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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장판 된 볏논을 보며
- “진인사대천명(진인사대천명)”이라 했다.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려라.”는 말로 최선을 다 하면 좋은 결과가 온다는 긍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늘은 돕는 자를 돕는다.”도 같은 표현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주는 긍정적 의미가 언제나 적용될까? 필자는 논밭으로 둘러싸인 시골 같은 마을에 산다. 도심에 사는 사람보다 먼저 계절의 정취를 느낀다. 들녘과 산길을 산책하며 자연이 주는 교훈을 깨닫기도 한다. 때로는 인간의 한계를 실감하기도 한다. 인간의 노력이 자연의 커다란 힘 앞에 어찌하지 못하는 현장을 보며 아픈 가슴을 쓸어내린다. 괴력을 가진 쓰나미나 태풍 앞에서 손 놓고 가슴앓이를 하는 인간의 모습에 견줄만한 규모는 아니어도 주변에는 이런 일이 늘 일어나고 있다. 이른 봄부터 온갖 정성과 수많은 땀으로 가꿔 수확을 기다리며 희망에 부풀었던 볏논이 간밤에 난장판(사진)으로 바뀌어 있다. 간밤에 회오리바람이 이곳 논에 심하게 일었나 보다. 주변의 논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유독 한 쪽 논만 익어가던 벼 포기가 이리저리 쓰러져 올곧은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것도 하늘의 뜻일까? 필자가 사는 동네의 주변 논에는 요즘 벼가 익어가고 있다. 위도가 북쪽이어서 가을걷이가 조금 일찍 시작된다. 가을도 일찍 온다. 볏논의 벼가 꼿꼿이 이삭을 피어올린다. 연둣빛에서 황금색으로 변하면서 하나 둘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한낮의 따가운 햇볕을 머금고 알차진다. 이 순간의 기쁨을 위해 농부는 이른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땀방울을 흘렸다. 농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이제 남은 것은 흘린 땀방울로 결실될 벼를 거둬들이는 추수만 남겨두었다. 진인사대천몀의 순간에 이르렀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벼 알이 하나둘 알차게 익어가며 농부의 마음을 부풀게 하였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 만난 들판의 벼논의 상황이 확 바뀌었다. 여러 논 중에서 한 논배미의 벼가 난장판이 되어 있어서다. 모두 잠 든 사이에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하늘로 올라갔나 보다. 한창 익어가던 벼 이삭이 쓰러지고 꺾어지고 넘어졌다. 어느 부분은 곱슬머리처럼 배배 꼬이기도 했다. 방향도 일정하지 않게 헝클어졌다.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농부의 마음이 보인다. 백로 한 마리 농부의 마음을 위로나 하듯 쓰러진 벼 틈새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 장의 사진에 이 이야기를 담았다.
- 2017-08-3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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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기 좋은 날
- 아침 이슬에 들녘이 싱그럽다. 연둣빛 칡 잎이 진초록으로 서서히 바뀌는 여름의 길목이다. 바람도 잔잔하다. 지난밤 볏논에서 요란스레 울던 개구리 소리, 바람결에 실려오는 산 아랫마을의 개 짖는 소리 장단 맞추고 별들과 하현달 친구 되어 놀던 달팽이 한 쌍 새벽녘에 사랑이 무르익었나보다. 이슬에 촉촉하게 젖은 칡 잎 자락에 꼭 껴안고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하룻길을 떠날 태양도 부끄러움에 동산 너머에서 살며시 빛줄기로 시샘을 한다. 이른 잠에 깨어난 뻐꾸기 저 멀리 산자락 어둠 걷힌 나뭇가지에서 짝을 찾아 구슬피 울어 운다. 간혹 주변 산책길 길손도 모르는 척 지나간다. 아침 먹거리를 찾는 백로도 사랑에 빠진 달팽이 위 하늘을 휙 날아간다. 자연은 이렇게 새 생명의 탄생을 아우르는지 모른다. 우주는 또 한 세대를 이어간다. 작은 생명체에서 우주의 영속성을 본다. 달팽이 사랑의 모습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 필자의 손도 엄숙해진다. 1년에 한 번 오는 기회의 포착 순간이다. 숨소리 멈추고 셔터 소리를 낮춰 한 컷의 이야기를 렌즈에 담았다. “사랑하기 좋은 날”이다.
- 2017-07-1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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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파정’산책 코스 걸어보셨나요?
