의 굳건한 시각언어를 새롭게 조망한다. 194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이승조는 가족과 함께 남하했고,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모티브는 ‘파이프’ 형상이다. 캔버스에 단순한 형태와 색조 변이로 시각적 일루전(환영)을 만들어내는데, 파이프가 연상된다. 작가의 회화는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동시에 평면성과 입체성, 추상과 구상을 넘나든다. ●Book ◇슬픔이 택배로 왔다(정호승·창비) “50년 동안이나 이 험난한 세월을 시를 쓰면서 살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정호승의 신작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가 출간됐다. ‘당신을 찾아서’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열네 번째 시집으로, 올해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라 더욱 뜻깊다. 이번 시집에는 ‘죽음’에 대한 정호승 시인의 사유가 유독 돋보인다. 시인은 죽음을 새로운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한다. 시인은 시를 통해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낙과(落果)’), “죽고 싶을 때가 가장 살고 싶을 때이므로/ 꽃이 질 때 나는 가장 아름답다”(‘매화불(梅花佛)’)라고 말한다. 또한 시인은 “사랑하기에는 너무 짧고/ 증오하기에는 너무 길다”(‘모닥불’)고 말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비움’을 제시한다. 시인은 “빈 의자는 비어 있기 때문에 의자”(‘빈 의자’)이고, “빈 물통은 물이 가득 차도 빈 물통”(‘빈 물통’)이며, “빈집은 빈집이므로 아름답다”(‘빈집’)라고 말한다. 담담한 어조로 적어 내려간 시인의 일화들 또한 감동적이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눈물을 자아낸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회한(‘어머니에 대한 후회’)과 나를 꾸짖을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서럽게 깨닫는 장면(‘회초리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신아연·책과나무) 신아연 작가가 시한부 독자와 스위스까지 동행한 기록을 담은 철학 에세이다. 독자의 죽음을 배웅하고 돌아온 저자는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안락사와 조력사 논쟁으로 뜨거운 우리 사회에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지금 살아남은 승자의 이유(김영준·김영사) 신라면, 요플레, 에비앙 생수 등 일상에서 사랑받는 제품들은 치열한 경쟁의 생존자다. MBC 유튜브 채널의 인기 콘텐츠 ‘돈슐랭’의 진행자 김영준은 F&B 기업의 성공 사례를 통해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는 법을 밝힌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에쿠니 가오리·소담출판사) ‘냉정과 열정 사이’의 저자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 장편 소설이다. 섣달그믐 밤 노인 세 명은 함께 목숨을 끊는다. 이 죽음을 계기로 남겨진 자들의 일상도 새롭게 펼쳐진다. 특히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담담하고 섬세한 문체가 돋보인다. ●Stage ◇러브레터 일정 10월 6일 ~ 11월 13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출 오경택 출연 오영수, 박정자, 배종옥, 장현성 ‘러브레터’(LOVE LETTERS)는 두 주인공 멜리사와 앤디가 50여 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읽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특히 배우 오영수와 박정자, 배종옥과 장현성이 커플 호흡을 맞출 예정으로 기대를 모은다. 오영수와 박정자는 1971년 극단 자유에서 처음 만나 50년 이상 돈독한 우정을 이어온 연극계 동료다. 장현성과 배종옥은 꾸준히 연극무대를 병행해온 실력파 배우들로, ‘러브레터’를 통해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는 소망을 이뤄냈다. 오영수와 장현성은 멜리사의 오랜 연인이자 친구이며 와스프(WAST, 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고 불리는 슈퍼 엘리트 ‘앤디’ 역을 맡아 연기한다. 박정자와 배종옥이 연기하는 ‘멜리사’는 적극적이고 솔직한 성격의 자유분방한 예술가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일정 11월 8일 ~ 2023년 2월 26일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연출 박소영 출연 최호중, 김도빈, 성태준, 조성윤, 박정원, 김현진, 김리현, 김기택 등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관객을 찾는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드(Creative Minds)에 선정된 후 2013년 초연했다. 당시 객석점유율 95%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같은 해 제19회 한국뮤지컬대상 극본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며, 무인도에 표류된 남북한 병사들이 ‘여신님이 보고 계셔’ 작전을 펼치며 융화되어가는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히스토리 보이즈 일정 10월 1일 ~ 11월 20일 장소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연출 김태형 출연 오대석, 정상훈, 박은석, 김경수, 안재영, 이지현, 견민성 등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극작가 앨런 베넷의 대표작이다. 1980년대 영국 북부 지방의 한 공립 고등학교 대학입시 준비반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국내에서는 2013년 초연 이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이번이 6번째 시즌 공연이다. 인생을 위한 공부를 추구하는 문학 교사 ‘헥터’ 역에는 2019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열연한 오대석과 함께 정상훈이 새롭게 캐스팅됐다. 옥스퍼드 출신의 역사학 교사 ‘어원’ 역은 김경수·안재영과 재연부터 5시즌까지 ‘데이킨’ 역으로 참여했던 박은석이 출연한다.
