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2

시골에 내려와 돌아앉은 아내를 보듬는 일에 대해

입력 2026-03-22 06:00

[박원식이 만난 귀촌 생활] 경북 김천시 감문면 산골에 사는 박채선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경북 김천시의 고요한 산기슭에 ‘에너자이저’라는 별명을 가진 이가 산다. 귀농인 박채선(55, ‘김천숲마루원농장’ 대표)이다. 그는 타고난 박력을 풀가동해 내내 농사를 힘차게 밀어붙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농장 일 하나를 트랙으로 삼아 질주했다. 도중에 난데없는 과속방지턱을 만나 비틀거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영리한 고양이가 상황을 골똘히 주시해 마침내 쥐를 잡듯이 맥락을 고찰해 문제를 해결했다. “어! 괜히 농사에 뛰어든 거 아냐?” 때로 회의에 사로잡히기도 했다지. 그러나 거센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여하튼 앞만 보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박채선의 대찬 귀농 생활은 이제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초기에 신통치 않았던 소득은 어언 크게 늘었다. 2025년엔 순소득 약 1억 5000만 원을 거둬들였다. 화려한 실적이다. 그러나 그에겐 딱히 흐뭇해하는 기미가 없다. 막대한 투자 비용에 생각이 닿아, 만족감보다 더 묵직한 긴장감이 엄습하는 것 같다. 신중한 눈길로 내일을 내다본다. 농장 규모가 커지면서 행여 예상치 못한 리스크가 발생할까 내심 염려하며.

진지하게 풀어내야 할 숙제도 가지고 있다. 그는 아내와 다소 썰렁한 관계에 놓여 있다. 애초 아내는 귀농을 마뜩잖아했다. 그러나 박채선은 자신의 굳은 뜻을 관철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일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건 그에게 최선의 ‘작전’이었으리라. 하지만 부부의 친선엔 그다지 유익한 게 아니었다. 소소한 갈등이 잦아진 근원으로 작용했으니까. 귀농 뒤에도 이견 조율을 생략한 채 매사 앞서 달려가는 남편의 행보에 아내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를테면 부부 협업을 추구하는 남편과 장단을 맞추느라 농사 일머리에 서툰 그녀는 진땀을 뺐다. 이래저래 푸근한 안정감을 느낄 겨를이 없는 날들을 살았다고 한다. 박채선은 이제 이런 난조를 해소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농장 운영 상황이 10년 만에 호전돼 비로소 궤도에 진입했다. 긍정적인 전망을 가지고 새롭게 분발하고자 한다. 농장의 지속 가능한 방안을 정비할 시점이니까. 아내와 좋은 사이를 도모하기 위한 노력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에만 치중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아내의 입장을 배려하고 싶다. 이건 귀농 이후 오랫동안 방심했던 대목이다. 이제야 자신을 돌아보며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귀농을 한 이유는?

“이곳은 고향이다. 연로한 부모님이 계신 곳이며, 어릴 적 쌓은 좋은 추억이 많은 동네다. 출생지이자 마음의 고향인 셈이다. 구미시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틈틈이 드나들며 양친의 농사를 거들었다. 그러면서 농업에 대한 관심과 로망이 커졌다. 결국 노후 대비책으로 귀농하는 게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아내를 대동해 이곳에 들어왔다. 더 직접적인 이유도 있었다. 사업을 하면서 누적된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걸 깨닫고 도시를 떠나기로 했던 거다.”


사업은 잘 됐나?

“토목 설계업체를 운영했는데 뜻한 바대로 사세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대기업의 초청을 받아 강의를 연달아 하느라 성대에 결절이 생기기도 했다. 굴곡도 있었다. 초기 한때 일이 어긋나 밑바닥까지 추락했으니까. 월셋집에서 간신히 살며 아이 분윳값도 조달하지 못해 전전긍긍할 정도였다. 가족을 고생시킨 시절이었다. 이후 상황을 타개해 기반을 복구했지만, 일에 꼼짝없이 얽매여 사느라 괴롭긴 마찬가지였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보상은 술이었다. 다반사로 마신 말술이 스트레스를 푸는 힐링 수단이었다. 그러자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가족에겐 무심해 냉기가 흘렀다. 삶 전체에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잘 해주지 못해 후회가 막심했다. 삶을 확실하게 바꿀 필요성이 자명한 상황에 봉착했던 것이다. 그래 결행한 게 귀농이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경주마처럼 질주해 활로 개척

농장 규모가 크다. 귀농 직후 먼저 한 일은 어떤 것이었나?

