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65세가 되면 전철ㆍ공원 무료에 국민연금 수급자가 된다. 방학을 맞는 학생처럼 가슴이 부풀었다. 고생은 끝나고 안락한 행복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하지만 앞으로 30년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스스로 물었다.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있는가? 대답이 쉽지 않는 대목이다. 세월이 번개처럼 흘러 2016년 한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고령자가 된지 어느덧 몇 년이 됐다. “건강하고, 경제문제가 해결되면 행복하다”고 모두가 입을 모은다. 친구가 있고 자원봉사활동을 하면 더욱 좋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사에 정신 차리기 어렵다. 머리 싸매고 배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몇 해 전까지 없던 나이제한이 보편화 되었다. 고령자는 수강이 제한되고, 수입창출 알바기회도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젊은이 위주의 취업과 창업만이 성행하고 있다. 시니어들이 주축으로 하는 재능기부 자원봉사단체가 많다. SNS를 비롯하여 노래 부르기ㆍ그림그리기ㆍ스포츠댄스 등 배울 곳은 많다. 시대변화에 따라서 배움을 멈출 수 없다. 책을 읽고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행동이 나태해지기 쉽다. 이를 방지하려면 일과표를 작성하고 꾸준히 실행하여야 한다. 올 겨울은 다른 때보다 추위와 찬비, 미세먼지가 많아 마음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휴일 이른 아침, 몇 번이나 창밖을 살피고 나서야 친구들과 산행하려고 집을 나섰다. 창문을 내다보면서 비가 올지 걱정하지말자. 비가 오면 우산 들고, 눈이 오면 방한복 하나 더 입고 아침부터 집을 나서자. 망설이면 하루를 헛되게 보내고 만다. 은퇴 전보다 더 엄격한 일정관리를 하여야 한다.
정기적인 모임이 운동을 쉬지 않고 하는데 도움을 준다. 운동을 지속하려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 같은 운동을 하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동호인과 사귀면 운동하는 재미가 난다. 30년 넘도록 산행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도 친구들과 정기적인 동호인 모임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시니어 소비지출 항목 중에서 건강관리비가 상당함을 누구나 경험하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체력 단련비 등은 필요하지만 병원비, 약값은 건강을 미리 챙겼다면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이다. 건강이 행복의 시작이면서 소비절약의 중요한 요소이다. 건강한 생활을 하는 방법으로 운동ㆍ공부ㆍ자원봉사 등이 있다.
손주와 친하게 지내도록 노력한다. 주말에 가까이 사는 쌍둥이 손주와 세종에서 올라 온 외손자 등 세 녀석이 한 달여 만에 ‘합숙’을 열었다. 초등학교와 유치원 다니면서 자기들의 세상이 열렸다. 깔깔 웃어대고 놀이에 몰두하면서 할아버지ㆍ할머니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세 녀석을 옆에 뉘이고 잠자리가 불편할 새라 한밤을 지켜도 즐겁기만 하다. 손주는 인생의 제일 큰 행복이며 세대를 따뜻하게 이어줄 것이다.
어릴 적 할아버님, 할머님께 사랑 받았던 기억이 뚜렷하다. 손주들에게 그만큼 잘할 수 있나 종종 스스로 묻는다. 자식을 기르면서 한 세대를 다시 살았고, 손주를 돌보면서 또 한 세대를 다시 산다. 절묘한 자연의 순환이다. 건강을 지키면서 행복하게 사는 길은 손주와 친하게 지내는데 있다.
없다!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보고 책가방 속을 샅샅이 뒤져봐도 집에서 틀림없이 챙겨 나온 도서관 대출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찾으면서 점점 울상이 된다. 기억으로는 확실히 갖고 나온 것 같은데 찾아도 없으니 혹 필자가 갖고 오지 않았으면서도 갖고 온 것으로 착각하고 있나 하는 의심을 한다. 필자의 기억을 이제는 믿지 못하겠다. ‘챙겨 나오지 않은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그런 것 같은 생각이 머리를 든다. 주머니에 대출카드를 휴대폰과 함께 분명히 넣은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주머니 속을 뒤져도 없으니 점점 그런 생각이 든다.
