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기 전에’는 아이스크림에 시간의 철학을 접목해 세계관을 확장하는 디저트 가게다. 녹싸(녹기 전에 사장)는 녹기 전에, 늦기 전에 만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매개로 연결된 사람들이 시간을 음미하길 바란다. 신간 ‘좋은 기분’에는 흐르는 순간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일과 삶의 태도를 단단히 한 그 만의 경험을 스쿱 가득 담았다.
외관부터 요상하고 의미심장하다. 간판 대신 멈추지 않는 시계와 하루하루 넘기는 형태의 달력이 걸려 있다. 재고 관리가 자신 없어 매일 다른 아이스크림으로 진열장을 채우고(그렇게 탄생한 메뉴만 350가지 이상이다), 디자인에 서툴러 로고조차 새기지 않은 컵과 포장 용기는 오히려 상징이 됐다. 내부 곳곳엔 시간을 주제로 한 책들과 흘러넘치는 아이스크림 모형이 비치돼 있다. 메뉴 순위가 궁금할 이들을 위해 “10.아이스크림의 9.맛 선호도는 8.인기의 7.문제가 6.아니라 5.각자가 가진 4.취향의 3.문제 2.입니다 1.쌀”이라는 재미난 설명도 붙어 있다. 남다른 분위기의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다.
이곳의 주인 녹싸는 팀원들과 아이스크림을 중심으로 다양한 일을 도모한다. 공식 SNS 계정에 손님들이 남기고 간 사연이나 방명록을 라이브 방송으로 소개하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녹기 전에 주주총회’를 연다. 물론 이외에도 악필대회, 사생대회를 열거나, 숲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한 달에 한 번씩 함께할 누군가를 모집해 나무를 심으러 가기도 한다. 정체성을 물으니 “여기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흐물흐물한 곳이에요. 아이스크림은 핑계죠”라 대답한 이유가 있었다.
흐르는 시간과 아이스크림
‘녹기 전에’가 탄생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어릴 적부터 줄곧 시간에 대한 화두를 껴안고 살았다. 머리를 맞대고 듣는 벽시계 초침 소리가 좋았고, 짧은 시간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긴 시간은 단순히 재단하기 힘든 감동이 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공상은 ‘죽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는가’라는 고민으로 끝났다. 살면서 의존할 만한 안식처는 즐거운 기억뿐이라는 확신에, 한평생 질린 적 없는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 하고 많은 디저트 중 ‘흘러서’ 시간을 알려주는 아이스크림은 삶과 미래, 죽음에 대해 넌지시 교훈을 준다고, 세상에 기여할 일이 지금보다 훨씬 많을 거라 생각했다.
“2017년 종로구 익선동에서 호기롭게 장사를 시작했지만 빠른 상권 변화에 부침을 겪었습니다. 옆에 크레페·호떡 등 다른 디저트 가게가 생길 때마다 크게 영향을 받았고, ‘핫플레이스’ 특성상 일회성 방문이 대부분이라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느껴줄 단골손님이 없었어요. 매출이 떨어지니 자신감이 바닥나 한동안 가게 안쪽에 숨어 있었죠. 새벽 4시까지 닥치는 대로 콘텐츠 기획, 마케팅, 브랜딩, 디자인 분야의 책을 읽었어요. 각자의 위치에서 활약하는 멋진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독서 생활의 말미에는 ‘아, 결국 동력을 얻으려면 책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인간인지 먼저 들여다보고, 현장 경험으로 체득해야 하는구나!’ 깨달았어요. 그러던 중 2022년 마포구 염리동이라는 동네로 이사했고, 접객의 의미에 더욱 집중하게 됐습니다.”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
많은 점주가 접객 업무를 단순노동으로 여긴다. 점원도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때우거나, 경력 쌓기와는 무관한 스쳐가는 일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자기 시간의 일부를 할애하는데도 소모적이라고만 여기며 하루를 보내기 십상이다. 그러나 녹싸는 접객이 제조자의 세계와 손님의 세계를 매끄럽게 이어주고, 주파수를 맞추는 섬세한 작업이라 말한다. 신간 ‘좋은 기분’은 원래 가게의 또 다른 얼굴이 되어줄 동료를 구하며 해주고 싶은 말을 모아 쓴 글이다. 100쪽이 넘는 별난 채용공고는 입소문을 타면서 책으로 출간됐다.