- 하루해가 참 길다. 새벽 4시 반 무렵이면 훤해져 저녁 8시가 지나야 어두워진다. 하루해가 가장 길다는 절기 하지가 6월 21일이었다. 특별한 취미활동이나 소일거리가 없는 시니어는 잠을 깨는 순간부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를 걱정하기도 한다. 특히 날씨마저 흐리면 더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날이면 움츠리고 앉아 있기보다 바깥나들이를 하면 한결 기분이 상쾌해진다.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함께 챙길 수 있는 나들이를 하면 금상첨화지 싶다. 나이 든 사람에게 많이 권하는 운동이 걷기다. 둘레길이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져 많이 활용된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삭막한 도심의 길을 걷기보다 바람과 속삭이는 숲과 물과 산새 소리 들으며 걷는 자연 속의 걸음은 한결 가볍고 여유로운 시간이 될 터이다. 아울러 문화산책도 곁들이면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이룰 수 있어 좋지 싶다. 두 가지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곳으로 석파정 산책 코스를 권하고 싶다. 석파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에 있다. 전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청와대 옆길을 돌아 자하문 터널을 지나면 곧바로 좌측 언덕배기에 보인다. 석파정은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쓰이던 곳이다. 보존이 잘 되어 현재 서울특별시 문화재 26호로 지정돼 있다. 이곳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립 미술관인 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석파정이 있는 지대가 미술관에 달린 사유지이기에 그렇다. 그 미술관도 여느 미술관과 다른 점이 있어 전시되거나 소장된 그림을 감상하는 문화 나들이도 되지만, 전시관 곳곳에 이벤트성 볼거리, 쉼터가 있어 관람을 여유롭게 재미를 더해준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도 예쁘게 만들어 놓았다. 영상과 함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음악감상실, 영화를 볼 수 있는 영상 상영 코너도 마련해두어 재미를 더해준다. 현재 “신사임당, 그녀의 화원”이 관람객의 관심 속에 9월 3일까지 특별 전시되고 있다. 미술관 3층 옥탑을 거쳐서 외부로 나가 만나는 석파정 일원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쉼터와 힐링의 장소로 등장한다. 옥상 잔디정원에서 조각품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북한산의 모습도 새롭다. 선이 아름다운 대원군의 별장 기와가 푸른 하늘과 맞닿아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둘러 서 있는 산책로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한다. 듬성듬성 만들어 둔 벤치에 앉아 중간을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배경 음악 삼고 새소리 들으면 그곳이 낙원 같다. 가파르지 않은 산책길을 따라 느리게 느리게 걸으면 자연의 소리에 취할 수 있다. “물을 품은 길”이라 이름 붙여진 좁은 산책로 또한 정겹고 주변 곳곳에 세워진 아름다운 문구의 팻말이 인생을 배우게 한다. 그 문구 중의 하나인 기욤 뮈소의 에 나오는 구절이 가슴에 와닿았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우리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다” 미술관 관람과 힐링의 산책을 하며 하루를 너끈하게 그리고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곳이지 싶다. 돌아오는 길에 경복궁 옆에 있는 사람 냄새 나는 통인시장에 들러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면 행복한 하루가 되지 싶다. 필자는 올봄에 고등학교 후배인 대학교수이자 화가인 고등학교 후배의 안내로 처음 이곳을 다녀왔다.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어 안사람과 함께 친구와 가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필자에게 사진촬영법과 활용기술을 배우는 남녀 어르신 11분과 다녀왔다. 모두 즐거워하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하루가 되었다고 했다.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아우를 수 있는 서울미술관과 석파정 산책 코스를 걸어보면 어떨까?
- 2017-07-0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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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트 3국 여행기(4) 에스토니아