카드를 갖고 나온 것 같은데 혹시 분실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카드를 분실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니 그런 것 같다. 빌릴 책을 고르다 전화가 오는 바람에 전화기를 끄집어내면서 종종걸음 치며 도서관 밖으로 급히 뛰어나오다 흘린 것 같다. 필자의 카드는 예전에 발급받아 플라스틱 카드가 아니고 종이카드에 비닐 코팅을 했다. 평소 같으면 손의 감각으로 흘린다는 것을 느꼈을 법한데 아무 감각도 못 느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는 분실한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점점 필자의 기억과 감각을 믿지 못하겠다.
분실한 것이 맞으면 누군가 필자의 도서관 대출카드로 책을 빌려갈지도 모른다, 그러면 낭패다. 남이 필자의 카드로 도서관 책을 대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불안해진다. 급히 도서관 대여 창구에 뛰어가서 카드 분실신고를 하고 씁쓸히 집으로 돌아왔다. 방송에서 노인이 되면 어릴 적 기억은 해도 어제 점심을 뭘 먹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왜 이렇게 금방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할까! 의심이 의심을 낳고 걱정은 이리저리 널뛰듯 춤을 춘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평소에 가방을 들고 다니는 습관이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가끔 가방 없이 외출을 하기도 한다. 술자리에서 술을 한 순배하고 나서 일어서려다 ‘아 내 가방!’ 하면서 두리번거리며 습관적으로 가방을 찾는다. 물론 가방을 갖고 오지 않았으므로 가방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필자가 가방을 갖고 왔을 텐데 하는 의심이 들면 꼭 필자가 가방을 갖고 온 것 같다. 필자가 집에서 출발할 때 가방을 들고 왔는지, 놓고 왔는지 점점 믿지 못한다. 의심에 의심을 하다 보면 의심이 확대 재생산되어 기억이 점점 가물가물해진다. 들고 온 것 같기도 하고 집에 두고 온 것 같기도 하다.
우산을 전철에 두고 내리는 실수를 아직은 하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남들과 우르르 몰려나가면서 깜박 우산을 챙기지 못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남들이 내리면 무의식중에 따라 내리기도 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6층에 체육시설이 있다. 6층을 간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평소 습관대로 무의식적으로 1층 버튼을 누르고 태연히 1층까지 가서는 아차! 하고 다시 6층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사람의 뇌는 평소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기억을 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해오던 대로 행동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빨리 간다고 모두가 느낀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의 뇌가 평소 익숙하게 하던 일에는 별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매일 비슷한 일을 하다 보면 무슨 일을 한지도 모르게 시간만 보내기 때문에 세월이 빨리 간다고 느낀다는 거다.
학생 때나 젊었을 때는 중요한 요점만 메모해도 다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학교에 간다’는 말은 ‘학간’이라고만 적어도 훗날 다시 보면 그 의미를 금방 알아차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짧게 기록하면 다음날 무슨 뜻으로 그런 메모를 남겼는지 필자가 써놓고도 알지 못한다.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시키지 않으면 중요하지 사건은 기억하지 못한다.
필자를 의심하지 않고 확실히 믿기 위해서 아니 필자의 기억을 확실히 굳히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소지품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을 기르고 있다. ‘휴대폰, 열쇠, 지갑 등’을 머릿속으로 새기며 손으로 더듬어 있는지 확인한다. 그러면 확실히 기억이 오래간다. 우리의 뇌는 자주 본 것, 신기하지 않은 것, 감동받지 않은 것은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나이 들수록 감정이 메말라가고 흥분할 일도 줄어들므로 건망증 같은 일이 자주 발생한다. 나이는 어쩔 수 없나보다.
