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06

“돈 함부로 주지 마라”

입력 2026-05-02 06:00

[손주에게 한마디]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내 아버지는 손주들에게도, 자식들에게도 돈을 쉽게 쥐어주지 않았다. 한 해 지나고 절을 올리는 설날에야 비로소 건네는 봉투가 전부였다. 그것도 어머니가 내주셨다. 집에 오는 아버지 손님들에게 절하고 돈 받은 일은 어릴 적 자주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용돈이라는 이름으로 받은 기억은 없다. 돌아보면 그것은 궁핍이 아니라 원칙이었다.

아버지는 필요한 곳에는 정확하게 돈을 내줬다. 학비가 필요하면 꼭 그만큼, 책을 사야 하면 꼭 책값만큼, 길을 떠나야 하면 꼭 차비만큼만. 그 이상은 없었다. 넉넉히 쓰라고 여유를 얹어주는 법이 없었다. 돈은 언제나 이유를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단단한 기준이 있었고, 아버지는 그걸 지켰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 와 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재수하며 자취할 때 생활비를 타서 썼다. 편지를 보내면 한참 뒤에 빨갛게 고친 편지가 되돌아왔다. 그걸 몇 번씩 다시 써 보낸 뒤에야 아버지는 돈을 꼭 그만큼만 보내줬다. 돈이 오는 동안에는 쌀집에 편지를 보여주며 절박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외상으로 얻었다.

아버지는 딱 한 번 “돈이 있으면 조금 편하고, 없으면 조금 불편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돈이 없으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네 성한 다리로 걸어라”라고 돈에 대해 길게 말했다. 그때는 야속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 말은 돈의 크기를 줄이고 삶의 기준을 높이는 방식이었다. 돈은 삶을 바꾸는 절대적 조건이 아니라, 다만 약간의 편의에 불과하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학비도 고등학교까지였다. 그 이후는 스스로 감당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에서 이미 전인교육(全人敎育)은 끝난다. 그 이후에도 용돈을 받아야 한다면 제대로 배운 게 아니다”라고 여러 번 말했다. 아버지는 전인교육을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법을 다 배우는 교육이라고 정의했다. 냉정하게 들렸지만, 그 말은 삶의 주도권을 스스로 쥐라는 요구였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지만, 그 과정에서 더 많이 배운 것은 돈의 성질이었다.

살면서 힘에 부칠 때면 아버지는 짧게 말했다. “할 일을 해라. 필요한 돈은 따라온다.” 그 말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명령이었다. 돈을 목표로 삼지 말고, 일을 바로 세우라는 뜻이었다. 그 말은 대체로 맞았다. 해야 할 일을 붙잡고 있을 때는 돈이 늦어도 따라왔다. 그러나 돈을 쫓아다닌 적도 있었다. 주식에 마음을 쏟고 결과를 기대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남은 것은 공허뿐이었다. 애써 번 것도 아니고, 제대로 얻은 것도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 태도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또렷해진다. 요약하면 ‘생재유도(生財有道)’라는 성어다. ‘재물을 얻는 데에는 마땅한 길이 있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예기(禮記)의 맥락에서 이어지는 오랜 가르침이다. 재물은 결과이되, 그 결과를 낳는 길이 바르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이 문장을 입에 올린 적은 없다. 그러나 삶은 정확히 그 뜻을 따르고 있었다. 돈은 생겨나는 길이 분명해야 했고, 쓰이는 자리 또한 분명해야 했다. 이유 없는 돈은 없었고, 대가 없는 취득도 없었다.

아버지는 ‘돈을 아끼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대신 ‘돈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태도를 남겼다. 돈을 쉽게 주지 않는 방식으로 가르친 것이다. 설명되지 않은 원칙은 스스로 해석해야 했고, 그 해석의 시간은 곧 교육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아이들에게 돈을 쉽게 준다. 용돈은 일상이 됐고, 보상은 금액으로 환산된다. 기다림은 사라지고, 필요와 욕망의 경계는 흐려진다. 돈이 흐르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그 의미는 옅어졌다. 그래서인지 돈이 있어도 불안하고, 많아도 부족하게 느끼는 모순이 생긴다.

돈은 본래 시간이 응축된 결과다. 누군가의 노동과 선택, 그리고 포기의 합이다. 그것이 아무 조건 없이 주어질 때,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시간을 보지 못한다. 결국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돈을 대하는 태도가 삶의 균형을 좌우한다.

아버지가 몸으로 보여준 ‘돈 함부로 주지 마라’는 말은 인색하라는 뜻이 아니다. 돈의 무게를 함께 건네라는 뜻이다. 필요를 분별하게 하고, 기다림을 경험하게 하며, 선택의 책임을 느끼게 하라는 말이다. 그래야 돈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아버지는 많은 것을 남기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남겼다. 돈에는 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을 벗어난 돈은 결국 사람을 가볍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돈이 있으면 조금 편하고 없으면 조금 불편할 뿐이라는 그 한마디가, 오히려 돈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돈은 거저 생기지 않는다. 할 일을 따라온 돈만이 오래 남는다. 그 단순한 진실을, 아버지는 평생을 통해 조용히 증명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내 손주들에게 아직 어리긴 하지만 돈 한 푼 준 일 없다. 다만 돈을 알 때쯤이면 용돈을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아버지의 경계(警戒)가 새록새록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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