“과거에는 오히려 제품을 전달하는 사람의 역할이 더 컸어요. 이 제품으로 당신의 삶이 얼마나 윤택해질지 납득시키려면 누군가 친절히 설명해줘야 했죠. 점점 개인의 기분과 역할은 도외시되고 흘러넘치는 물건 자체에만 집중하는 현상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키오스크나 로봇으로 대신하는 풍경도 꽤 익숙해졌어요. 하지만 저는 오래 지속됐던 것들의 힘을 믿습니다. 직접 인사를 건네고, 상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접객 일도 마찬가지에요. 다만 나를 갉아먹는 상태에서 서비스하지 않으려면 걷고, 목욕하고, 책을 읽고, 불멍을 하는 등 일과 삶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번잡함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습니다. 일의 목적과 가치를 분명히 하고 내면의 근육까지 단단하게 만들 수 있어요.”
덕분에 ‘녹기 전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편히 찾는 일상의 거처가 됐다. 어떤 기준으로 아이디어를 좁히거나, 뾰족한 마케팅으로 일부를 소외시키지 않는다. 특정 연령만을 대변하기에는 아이스크림이 모든 세대가 전 생애에 걸쳐 즐기는 디저트라서다. 오늘도 그는 6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조금 퉁명스러운 단골손님이 오면 ‘스푼은 2개, 집에 가는 길은 30분 정도 소요된다’는 사실을 바로 떠올린다.
“아이스크림 매장 접객은 찾아온 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바라보고 유지해주는 일입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항상 눈에 생기를 띠는데, 그 흐름을 해쳐선 안 돼요. 가게 주인과 직원이 올바른 가치관과 의식을 부지런히 공유해 값진 매장 경험을 겪도록 힘써야 하죠. 그러다 보면 누군가 ‘진정성’의 유무를 판단하지 않을까요. 그저 소박하게 자리한 가게 정도로 생각해줬으면 합니다. 간판 대신 걸린 시계를 보며 동네 주민들이 시간을 확인하고, 오가며 마음 나눌 편한 공간이 됐으면 해요.”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로 만든 집,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호랑이가 달라고 보채던 떡, ‘디즈니 동화’의 오리 스크루지 영감이 끓인 단추 수프… 어릴 적 읽던 책에 나온 음식에 괜히 군침 삼킨 적이 있는가?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우리는 그 요리를 탐내는 것으로 모자라, 참지 못하고 한밤중에 라면 물이라도 올리게 된다. 열혈 문학 독자인 이용재 음식 평론가는 신간 ‘맛있는 소설’을 통해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깊이 있게 먹음직스러운 문학 속 음식들을 차려냈다.
음식은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사회적 인식이 담긴 주요 지표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 살피면 세상의 외피와 내면을 고루 들여다볼 수 있다. 이용재 음식 평론가는 15년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식재료, 조리 도구, 요리, 식문화를 폭넓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글로 풀어내 좌표에 올려놓는 작업을 해왔다. 이탈리아 음식 분야 최고의 요리책 ‘실버 스푼’ 외 ‘패밀리 밀’, ‘식탁의 기쁨’ 등 음식 관련서를 번역했으며, 비평의 성격을 띠는 ‘냉면의 품격’, ‘한식의 품격’, 생존을 위한 조리 지침을 담은 ‘조리 도구의 세계’,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등을 펴냈다.
세 종류의 맛있는 인생
이용재 평론가의 인생 궤도는 ‘먹고’, ‘읽고’, ‘쓰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던 터라 할머니가 해준 음식을 먹거나 직접 요리하는 일이 많았다. 자연히 음식에 관심이 생겼고, 관련 책을 탐독하기도 했다. 스물여덟 무렵 건축학도였던 그는 미국으로 유학 가면서 적적함을 달래려 요리를 독학했다고 한다.