- 2022-10-2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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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의 반짝이는 도시, 나이스(Nice)한 니스(Nice)
- 파리에서의 1박 2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애초에 생미쎌의 소르본느 주변에서 어슬렁 놀다가 미술관 한 군데 돌아보는 걸로 여유롭게 일정을 잡았기에 쫓기는 기분 없이 잘 보낸 1박 2일이었다. 틈새 여행으로 아쉬움 없다. 오를리 공항에서 탄 작은 비행기는 새하얀 구름 속 푸르디푸른 하늘 구경에 잠깐 정신 팔린 사이에 금방 니스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창밖의 하늘과 구름은 어찌나 푸르고 새하얗던지 반짝거리는 니스의 푸른 바다와 콤비를 이룬다. 온통 코발트블루의 세상을 보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건 니스만의 블루다. 지중해의 니스 블루라고. 지중해의 니스 블루 사실 니스는 여행지로 생각지도 않았던 곳이었다. 때로는 이렇게 예상치도 않은 여행지를 다녀볼 수도 있다는 게 기분을 달뜨게도 한다. 공항 건너편의 버스정류장에는 칸느와 모나코행 버스가 늘 대기하고 있다. 또 한쪽엔 니스 역 방향의 98번 버스가 서 있다. 우리는 니스 해변 쪽으로 가는 99번 버스로 지중해가 펼쳐지는 숙소 앞에서 내렸다. 환한 햇살이 맞이할 것 같았던 니스는 비가 내린 후의 한기가 엄습했지만 다음 날부터는 니스의 햇빛 좋은 날씨가 날마다 이어졌다. 끝을 알 수 없는 코발트블루의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해변가의 전망 좋은 방. 호텔 방에 앉아 광활한 지중해의 풍경을 마음껏 볼 수 있도록 위치 좋은 곳의 전망 값을 더 지급했다. 발코니에 앉아 새벽을 바라보고 찬란한 햇빛을 눈부시게 볼 수 있었다. 아름답게 휘어진 니스의 해안선에 내리는 노을을 향해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며 짜릿했다. 니스에서는 모든 것을 털어내고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맨발로 몽돌을 밟으며 걷는 해변엔 여행객들의 거리낌 없는 일광욕 자세가 민망할 것도 없이 금방 적응된다. 느릿한 트램을 타고 거리를 지나거나 메세나 광장에 나가보아도 무표정하거나 심각한 얼굴은 보기 어렵다. 경직된 근육 없이 자유를 가득 품은 몸짓이었고 더없이 편안한 표정들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도 모두 친절했다. 적대감 따윈 하나 없이 무장 해제된 표정들. 구시가지의 고풍스러운 골목을 걷다가 나와서 길 가던 노신사에게 지도를 들고 길을 물었더니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아예 다리 사이에 내려놓고 안주머니에서 펜을 꺼낸다. 그리고 내 지도에 동서남북을 그리며 상세히 설명을 한다. 그냥 "조~오기로 돌아서 가면~"이라고만 해주어도 좋으련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기분이 든다. 노천카페마다 의자에 팔걸이를 하고 느긋하게 앉아 지중해를 즐기고 니스를 즐기는 모습들이다.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거나 와인과 지중해의 해산물 샐러드를 앞에 놓고 그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런 모습이 여행자에게 전해지고 덩달아 행복감 충전이다. 하루쯤 지나면서 긴장감이라곤 일 그램도 없는 나를 발견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니스(Nice)는 나이스(Nice)다. 가끔 가십 기사로 프랑스 배우나 허리우드 스타들이 니스에서 휴양 중인 파파라치 사진들을 기억한다. 