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 결제로 계산대 앞 긴 줄 없이 “빠르게”아마존과 달리 초기 투자 줄여 “개점 쉽게”
RFID 태그 부착 단순 업무 “노인 일자리로”

일본의 지방 슈퍼마켓이 급격한 인구 감소와 인력난 속에서 ‘쇼핑난민’을 구하기 위한 생존 실험에 나섰다. 유통기업 라이프(LIFE)와 구마모토현 중심의 슈퍼마켓 체인 로키(ROCKY)는 4일 양사가 공동으로 새로운 형태의 스마트 점포 시범 운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스마트 슈퍼마켓’은 매장 전체에 RFID(무선주파수인식) 기술을 도입한 일본 첫 사례로, 계산대 앞 긴 줄을 없애고 고령자에게도 편리한 쇼핑 환경을 구현했다.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지역경제와 고령자 고용까지 엮은 새로운 유통 모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스마트 매장은 진입과 동시에 변화가 체감된다. 손님이 장바구니에 담은 상품은 계산대에서 일일이 바코드를 찍을 필요 없이 RFID 태그(무선 인식 가격표)로 자동 인식된다. 결제 과정은 10초 남짓이면 끝난다. 회사 측은 “대기 시간이 최대 80% 단축됐다”며 “손쉽고 빠른 결제로 고령층의 쇼핑 피로도가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운영 효율성도 크게 개선됐다. 상품 입고, 진열, 재고 확인, 검품 등 매장 업무의 70% 이상이 RFID 데이터로 자동화되면서, 직원 한 명이 과거 두세 명이 하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됐다. 인건비를 30~40% 줄이고도 서비스 품질은 유지됐다. 회사는 절감된 인건비를 신선식품 강화와 지역 특산물 직매 코너 확충에 재투자하며 ‘지역 밀착형’ 매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RFID는 환경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주목받는다. 제품의 유통기한이 실시간 관리돼 자동 할인 시스템과 연동되면서 식품 폐기가 20~30% 감소했다. 일본 정부가 연간 523만 톤에 달하는 음식물 폐기 문제를 주요 정책 과제로 삼는 상황에서, 이런 기술 기반 유통 혁신은 ‘지속가능한 매장 운영’의 해법으로 평가된다.
눈에 띄는 변화는 일자리 구조에도 있다. 매장에서 사용하는 RFID 태그 부착·검수 작업은 단순 반복성이 높아 고령자나 장애인에게 적합한 업무로 재설계됐다. 일부 매장은 지역 고령층을 시간제 근무자로 채용해 상품 포장, 태그 관리, 고객 응대 등을 맡기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기술로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니어가 일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번 스마트 슈퍼마켓은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아마존 고(Amazon Go)’와 유사한 형태다. 고객이 상품을 들고 계산대를 통과하면 자동으로 결제가 이뤄지는 ‘줄 없는 쇼핑’이라는 경험 자체는 같다. 그러나 방식은 다르다. 아마존 고가 인공지능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고객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반면, 일본식 모델은 상품 하나하나에 부착된 RFID 태그로 데이터를 관리한다.
이 차이는 단순히 기술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방향성의 차이를 보여준다. 일본형 모델은 고비용 인공지능 설비 대신 비교적 저렴한 RFID 시스템을 택해 초기 투자 부담을 크게 줄였다. 대신 재고 정리, 태그 부착, 검품 등 단순 반복 업무를 고령자나 장애인의 일자리로 전환했다. 유통업체 입장에선 큰 초기 투자나 운영비용 부담 없이 인구 감소 지역에서도 매장을 효과적으로 늘려 나갈 수 있어, 지역소멸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다.
LIFE는 이번 실증 매장을 시작으로 2026년부터 전 점포 RFID 전면 도입을 추진한다. 2027년까지 규슈 전역으로 확대하고, 2030년에는 전국 500개 매장을 ‘스마트 매장 네트워크’로 묶을 계획이다. 이는 소매업의 디지털 전환(DX)을 넘어, 지방 고령사회가 직면한 지역소멸과 인력난, 소비 취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변화는 계산 편의성 향상, 인건비 절감, 식품 로스 감소라는 단기 성과를 넘어, 기술을 통해 지역사회와 고령자를 함께 살리는 새로운 유통 생태계의 시작을 의미한다. 인구 감소와 인력난으로 ‘쇼핑난민’이 늘고 있는 일본 지방에서 스마트 슈퍼마켓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지역의 생명선을 지키는 사회적 인프라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