- 드디어 발트 3국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에스토니아에 도착했다. 역시 국경을 넘는지도 모를 정도로 버스가 달리다보니 에스토니아였다. 에스토니아는 발트 3국 중 인구도 가장 적지만, 이웃 나라 핀란드 덕분에 발트 3국 중 가장 잘 사는 나라라고 했다. 리투아니아가 폴란드, 벨라루스와 접경인 것을 감안하면 이웃나라도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모양이다.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아침 기온이 6월 중순인데도 8도에, 비 오고 바람까지 불어 꽤 춥게 느껴졌다. 그래서 가벼운 패딩 옷을 준비하라고 했는데도 서울의 날씨만 생각하고 반팔 옷만 준비한 사람들은 곤욕을 치렀다. 온도도 초봄날씨지만, 체감온도가 더 춥게 느껴졌다. 첫 방문지는 여름 수도라는 타르투였다. 볼거리라고는 타르투 대학 캠퍼스를 돌아보는 일이었는데 일행 중 절반은 이미 커피숍에 앉아 담소를 즐기고 나머지 절반만 캠퍼스 구경을 했다. IQ가 높은 사람들은 공부하러 캠퍼스 구경에 나섰고, EQ가 높은 사람들은 커피숍의 담소가 더 좋았다고 하여 웃었다. 정복자 스웨덴이었지만, 스웨덴 사람이 세운 대학이라고 했다. 천사의 다리, 악마의 다리가 눈길을 끌었다. 그 외에 역사와 문화의 도시라 하여 대성당, 시청사 광장 등 볼거리를 둘러 봤다. 다음 행선지는 국경도시 나르바였다. 러시아 민족이 주민의 87%라고 했다. 두고두고 골치가 될 소지가 있어 보였다. 온천도시라서 온천욕을 즐겼다. 남녀 혼탕이지만, 수영복을 입어야했다. 다음 행선지는 라헤마 국립공원이었다. 서울의 2배 정도인 습지라는데 과연 땅이 물기를 지니고 있어서 밟으면 물이 올라오는 땅이었다. 30분 정도 산책길을 걸어 들어갔다가 나오는 코스였다. 다음 코스는 합살루라는 도시였다. 옛 러시아 황족들이 타던 열차와 철도, 옛 정거장이 전시되고 있었다. 조금 이동하니 벽돌로 쌓은 고성이 있었다. 힘든 줄도 모르고 135계단을 올라 꼭대기 전망대까지 올라가 전경을 구경했다. 호수 가에는 차이코프스키가 즐겨 찾았다는 벤치가 노래비처럼 설치되어 있었다. 마지막 코스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이었다. 도시 절반은 카페이고 나머지 절반은 기념품 상점일 정도로 관광도시였다. 중세의 신비한 분위기와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현대식 빌딩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웃 핀란드 사람들, 중국 관광객들이 와서 붐비는 도시였다. 구 도시가 하이라이트이다. 유럽의 축소판이라고 보면 된다. 거리마다 악사가 길거리 연주를 하고 오픈 카페가 손님을 끌었다. 매력 있는 골목들과 고만고만한 상점들의 상품도 쇼핑객을 끈다. 러시아 상품들이 꽤 있다는 점이 다른 발트 3국과 다르다. 발트 3국은 도로가 옛 마찻길로 돌을 심어 놓아 매우 불규칙하다. 그래서 멋을 내려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심은 여성들은 발목을 삐는 사고가 속출했다. 멋도 좋지만, 발 편한 운동화가 제격이다. 올 때 갈 때 비행기에서 잤으므로 발트 3국 여행에 6박 8일을 보낸 셈이다. 여행 경비는 250만원이 들었다. 탈린에서 이스탄불까지 3시간 반 이동하고 다시 이스탄불에서 12시간 비행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장거리 비행이라 노인들은 힘이 드는 편이다. 더 늙기 전에 가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 2017-06-2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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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뜻해진 우리 동네 골목길.
- 골목길은 어쩐지 큰길보다는 뭔가 비밀스럽고 은밀한 느낌이 있다. 어린 시절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하던 정다움도 느껴지고 꽃다운 젊은 날 좋아하는 사람과 거닐며 가슴 떨렸던 수줍 은 기억도 떠오른다. 어린 시절 필자는 10살까지 대전의 대흥동 주택가에서 살았다. 골목 안쪽에 우리 집이 있었는데 그 골목은 다른 곳보다 무척이나 좁았다. 어릴 땐 몰랐지만, 어른이 되어 그리움에 한 번 찾아가 보니 뚱뚱한 사람은 통과하기 좀 힘 들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 그래도 그 골목은 좁아서인지 더욱 골목 안 우리 친구들의 천국과 같은 놀이터였다. 지금과는 달리 어릴 때의 필자는 매우 개구쟁이였던 모양이다. 노래도 잘했다는데 아이들의 동요가 아닌 당시 유행하던 강화도령이나 제목도 모르지만 ‘반 짝이는 불빛 아래 소곤소곤 소곤대던 그으 나알밤~’이란 가요를 구성지게 잘도 불러 재껴 서 동네 어른들은 필자만 보면 “노래 한 자락 해봐라.”고 하셨다. 그 골목에서 즐거웠던 일은 동네 아이들과 연극을 해보자고 작당했던 일이다. 무대는 좁은 골목 안 용호네 대문 위쪽과 반대편 전봇대에 줄을 매달고 담요를 걸쳐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무대를 만든 것처럼 즐거웠고 춘향전을 한다며 담요를 들치고 나와 연기를 펼치며 깔깔대었다. 정말 그땐 어른들도 볼거리가 없었던지 철부지 동네 꼬마들이 하는 연극에 신문지나 가마니 를 깔고 앉아 귀엽다며 칭찬하고 웃어주셨다. 그렇게 골목길은 필자의 어린 시절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한 곳이다. 작년에 우리 동네 뒤쪽으로 산책로가 새로 조성되었다. 2km의 길이로 펼쳐진 산책길은 중간 한 부분 100여 미터 정도 골목길을 통하게 되어있다. 처음 그 골목을 지나며 필자는 깜짝 놀랐고 낯설지 않은 느낌에 내심 반갑기도 했다. 좁다란 골목이 어린 날 개구쟁이 모여 놀던 그 골목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었다. 약간은 후줄그레한 지저분한 회색 담벼락이 이어졌는데 어느 날 지나다 보니 담장 치장이 한창이었다. 아마 개인이 하는 건 아니고 지자체에서 골목단장사업을 하는 것 같다. 연말이 가까워져 오면 할당받은 예산을 없애기 위해 잘 깔려있는 멀쩡한 보도블록도 교체하 는 등 무리하게 예산 집행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골목을 깔끔하게 단장하는 데 쓰인다면 칭찬해 줘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산책 때문이든 그저 통과하는 것이든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산뜻하고 기분 좋은 느낌을 줄 수 있어서이다. 각 집마다 색상을 달리해서 칠하는 페인트의 색이 너무 고와 어느 집 담장이 더 예쁜지 감상해 보는 것도 즐거운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파스텔 톤으로 인디언핑크, 연하늘색, 연보라 연노랑 등 은은한 색의 담장이 뽐내듯 이어졌 고 골목 끝 부분의 좀 큰 담장에는 사계절을 표현한 벽화가 그려졌다. 이제는 골목을 지나며 우중충한 모습을 보지 않게 되어 기분이 좋다. 봄을 상징하는 꽃잎 담장도 있고 가을 단풍을 그려놓은 담장도 있다. 동심의 세계로 이끌 것만 같은 겨울 눈 내리는 공간에 다정히 서 있는 눈사람 한 쌍도 정겨 운 풍경이다. 누구의 발상으로 수십 년간 우중충했던 골목을 이렇게 예쁘게 바꾸게 되었을까? 골목 안 주민들도 좋겠지만 화사한 골목길을 지나는 나그네들도 산뜻한 기분일 것 같다. 오늘도 골목을 지나며 어떤 담장이 더 예쁜지 기분 좋은 감상을 했다.