“원래 이곳엔 논이 층층으로 이어져 있었다. 일단 토목 작업부터 시작했다. 포클레인을 운전해 길이 250m에 달하는 축대를 손수 쌓았다. 쉬운 공정이 아니었던 만큼 보람도 컸다. 드디어 농사의 초석을 놓았다는 만족감에 가슴이 부풀고, 자신감도 솟구쳤다.”


농사 첫 작물은 어떤 것이었나?

“경북어류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뒤 논물에 새우를 길렀다. ‘민물새우의 황제’로 불리는 큰징거미새우를 양식했다. 김천시 관내에 유일한 큰징거미새우 양식 농가라는 희소성으로 농장의 개성을 돋우는 한편, 소비자에게 참신하게 어필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양식에 나섰다. 상품은 구이용으로 팔거나 새우낚시와 생태 체험용으로 활용했다. 채산성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일부 유지하고 있다.”


유지한 이유가 있겠지?

“새우들의 배설물로 발생하는 유기물이 함유된 논물을 작물에 투입하기 위해 유지한다. 이른바 아쿠아포닉스 농법(물고기 양식과 수경재배를 결합한 첨단농법)을 채택한 거다. 유기물은 새우 양식과 동시에 조성한 샤인머스캣 포도밭에 주로 투입한다. 덕분에 좋은 포도를 생산하고 있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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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머스캣 가격 하락세가 수상하다.

“초기엔 수익성이 매우 좋았다. 6612㎡(약 2000평)짜리 포도밭(일부는 스마트팜 시스템을 구축)에서 약 2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으니까. 그러나 재배 농가가 급증하면서 현재는 3분의 1로 매상이 확 줄었다. 그나마 타 농가에 비해 타격을 덜 받는 편이라 안도감을 느낀다. 농사가 어렵다고 하지만 고품질 상품 생산으로 극복 가능하다는 걸 실감한다. 연구를 계속하는 데 농사의 관건이 달려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

뭐랄까, 박채선은 자신의 내부에 대기하고 있던 열혈남아를 끌어내 농사에 쏟아부은 것 같다. 250m에 달하는 석축을 손수 완성하는 식의 자가발전 기법과 뚝심을 동원해 농사의 기초를 튼튼하게 다져온 게 아닌가. 그는 귀농 전에 농업교육을 받은 바 없다. 이런 허점을 보강하기 위해 농사짓는 와중에도 연구 활동을 밥 먹듯이 반복했다. 경북농업마이스터대학에서 2년 과정을 밟고 포도마이스터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뭘 잘 모르는 채 농부로 변신한 자신의 실정부터 정확하게 인식, 매사 치밀한 궁리 뒤 경주마처럼 내달려 활로를 개척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아내도 시골 생활을 좋아하지만

한마디로 박채선은 똑똑한 농부다. 무엇보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일벌레다. 다루는 작목이 새우 양식과 포도 재배에 그치지 않는 게 그 증거. 그는 사과 과수원에서도 일한다. 복숭아밭에도 비지땀을 뿌린다. 농사에서 은퇴한 부모님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벼농사 8만 2645㎡(약 2만 5000평)도 경작한다. 작년에 벼농사로 번 순소득은 4000여만 원. 콤바인을 몰고 다니며 남의 농장 일을 거들어 부수입도 올린다. 한우 축사도 운영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그는 농장의 아이덴티티를 치유농업에 두었다. 치유체험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연면적 330㎡(약 100평) 규모의 쾌적한 카페풍 교육장에서 체험을 즐긴 이들이 숱하다. 이토록 버라이어티한 농업을 하다니. 천하장사 이만기와도 같은 장한(壯漢)의 용력을 연상케 한다. 일의 선수를 넘어 아예 ‘노예’로 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일에 폭 파묻혀 사느라 낙을 누릴 겨를이나 있을지.


일이 너무 많아 버겁진 않나?

“날마다 바쁜 건 아니다. 농번기 한철 외엔 여유로운 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거지만. 사실 농사란 게 만만치 않다. 몸을 혹사한 대가로 병을 얻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봤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번들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일까. 건강 제일주의로 사는 게 좋다고 본다. 그래서 애써 여유를 찾는다.”


