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기증

기사입력 2018-03-13 09:39 기사수정 2018-03-13 09:39

사람이 많이 몰리는 관광지나 명승고적지를 가면 가파른 바위에 이름을 페인트로 쓰거나 심하게는 큰 바위에 이름이나 글자를 파서 새긴다. ‘000을 사랑해!’, ‘우리사랑 영원히’ 라는 글이다. 이런 글자를 본 애인이 감동해주길 바란다. 나를 그토록 사랑해주는 용감하고 멋있는 사람으로 알아주길 바란다. 여러 사람들에게 이름을 공개해 변하지 않을 대못을 박고 싶은 심정에서 한 행동임은 알 것 같다.

하지만 방문객의 대부분이 얼마나 사랑했으면 또는 얼마나 사랑이 변치말기를 기원했으면 바위에 이름까지 새길까!,하고 부러워하고 축하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보다는 문화재를 훼손했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자칫하면 자연 훼손 범으로 법정에 서야 한다.

우리 아이의 출생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 첫 돌날 찾아준 하객들에게 아이이름을 새긴 작은 선물을 돌린다. 부모님의 회갑 날에도 수건에 부모님 이름을 인쇄해서 나누어 준다. 기업체를 방문해도 간단한 물건에 회사이름을 새긴 방문기념 선물을 주는 곳도 많다. 크게는 대통령이름이 새겨진 시계선물도 있다. 모두가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사랑의 자물쇠라 하여 사랑하는 연인들이 사랑의 마음을 담은 후 자물쇠로 잠그고 다시는 열수 없도록 열쇠를 멀리 던져버리는 퍼포먼스도 한다.

▲신혼부부의 사진이 들어있는 벽시계(조왕래 동년기자)
▲신혼부부의 사진이 들어있는 벽시계(조왕래 동년기자)

사랑한다는 말을 멋있게 표현하고 싶고 그 사랑을 영원히 변치말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강서둘래길’에서 이런 멋진 모습을 봤다. 강서둘래길은 전철5호선 개화산역이 있는 개화산둘레가 주 무대다 총연장이 11.4km로 대략 3시간이 소요되는 걷기 좋은 길이다. 지역주민은 물로 멀리서도 이름을 듣고 찾아온다. 중간지점에 봉화정(烽火庭)이라는 쉼터인 정자가 있는데 거기서 아름다운 기증을 한 멋진 시계를 봤다.

▲봉화정에는 쉬어가는 사람이 많다(조왕래 동년기자)
▲봉화정에는 쉬어가는 사람이 많다(조왕래 동년기자)

잠시 정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똑딱이는 시계소리가 들린다. 눈을 들어 위를 보니 결혼부부의 사진이 박힌 시계가 걸려있다. 초침이 똑딱똑딱하고 가고 있고 시간이 정확하게 맞는다. 걸어만 놓고 내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관리가 잘되고 있는 모습에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전자시계이니 몇 달에 한 번씩 건전지를 교체해야 한다. 시간도 오차가 있으니 아주 가끔은 시간조정도 해야 정확한 시간이 제공된다. 시계가 잘 관리되는 것으로 보아 기증자는 가끔씩 올라와서 먼지도 털어내고 시간도 맞추고 건전지도 교체하는 모양이다. 부부의 웃고 있는 사진이 시계의 시간 품질보증서와 같다. 젊은 부부의 결혼식 사진을 보면서 ‘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결혼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야지 하는 다짐도 한다. 기증자는 하루에 한사람이라도 자신들의 신혼사진을 보고 파경의 문턱까지 간 부부가 화해한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普施)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혼을 기념하는 벽시계를 사람들이 몰려드는 장소에 걸어 놓을 마음씀씀이가 아름답다. 시계관리를 하면서 두 사람의 사랑도 더 깊어질 것이다. 작은 기증이지만 아이디어도 멋지고 참 실용적이다. 이런 작은 기증들이 세상을 더욱 살맛나게 한다. 기증문화 기부문화가 들불 번지듯 퍼져나가게 이른 미담은 널리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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