“빵을 반죽하고, 스테이크를 굽고, 와인을 곁들여 마시기도 했어요. 본격적으로 전채부터 후식까지 코스를 짜서 만들고 먹는 모든 과정을 직접 소화해보는 거죠. 문득 취미 생활을 기록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블로그에 글을 5년 정도 꾸준히 올렸어요. 그러던 중 대학원을 졸업하고 애틀랜타의 건축회사에서 일했는데, 경기가 나빠지면서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당시 충동적으로 ‘글 쓰는 일을 해볼까?’ 하며 이력서와 몇 편의 글, 미국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의 번역 기획안 등을 만들어 출판사와 잡지사에 보냈어요. 글쓰기의 뿌리는 그때부터였네요.”
맛을 둘러싼 가치와 철학
평론이나 비평은 가치를 분석하고 판단해 명료하게 전달하는 일이다. 그러나 음식 평론 자체만으로는 전문가의 자격을 심사받지 않는 분야인 탓에 비교적 고된 길을 걸어왔다. 7~8년 전, 그가 음식 전문지 ‘올리브’에 ‘한국 최초의 레스토랑’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하던 때였다. 당시 한국은 모던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개념이 막 주목받던 시기였다. 오랜 타국 생활로 다양한 음식 문화를 접한 데다, 건축 공부를 통해 균형 있는 관점까지 몸에 배 있으니 평론에 좀 더 객관적일 수 있었다. ‘먹고 겪은 대로 쓴다!’며 너무도 솔직한(?) 후기를 작성했고, 독자들은 ‘우리나라에 없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는데 응원하지는 못할망정 알지도 못하면서 혹평한다’고 손가락질했단다.
“음식이 맛있다, 맛없다로 단순하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에요. 재료의 특성과 조화, 조리의 원리, 사회적인 맥락 등을 통틀어 보거든요. 경력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이유만으로 젊은 사람들을 싼 임금으로 고용해서 혹사하는 노동 현실, 유행처럼 번진 단기 요리 교육 과정, 부족한 실무 경험 등 여러 원인으로 레스토랑에서 선보이는 음식들의 완성도가 낮은 상태였어요. 감사하게도 제 글을 읽은 뒤 현실을 깨닫고 제대로 공부했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일종의 순기능이죠. 아무쪼록 개인의 의견과 괴리가 있을지라도, 요리라는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 과정이 와 닿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상상력에 불을 댕길 작품 속 음식들
수년의 경험과 철학을 꾹꾹 눌러 담은 저서는 어느덧 여덟 권이 됐다. 신간 ‘맛있는 소설’은 2019년 여름께, 한 방송국으로부터 교양 프로그램 출연 제안을 받고 기획했다. 소설 내 음식을 탐구하는 주제를 제안했는데, 소통이 매끄럽지 못했고 대우도 나빠서 결국 출연 결정을 철회했다. 방송 기회는 물 건너갔지만 출판의 가능성을 두고 기획안을 만들었다. 마침 지난 저서 ‘외식의 품격’을 함께 만든 편집자와 다시 뭉치게 됐다. 장난감 대신 세계문학 전집을 죽어라 읽던 어린 그로부터 시작된 산물일 테다. 그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 보던 명작 ‘작은 아씨들’과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식재료의 속사정을 이야기한다.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비프스튜와 콘비프샌드위치, ‘노르웨이의 숲’의 김에 싸서 간장에 찍은 오이, ‘댄스 댄스 댄스’의 유키가 마시는 피나콜라다 등을 한 울타리에 모았다. 비교적 최근 출간된 ‘채식주의자’,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사회적 현실도 내포했다.
“2022년 내내 원고를 썼는데, 예상보다 훨씬 힘들고 버거웠어요. 항상 글로써 스스로를 증명하고 누군가를 납득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던 터라, 냈던 책들과는 다른 시도를 했거든요. 특히 하루키 부분은 심한 압박을 받았습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음식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죠. 크게 소문난 식당은 반드시 찾아가 맛보고 리뷰를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요. 흐름이 끊길까 봐 잠도 푹 자지 못했죠.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기 일쑤였어요. 그래도 완성하고 나니 소설이라는 식재료로 구성한 모든 메뉴가 충실한 뷔페 같더라고요. 책 만들기와 글쓰기는 제게 언제나 병증과도 같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독자들은 마음껏 맛보고 즐기셨으면 해요. ‘이 작가가 허투루 책을 내는 사람은 아니네, 두고두고 읽을거리가 있구나’라고 느낀다면 더 좋고요!”
