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1

다시 일어서는 달, 4월

입력 2026-04-01 06:00

[권두언]

▲조성권 미래설계연구원 원장.
▲조성권 미래설계연구원 원장.


3월은 봄이 시작되는 달이고 5월은 봄이 끝나는 달이라 존재가 또렷하다. 그 사이에 놓인 4월은 어딘지 희미하다. 봄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새싹이 파래지고 꽃이 다채롭게 피어나는 계절이지만, 선선하고 따스한 날씨가 이어져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지나가기 쉽다. 1970년대 학교에 다닌 나이 든 이들에게 4월은 두 갈래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나는 T. S. 엘리엇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 읊조린 서늘한 통찰이다. 그의 시 ‘황무지’는 1922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모두 434행이다. 그러나 이 시는 전체보다 첫 행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한 구절은 ‘봄이지만 현실은 고통스럽다’는 시대적 은유로 자리 잡아 오랫동안 우리 입에 오르내렸다. 낭송하는 데만 30분 넘게 걸리는 장시(長詩)라 끝까지 읽어본 이는 의외로 많지 않다.

또 하나의 기억은 박목월의 ‘4월의 노래’가 주는 낭만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던 그 시절의 푸른 설렘은 여전히 우리 가슴 한구석에 화인(火印)처럼 남아 있다. 1954년 4월, ‘학생계’ 편집주간이던 박두진이 같은 청록파 시인 박목월에게 창간 시를 청탁해 탄생한 작품이다. 이 시는 훗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작곡가로 알려진 김순애가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어져 더욱 오래 기억되고 있다.

이 두 시가 우리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데에는 국어 교과서의 영향도 크다. 두 작품 모두 ‘봄을 노래한 현대시’의 대표로 실렸기 때문이다. 엘리엇에게 4월이 잔인한 이유는 분명하다. 겨울의 망각 속에 평온하게 잠들어 있던 생명을 억지로 깨워 고통스러운 현실과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봄은 생명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을 감당할 힘이 없는 인간에게는 가장 잔인한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잔인함을 뚫고 나오는 것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이다. 결국 4월은 인간에게 다시 일어서라고 요구하는 달이다.

3월의 문을 지나 맞이하는 4월은 그리 다정하지 않다. 연일 하늘을 뒤덮는 황사와 미세먼지, 한낮의 온기가 무색하게 파고드는 큰 일교차는 겨울의 잔재처럼 우리를 위축시킨다. 통계적으로 시니어들이 병원을 가장 많이 찾는 달이다. 우리 몸이 겨울의 동면 상태에서 봄의 활동 상태로 전환되며 겪는 ‘성장통’이다. 신체는 변화를 거부하며 통증을 내뱉는다. 그 통증이 두려워 누워만 있는다면 삶의 활력은 돌아오지 않는다.

4월은 세심하게 조심하되 결코 멈춰 서서는 안 되는 달이다. 얇은 옷을 여러 겹 입어 체온을 지키고, 미뤄두었던 산책로를 걷고,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계획들을 하나씩 실천에 옮겨야 한다. 생명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달에 인간 또한 다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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