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아호 송유재)
꼭 42년 전 이맘때, 설악산 장군봉의 금강굴에서 홀로 7일을 지낸 일이 있었다. 군 제대 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깊은 생각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매일 마등령을 오르내리며, 세찬 바람에 스쳐지나가는 운해(雲海)의 그림자 밑에 누워 마음을 비우려 안간힘을 다했다. 새벽마다 비선대까지 내려가 찬물에 얼굴을 담그고, 그 물빛만큼이나
서울 종로구 원서동, 창경궁 돌담길을 지나 걷다 보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고아한 한옥들과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도 옹기종기 장독들이 따스한 햇볕을 머금는 곳이 있으니, 바로 ‘궁중음식연구원’이다. 1971년 궁중음식의 대가이자 인간문화재인 황혜성(黃慧性·1920~2006) 선생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전수하기 위해 마련한 곳으로,
주 무대는 압구정이다. 마피아가 주로 애용한다는 보르살리노 모자와 젊은 층이 열광하는 디젤 청바지를 즐겨 입는, 멋을 제대로 아는 사람. 패션 감각이 조금이라도 빠진다 말하면 서러워할 이 남자의 직업은 ‘서예가’다. ‘서예가’라고 해서 갓 쓰고 도포 자락 휘날리며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나? 완벽한 오산이다. 현재라는 프리즘으로 시공간 너머와 호흡하는 서예가
이재준(아호 송유재)
北風吹雪打簾波 북풍이 눈보라를 몰아 발을 치는데
永夜無眠正若何 긴 밤에 잠 못 드는 그 마음 어떠할까.
塚上他年人不到 내 죽으면 무덤을 찾는 사람 없으리니
可憐今世一枝花 가여워라 이 세상의 한 가지 꽃이여.
조선조 평양기생 소홍(小紅)이 지은 것으로 전해 오는 한시(漢詩)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새긴 김상유(1926~200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볼링그린공원과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돌진하는 황소 동상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뉴욕시립대학교. 아침 10시 무렵이 되자 세련된 차림새의 신중년들이 삼삼오오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웅장한 대리석 건물 안으로 느긋하게 들어간다. 주변에 밀집해 있는 글로벌 금융기관의 고위직 인사들처럼 보이지만 평생교육원에 등교하는 학생이자 교수들
이재준(아호 송유재)
“작가란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되기 위해서 달려갈 수도 없는 곳임을 안다.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서 빛을 발하는 것처럼, 어쩌면 자기 자신을 처절하게 바쳐서 작업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구름의 바다 위로 동이 튼다. 나는 지금 2002년 11월, 나의 열아홉 번째 개인전을 하러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속에 있다. 매일 작품이
시내 주요 호텔의 아침을 밝히는 것은 여행에 들뜬 투숙객도, 약속을 위해 찾은 방문객도 아니다. 바로 조찬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들른 경영인들이다. 이른 새벽, 이름난 호텔 정문에 서 가만히 기다려보면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의 행렬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누구보다 시간을 쪼개 쓰는 이들이 회사가 아닌 호텔에서 아침을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사
근래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라는 새로운 시사용어가 회자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조장하는 표현으로 웃어넘기기보다 거북하게 다가오는 것은 ‘네오 계급론’의 냉소적 내음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같은 동양 문화권인 한중일 삼국의 식탁 중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왜 숟가락을 볼 수 없으며, 왜 우리는 숟가락 없는 식탁을 상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
어느 선배 교수가 정년을 마치고 10년을 되돌아보며 이런 충고를 한 적이 있다.
“정년 시한은 생각보다 빨리 오고, 정년 이후 세월은 더 빨리 가네. 그런데 정년을 대비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네!”
하지만 필자의 나이 50대 때 들었던 그 선배 교수의 조언은 당시 내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
해외여행인구 2000만 명 시대를 앞둔 지금, 해외여행은 곧 생활이 되었다. 이제 여행지에서의 에티켓은 선택이 아닌 필수. 그런데 해외의 명소를 찾다 보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여행자들의 행동을 아직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여행자들의 꼴불견,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수호 여행 작가 (52개국 200도시 방문. 현직 여행기자&작가) lsh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