여유가 날 땐 어떤 걸 즐기나?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려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신다. 귀농 뒤 몸이 축난 것 같아 주량은 많이 줄였다. 건강 유지를 위해 가끔 뒷산 등산도 한다. 여행을 많이 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아 아쉽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도시엔 없는 시골의 장점을 꼽는다면? 시골 생활자들은 흔히 자연 풍경에 만족하더라. 마음을 편하게 간수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기가 좋다는 점이다. 덕분에 종일 상쾌하게 숨을 쉰다. 탁한 공기가 만연한 도시에서 다시는 못 살 것 같다. 자연 풍경? 원래 주변의 꽃이나 나무 같은 것엔 별로 눈길을 주지 않고 살았다. 식물도 소재로 쓰이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부터 조금 변했다.”


부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했다. 어떤 대목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보나?

“아내도 한적한 시골 생활 자체는 좋아한다. 그러나 농사일이 힘들어 고생을 많이 했다. 손가락 관절염에 시달리고 있기도 하고. 더 큰 문제는 나의 무심한 태도에 실망을 느낀다는 점이다. 일에 빠져 있을 뿐,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넬 줄 모르는 남자, 어깨 한 번 토닥거려주지 않는 남편이라며 돌아앉고는 한다. 귀농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밀어붙인 것처럼 ‘날 따르라’는 식의 독단에도 질린 것 같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어떤 방법으로 상황을 해소하고 있나?

“아내의 불편이 컸을 걸 자각하고 있다. 아내의 얘긴 이렇다. ‘당신은 진취적이고 성실해 어디서나 인정받는 사람인 걸 안다. 하지만 아내를 너무 무시한다. 좀 존중해달라. 농사만 연구하지 말고 아내도 연구해 뭔가 감동을 주면 안 되겠어?’ 요점이 그렇다. 다 맞는 말이다. 따라서 나는 변해야 하는 것이고, 요즘 자세를 낮춰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일이 너무 많다는 데에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일에 쏠려 부인을 돌볼 마음의 여유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닐지.

“애초 아내에게 잘 해주기 위해 귀농했다. 그러나 오로지 일에 전념하다 초심을 잃었다. 일단 농사를 안정권에 올려놔야 부부의 행복한 노후 보장이 가능하다고 봤는데, 오버가 있었던 것 같다. 다행히 사이가 나아지고 있다. 무슨 말을 해도 대꾸조차 잘 하지 않던 아내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 농사 규모도 줄여나갈 작정이다. 절반 수준으로 축소할 생각이다. 짧은 인생, 더 늦기 전에 훈훈하게 살고 싶다.”

천국엔 결혼 제도가 없다던가. 뜨겁던 사랑도 부부라는 골방으로 들어가면 식는다. 그래도 부부 사이보다 따뜻한 낙원은 없다. 박채선도 모를 리 없다.


박채선이 주는 귀농 Tip

•귀농 지역을 신중하게 선정하자. 경관을 추구해 오지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지만 불편이 너무 클 수 있다. 눈이 오면 고립되기 쉽다. 시니어라면 병원이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을 고르는 게 안전하다. 대중교통 편의성도 확인하자. 자가운전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

•사전 귀농교육은 필수다. 나는 무작정 귀농했는데, 초기에 실수가 많았다. 귀농 뒤의 부단한 농사 연구 역시 긴요하다. 농사가 쉽진 않지만 연구를 많이 한 사람이라면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과수 농사를 할 경우엔 최소 1983㎡(약 600평) 정도의 경지면적을 확보하자. 이정도라면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원주민과 융화하는 데엔 붙임성만 발동해도 무난하다.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시골 인심은 여전히 좋은 편이다. 소소한 사안이라도 불법적인 행위는 아예 금하자. 민원이 들어갈 수 있다.

•귀산촌에도 관심을 가져라. 정책자금 지원 조건에 나이 제한이 없어 시니어도 뜻을 펼칠 수 있다. 임업교육을 받고 임업후계자 신청을 하면 된다.

•처음부터 건축과 농토 마련에 큰 투자는금물이다. 농사가 부진해 철수할 경우 집과 토지를 팔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상황을 판단하면서 점진적인 투자를 하는 게 안전하다.

•농사는 몸을 쓰는 직업이다. 건강을 중심에 놓고 일하라. 과도하게 일하다 병을 얻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걸 유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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