내가 나를 믿기 위해 스스로 한 번 더 챙기고 작은 일에도 감동을 받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100세 시대에 맞춰 두뇌 훈련을 계속한다. 몸이나 두뇌는 지금까지 살아보지 않은 100세 시대에 길들여지지 않았는데 인간의 수명만 보건환경의 개선과 의술의 발달로 연장된 부조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순천에서 두 시간 정도면 담양읍에 갈 수 있다. 담양에는 대나무 숲이 유명하다 해서 이번 여행 코스에 넣었다. 순천만을 돌아보느라 피곤했지만 일단 숙소를 옮겨야 해서 담양으로 향했다. 그런데 역시 방을 구하기 어려웠다. 큰 길에서 보이는 펜션, 모텔 등에도 빈방이 없었다. 동네 주민에게 민박집을 찾으니 전남도립대학교 앞에 있는 한 집을 소개하면서 방 두 개에 8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했다. 혼자 잘 거라 큰 방이 필요 없다고 하니 더 찾아보라고 했다. 비싸긴 했지만 날도 어둡고 다리도 피곤한데다 배까지 고파 더 찾아볼 기력이 없어 그냥 묵기로 했다. 아래층에 음식점을 겸하고 있어 식사까지 해결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저녁 6시 반인데 음식점 불이 꺼져 있었다. 담양은 그 시간이면 다들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랬다. 오면서 봤던 다른 음식점들도 불이 꺼져 있었다. 변두리라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담양 중심지라고 했다.
겨우 대통밥 정식을 파는 음식점에 들러 저녁식사를 했다. 반찬 종류는 많은데 서울의 한정식 정도였다. 밥값은 1만3천원을 받았다. 막걸리를 주문하니 다 떨어져서 없다고 했다. 연휴에는 음식점들도 좀 늦게까지 문을 열고 막걸리도 준비해놨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반응이 없었다. 서울처럼 경쟁이 심하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오늘까지만 장사하고 그만둘 음식점처럼 보였다. 막걸리 대신 약주를 주문했더니 1만원이나 받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관방제림으로 갔다. 대나무 정원인 죽녹원은 아침 9시에 문을 열기 때문에 그전 두어 시간을 다른 데서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담양읍으로 들어오는 다리를 다시 건너 초입부터 개울을 따라 걷는 길이었다. 조선시대에 홍수가 자주 나자 제방을 쌓고 거기에 나무를 심은 것이다. 관에서 주도해 방제를 위해 만든 숲이란 뜻이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들이 10m 가격으로 서 있었다.
한 그루 한 그루가 보호수 지정을 받을 만큼 컸다. 나무 밑에는 쉼터가 줄지어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그늘 아래에서 한여름을 보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500m쯤 가자 차도가 나오고 메타세쿼이아 길이 나왔다. 좌우로 이어진 그 길 옆으로는 메타 프로방스라는 유럽식 마을까지 조성되어 있어 마치 딴 나라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주변 상가 건물들도 모두 예뻤다. 명소로 충분히 사람들을 불러 모을 만했다. 서울 주변이었다면 관괭객들로 몸살을 앓을 정도로 예쁜 동네였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1972년에 조성된 약 8km에 달하는 가로수 길이다. 원래는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 길이었는데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길로 만들었다. 메타세쿼이아는 아직 수령이 40년 정도밖에 안 되어 서울의 아파트 주변에 심은 메타세쿼이아와 별다른 차이는 없다. 다만 양쪽으로 심어져 있어 그 사이로 걷는 특별한 맛이 다르다.
담양의 백미인 죽녹원에 갔을 때는 장마철처럼 비가 쏟아져 우산이 소용없을 만큼 젖었다. 그래도 울창한 대나무 숲은 볼 만했다. 2003년부터 대나무 숲을 가꾸다 보니 어느 새 이 지방의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죽녹원 때문인지 동네에는 대나무로 만든 음식, 가구, 기념품들이 많았다. 그러나 대나무로 만든 공예품들은 중국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죽녹원의 대나무는 그리 굵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굵은 대나무에는 칼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몰지각한 관광객들도 있다고 한다. 담양은 언젠가 가본 이탈리아의 트레비소(Treviso)를 연상케 하는 마을이다. 밀라노 근방의 소도시인 트레비소는 인구도 많지 않고 동네 한가운데 개울이 흐르고 가로수가 조성되어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운동회 날 지참해야 하는 물건은 물과 도시락 그리고 비 올 때를 대비해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 물론 손수건이나 휴지도 챙기지만 그 외에는 가져가는 것이 없다. 체육복을 입고 홍군, 백군 표시가 나도록 운동모를 쓰고 운동화를 신고 가면 된다. 운동회 날에는 동네 어른들과 학부모들의 참관이 가능하다. 운동회 구경 오는 어른들은 아무것도 가져 오면 안 된다. 물이라도 마셔야 한다면 가지고 온 것들을 모두 챙겨서 다시 가지고 가야 한다. 학교에 쓰레기를 남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운동회가 끝난 뒤 학교 운동장을 보니 처음처럼 깨끗했다.