- 2017-06-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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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member seoul, 북정마을
- 사라져가는 서울의 풍경, 우리가 보존해야 할 서울의 사대문 안의 마지막 달동네가 몇 군데 있다. 우리의 역사문화지구로 과거의 시간을 떠올려볼 수 있는 곳을 찾아가보려고 한다. 이름하여 ‘Remember seoul’이다. 허름하고 빛바랜 동네이지만 시간을 거슬러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는 북정마을, 김광섭 시인이 노래한 ‘성북동 비둘기’에 나오는 바로 그 마을이다. 성북동 산에 번지(番地)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廣場)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祝福)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중 첫 연 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 6번 출구로 나와 초록색 마을버스 03번을 타고 북정마을 노인정 앞에서 내리면 눈앞으로 아주 오래된 마을이 펼쳐진다. 복잡하게 뒤엉킨 전봇대 위의 전깃줄이 먼저 이 마을의 인상을 알려주는 듯하다. 그리고 낡은 집들과 좁은 골목이 세월을 이야기하고 마을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전한다. 건너편으로는 성곽이 길게 보인다. 일단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서 꼭대기부터 내려오기로 한다.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길을 따라 숨차게 성곽까지 올라갔다. 성벽에 서서 내려다보니 오래된 북정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더 멀리 바라보니 서울 시내도 보인다. 흔히들 부자마을로 일컫는 성북구 동네가 옆에 있다. 성문 너머로는 아파트들이 빼곡하다. 마치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린 듯한 옛 동네 북정마을과 개발된 빌딩과 아파트들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나 다시 고개를 돌려 눈에 담은 북정마을에는 따뜻한 옛정이 느껴지는 아늑함이 있다. 한양 성곽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어서 든든하기까지 하다. 마을의 가장 높은 성곽에 올라 마을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바람에 땀을 식혔다. 성곽 바깥쪽 길을 잠깐 걸어보았다. 이 길을 따라 한양 안쪽 또는 바깥쪽으로 오갔던 조상들을 잠시 상상하면서…. 현재 이 길은 이 지역 사람들의 걷기 코스로 잘 이용되고 있는 듯했다. 산책길이고 운동코스인 멋진 길이다. 성벽을 통해 북정마을을 들여다본다. 저 안에서 성북동 비둘기가 날았을 테고, 만해 한용운이 나라 걱정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이제 천천히 북정마을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군데군데 방치된 폐가가 보였다. 집을 비우고 이사 나간 사람들이 남긴 살림살이와 돌담 벽에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길 옆 텃밭들에서는 채소가 자라고 자그마한 안마당엔 정갈한 장독들이 있었고 꽃을 피우는 나무가 우뚝 서 있기도 했다. 녹슨 대문 안에선 빨래가 뽀송뽀송 마르고 있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삶의 현장이다. 빠르게 변화해가는 문명 속에서 어서 빨리 변하자며 등 떠미는 세상과는 상관없이 무심한 시간을 살고 있는 마을이 의연해 보인다. 시간은 그렇게 간다. 마을 아래로 내려와 심우장으로 가는 골목에 들어섰다. 만해 한용운의 거처였던 곳. 집의 방향이 돌아앉은 모습이다. 이를테면 북향인 것이다. 조선총독부를 등지기 위해서 남향으로 짓지 않고 북향 터를 잡았다고 한다. 투철한 저항정신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한용운은 “조선 전체가 감옥인데 어찌 불 땐 방에서 편안히 지낼 수 있는가”라며 볕이 들지 않는 이곳 북향 집에서 불도 때지 않고 겨울을 견뎠다고 한다. 심우장은 북정마을을 갈 때 빠트릴 수 없는 주요 장소다. 그러다보니 마루에 앉아 있거나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에는 만해 선생의 ’님의 침묵‘을 비롯한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다. 방이나 부엌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만해 한용운은 아쉽게도 해방되기 1년 전에 생을 마감했다. 심우장을 나와 주변의 조붓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길고양이들을 자주 본다. 