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맨해튼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웬만해서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 어렵다는 말을 흔히 한다. 고층 빌딩이 빼곡한 맨해튼은 아주 삭막해 보이지만 어디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 뉴요커들은 브로드웨이 뮤지컬극장, 카네기홀,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이나 현대미술관(MoMA)과 같은 세계적인 명소보다 외지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작은 문화공간에 오히려 더 애착을 가지곤 한다. 포장마차의 음식과 광장에서 열리는 즉석 이벤트를 즐기고 창고 같은 갤러리에서 개최되는 무명작가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나오고…’ 길거리 음반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다. 중장년이라면 금세 알지만 10~30대 젊은 층은 거의 모르는 노래다. 1970년대 활동했던 정미조(67)가 부른 ‘개여울’이다. 그 정미조가 37년 만에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정미조뿐만 아니다. 정미조처럼 197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다 활동을 중단했던 가수들이 최근 대중음악계에 속속 복귀하고 있다. 지난 3월 14일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 로비에서 꽃다발을 든 50~70대 수십 명
나는 안경 대신에 콘택트렌즈를 착용하여 눈이 나쁘단 사실을 한동안 숨겨왔다. 우리 시절엔 여자가 안경을 쓰는 걸 터부시했었으니까. 예를 들어 택시기사도 안경 쓴 여자를 첫손님으로 받으면 온종일 재수가 없단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믿기나 할까? 맞선 보는 자리에 안경을 쓴 색싯감은 일순위로 딱지를 맞았다는 일화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근시의 원인은 아직도 잘 모른다는데, 대개 어두운 데서 책을 읽는다든가 눈에다 너무 가깝게 대고 본다든가 텔레비전 앞에 바투 앉아 시청을 한다든가 등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하지만 텔레비전
아마 대부분의 시니어들이 가장 거부감을 느끼는 단어 중 하나는 ‘틀니’일 것이다. 틀니가 노화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틀니는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사람과의 바둑대결에서 승리하는 요즘 세상에 모형같은 이빨을 넣었다 뺐다 한다니. 그러나 아직도 틀니는 그 존재 이유를 꾸준히 증명하고 있고, 치과에서 고유한 치료방법으로 사랑받고 있다. 왜 그런지 이든치과의원 윤득영 원장을 통해 알아보자.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틀니를
지난 4월 초 열린 ‘2016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는 ‘에어비앤비’ 샘플룸이 방문객들의 시선을 모았다. 에어비앤비는 집 안의 남은 공간을 내어주는 숙박 공유 서비스로 최근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김향금(金香琴·55)씨는 에어비앤비 호스트(집주인)를 대표해 부스를 찾아온 방문객을 맞이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로 살아가는 이야기와 정보를 나누면서 알찬 시간을 보냈다. “에어비앤비 홍보 영상 속에 나오는 집이 우리 집이에요. 부스 앞의 사진은 저고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런데도 참여하고 재밌어요
프랑스의 법적 와인등급 중에서 가장 상위를 차지하는 것은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ée)이다. 그 아래로 뱅 드 페이와 테이블 와인이 존재한다. 물론 AOC 바로 다음에 우등한정등급(AOVDQS 이전에는 VDQS라고 했다)이 존재하지만 이는 AOC로 올라가기 위한 일종의 대기실인 데다 그 수도 얼마 되지 않아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와인 생산국가도 명칭과 구조는 각각 조금씩 다르지만 거의가 프랑스 제도를 모방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AOC에 해당하는 이탈리아
신대륙 미국도 더 이상 신세계가 아니다. 3억2000만 명의 인구 중 50세 이상이 1억900만 명으로 3분의 1을 넘어섰다. 인생 후반기를 맞은 미국의 신중년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돈 걱정 없이 사는 것이 소망이다.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회원용 월간지 3월호에 신중년들이 지켜야 할 자산관리의 7가지 원칙을 소개했다. 1. 돌발 상황에 대비하라 예기치 않은 일이 항상 생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산을 관리해야 한다. 가용 재원의 10% 정도는 언제라도 활용이 가능한 현금 자산으로 보유
아는 만큼 보인다는 옛 말이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을 우연히 최근 다시 읽어 보니,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다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예컨대, 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江湖애 병이 깁퍼, 竹林의 누엇더니,’ ‘강호에 병이 깊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서(唐書) 에 나오는 ‘천석고황(泉石膏肓)’이란 성어를 우리말로 표현한 것이다. 당 고종 때의 은사 전유암(田游巖)은 기산(箕山)의 허유(許由)가 기거하
