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조건을 갖춘 곳에서 살다가 그만큼 불편한 환경을 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 밖에서의 고생은 값진 경험과 감미로운 추억이 되어 현재의 안락함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해준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숙식이었다. 입에 맞지 않는 현지 음식, 난방 시설이 전혀 안 되어 있는 숙소, 코 고는 사람과의 동침, 너무 추워 손이 곱은 상태에서의 짐 싸기, 일행 30명이 하나의 변기를 번갈아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 등이 나를 괴롭혔다. 우리가 자주 먹는 김치 한 조각, 고추장 한 숟가락, 라면 국물 등이 얼마나 맛있고 입맛을 돋우는 음식인지 새삼 느꼈다. 간천엽, 갈매기살, 막걸리 같은 좋아하는 메뉴는 포기하더라도 한국인은 한국 음식을 먹어야 산다. 오죽하면 ‘한국인 고문하기’에 ‘라면 먹을 때 김치 안 주기’가 들어 있을까. 한국은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천국이다.
내 집은 그야말로 보금자리다.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곳이다. 날씨가 추울 때 히터 스위치만 올리면 방이 금세 따뜻해진다. 사계절에 맞는 이불을 덮으면 쾌적한 잠을 잘 수 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냉장고 문만 열면 된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샤워까지 하고 나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TV만 켜면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즐비하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집을 떠날 때는 이런 안락함과 일시적인 이별을 해야 한다. 히말라야 트레킹하면서 TV도 못 보고, 고산병 때문에 씻지도 못하고, 당구도 못 치고, 술도 못 마시고, 휴대폰은 아예 꺼두었다. 물론 그 덕분에 건강에는 도움이 됐다.
히말라야에서는 아침 먹고 걷고, 점심 먹고 걸었다. 하루 8시간을 걷는 8박 9일간의 트레킹이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총 23만 보, 거리로는 100km, 해발 4130m까지 오르는 힘든 여정이었다. 체중이 3kg이나 줄었다. 마라톤이나 댄스 대회에 나가면 3kg 정도는 금세 줄지만 다시 원래 몸무게로 돌아온다. 그런데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 돌아온 후에는 매일 고기를 먹고 포식하는데도 체중이 늘지 않는다. 트레킹하기 전 볼록했던 아랫배가 홀쭉해졌다. 이제는 정시에 식사를 안 하면 뱃가죽이 등에 붙는 느낌이다. 허벅지 뒤쪽에도 근육이 생겼다. 엉덩이도 탄탄해졌다. 그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붙지 않던 근육이 생긴 것이다. 이 근육은 계단을 오를 때 큰 도움이 된다. 오르막에도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발걸음이 가볍다. 앞으로 10년쯤 내 체력이나 건강 유지에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
얼마나 버틸지 모르지만, 다시 몸이 근질근질하면 어딘가로 또 떠날 것이다. 이번 트레킹에서 말썽이 될 뻔했던 낡은 등산화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도 몰래 꿈틀거리는 새로운 여정에 대한 준비로 보인다. ‘히말라야에 갔다 온 사람’이라는 호칭이 따라 붙으며 마음도 겸손해졌다. 그곳에서 태고의 대자연을 접하고 돌아오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다. 높은 준령의 설산은 수억 년을 그대로 버티고 있는데 인간은 100년도 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