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두리 어느 우체국 집배원의 얘기다. 달동네로 우편물을 배달하려면 오토바이를 밀고 올라가야 하는 좁고 가파른 골목이 여러 군데 있었다. 그날도 어느 허름한 집 앞을 지나다 마침 대문 앞에 떨어진 수도세 고지서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수도세가 좀 이상했다. 그 집에는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셨는데 보통 때보다 수도세가 거의 5배가 청구된 것이다. 수도관이 새거나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배원은 초인종을 누르고 할머니가 나오시자 고지서를 내밀며 수도관을 고쳐야겠다고 말했다. “그럴 일이 있어요. 거동이 불편한 이웃 할머
올 한해 활동하고 있는 정책기자단에서 힐 다잉을 경험했다. 죽음을 미리 체험해보는 일이라 해서 솔직히 가기 싫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직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싫고 먼 훗날의 이야기라며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친구가 얼마 전 다니는 절에서 임종체험을 했다고 한다. 필자는 그런 걸 왜 했냐고 질색했는데 뜻밖에 그 친구는 그 시간이 매우 평온하고 좋았다고 한다. 스님이 인도하는 대로 관에 누워 명상까지 했다고 해서 필자는 그런 건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넌 죽음이 무섭냐?”고 내게 물었다. 친구는
영화 를 보러 간 날은 가랑비가 내렸다. 철 늦은 낙엽이 가랑비에 젖어 을씨년스럽게 길 위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보러 가는 발걸음이 그리 흥겹지는 않았다. 영화관에 도착할 무렵 영화 제목이 ‘그리움’인지 ‘잃어버림’인지 궁금해졌다. 싱글맘 지선(엄지원)은 딸 다은을 몹시 예뻐하는 보모 한매(공효진)가 있어 참 다행이다. 한매는 코를 핥아줄 정도로 다은을 예뻐한다. 지선은 그런 그녀가 고마워 월급과 함께 선물도 전한다. 이렇게 가족 같던 한매가 어느 날 다은을 데리고 자취를 감춘다
두 달 가까운 시민들의 평화로운 촛불행진은 위대했다. ‘국정농단’은 제1막을 내리고 있다. “제왕도 싫지만 함량미달 허깨비는 더 큰 문제”라는 점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제 국정공백을 줄이기 위하여 새로운 집을 다시 세워야 할 때가 되었다. 제왕적 권력 집중방지 국정농단은 국가권력의 1인 집중에서 발생하였다.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은 무너지고 국가는 난파선이 되었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한 사람에게 국가의 운영을 맡기는 것은 너무 위험성이 크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실질적 권력분산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어느새 달력이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분위기에 젖어 세월의 흐름을 잊고 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마치 탐스럽던 잎사귀들을 모진 바람에 이리저리 뜯기고 알몸으로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겨울나무처럼 보인다. 새 달력이 들어와 헌 달력 밑에 두툼하게 걸어 봐도 마음이 썩 풍요롭지 않다. 새 밀레니엄을 외친 게 엊그제인데 벌써 16년이 흘러 17년째를 맞이한다. 당시 4학년이던 내가 어느덧 6학년으로 진급했지만 감개무량하기는커녕 가슴 한구석이 시리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처럼 이
연저육찜과 홍시죽순채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잘 조려진 삼겹살이 뺑 돌려진 연저육찜은 사진만 보아도 군침이 돌 만했다. 요즘 요리 배우느냐는 질문이 올라왔다. 맛있겠다는 댓글은 물론 거기 어디냐고 묻는 전화도 받았다. 필자가 다녀온 곳은 국립고궁박물관 별관에 있는 수라간이다. 이곳 수라간은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를 지어 올리던 경복궁 내 수라간과는 별개로, 궁중음식을 가르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해 놓은 곳이다. 앞치마를 입고 앞자리에 앉아 임금님이 받던 수라상에 대한 간단한 강의를 들었다. 떡 벌어지게 차려진 12첩
축제였다. 규모는 작았지만 분명 축제다. 지난 12월 3일 애월체육관에서 제주원광재가노인복지센터가 주관하고 제주시 애월읍이 후원하는 실버 학예회가 있었다. 이 행사는 몇 회째라는 말이 없다. 프로그램에도 없다. 필자가 참석한 것은 세 번째다. 첫 행사 때는 주최 측에서도 준비가 부족했다. 어느 날 낯선 인물들이 마을 보건소에서 주관하는 건강교실인 기체조 연습 중에 방문했다. 지도자와 노인회장이 의논을 했고 곧 회원들에게 참가 의사를 물었다. 참가에 적극적인 회원들이 있었다. 행사 참가는 연습의 기회이고 실력도 좋아진다면서 참가하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다. 옛날 나라님이었던 임금님들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았을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신하가 “마마 통촉하시옵소서. 아니 되옵니다. 마마~”라는 말을 자주 한다. 임금이라 해도 하고 싶은 행동과 말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안 해도 될 말은 목구멍까지 올라와도 꾹 참는 게 나은 것을 많이 본다. 