따스한 햇살로 반기는 곳 니스는 누구라도 마음 놓고 쉴 수 있게 하는 도시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바다와 알프스 산맥을 모두 품은 세계적인 휴양도시답게 여유와 풍요함이 흘러넘친다. 니스가 좋은 이유 니스는 프랑스 남부의 항만 도시로 프랑스의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다. 모나코와 칸느가 옆동네이고 이태리 국경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당일코스로 하루씩 칸과 모나코를 다녀올 수 있다. 현재 니스는 프랑스령이지만 역사적으로 이태리와 영토분쟁이 있었고 한때는 이태리 령이기도 했다. 그래서 니스지방 사람들의 이름 중엔 이태리식 이름이 많고 풍습이나 음식도 이태리풍이 많다. 무엇보다도 신선한 지중해의 식재료로 요리한 해산물 요리가 풍성하면서도 가격도 부담 없는 편이다. 숙소 또한 비싸진 않지만 찾는 이들이 많아 성수기엔 예약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이곳은 평균 기온이 15℃이고 연중 고르게 온난한 날씨다. 여름엔 덥고 건조한 편이긴 하지만 대체로 전형적인 지중해 도시로 시기와 상관없이 사계절 니스를 즐길 수있는 기후다. 내가 갔을 때는 시월인데도 해변가엔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풍경이 일상처럼 자연스럽다. 야자수 나무 사이로 다정히 손잡은 연인이 서 있고 바다를 향한 벤치에 어깨를 감싼 부부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자전거를 탄 젊음이 쌩쌩 지나가고 잘 생긴 개를 끌고 걸어가는 모습이 여유롭다. 이처럼 여유자적한 풍경 속에 내가 있다. 지끈지끈한 일상의 피로나 두통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가벼워지는 듯했다. 마음껏 늦잠을 잘 수도 있고 거리를 지나가다 아무데나 들어가서 홍합이 가득 뒤덮인 지중해의 해산물 파스타를 먹는다. 골목길이든 대로든 해변가든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긴다. 몇 걸음 걷다가 야자수 가로수길 어드메쯤에 아무렇게나 털썩 앉아 지중해의 반짝거림을 언제까지나 멍하니 바라볼 수 있다니. 며칠 후면 다시 별스럽지 않은 내 일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괜찮다. 얼마든지 괜찮다. 남프랑스 맛의 기억 물론 남프랑스의 맛이란 제목으론 당치도 않다. 여행 중에 그곳의 맛을 골고루 맛본 것도 아니고 좋은 것을 찾아다니며 먹은 것도 아니다. 그나마 먹는데 정신 팔려 사진으로 남길 생각을 못해서 찍히지 못하곤 했다. 어쩌다 먹고 어쩌다 찍힌 별스럽지 않은 사진 몇 컷 일뿐이다. 니스의 메인스트릿을 지나 골목길 포장마차처럼 생긴 레스토랑 Temple Bar. 가족단위의 손님이거나 연인들이 가득 차서 바글바글했던 저녁시간. 파스타도, 홍합요리도, 감자튀김도 푸짐 푸짐했다. 이런 인심 대환영이다. 맛있다. 그런데 국물이 간이 좀 세다. 조금만 덜 짰으면 좋으련만, 하긴 괜한 트집이다. 그 분위기 속에선 이렇게 잊지 못할 또 다른 맛을 낸다는 사실이다. 니스의 호텔 조식은 메뉴가 다양했다. 그 중에서 자그마하고 대충 만든 듯하지만 부드러운 크레페가 따끈따끈 금방 구워져 나와 그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크레페(Cr^epes)의 생김새는 동그란 금빛 형태로 밝은 날 떠오른 태양을 상징한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이 춥고 어두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하고 밝은 봄을 맞을 때 먹는 빵이었다는데 이제는 우리의 호떡처럼 길거리 어디서든 사 먹을 수 있으니 그 의미를 떠올릴 틈이 없다. 그리고 어딜 가나 빨강과 보라, 그리고 노랑과 초록으로 선명한 색감이 빛나는 지중해의 채소와 과일들이 가게마다 넘쳐났다. 사진 한 장만으로도 그 시간들이 내게 우르르 몰려온다. 맛의 기억이 여행의 기억이기도 하다.
- 2022-07-28 0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