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기다리는 장갑

기사입력 2018-01-26 15:55 기사수정 2018-01-26 15:55

▲주인을 기다리는 장갑(조왕래 동년기자)
▲주인을 기다리는 장갑(조왕래 동년기자)
서울의 동쪽에 있는 나지막한 산이며 서울둘레길의 제2코스(용마-아차산코스)의 일부분인 아차산(285m)이 있다. 등산하는 산이라고 말하기는 낮 간지럽지만 뒷동산 같은 평탄한 산길이여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한가한 토요일 오후 유튜브의 음악을 들으며  아차산에 올랐다.

    

아차산의 중턱쯤에 누군가 소나무위에 장갑을 벗어놓고 깜빡 잊고 그냥 가버렸다. 누가 봐도 탐이 날 분홍빛 예쁜 장갑 이다. 장갑주인이 잠시 쉬어간다고 배낭을 벗으면서 손에 낀 장갑이 불편하여 벗어서 나무위에 올려놓고 바위에 걸터앉아 쉬었을 성싶다.

    

일어나서 갈 때는 눈높이 보다 높은 나무위에 올려놓은 장갑이라 잘 보이지 않으면 깜박 잊어버리고 그냥 간다. 여러 사람이 단체로 산행을 오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듣다보면 정신이 없다. 더러는 빨리 가자고 독촉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깜박 잊어버린 모양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장갑 주인이 몇 발작 걸어가다 ‘아차차 내 장갑’하고 돌아와서 가져 갈 것으로 기대했다. 남의 물건은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주인이 찾아가기 쉽다. 선량한 마음에 주인을 찾아준다고 들고 내려오다가 관리사무소에 맡기다가는 장갑주인을 영영 못 찾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산행을 하고 두 시간이 지나 그 자리에 와보니 장갑은 아직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장갑주인은 ‘에이 오늘 일진이 나빠 장갑을 두고 왔네! 지금 가봐야 누가 가져갔을 거야“ 라고 미리 예단하고 찾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직도 장갑을 잊어버린 줄도 모르고 기분 좋게 하산해서 일행과 술판을 벌리고 있을 수도 있다.

    

주인을 기다리는 장갑이 애처로워 장갑에 주인의 전화번호나 무슨 연락처가 있으면 알려주려고 장갑을 이리저리 살펴봐도 아무런 표시가 없다. 아쉽지만 장갑주인 찾기를 포기하고 그냥 그 자리에 장갑을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이라도 주인이 찾아가면 다행이지만 남의 손을 타면 영영 장갑과 주인은 이별이다. 남의 물건이라고 아무도 손을 대지 않으면 장갑은 그대로 비가 오면 비를 맞을 것이고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밤이고 낮이고 오직 주인만을 기다릴 것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아직도 난 널 사랑하는데 넌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하고 장갑이 말하는 것 같다. 문득 ‘미생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오마고 약속하고는 나타나지 않는 연인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 홍수로 불어난 물에 떠내려갔다는 미생이란 사람이 있었다. 실제 이런 사람이 존재했는지는 모르지만 약속을 지키고 끝까지 기다린 믿음의 화신으로 미생을 추켜세우는 사람도 있고 미련바보같이 물이 불어나면 피해야지 목숨을 잃는 행동을 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의 미생이라면 핸드폰으로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졌을 것이다. 소나무 위의 장갑은 꼭 옛날의 미생처럼 죽어도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지하철에는 할아버지 택배 배달원이 있다. 배달하는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체인으로 물건과 자신의 몸을 감아두는 것을 봤다. 나이가 들면 뭘 자주 잊어버리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한다. 손에 들고 있다가 불편하다고 옆자리에 둔 것이 일어날 때는 깜박 잊어버리고 챙기지 못하고 그냥 나온다.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손에 뭘 들고 다니지 말고 주머니나 가방 속에 넣는 것이 좋다. 전철이나 시외버스의 선반 위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 두는 것도 피해야 한다. 집에서 나올 때 가방이나 주머니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되새겨 보고 집을 나서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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