이 동네에는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고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가게 앞에 나와 앉아 있다.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마을처럼 보인다. 저녁 무렵이 되니 시장을 다녀오는 어머니들이 힘들게 비탈길을 올라간다. 그 발걸음의 무게가 느껴진다. 한양 도성과 성곽이 인접해 있어 멋과 품위가 느껴지는 오래된 동네, 이런 성곽과 옛 향기가 스며 있는 문화재 보존을 위해 다행히도 재개발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마을 아래쪽에는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이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공방이 생겨나고 연극 포스터가 바람에 날린다. 이런 새 바람들이 다채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새로운 변신에 기대가 된다. 서울의 옛 모습 속에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북정마을이 변모하고 있다. 그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들이 현대 사회와 잘 어우러지면서도 푸근한 옛 모습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우리들이 할 일이다. 이제 내려와야 할 시간. 시간이 멈춘 듯 천천히 변화하며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동네. 그곳을 거닐면 유년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따스해진다. 좁은 골목을 걸으며 지친 가끔 하늘도 올려다본다. 변화해가는 마을 아래도 내려다본다. 그리고 이 세상 어디쯤에 필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 2017-06-0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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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분세락(轉糞世樂)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의 사자성어는 “전분세락(轉糞世樂)”이다. 생로병사로 이어지는 인생살이가 어려움이 많아도 살만한 구석이 많음을 강조한 말이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최고령 생존자였던 헤르츠 좀머 할머니는 110세로 생애를 마쳤다. 숨을 거두기 전에 “살면서 많은 전쟁을 겪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삶은 배울 것과 즐길 것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선물”이라는 말을 남겼다. 유대인 학살의 현장을 지켜보며 처절한 아픔을 겪었어도 인생은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여겼다. 전분세락을 웅변한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사람이 사는 동네는 살아가는 모습과 생각이 비슷하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각박해지고 혼란스러운 점이 없는 바는 아니어도 세상은 살만한 구석이 있음을 발견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좋은 사람과 기쁨이 가득하다. 이름 모를 풀 한 포기에도, 보일 듯 말 듯 한 귀퉁이에서 피는 한 송이 꽃에도 자연의 아름다움이 담겨있고 생명력이 꿈틀댄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설렘은 곧 삶의 기쁨이고 미래의 희망으로 행복의 원천이다. 삶의 기쁨은 여러 곳에서 온다.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오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겨나는 기쁨일 수도 한다. 갓난아기의 해맑은 미소에서 엄마가 그냥 행복해지듯이 말이다. 아침 일찍 고운 햇살을 반기며 이슬 머금고 피어나는 꽃송이를 바라보는 데서도 그러하다. 아침 산책길에 만나는 철 따라 피는 꽃도 기쁨을 준다.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생강나무 꽃이 있고 애기똥풀꽃도 그렇다. 대부분 사람이 그러하듯 갓 피는 꽃과 파릇한 새싹을 보고 기쁨을 느낀다. 필자가 사는 동네는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주변이 논밭이다. 모내기가 한창인 요즘 물이 가득 채워진 논에 반영된 불그스레한 일출이 장관이다. 나무 사이로 고개를 쭉 들이미는 한 줄기 햇살에 빛나는 연둣빛 잎새도 정겹고 신비스럽다. 날마다 같은 길을 걸어도 나무와 꽃, 풀 포기, 동녘에 뜨는 아침 태양이 다르게 다가온다. 시간과 날씨에 따라 자연의 모습이 달라지기에 늘 새롭게 느껴진다. 주변에 만나는 소소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어서다. 늘 아름답다는 생각이 가슴에 가득해서다. 일체유심(一切唯心造)이다. 세상은 마음먹기에 달렸음이다. 세상은 아름답게 보면 한없이 아름다워진다. 아름다운 세상을 모두 즐기기엔 인생이 짧게만 느껴진다. 일분일초가 아깝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간다. 전분세락이란 말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세월이 익어감이 아닐까? 어떻게 살아야 전분세락의 세상을 더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까? 더러는 너무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 듯하며 살았는지 모른다. ‘나쁜 포도주를 마시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라는 서양인들의 노후 삶의 철학을 배우고 싶다.