어른들은 응원만 열심히 했다. 어렸을 때 자신이 홍군이었던 기억이 있어서 홍군을 응원하는 어른들도 있었고, 손자가 홍군이거나 이웃집 아이가 홍군 응원해 달래서 응원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모두들 어린아이로 돌아가 즐거워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학생들은 전부 교실로 들어가 도시락을 먹었고, 어른들은 이따 다시 만나자며 집으로 점심을 먹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점심을 먹은 후에도 다시 만나 한 마음으로 하루를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학생들에게 운동회는 분발도 하고 자신감도 얻는 시간이었다. 또 협력의 미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땀을 흘리며 열심히 뛰는데 물을 마시며 태평하게 관전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물이 먹고 싶어도 아이들 생각해서 참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뭔가 뼛속 깊이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특히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고 그 앞에서 어른들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엄마들이 존경스러워 보였다. 시간 맞춰서 상용 약을 먹어야 하는 엄마들은 물병을 예쁜 손수건으로 둘둘 말아서 다른 엄마들 등 뒤에 숨어 연신 ‘스미마셍(미안합니다)’을 연발하며 마셨다.
우리나라 엄마들하고는 너무나도 생각이 다르고 행동도 달랐다. 멋쩍어진 필자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운동장 하늘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거기엔 태극기도 있었다. 내가 놀라면서 황홀해하자 옆에 있던 엄마가 김군(필자 아이들) 둘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태극기를 그려서 붙였다는 귀띔을 해줬다. 원래 일본에서 만든 만국기 속엔 태극기가 없는데 필자 아들 둘이서 태극기를 그렸다는 것이다. 학교 아이들도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았단다. 엄마들이 칭찬을 할 때 필자의 눈은 또 한 장의 태극기를 찾아 헤맸다. 학교 전교생이 그린 만국기 속에 태극기 두 장도 함께 자랑스럽게 펄럭였다는 사실이 감동으로 밀려왔다. 우리나라 운동회 풍경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놀랐고 정성을 다해 아이들을 응원해주는 어른들의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오랜만에 ‘용산가족공원’에서 사진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은 작업의 특성상 약속시간에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눈 후 하나둘씩 흩어져 사진을 찍다가 정해진 시간에 다시 만나는 모임이다. 피사체를 찾아다니던 중 가족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벤치에 혼자 쓸쓸히 앉아 있는 노인을 보았다. 오후 네댓 시쯤 되는 시간이었다. 계절과 시간까지 어우러져 그 뒷모습에서 외로움이 잔뜩 묻어났다. 부자나 빈자나 나이가 들면 똑같이 맞이하는 모습이다. 젊을 때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차츰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 소외감과 함께 외로움도 점점 깊어진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비 안 올 때 미리 우산을 준비하듯 인생의 가을 초입에 겨울 준비를 해놓는다면 조금 덜 힘들지 않을까.
사랑 없인 못 살아요
이 글을 쓰면서 위의 사진에 어울리는, 조영남이 부른 ‘사랑없인 못살아요’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밤 깊으면 너무 조용해/ 책 덮으면 너무 쓸쓸해/ 불을 끄면 너무 외로워/ 누가 내 곁에 있으면 좋겠네/ 이 세상 사랑 없이/ 어이 살 수 있나요/ 다른 사람 몰라도/ 사랑 없인 난 못 살아요/ 한낮에도 너무 허전해/ 사람 틈에 너무 막막해/ 오가는 말 너무 덧없어/ 누가 내 곁에 있으면 좋겠네. 이런 가사가 어느새 마음에 다가오는 것을 보니 필자도 이 가을엔 어쩔 수 없이 쓸쓸해지려나 보다.
외로움은 삶을 성찰하게 한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인간관계도 맺으면서 살아가지만 관계에는 기쁨도 있지만, 책임감도 따른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행복이 있다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려움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늘 행복하기만 바라며 그 외의 어려움은 외면하려고 한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신이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성숙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치매가 아니어도 점점 기억력이 깜박깜박할 때가 많아 실수 하지 말아야한다.