겨울에 떠나는 섬 여행이다. 여름 무렵 사람이 몰려드는 섬과 달리 겨울 섬에서는 세상의 소음에서 해방되어 더 많은 자유와 더 넓은 시야를 얻는다. 신안은 섬들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무수한 섬과 바다로 둘러싸였다. 도심에서 뚝 떨어진 신안 섬마을은 고즈넉하다. 시간이 정지된 듯하지만 막상 들어서면 자연과 함께 잘 가꾸어진 섬의 다채로운 색채가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무려 1004개의 섬이 존재하는 신안이다. 밀물과 썰물과는 상관없이 흙과 식물이 물 위로 존재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는데, 신안군은 1004라는 이름으로 섬을 알렸다. 실제로는 72개의 유인도와 953개의 무인도가 있다고 전한다. 신안섬 가는 길은 늘씬하게 긴 천사(1004)대교가 아득할 뻔한 시간을 단축시켰다. 이미 도시화된 큰 섬과 달리 넓지 않은 각각의 작은 섬이 가까이 연결되어 있어 유연하게 코스를 이어갈 수 있는 자유로움 또한 좋다.
목포에서 신안 압해도를 잇는 압해대교를 건너면 신안갯벌 세계유산 등재라는 묵직한 석재 안내판이 맞아준다. 길 양옆의 바다는 드넓은 갯벌을 이룬다. 습지보호지역으로 보호받고 있는, 끝없이 펼쳐진 갯벌을 내려다보는 겨울 하늘이 푸르다.
압해읍의 노을해변 쪽으로 가다 보면 애기동백으로 뒤덮인 1004섬 분재정원과 저녁노을미술관이 나타난다. 이곳을 둘러보고 해변으로 잠깐 내려가 보자. 신안갯벌 습지보호지역으로서 신안의 해상 영웅 수달장군상 저편으로 펼쳐진 드넓은 갯벌을 볼 수 있다. 이곳은 갯벌낙지 맨손어업 전통 기술과 문화 계승을 위한 국가 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압해도에서 천사대교가 연결해준 섬은 암태도와 팔금도, 안좌도와 자은도, 그리고 수많은 섬이 바다 위로 봉긋봉긋 평화롭게 떠 있다. 다리를 건너면 가장 먼저 암태도가 나타난다. 곧바로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소작인 항쟁 기념탑이 있으니 잠깐 들러보자.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비호를 받던 땅 주인들에게 소작인들이 맞서 승리한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무엇보다 기동삼거리 동백꽃 파마의 노부부 벽화는 지나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얼핏 볼 때는 파마머리를 한 노부부인데, 다가가 보면 담벼락 안에서 자라는 동백나무가 절묘하게 머리 위에 얹혀 있는 모양이다. 재미있고 정겨운 벽화 덕에 천사대교 개통과 함께 암태도 최고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평생을 사이좋게 잘 살아온 노부부의 얼굴이다. 인자하고 편안한 모습이 서로 닮아 사람들의 마음을 더 끌었을 것 같다.
자은도, 무한의 다리와 1004뮤지엄파크의 해변
암태도에서 은암대교를 거치면 자은도다. 해수욕장이 많은 자은도에는 백길해변과 분계해변의 노송 군락과 백사장이 눈부시고, 일몰로 이름난 둔장해변도 있다. 섬 북쪽에 위치한 둔장해변의 볼거리는 목교인 ‘무한의 다리’다. 신안섬을 상징하는 의미로 다리 길이도 1004m다. 다리 입구 안내석에 ‘Ponte dell Infinito’라 새겨져 있듯이 섬의 무한한 가치와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는 이름이다. 스위스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박은선 작가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다리 위를 걷는 이를 양옆에서 둥글게 감싸주는 듯한 곡선의 난간이 독특하다. 구리도와 할미도까지 천천히 걸어도 20분 남짓이어서 바다 위를 걷는 산책 코스로 적당하다.