- 2017-06-0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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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굴장미를 보며
- 산책길에 나섰더니 어느새 새빨간 덩굴장미가 지천이다. 이제 연분홍 벚꽃이나 샛노란 개나리, 백목련, 자목련 등 봄꽃이 지나간 자리에 이렇게 예쁜 장미꽃이 피었다. 높은 축대가 있는 집 담장에도 흘러내릴 듯 빨간 장미가 넝쿨 졌고 산책길 한 편에도 무리 지어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어 보기에 여간 예쁜 게 아니다. 이렇게 탐스러운 덩굴장미를 보니 옛날 장미로 뒤덮였던 장미 터널이 떠오른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필자는 돈암동 한옥 한곳에서만 살았다. 우리 집, 골목에는 문화재급 되는 한옥도 여러 채 있었고 대부분의 집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한옥의 멋을 자랑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동네의 명칭은 동소문동이었고 미아리 쪽으로 한 정거장 올라간 곳에 돈암동 전차종점이 있었다. 필자는 전차 세대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전차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겠지만 필자는 여중 시절 전차로 통학을 했다. 필자가 살던 돈암동에 전차종점이 있었고, 또 동대문에 있는 종점, 경전이라는 곳에서는 한 달씩 쓸 수 있는 자유 티켓, 패스권을 팔았다. 그 패스권을 사면 한 달 동안은 무제한 프리로 전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용무가 없어도 을지로나 시내 쪽으로 타보기도 하면서 필자는 프리패스 권을 잘 이용하였다. 우리 집이 돈암동이어서 필자는 돈암동에서 전차를 타고 종로4가 광장시장 앞에서 내려 갈아타고 동대문 밖 창신동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돈암동에서 종로4가까지 가는 동안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가는데, 잊을 수 없는 건 봄이 지나 초여름 될 때쯤 로터리의 철제 터널에 하나 가득 피어있는 새빨간 덩굴장미다. 상상해보시라. 전차에 앉아 빨간 장미로 온통 뒤덮인 꽃 터널을 지나는 기분을... 지금 생각해도 너무 로맨틱하고 아름답던 광경이다. 3년 내내 봄, 여름이면 꽃 터널을 지나다니며 동화 나라를 지나는 듯한 상상을 하며 필자의 감수성을 키웠다. 필자가 고등학생이 되는 무렵 전차는 없어졌다. 그 낭만도 따라서 사라져버렸다. 전차가 지나가는 철로를 둘러싸고 있는 로터리에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무덤이 하나 있었다. 도시 한복판의 무덤이라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는데 오랫동안을 그 무덤이 그곳에 있었던 건 그 무덤을 훼손하는 사람은 죽는다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미신이었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없어진 걸 보면 누군가 용감하게 그 무덤을 옮겼나 보다. 이제 둥그런 로터리 동산은 없어지고 일직선으로 차가 다니게 되었다. 오늘도 그 혜화동 로터리를 직진으로 지나왔는데, 동그란 모습이었던 로터리와 댕댕댕~하며 달리던 전차의 기억. 어린 날의 예뻤던 추억이 그리워 가슴이 서늘하다.