가족이 여러 명 살 경우 서로 서로 챙기지만 필자의 경우에도 두 아이가 모두
결혼하여 출가한 상태이니 모든 생활에서 신혼 때와 마찬가지로 단출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둘만 혹은 혼자만 사시는 어르신들은 마음은 청년이라고 해도
실제 생활에서는 난감한 부분들이 많으니 모든 생활 속에 유비무환정신을
적용해야 할 일이 많다. 조심해야할 부분, 기억해야할 부분이 많다.
필자가 처음 아파트 분양받아 이사했을 때 불이 났을 때처럼 온 아파트에
경계의 사이렌이 울리는 경우가 있었다.
연세 드신 분이 외출하시면서 가스불위에 뭔가를 올려놓고 나가셔서
자욱한 연기와 냄새로 주변이웃에서 119에 신고하고 사이렌을 관리실에서
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소방관이 문을 따고 들어가서
가스차단하고 난감한 불나기 직전의 상황 종료시킬 때 할머니께서
어딘가에서 아무생각없이 귀가하다 당신의 댁에서 문제가 생긴 것을
알고 고개도 못들고 댁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적이 있다.
바라보던 여러 명의 이웃들의 혀를 차는 장면 지금도 기억난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매월 해야 할 일/매일 해야할 일을 적어서 부착해 눈에 띄는 곳에 해놓는다.
매월별 작성할 일
생일이나 미리 연락받은 결혼식에 깜빡 잊고 못가거나
꼭 해야 할 일을 잊지 않도록 적어놓는다.
매달 나가야할 비용은 자동으로 이체하여 가산금을 물지 않도록 한다.
매일 해야 할일
가전제품 특히 타이머가 부착 안된 가전제품이나 가스사용제품을
점검한다.
외출할 경우 공교롭게 배터리가 방전되기 전에 꼭 충전을 충분히 해놓는다.
외출후 귀가할 때는 모든 주머니내용물을 일정한 곳에 꺼내놓아 꼭 챙긴다.
일기예보 확인하여 날씨에 맞추어 우산 등을 챙기도록 한다.
당뇨환자의 경우 외출 시는 물론 가정에서도 주스나 캔디등을 준비해둔다.
대중교통이동시 차량의 손잡이 잡고 하차하고 계단도 언제나 가장자리 손잡이를
잡을 수 있는 위치에서 오르내려 자신의 몸을 스스로 보호한다.
(계단몇개 건너뛰어 무릎이나 발목 다치면 아주 기동력 떨어진다.)
기타 해야 할이나 기억할일
도장 잘 잃어버리는 사람의 경우 인감 아무나 못 떼도록
본인외 발급중지를 해놔야한다.
주방 옆에는 부착형 소화기를 부착해놓는다.
(만일에 사태를 대비하여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시니어 분들 단출하게
자동문의 경우 배터리를 준비해둔다.
휴대전화를 긴급통화버튼을 급히 연락해도 될 곳으로 우선적으로 저장해둔다.
와인따개등 어쩌다 사용하지만 꼭 필요한 제품의 경우 따로 서랍 속에 챙긴다.
집안 인테리어를 안전한 스타일로 하도록 한다.
(젊은 취향으로 아일랜드식탁의 의자를 들여놓았다가 허리를 다친 분을 봤다.)
밤은 물론 낮에도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날 때 조심해서 이동한다.
(갑자기 서두르다가 다친 분들 자녀들도 게속 입원하니 짜증내는 것도 목격했다.)
긴 추석연휴가 끝나고, 힘든 일을 치러낸 주부들이 각종 명절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어깨 통증.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 발표에 따르면 어깨병변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수는 210만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오십견으로 진료받은 환자가 35%(74만명)로 가장 많았다. 특히 오십견 환자 중에는 40대 이상이 전체 진료 환자의 90% 를 차지하는 만큼 중년 이후 어깨통증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대개 50대에 발병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오십견’. 어깨의 통증과 더불어 어깨 관절이 굳어지면서 운동의 제한을 받는 상태를 말한다. 어깨에 뻣뻣함을 느끼고, 팔이 잘 올라가지 않으며 어깨를 올리려 할 때 통증이 심하다. 특별한 치료가 없어도 2~3년 이내에 저절로 치유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자연회복이 나타나지 않거나 훨씬 더 긴 시간에 걸쳐 치유되기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전문의들은 강조한다.
