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문학을 꿈꾸던 소년은 결국 생계를 위해 펜이 아닌 연장을 선택했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전후 세대에는 흔한 이야기다. 예술을 선망하던 많은 소년·소녀가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던 시기, 이원환 작가도 그랬다.
가난으로 문학의 꿈 포기
“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요. 얼굴도 기억이 안 나요. 부모님이 안 계시니 학창 시절엔 늘 가난과 싸워야 했고요. 그래서 공고에 들어가 엔지니어가 됐죠. 문학을 향한 갈증이 있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첫 직장에 입사한 후 그는 한 가지 결심을 한다. ‘내 소득의 3%는 문화 활동에 쓰자’는 것. 당연히 책을 사는 데 주로 사용했다.
“주변에 저와 비슷한 사람이 많았어요. 먹고살기 위해 ‘공돌이(기술자)’가 된 사람들은 인문학적 소양에 대한 갈증 같은 게 있어요. 스스로의 결핍을 인식하고 채워나가려는 욕망이 일반인보다 큰 경우죠. 외부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이들이 모여 앉으면 대화가 의외로 철학적이에요.(웃음)”
그 시절 소년·소녀들처럼 그 역시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일꾼으로 활약했다. 현대제철과 현대건설을 거쳐 현대자동차에서 임원으로, 평화그룹에선 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자동차 부품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명사가 됐다. 현재는 여러 기업의 전문 경영인과 임원들이 모여 협동조합 형태로 설립한 일종의 경영 협업 자문회사 ‘NES’의 대표이사로 활동 중이다.
물론 그의 살림살이 역시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3%씩 사용하는 문화생활 비용은 청년 이원환이 꿈꾸던 목표 이상에 다다랐다. 그렇지만 늘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글쓰기를 향한 식지 않는 열정이었다.
“글쓰기는 계속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인사말 같은 공식적인 글쓰기는 계속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또 개인적인 블로그를 통해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조금씩 다듬어왔죠.”
그러다 공식적으로 등단한 것은 2022년의 일이다. 창작수필 제24회 등단상 공모에서 그의 작품 ‘점과 점선’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작품에서 그는 우리 일상 속 많은 점이 품고 있는 숨은 의미를 부각하면서,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삶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풀어낸다.
“운이 좋았죠. 블로그에 써둔 글 중 몇 개를 모아 보여드렸는데, ‘점과 점선’이 높은 평가를 받았어요. 그 글은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며 다듬어졌죠. 일반적인 에세이와는 다른 독특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어서 더 주목을 받았던 것 같아요.”

3개의 노트와 함께하는 글쓰기 삶
이원환 작가는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좋은 습관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생활 속에서 좋은 문장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잘 기억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습관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늘 메모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일상이나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하나의 주제가 되겠다 싶으면 ‘글감’을 적어놓는 노트가 있어요. 소중한 재료들을 쌓아놓았다가 기회가 될 때 하나의 글로 완성하는 거죠. 다른 노트에는 아예 문장을 메모하기도 해요. 글을 읽다 만나는 좋은 문장들, 가슴에 탁 와닿는 글을 적어놓았다가, 틈틈이 읽어보곤 합니다.”
각기 다른 노트 중에서도 그가 가장 아끼는 것은 ‘필사 노트’다. 그가 ‘글쓰기 체력’을 쌓기 위해 매일 하는 습관 중 하나가 바로 필사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그날의 감정이나 계절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신중하게 시를 고르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 내려간다. 그는 작품을 좀 더 제대로 남기고 전하고 싶어 캘리그래피까지 배웠다. 지금까지 필사한 시는 약 1770편. 기간으로 치면 5년이 약간 안 된다. 물론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다.
“원래는 훌륭한 시인들의 문장을 머리에 새기고, 가능하면 시 전체를 암송하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하지만 역시 암송 자체는 무리더라고요. 그래도 얻은 것이 너무나 많아요. 하나의 시를 고르기 위해 적게는 3~4편, 많게는 10편 정도의 시를 봐야 하거든요. 1700여 작품을 필사하는 동안 감상한 시는 5000편이 넘을 거예요. 그렇게 다양한 시를 접하다 보니 시인이나 작품마다의 특징도 보이고, 나도 모르게 좋은 문장들이 몸에 남게 되더라고요.”

글쓰기를 원한다면 일단 시작해야
글쓰기는 중년이라면 누구나 도전하고픈 로망 같은 분야다. 하지만 평소 익혀놓지 않았다면 단 한 글자도 어렵게 느껴지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글쓰기는 어떤 것일까? 그는 집필 행위를 하나의 ‘통로’라고 설명했다.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사회를 이해하는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찰이라는 과정을 거쳐 들여다봐야 하잖아요. 정치적 현실이나 경제적 관점에서의 해석도 필요하고, 부조리한 일이나 정의로운 진실을 구분할 수도 있어야 하고. 이러한 성찰을 얻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중년이 글쓰기를 시작하는 방법으로 “무조건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일단은 자신에 관한 기록이나 주변의 일상을 주제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나치게 문학적으로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냥 사실적으로 쓰는 거죠. 많은 생각과 경험이 쌓이면서 창의적인 글이 나오는 것이지, 처음부터 ‘짠’ 하고 나타나진 않으니까요. 블로그 등을 통해 글쓰기 습관을 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 같습니다.”
#중년 #글쓰기 #시니어 #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