- 2017-05-2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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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 )
- TV뉴스를 보던 중 그래피티(graffiti)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 어떤 호주인이 우리 지하철에 들어가 전동차에 낙서를 하고는 사라졌다는 소식이다. 그래피티는 건물 벽이나 교각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서 그리는 그림과 낙서를 말한다. 우리 동네 산책길의 다리 밑 한쪽 벽면에도 알록달록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필자는 몰랐는데 손녀와의 산책길에서 아기가 그 벽면의 그림을 보더니 “할머니 원더 볼즈에요!” 라고 해서 그 그림이 어린이용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이라는 걸 알았다. 그림이 있기 전보다 화사해진 다리 밑은 보기에 좋아서 이런 벽화라면 많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들의 미대 시절,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회사 담장에 그림을 그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보여준 사진이 그래피티의 한 종류였을 것이다. 필자 눈에도 수준 높아 보이고 멋져서 그래피티를 예술의 한 장르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래피티는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한다. 밋밋한 담장에 예쁜 그림을 그리면 보기에도 좋을 것 같은데 아무 곳에나 그려놓으면 일종의 범죄라는 말이다. 그래피티를 하는 사람들은 번개처럼 스프레이로 그림이나 메시지를 쓰고는 재빨리 도망을 간다고 한다. 담장이나 평범한 벽면이 아닌 공공장소인 지하철이나 기차역 건물 벽에 낙서해 놓으니 범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과거 뉴욕 지하철은 탈 게 못됐다고 한다. 강력 범죄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우범지대로 역무원들이 부스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낼 정도였다는데 1980년대 뉴욕시 교통국장이 지하철을 가득 채운 낙서에 주목하고 계속 청소를 했더니 지하철 범죄가 75%나 줄었다고 한다. 아마 낙서가 그렇게 아름답거나 깨끗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피티는 60년대 뉴욕 빈민가에서 시작해 세계로 퍼져나갔고 갱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는데 그 후로 차츰 사회, 정치적 비판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 낙서 예술가도 생겼다. 스물여덟 살에 타계한 뉴욕 바스키야의 작품은 경매에서 164억 원이나 호가했다니 그냥 낙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피티는 원래 그리는 장면을 들키면 안 되는 작업이어서 그 세계에서는 무엇을 그리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어디에 낙서를 하는지도 중요하고 접근하기 힘든 곳일수록 가치를 높게 쳐준다고 하니 재미있다. 낙서꾼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지하철이라는데 한밤중에 몰래 숨어 들어가 객차 전체를 통째 낙서로 채운다는 영화도 나왔단다. 외국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도 그래피티로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습격 받은 지하철이 17군데나 되었고 전담 수사관까지 생겼다고 하니 좀 걱정이다. 언젠가는 지하철역 세 군데에 그래피티 습격이 있었는데 이들은 힙합 모자와 후드 티셔츠 차림의 백인 4인조였다고 한다. 쇠톱과 절단기로 환풍구를 잘라내고 차고지에 들어가 낙서를 하고는 경찰이 손쓰기도 전에 유유히 호주로 돌아갔다는데 아마 우리나라 지하철이 깨끗하다는 소문이 나서 원정낙서까지 왔을 거라는 분석이 나왔다니 좋아해야 할 일인지 어떨지 모르겠다. 어떤 낙서를 하고 갔는지는 보도되지 않았으나 전담 수사관까지 동원되었다면 좋은 내용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그래피티가 우리 눈에 멋지고 예쁘게 보인다면 굳이 막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다. 낙서한 내용이 반사회적이거나 공포를 조장한다면 당연히 막아야 하겠지만 우리 동네 산책길의 벽화처럼 즐겁게 바라볼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던 중 들어오는 객차에 예쁜 그림이 그려있어 보기에 즐거웠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 그래피티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나 아름다운 그림으로 승화시킨다면 범죄라 하지 않고 예술의 한 장르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동네 곳곳에 나쁜 그래피티가 아닌, 보면서 즐길 수 있는 벽 그림이 많아지면 좋겠다.
- 2017-05-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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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중심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진한 삶을 보다
