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던 친구가 돌아왔고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 몇몇을 연락해서 만나기로 했다. 사는 곳이 제각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멀리 지방에서 올라오는 친구가 편하도록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약속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각각 나타나는 친구들의 환한 모습들이 어쩐지 가슴 뭉클하게 한다. 그동안 종종 만나곤 하던 친구들도 있지만 일부는 수년만에 만나는
수억 년 전 바다였다가 다시 육지로 변했다가 이젠 또 그 무엇으로 변할 것이라는 곳.
바다 위의 작은 섬으로 오롯하던 수섬이 시화방조제로 인해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면서 넓디넓은 짭짤한 땅에 뿌리를 내린 삘기가 해마다 가득가득 피어나는 곳이다. 군데군데 불긋불긋한 함초들은 들판의 풍경이 되었다. 줄기 하나 뜯어 맛을 본다. 짭짤한 맛이 입안에서 감칠맛
사라져가는 서울의 풍경, 우리가 보존해야 할 서울의 사대문 안의 마지막 달동네가 몇 군데 있다. 우리의 역사문화지구로 과거의 시간을 떠올려볼 수 있는 곳을 찾아가보려고 한다. 이름하여 ‘Remember seoul’이다. 허름하고 빛바랜 동네이지만 시간을 거슬러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는 북정마을, 김광섭 시인이 노래한 ‘성북동 비둘기’에 나오는 바로 그 마을
늘 함께하려고 남편과 혼인서약을 했고 언제까지나 함께하는 줄 알고 살았던 적이 있다. 신혼 무렵엔 남편이 출장만 가도 허전했고 하루만 지나도 보고 싶었다. 요즘처럼 봄꽃이 눈부실 때는 같이 봐야 하는데, 집안 모임에 같이 가야 하는데 하며 남편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창밖으로 아스라이 한 점 비행기가 날아갈 때면 그가 보고 싶어져 가슴이 저릿해지기도 했으니
한동안 BBC에서 제작된 이란 요리 프로그램을 즐겨 본 적이 있다. 개구쟁이처럼 생긴 그의 젊은 팔뚝에서는 청춘의 힘이 느껴졌고, 빠른 손놀림으로 요리하는 모습을 바라만 봐도 즐거웠다. 그렇게 만들어내는 요리를 보면 당장이라도 따라 하고 싶어지곤 했다.
영국의 천재 요리사로 불리는 제이미는 영국 요리의 이미지 개선으로 국위선양을 한
봄의 끝, 여름이 시작되는 즈음이다
그 들판엔 뜨거운 한여름의 태양을 방불케 하는 더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 옆 냇가에는 여름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고 몸부림치듯 엉킨 덩굴들이 옥천의 들길에서는 자유로워 보인다.
나무 그늘에는 더위를 피해 동네 사람들이 쉬고 있었고, 언덕 아래엔 초여름의 강태공들이 텐트를 치고 하세월 유유자적한 모습이
해마다 5월이면 줄줄이 이어지는 행사가 많아 분주한 느낌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지나고 한숨 돌릴 즈음이면 스승의 날이 이어진다. 이날이 되면 의례적으로 하게 되는 일일 명예교사 일을 빠뜨릴 수 없었는데, 그해 아들의 5학년 교실을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그날, 약속된 시간이 되어 아들 녀석의 학교로 갔는데 교실 복도에 다다
한낮, 때로 집에서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집 근처로 잠깐 나가 점심 한 끼 맛나게 먹고 들어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결국 오전 내내 집안일을 마치고 아침에 가족들이 남긴 음식들을 냉장고에서 무심히 식탁에 꺼낸다. 집에서 대충 때우는 점심이 급기야는 맥빠진다. 그렇다고 배달음식은 내키지 않는다. 아줌마도
지하철보다 버스를 탄 이유는 버스가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혼자 생각에 푹 잠겨 가기엔 버스에 앉아 창밖을 조용히 바라보며 가는 게 좋은 걸 필자는 잘 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가는 길에 혼자 많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몇 번씩 갈아타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번거로움이 날 더 심란하게 하는 것 같아서 30분쯤 더
마로니에 공원의 추억을 들추며
비 내리는 날의 외출이 신나고 즐거울 시기는 지났지만 때론 예외일 때도 있다. 빗속을 뚫고 혜화동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하니 역시 날씨에는 아랑곳없는 청춘들이 삼삼오오 손잡고 오가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와보는 마로니에 공원이지만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한때 젊은이들의 문화를 꽃피웠던 이곳에서 봄날의 파릇함, 낙엽 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