마침내 소줏고리의 주둥이 끝에 작은 이슬이 맺힌다. 마치 옥구슬 같은 이슬이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정재식(鄭宰植·53) 예도(藝道) 대표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진다. 그러기를 잠시, 이슬이 모여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부드럽고 무거운 향이 주위를 감싼다. 향기의 끝에서 달콤함이 느껴지자 안심했다는 듯 어머니 유민자(柳敏子·73) 명인이 허리를 펴고 일어난다. 유씨(柳氏)가문의 가양주 옥로주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
최근 오랜만에 선유도로 출사(出寫) 갔다가 스냅 촬영을 나온 아름다운 여인들을 만났다. 결혼식을 며칠 앞둔 예비신부와 그의 친구들이다. 예비신랑은 보이지 않았고 여인들끼리 이곳저곳 옮겨가며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어댄다. 알고 보니 단짝들끼리 결혼축하 이벤트로 스냅사진을 찍고 있다고 했다. 표정과 드레스 모두 너무 예쁜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아쉬웠다.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 멀리서라도 찍어볼까 생각했지만, 초상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함께 출사 여행 떠난 사람 중 하나가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촬영을 허락해 준
동년기자 박미령 나이가 드니 추억이 재산이라 지갑에 남은 돈 헤아리듯 옛 생각만 뒤적인다. 특히 6월이 오면 찬란한 하늘 너머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하늘나라에 먼저 간 친구다. 그 젊은 나이에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져 한 달 내내 애태우다 겨우 찾은 그녀는 얼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얼굴은 내 마음속에만 있었다. 꽤 마음이 통하는 벗이었다. 급작스레 가버리니 가족과 주위 사람들은 혼이 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그녀와
필자에게 외할머니에 대한 아련한 기억은 안방 한편 하얀 창호지를 바른 창살 한 부분에 한 뼘 정도의 작은 유리 조각을 덧대어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 앞에 앉아 계셨던 모습이다. 할머니의 쇠약한 손에는 항상 갈색의 묵주가 들려 있었고 시선은 우물이 있는 마당과 함께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을 향해 있었다. 한옥이라 대문이 열릴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라도 나면 종종 낮잠을 주무시다가도 벌떡 일어나 손바닥만 한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시곤 했다. 대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 마음에 ‘왜 우리 할머니는 나와 놀아주지도 않고 저렇게
지난 5월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방로 372 여의도복지관에 어린이부터 중장년층, 어르신까지 모든 세대가 함께할 수 있는 통합 복지시설이 완공돼 개관했다. 이 시설엔 중장년층의 제2인생을 지원하는 ‘영등포50플러스센터’(3, 4층), 어르신들의 활기차고 건강한 삶을 지원하는 ‘구립여의도어르신복지센터’(2층), 꿈을 키우며 사랑을 나누는 ‘둥근마음어린이집’이 입주해 있다. 특히, 다른 복지관과 차별화를 둔 시설은 ‘영등포50플러스센터 다. 이 센터는 인생 이모작을 창조하고, 지원하는 지역 기반 거점으로서의 ‘미션’을 가지며, 장년
나에게는 슬픈 가족사가 있다. 아버지는 뭇매를 맞았다. 아버지는 오봉산 꼭대기에 숨어 있었으며, 거기는 증조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곳이다.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어서 의지가 된다고 생각했을까. 아버지는 외아들이었고, 북으로 도망치는 인민군에게 발각돼 아버지는 혼쭐이 났다. 우리 집은 인민군의 숙소가 됐고 주인인 아버지는 눈치를 보느라 산 속에서 지냈다. 그 와중에 우리 큰 고모는 겁탈하려는 미군을 피해 달아나다, 그 충격으로 정신병자가 됐다. 논까지 부쳐 시집을 보냈지만 고모의 시아버지 장례를 마치고는 하얀 소복을 입
◇ 입가에 미소 짓게 하는 어린 시절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고, 그 아래 작은 도랑이 흐르는 포근한 동네…. 막내 오빠와 그 친구들이랑 논밭 사이를 선머슴처럼 마구 뛰놀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 시절…. 그랬다. 하늘이 유난히도 파래 눈부시던, 아름다운 경남 진주시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극히 온화하시고 자상하신 아버지와 적극적이고 생활력이 강하신 어머니께서는 육 남매를 두셨는데, 필자는 그중 다섯 오빠를 둔 막내이자 고명딸로 태어났다. 공무원이신 아버지 덕분으로 필자 가족은 관사에서 생활했다. 관사에는 그리 넓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