저 사람이 이 상황에 그 말만 안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정말 많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아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동생네가 김치를 갖다 준다.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김치를 사 먹을 일은 없다. 김치는 있어도 별로 먹을 일이 없고, 없으면 아쉬운 것이 김치이다. 그대로도 먹지만 가끔 해먹는 김치찌개 용도로 유용하다. 가름에 볶다가 물만 부으면 되기 때문에 조리가 간단하다. 해마다 선물로 들어 와 쌓여 있는 참치 통조림도 그때 같이 넣어 소진 시킨다. 동생네가 김치를 갖다 준다고 연락이 오면 필자도 부지런히 그 대신 줄 것을 찾아본다. 추석 때 선물로 받은 20kg짜리 쌀을 이 기회에 주기로 했다. 필자 혼자 그만한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연말연시에 할 일도 많고 바빠지겠지만, 크리스마스 생각을 하면 어린 시절의 추억에 가슴이 촉촉해지고 그리운 마음이 차오른다. 필자는 딸만 셋인 집의 맏딸이다. 아버지는 딸 셋을 큰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그런데 집안의 장남으로 딸만 두었다는 게 좀 문제가 되기도 했나보다. 당시만 해도 남아 선호사상이 만연했을 때라 엄마는 아들을 낳지 못한 설움을 톡톡히 받으셨다고 한다. 작은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아버지에게 양자로 주겠다는 제의까지 할 정도로 엄마에게 아들 없는 압박이 심했는데 아버지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시고
사람은 언제 행복함을 느낄까? 행복은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필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처음 경험한 것은 결혼하고 약 8년이 지났을 무렵이다. 아내가 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다음 해인 1989년 필자가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영세를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영세는 절대자인 신으로부터 과거의 모든 죄에 대해 사함을 받는 것이다. 필자는 이날 큰 은총을 받았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죄를 짓고 허물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고 하니 어찌 행복하지 않았겠는가. 더욱이 아내와 함께 종교를 갖게 되어 같은 신앙생
대학 2학년 때인 12월 24일 오후 5시 무렵, 소공동 미도파 백화점 옆에 있는 맥스웰인가 그 비슷한 이름의 커피숍에서 남녀 학생 10명 정도가 자리를 함께했다. 같은 과 남자친구 대여섯 명이 오래전부터 각자의 재주와 인맥을 총동원해 다른 대학 여학생들과의 미팅을 주선해 크리스마스이브를 함께 지내기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필자도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 알아봤으나 단순한 미팅이 아니라 밤새 함께 지내는 조건이다 보니 아무리 점잖게 행동하겠다고 다짐을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먼 친척 여동생의 협조 하에 필요한 비용은 남학생이 전부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과 같이 행복한척하면 행복해진다. 행복이란 다분히 주관적 이여서 사람마다 행복의 느낌은 다 다르다. ‘날씬한 몸매에 독신에다 돈 많은 것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높은 자부심과 사교적 생활, 그리고 자제력이 내적 행복의 티켓이다.’ 이 말은 ‘어떤 사람이 행복하냐?’의 물음에 대해 심리학자들이 내린 결론 이라고 한다. 호프 대학의 심리학자 마이어스씨는 앞으로 행복해질 것으로 점칠 수 있는 네 가지 특성을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특성들은 자부심, 자제력, 낙천주의, 그리고 사교적 성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 엄마 배속에서 탯줄을 달고 나온다. 탯줄은 아기의 생명줄이자 엄마와 이어지는 인연 줄이다. 부모와의 인연 줄에 따라 인생의 운명이 달라진다. 귀하디귀한 왕족으로 태어나면 호의호식하지만 무지렁이 줄을 잡고 태어나면 살아가기에 고달프다. 돈은 살아가는 밥줄인데 재벌그룹의 자식들은 몇 천억의 유산을 받지만 서민의 자식은 적자라는 붉은 줄 위에서 춤을 춰야 산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핀다거나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돈줄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외국에 원정출산도 미리 좋은 줄을 잡아주려는 힘 있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정신없이 살았다. 격동의 시기 경쟁사회에서 주어진 틀에 맞춰 살다 보니 자기 인생을 살지 못했다. 정답과 정해진 틀이 있다 생각하며 살았다. 주위 시선을 의식하고 세속적 성공에 집착해 살다 보니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기로 했다.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우선으로 살핀다. 너무 편하고 자유롭다. ◇하고 싶은 일 바로 실행하기 남을 우선으로 배려하다 보니 자신의 일은 미룰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