물이 제법 빠져나간 다리를 걸으면 암석으로 이루어진 구리도가 눈앞에 있고, 금실 좋은 노부부의 전설이 담긴 할미도로 이어진다. 고기잡이 나간 할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섬에 나가 애타게 기다리던 할머니의 그리움은 돌로 변했다는, 어디선가 들어봄 직한 이야기처럼 바다를 향한 할미바위의 뒷모습이 아릿하다.
이번엔 자은도 서쪽 해변에 볼거리 푸짐한 ‘1004뮤지엄파크’가 기다린다. 천사대교에서 시작한다면 자동차로 30분 정도 거리다. 하나의 섬에 하나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건립하는 ‘1도(島) 1뮤지엄’이라는 신안군의 야심 찬 프로젝트를 여기서 제대로 볼 수 있다. 청정 자연인 이곳에 7000여 점의 조개껍데기와 표본을 전시한 세계조개박물관, 신비롭고 아기자기한 수석미술관과 수석정원, 사계절 각기 다른 꽃을 피우는 새우란전시관, 연구센터 등이 어우러져 있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바다를 앞에 둔 거대한 신안섬의 예술과 자연을 한 군데서 여유롭게 즐겨볼 만하다.
섬을 느끼고 섬의 질감을 누리는 일은 역시 바다가 아닌가. 해변으로 나가는 길에 높은 모래 언덕이 눈앞을 막는다. 고운 모래에 밀리며 느려지는 발걸음이 오히려 마음을 느긋하게 해준다. 모래섬 언덕 위에 얹은 피아노가 푸른 바다의 파도와 하늘과 어우러져 멋스럽다. 낮은 무음과도 같은 바람과 섬에 흐르는 피아노 선율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헝클어진 머릿속을 헹궈내는 일, 해변의 고둥 조형물이 자연스러운 여기가 최적이다.
푸른 바다를 보며 꿈꾼 화가 김환기 고택
암태도에서 팔금도를 지나 안좌도로 들어서면서 보이는 길목의 보라색 다리가 퍼플섬을 예감하게 한다. 하지만 그전에 시원한 푸른색 지붕이 마을 가득하다. 푸른빛의 화가 김환기의 읍동마을 옛집이 이렇게 맞아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화가다. 안좌면 마을 안쪽에 위치한 옛집의 안채와 화실을 돌아보면서 방학이면 내려와 그림을 그렸다는 화가의 옛 모습을 떠올려본다. 화면 가득 푸른빛으로 채운 작가의 감수성은 고향의 푸른 바다와 하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예술가의 정갈한 목조 기와집이 조용히 자리한 작은 섬. 김환기 화백의 옛 시절과 그림을 향한 열정을 인문학적으로 느껴볼 기회다. 화가의 작품 세계와 그의 곁을 지켰던 김향안 여사와의 사랑과 예술혼의 바탕이 여기에 있었다. 현재 김환기 고택은 해체 보수공사 중으로, 1월 중순 마무리 예정이라는 공사 안내가 있었다.
보랏빛 세상, 퍼플섬
안좌도를 가장 핫한 섬으로 이끈 것은 ‘퍼플’이다. 안좌면의 작은 섬 박지도에 도착하니 눈앞이 온통 보랏빛이다. 할머니들이 쉬고 있는 정자의 지붕도, 표지판이나 안내 광고판도, 공중전화 부스도, 동네 길의 바닥도,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와 섬 쓰레기를 버리는 차량까지 모두 보라색이다. 정말 동화 속 같은 퍼플섬이다.
