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발심(初發心)

기사입력 2018-05-31 12:32 기사수정 2018-05-31 12:32

▲종로 3가 전철역 12번 출구의 ‘그래도 한 우물을 파라, 결국 이긴다’라는 글귀(강신영 동년기자)
▲종로 3가 전철역 12번 출구의 ‘그래도 한 우물을 파라, 결국 이긴다’라는 글귀(강신영 동년기자)

원래의 뜻은 ‘불도를 구하는 마음을 처음으로 일으킴’이라는 뜻이다. 쉽게 얘기하면 ‘처음처럼’이다. 소주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지만, 참으로 좋은 말이다. 그래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기 때문에 이 말이 나온 것이다.

가장 쉬운 예가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것일 것이다. 화장실 갈 때는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며 절박한 심정으로 갔는데 급한 볼일을 다 보고 나니 마음이 뻔뻔하게 달라진다는 뜻이다.

비슷한 예로 남에게 돈을 빌릴 때는 온갖 약속을 다 해가며 빌렸는데 막상 갚으려니 갚기 싫은 것이다. 이런 경우 돈을 빌려준 사람이 오히려 처지가 난처해진다. 돈을 갚으라고 하자니 말이 안 나오고, 말을 꺼냈는데 거절하거나 이유를 대며 연기하면 실망스러운 것이다. 심지어 너무 독촉하다 보면 돈을 갚지 않기 위해서 끔찍한 일을 벌이기도 한다. 돈 잃고 사람 잃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험해지는 것이다.

남녀 문제도 그렇다. 처음엔 상대방의 마음에 들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일단 사귀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진다. 호르몬 작용 때문에 그렇다고 하지만, 초발심을 잃은 마음의 문제이기도 하다. 해마다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이유도 그 당시 초발심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드라마에서도 어려운 시절 여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정작 출세하고 나서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스토리가 많다. 출세하고 나니 옛 여인은 귀찮은 존재가 되고 새 여인에 정신이 팔리는 것이다. 욕심이 싹 트면서 초발심을 잊는 것이다. 이런 남자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한다. 때에 따라 감정 변화가 심해 친소관계가 달라지면 어떻게 진전될지 불안해진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진정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친척이나 오래된 친구가 오래간만에 봐도 편하고 친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심리학 박사 이민규 씨의 신간 ‘지치지 않는 힘’에 보면 “목표가 있는 사람은 휘둘리지 않는다”, “길게 보는 사람은 서두르지도 않는다”라는 말이 나온다. 초발심을 계속 유지해나가는 심지가 굳어야 한다는 말과 상통한다.

종로 3가 전철역 12번 출구 옆에 ‘그래도 한 우물을 파라, 결국 이긴다’라는 글귀가 유리에 캘리그래피로 쓰여 있다. 필자가 캘리그래피를 배울 때 각자의 좌우명을 제출하라고 해서 써낸 것이 채택된 것이다. 초발심을 그대로 유지하다 보면 결국 목표를 달성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사는 편이 편하다. 잔머리를 안 굴려도 되기 때문이다. 단점은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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