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사라졌다. 어느 날 갑자기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만나서 비상 대책을 세우자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12명의 피해자가 모여서 그를 감옥에 넣어야 한다며 흥분된 마음을 들썩거렸다. 사람들은 가장 친한 친구였던 필자에게 총대를 메고 앞장을 서라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어쩔 수 없어 사인은 했지만 도망치듯 그 자리를 몰래 빠져나오
책 한 권을 펼쳤다. 미국에서 이민 생활할 때 선물받은 책이었다. '이제야 나는 삶을 얘기할 수 있겠네'라는 제목으로 한 젊은이가 중병이 들어 죽음을 맞이하며 담담하게 써 내려간 내용이었다. 그는 지나온 날에 신명 나게 살아왔지만 병들어 지치고 나약해진 현실의 영혼 앞에 지나온 삶과 남은 삶의 회한, 인생에 대한 후회와 간절함 들을 하나님 앞에 의지하는 내
이민을 왜 꿈꿀까? 대부분 이민하는 이유는 단연 자식 때문이라고 부모들은 말한다. 도대체 자식이 뭐길래 자식교육을 위해서라면 내 나라도 등 지는 것일까. 필자는 미국에서 사는 동안 너무나 많은 한인들이 초심의 목적을 잃고 체념하면서 한숨으로 살고,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어린 아이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한인타운에 사는 후배가 전화를 했다. 그녀는 울먹거리
첫번째 오남매가족사진, 1번 임산부필자 3번 40대의필자 4번 빛바랜 가족사진들 6번 두딸과 필자모습
카네이션 꽃들이 만발하는 5월이 되면 유년 시절의 필자는 그리움 반 미움 반으로 시들어진 꽃다발을 가슴에 품고 엄마를 그리다 잠이 들곤 했다. 어린 마음속에서 흘린 눈물은 차곡차곡 쌓여 강하고 모진 모성애를 잉태하기 시작했다.
눈물 속의
1999년. 필리핀에서 가장 덥다는 3월의 어느 바닷가 마을, 그곳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이끌고 온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였다. 많은 미국인이 참여했고, 한국과 일본에서 온 학생 단체도 있었다. 그 많은 외국인 사이에서 땀 흘리는 한 중년 한국인 남성을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가 한국에서 특별히 휴가를 내고 참여한 대형 금융회사의 대
‘사랑한다.’는 말이 어느 시대보다 많이 쓰여지고 있다. 연인 사이에야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인간관계 증진을 위하여 꼭 필요한 말로 권해진다. 부부 사이에도 그렇고 자식과의 관계에도 마찬가지다. 친구나 이웃에게도, 고객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종교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다. 사랑의 지고한 가치가 있어서다.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경남 양산시쯤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오늘의 목적지인 창원시 수산대교를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았는데 밀양시를 지나면서 긴급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라이딩 중에 한 대원의 자전거 체인이 끊어졌는데 선두를 이끌던 필자는 배낭에 넣어 두었던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한 채, 또 한 명의 대원을 뒤에 달고 밀양시 삼랑진읍까지 달리고 말았다. 미안했다. 필자가
우리 한자어에 부부(夫婦)라 함은 지아비 부(夫)와 지어미 부(婦)를 뜻한다.
부부의 날은 2007년 부부 관계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흔들리는 가정의 이탈 속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 가자는 취지로 여성가족부 주관으로 만들어진 법정기념일이다. 건전한 가족 문화의 정착과 가족 해체 예방을 위한 행사를 개최하는 의미를 담고 만들어진 특별한 날이다.
매년 5
히 식스(He 6). 1960~1970년대 미8군 무대와 이태원·명동 일대 음악 살롱을 격렬한 록 음악으로 장악하던 여섯 명의 청년(권용남, 김용중, 김홍탁, 유상윤, 이영덕, 조용남)이 있었다. 당시 젊은이들의 우상이자 거울과 같았던 그들은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또 다른 세대의 거울 앞에 섰다. 중·장년의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고, 낭만을 추억하는 그
가정의 달이 되면 기억에 떠오르는 한 평범한 가정이 있다.
박 선생은 50전 후의 여자였다. 서울 강남에서 다과와 음료수를 겸한 알뜰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떤 날 전혀 모르는 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미국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가 꼭 전해 달라는 편지 부탁을 받고 서울에 왔는데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편지는 부산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