오십견은 증상이 심해지면 팔 움직임의 제한이 많아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고, 다른 어깨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많다. 통증을 방치하고 충분한 기간이 지난 이후에도 통증이 지속된다면 운동제한으로 남을 수 있어 빠른 대처와 조기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초기에는 진통소염제나 물리치료, 운동치료, 주사치료로 증상이 완화될 수 있다. 이러한 치료로도 통증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관절내시경 치료를 진행한다. 오십견 증상이 심하고 회전근개파열이나 어깨충돌증후군 등 다른 질환을 동반했을 경우는 조기에 치료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년층이 어깨질환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평소에 근육과 힘줄을 튼튼하고 유연하게 유지할 수 있는 스트레칭이 좋다. 일상생활에서 수건이나 막대기, 우산 등을 활용해 간편하게 어깨스트레칭이 가능하다.
서울바른세상병원 김형식 원장(정형외과 전문의)은 “명절이 지나고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내원하는 주부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중년 여성의 경우 어깨통증이 있다면 우선 오십견을 의심하지만 회전근개질환이나 어깨충돌증후군 등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증상만으로 자가진단을 하지 말고 정확하게 전문의의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별 거 아닌 행사도 손바닥만 한 연락장이 꼭 학교로부터 왔다. 그러니 소풍이나 수학여행은 얼마나 큰 행사인가. 그런데 그 종이를 받아 들고 한참을 생각했던 게 있다. 준비물에 간식비가 3학년 아이인 작은 애는 100엔이었고 큰 애는 150엔이었다. 그 돈으로 무슨 간식을 사라는 건지 이해가 절대 안 되었지만 고민은 혼자의 것으로 생각하며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속으로만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종이 맨 아래에 조금 큰 글씨로 소풍 가기 전 날 이 모든 것을 준비해서 등교할 것이라고 써져 있었다. 괄호 안에 ‘도시락과 간식과 물은 안 가져 와도 됨’이라고도 정확하게 써져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두 아이의 준비물을 차근차근 각자의 가방에 준비해서 넣었다.
준비물은 우비나 우산 중 한 가지, 쓰레기봉투 한 장, 갈아입을 수 있는 옷, 도시락 먹을 때 깔고 앉을 깔개 준비, 휴지, 모자, 본인이 먹는 약이나 특별한 것 챙겨올 것, 손수건, 간식, 도시락, 물, 메모장과 연필이었다.
전날 학교에 가자마자 가지고 간 것들을 모두 책상 위에 꺼내 놓고 선생님이 ‘우산이나 우비~’ 하면 반원 전체가 그 물건을 들어 올리면서 ‘우산이나 우비!’ 하고 가방에 넣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빠진 물건이 있으면 메모장에 내일 반드시 준비할 물건으로 적게 했단다. 제일 처음에 들어 올린 물건이 가방 맨 밑에 자리 잡았단다. 가장 먼저 사용하는 물건을 맨 위에 넣도록 순서도 그렇게 정해져 있다는 말에 나는 놀라워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도시락과 물과 메모장이 가장 가방 맨 위에 싸지도록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습관을 몸에 배도록 교육 시키는 그들에게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왜 준비성이 철저한지 알 거 같았다. 가방 밖에 보조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물과 메모장은 그리고 간식은 그 속에 넣도록 허용한다고 했단다. 절대 돈은 가져 오지 말도록 강조했다고 했다.
그런데 간식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두 녀석이 학교 갔다가 오더니 간식 비를 달라고 했다. 몇 분 뒤에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 집으로 몰려왔다. 신이 난 아이들이 벙글거리고 있었다. 자기들이 간식을 사러 간단다. 얼마쯤 있다가 아이들이 각자 자기가 먹고 싶은 것들을 골라서 산 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나타났다. 서로 견줘가면서 완전 신이 나 있었다. 소풍 가는 날을 즐겁고 흥이 나도록 본인 각자가 가장 먹고 싶은 것들을 사러가는 기회를 주는 부모들과 학교방침이 한 마음이 되어 있음에 나는 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풍 가는 날을 위해 울긋불긋한 색소는 넣었지만 건강상으로 괜찮은 불량식품이 아닌 먹거리를 만들어서 파는 가게가 따로 있단다. 거기 가서 자기 취향에 맞는 즉 자기 입맛에 맞는 것들을 100~150엔이면 충분이 골라서 갖가지를 살 수가 있단다.
