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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세찬 언덕 위, 태연한 나무들을 만나다 ‘사니다정원’
- 새봄이 왔다. 그러나 조석으론 앙칼지게 싸늘해 긴가민가하다. 3월 초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영동지방 산간엔 며칠 전 폭설이 쏟아졌다. 예년과 달리 저 아랫녘 남도에도 아직은 꽃이 드물어 썰렁하다고 들었다. 발 빠른 봄의 전령 매화조차 뜸을 들이고 있다 하니 알조다. 원주시 호저면에 있는 사니다정원에서도 봄의 새뜻한 얼굴을 찾아보긴 어렵다. 겨울의 마지막 구간을 빠져나오고 있는 정원이다. 두리번거리며 찾아도 새파랗게 올라온 풀 하나 볼 수 없다. 지상은 그렇더라도 땅 아래 사정은 다를 수밖에 없는 계절이다. 이미 튼 싹눈들의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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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를 남으로 볼 일 아니다… 충남 천안시 화수목정원
- 이런! 얼어붙은 겨울날의 화수목정원에 의외로 관람객이 많다. 살을 에는 혹한에 아랑곳없이 정원을 천천히 거닐며 겨울 서정을 즐기는 사람들. 바야흐로 민간정원의 전성기가 도래한 걸까. 전국 곳곳에 개성을 돋운 정원들이 산재한다. 덩달아 정원 애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머릿속 잡동사니를 비울 수 있는 멍때리기에 적격인 은신처가 드물고, 기댈 만한 언덕도 없는 도시를 벗어나 정원의 식물들과 사교하는 일은 사실 드라마틱한 행위다. 감관이 깨어나면서, 글라스에 향기로운 와인이 채워지듯 불현듯 심신에 차오르는 활력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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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목으로 둘러싸인 치유정원, 충북 괴산트리하우스가든
- 겨울철 정원은 파장을 본 장터처럼 고요하다. 철 지난 해수욕장처럼 고즈넉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형형색색의 꽃과 잎을 매달았던 초목과 관목들은 이제 헐벗은 채 묵연하다. 별로 보잘 게 없다. 벌과 나비를, 또는 꽃핀 식물에 반색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을 유혹할 재능을 상실한 나무들의 촌락에서 무슨 용무를 볼 게 있으랴.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퍼렇게 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활기를 잃고 혼곤한 잠에 취한 겨울 정원에서 무슨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랴. 그러나 이는 단견일 테다. 하나만 보고 둘은 보지 못하는 비좁은 생각이다. 겨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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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아래 호수엔 하얀 윤슬… 충북 옥천군 ‘천상의 정원’
- 근사한 정원이 있다. 이름은 ‘천상의 정원’이다. 천상처럼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의미일 테다. 속된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삶을 관조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도 들린다. 정원을 조성한 이는 목회자다. 그렇다면 모르긴 몰라도 기도의 방편으로 만든 정원일 공산이 크다. 천국을 향한 그리움, 또는 마음 안에 지어놓은 유토피아를 조경의 초석으로 삼아 꾸민 색다른 형태의 예배소일 수 있다. 그러나 종교적 색채를 대놓고 표출하진 않았다. 그저 정원 뒤편 높은 곳에 한 평 남짓한 초미니 교회를 들어앉혀 살짝 내심을 드러냈다. 허리를 숙이고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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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게 보고 처신한 넘사벽 컬렉터… 문화보국 염원한 전형필 가옥
-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야산 자락에 옛집 한 채가 있다. 현대식 건물 일색인 도시에 남은 옛날 한옥은 그 존재만으로도 신선하다. 저만치 홀로 핀 들꽃처럼 자존감으로 당당하다. 고미술품 수집가로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간송미술관을 설립한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자취가 서린 집이다. ‘전형필 가옥’이라 부르는데, ‘간송 옛집’으로도 통한다. 이 집은 1890년대에 전형필의 양아버지였던 대지주 전명기가 원근 도처의 농장에서 나오는 소출을 관리하는 사무소 용도로 지었다. 전명기의 거대한 재산은 양아들 전형필에게 상속됐다.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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