- 마로니에 공원의 추억을 들추며 비 내리는 날의 외출이 신나고 즐거울 시기는 지났지만 때론 예외일 때도 있다. 빗속을 뚫고 혜화동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도착하니 역시 날씨에는 아랑곳없는 청춘들이 삼삼오오 손잡고 오가고 있었다. 참 오랜만에 와보는 마로니에 공원이지만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한때 젊은이들의 문화를 꽃피웠던 이곳에서 봄날의 파릇함, 낙엽 지던 가을의 스산함을 느끼며 보냈던 한때의 시간이 떠올라서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그런 젊은 시절의 추억이 마로니에 공원에도 있을 것이므로. 이화마을과 낙산공원 산책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낙산공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본다. 이화마을의 복잡한 골목과 계단을 거쳐야만 하는데 하나하나 눈여겨보면서 걸어가는 재미도 있다. 조금은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오래된 주택가와 상점들이 조금 전 지나왔던 대학로의 첨단거리들과 대조된다. 해발 124미터 높이의 낙산 낙산을 오르다 보면 옛 풍경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이화마을이 있다. 우리가 어릴 적 보았던 골목이나 담벼락 풍경에서 푸근함을 얻는다. 아무리 그래도 유의할 점은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우리의 산책이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 우리들에겐 편안한 산책길이고 또는 행복한 데이트일 수도 있지만 그들에겐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언덕과 좁은 골목길과 낡은 계단은 계속 이어졌다. 어찌 보면 비좁은 길이 어수선해 보일 수 있지만 길 옆 풀숲이나 비 맞은 꽃과 나무들이 정겹기만 하다. 비 오는 날의 정취가 풍경들을 더 아늑하게 그려낸다. 쭉 걷다 보면 길목마다 친절한 안내 표지판이 곳곳에 있어 헤맬 일도 없으며 길을 선택해서 다닐 수 있다. 이화마을 텃밭, 이화동 대장간, 이화동 벽화마을, 낙산정, 그리고 아기자기한 벽화들과 놀이광장, 쉼터 등 지루할 틈 없는 산책길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땀이 흐른다. 이럴 땐 골목 옆의 작은 구멍가게에서 아이스바 하나 사 먹으며 숨을 고르거나 등나무 아래 정자에서 땀을 식히면 된다.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보니 이쁜 카페도 있고 가락국수이나 초밥을 파는 작고 멋진 음식점뿐 아니라 예술 갤러리도 있다. 먹으며 놀고 즐길거리가 얼마든지 있는 낙산공원이다. 중턱 이상 올라오니 성곽이 보인다. 성곽 길을 중심으로 안과 밖으로 길이 나 있다. 성곽 밖으로는 오래된 주택과 아파트가 보인다. 낙산의 옛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다. 밤에는 성곽 길에 불을 켜는데 이 불빛이 성벽을 더욱 환상적으로 만들어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특히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겐 낙산의 야경이 인기가 많아 촬영 명소가 되었다. 어느덧 전망대에 올랐다. 비에 젖은 서울이 내려다보인다. 한참을 내려다보며 땀 흘리면서 올라온 이화마을과 낙산을 되짚어 생각해본다. 낙타 모양의 산이어서 낙산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단종비인 정순왕후가 단종 폐위 이후 평민이 되어 살았던 한 서린 곳이다. 평생을 궁 안에서만 살던 정순왕후가 궁 밖으로 나와 단종을 그리워하며 살았을 그 모습을 생각하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떠올려볼 수 있는 곳이다. 온통 도시화되어가던 서울의 한 공간이 이렇게 복원되어 휴식하며 즐길 수 있음은 고마운 일 아닌가. 낙산공원 산책을 마치고 대학로 문화거리로 나가 연극 한 편 보고 맛집을 들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낙산의 산자락을 따라 동대문으로 시간이 허락된다면 낙산 성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동대문의 DDP로 향해보는 것도 좋다. 낙산의 산자락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동대문을 중심으로 하는 시내가 나오고 최첨단 현대 복합 문화시설이 어우러진 동대문 디자인플라자가 있다. 모든 건물들의 겉면이 알루미늄 패널로 되어 있고 밤이면 휘황한 조명으로 멋진 볼거리를 제공한다. DDP(Dongdaemun Design Plaza)는 3차원 첨단 설계기법 BIM을 도입했다. 이라크 태생의 세계적인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작품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알림터, 배움터, 살림터, 어울림 광장, 동대문 역사문화공원과 각종 편의시설로 이루어져 있어서 즐길거리가 아주 많다. 특히 우주선을 보는 듯한 눈부신 야경이 일품이다. 쇼핑천국 방산시장과 광장시장의 눈요기와 먹거리 동대문은 우리나라 최고의 상권인 동대문 시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들이 도처에 있다. 길 건너편으로 건너가면 광장시장과 방산시장이 있다. 1945년 광복 이전에 작은 시장이 형성되어 지금까지 발전을 거듭하며 이어져온 방산시장이 바로 앞에 있다. 이곳에서 각종 식료품이나 제과제빵 재료, 포장재와 인테리어 용품들을 시중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광장시장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시장으로 점포 수가 5000개가 넘는 대규모 의류시장이다. 뿐만 아니라 농수산품을 비롯한 먹을거리가 풍부한 시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 먹자골목의 녹두전이나 겨자 장에 찍어먹는 마약김밥은 먹지 않고 지나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할 만큼 유명하다. 저렴하고 푸짐한 최고의 메뉴다. 맛있게 잘 먹은 후 그 옆의 시원한 청계천을 바람 쐬며 거닐면 그야말로 완벽한 마무리다. 이렇게 한나절을 보낸다면 서울의 역사 유적을 감상하며 현재의 자신을 생각해볼 시간도 가질 수 있고 치열한 삶의 현장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산책길 내내 비가 내렸다. 이제 막 시작된 낙산의 여름이 비에 젖어 녹음의 짙푸름이 더했다. 비 오는 날의 외출도 보람 있고 즐거울 수 있음을 확인한 날이다. 동대문 DDP엔 날씨와 상관없이 많은 인파로 붐볐고, 광장시장과 방산시장은 여전히 활기 찬 풍경을 필자에게 보여줬다.
- 2017-05-16 1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