늘 엄마가 사 주던 것이 아닌 자유롭게 맘대로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모양이나 색에 현혹되지 않고 잘 고르는 법이나 경험상으로 먹을 것을 고르는 자기만의 노하우 같은 것들을 직접 체험 하면서 본인이 배운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착상인가!? 엄마가 사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걸로 우선 신나지고 엄마도 먹어보지 못한 것을 맛까지는 모르고 산다는 걸 저절로 알아져서 엄마가 사 오는 것에 대한 불만도 해소시킨다는 일거양득의 얘기들을 엄마들이 해줬다. 정말 배울 게 너무 많은 거 같아지면서 은근 약도 올랐다.
봄 소풍을 간다는 연락지를 두 애가 가지고 왔다. 또 다시 보고 또 되풀이해 읽어보면서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보다 잘못하는 걸 꼬집어 내고 싶은데 어째서 한 번도 그런 일이 내 귀에 내 눈에 안 들리고, 안 띄는지 약이 오를 정도였다. 얄밉게 학교에서 보내주는 손바닥만 한 연락지도 혀를 차게 하니... 3학년 애의 연락지에는 간식비가 100엔, 5학년 큰애는 150엔으로 되적혀 있었다. 작은 우산이나 우비 준비, 식사 시 깔고 앉을 깔개, 손수건 1장, 휴지, 도시락, 물 그리고 본인이 꼭 필요한 약이나 소지품, 쓰레기 담아 올 비닐봉투 한 장, 메모장과 필기도구, 모자, 간편 복장 이상. 이렇게 적혀 있는 종이 아래 ‘소풍 전날 모든 걸 갖춰서 등교할 것!!도시락과 물은 빼고!’ 라고 조금 큰 글씨고 적혀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얄미운 족속들이구나를 되풀이 생각했다. 소풍 가기 전전(이틀 전)날 귀가해서 조금 있으니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 집 근처로 모여 들었다. ‘엄마, 소풍 간식 비 주세요~’ 하며 챙겨들고 간식을 사러 간다면서 씽~ 모든 아이들의 자전거들이 동시에 출발하나 했더니 쏜살같이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100엔이나 150엔으로 살 게 없는데 무슨 간식을 사오려나? 아주 궁금해졌다.
아이들이 사온 갖가지 물건들을 보면서 눈이 휘둥글~ 약간은 어이없었지만 무척 재미났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불량식품 같은 것들로 구성된 것들을 설명하며 보여주는데 나도 아이들과 한 마음이 되어 완전 신나졌다. 엄마가 선택한 것들이 전연 아닌 본인들이 먹고 싶은 것들로만 구성된 간식이었고 그 가게에서는 소풍 간식만 아이들 취향에 맞게 만들어 아주 저렴한 가격에 불량이 아닌 좋은 아동용 먹거리를 만들어서 파는 곳이란다. 보통 때에는 엄마가 만들어 주고 사다 주는 것들을 먹지만 이날만큼은 아이들의 즐거움과 행복감을 몇 천배로 만들어 준다는 어른들의 마음을 담아서 판다는 것이었다. 아주 미미한 일이지만 멋진 그리고 아이들을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어른들의 뜻을 실천해가며 알게 해주는 일인가! 나는 정말 놀라웠다. 자꾸 눈물이 나오려 했다. 아이들은 자기만이 먹고 싶었던 것들을 자기 손과 눈으로 골라온 거다. 남겨 오지도 않을 것이며 아주 고마운 마음으로 아껴가며 먹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0엔과 150엔에 맞게 계산해가며 고르고 머릴 써서 각자 샀을 것을 생각하니 과연 경제대국의 길로 가는 이이들의 교육정책이 보였다. 우리 애들도 그런 아이들과 어깨를 겨루고 배워간다는 것이 고마워졌다. 전날 학교에 소풍에 가지고 갈 준비물을 다 챙겨 가지고 가방을 메고 갔다. 집에 온 아이들의 얘기를 듣고 또 왕 놀래버렸다. 등교 하자마자 책상 위에 모든 걸 꺼내 놓고 선생님이 물건 이름을 말하면 전부 똑같이 큰 소리로 말하면서 그 물건을 들어서 가방에 넣는데 그것들이 꺼내는 순서가 된다는 것이었다. 가장 가방 아래에는 우산, 깔개가 그 위... 메모장과 도시락과 물과 간식이 맨 위에 그 순서대로... 두 애가 똑같이 그렇게 모두가 확인하고 빠진 것들이 있는 학생은 메모장에 적어 갔다는 것이었다. 와~아~ 틀림없는 아이들의 준비성 있는 교육. 그러니 아이들이 왔다 갔어도 그 자리가 얼마나 깨끗하겠는가! 자기 쓰레기는 전부 가져간 봉투에 넣어서 집으로~깔끔. 산교육을 깨우치고 배우는 일본 아이들이었다.
눈을 떠보니 여린 햇살이 수줍게 인사를 한다. 어느새 베란다 너머로 선선한 바람이 고통스럽던 여름의 이별을 고한다. 오고 가는 계절, 또 보내려니 아쉬움도 곁든다.
또다시 찾아온 새 달의 첫날 아침이다. 엊그제까지도 그렇게 숨통을 조이더니 잘 참아온 덕에 겨우 살만하다. 참기 힘들었던 시간들만큼이나 새 아침에 햇살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창문을 활짝 열어 싱그러운 바람을 한 아름 안아보았다.
사람은 어쩌면 이리도 간사한 것 일가. 창밖으로 묵은 숨을 길게 내뿜으며 신선한 공기 속에 넋두리를 해본다. 견뎌낸 고통의 대가로 찾아온 축복 같은 계절의 ‘화려한 아침’이다. 향기 진한 모닝커피가 설익은 아침미소로 유혹의 손짓을 한다.
날씨가 추우면 소름이 끼치도록 춥다고, 더울 때는 끔찍하게도 더워서 안달을 했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참지 못하고 지냈던 지난 시간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다 살기 마련이라고 늘 마음먹어왔는데 여지없이 또 참지 못 했다.
지난해 여름은 그런대로 견딜 만 했다. 그러나 올여름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도저히 못 참고 곧 죽을 것만 같아 정신을 못 차렸는데 결국은 또 지나간다. 지나고 보니 어쩌면 어딘가 모를 아쉬움도 남는 것 같다. 아마도 곧 다가올 혹독한 겨울이 남아있기 때문인가 보다.
커피 한 잔을 마주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람이 성격에 따라 더 못 참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도 살아가는 방법이 아주 다양하다. 어떤 이는 에어컨이 있어도 선풍기로만 살려고 하고, 아는 지인은 아예 에어컨도 없다. 참는 법도 살아가는 지혜라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훗날의 세금 폭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은 살고 보자며 에어컨 바람을 끼고 살기도 한다. 어느 누가 참된 삶의 방법인지는 그 향방을 가리기가 힘들다. 그들 삶의 방향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는 방식이 다를 뿐이고 모두가 그런대로 다 잘 살아가고 있다.
날씨도 참으로 제멋대로다. 바람이 불고 싶으면 이리저리 불어 마구 흔들어대고, 하늘에서 태양을 내리쬐고 싶으면 힘없는 땅에 맘대로 퍼부어, 찌는 더위로 하소연을 한다. 사람들도 살아가면서 날씨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단지 변덕스러운 그것들에 맞추어야만 살아갈 수가 있다. 추우면 입어야 하고 더우면 벗어야 하며,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하고 눈이 오면 하얀 눈을 밟아대면서도 쓸어서 깨끗이 치워야 한다. 그것이 조화롭게 대비하는 자연의 순응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도 날씨처럼, 그저 상대에 대한 적응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이런저런 사람 생긴 대로, 날씨와 같이 맞춰가며 그럭저럭 살다 보면, 또 한세상 모가 남이 없이 잘 사는 것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날씨처럼 맘대로 변화하는 온갖 역경에도 잘 맞추어 묵묵히 살아간다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진솔한 마음을 가져본다. 생각과 현실은 결코 쉽지 않은 파트너이지만, 생각의 차이가 현실을 또 이끌어갈 것을 믿으며, 모든 것들은 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 이리라.
싱싱한 햇살이 반기는 이 ‘화려한 아침’에 모닝커피의 미소가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