일단 길게 이어지는 목교인 퍼플교를 건너봐야 한다. 안좌도 두리마을에서 박지도까지, 그리고 반월도까지 총 1460m로 이어진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바가지를 닮았다는 섬 박지도가 있다. 해안 산책로와 퍼플 숲길을 따라 봄과 여름이면 보랏빛 라벤더 정원이 눈부시고, 가을과 겨울 초반에는 키 작은 아스타꽃이 여행자들을 사로잡는다. 퍼플교 끄트머리에서 만나는 바람의 언덕과 다시 이어지는 반월도까지 한 바퀴 빙 돌다 보면 그저 보랏빛 세상이다. 퍼플섬 입장료는 5000원이며, 보라색 옷을 착용했다면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요트 이야기, 숙소와 맛집
암태도 오도선착장에서 1004섬 세일링 요트 투어가 있으니 이용해볼 만하다. 요트 투어는 오도항을 출발해 천사대교를 지나는 1시간 정도의 코스로, 하얀 요트와 푸른 바다의 환상적인 조화가 멋지다. 기본 투어, 낙조 투어, 야경 투어 중에 선택하면 된다. 살다가 가끔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자신에게 이런 시간을 선물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신안 맛집은 각 섬마을마다 수산물 메뉴가 지천이다. 신안섬을 달리다 암태도 도로변에서 만난 ‘신안맛집’은 가성비 좋은 회덮밥이 푸짐하다. 목포 하당로의 ‘어문당’은 큼직한 화덕에서 구워내는 신선한 생선구이가 일품이며 호불호가 없는 식당이다. 숙소는 섬에서 묵어도 좋고, 목포에 숙소를 두고 목포 도심과 신안섬 여행을 병행해도 좋다. 목포의 ‘누스테이 목포’는 집이나 회사가 아닌 휴가지에서 근무하는 형태의 워케이션이 가능한 숙소다. 평소의 일상을 그대로 누릴 수 있도록 잘 갖추어진 단독 2층의 감성 숙소로, 목포항과 유달산, 목포 도심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보리마당로에 위치한다.
청룡의 해, 갑진년(甲辰年)이 밝았다. 청룡은 동서남북 방위를 다스리는 사신(四神) 중 하나로서, 동쪽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동쪽은 일출이 시작되는 방향으로 진취적인 에너지와 희망을 나타낸다. 특히 청룡은 용 중에서도 젊은 용으로서 생동감 있고 변화무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가 건강미 넘치고 역동적인 해로 해석되는 이유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되어온 ‘MZ세대’를 떠올리게 한다.
MZ세대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음식, 춤, 운동 등의 관심사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소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새로운 트렌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올해에도 MZ세대를 중심으로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문화가 형성될 전망인 가운데, MZ 문화별로 주의해야 하는 건강법들을 자생한방병원 홍순성 원장의 도움말로 알아보자.
‘핫플’에 ‘오픈런’까지 줄서기…골반 불균형 주의해야
MZ세대 문화의 대표적인 예로 ‘줄서기’를 들 수 있다. 맛집, 팝업스토어, 전시회 등 이른바 핫플레이스 앞에 길게 늘어선 대기 행렬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남들보다 빠른 경험을 위해 오픈런(매장 문이 열리기 전부터 대기하는 일)에 나서는 일도 많다. 특히 오픈런은 MZ세대가 주도하는 모습이다. 실제 한 시장조사업체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오픈런에 대한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47.4%가 오픈런을 경험해 본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별 경험 비율로는 20대가 94.7%, 30대가 91.6%로 40(38.6%)·50대(5.5%) 대비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건강상 주의해야 할 점은 장시간 줄을 서다 보면 짝다리를 짚는 등 자세가 비뚤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특히 짝다리는 몸의 무게 중심을 한쪽으로 쏠리게 해 골반을 틀어지게 한다. 골반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면 척추가 옆으로 휘는 ‘척추측만증(척추옆굽음증)’으로 발전해 요통이 동반되는 경우도 잦다. 골반이 척추를 받치고 있는 만큼 척추의 균형도 덩달아 깨지기 때문이다.
자생한방병원 홍순성 원장에 따르면 “골반 불균형은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내부 장기에도 악영향을 끼쳐 여성들에게는 생리불순과 생리통 등을 심화시키기도 한다”며 “골반 불균형이 의심된다면 전문의를 찾아 틀어진 골반을 교정하는 등 적절한 진료를 받는 것이 현명하다”고 덧붙였다.
‘마라탕’ 먹고 ‘탕후루’ 후식까지…MZ ‘맵단짠’ 문화, 젊은 고혈압∙당뇨 불러
먹거리 문화도 MZ세대 입맛을 중심으로 변화를 맞이하는 추세다. 마라탕, 탕후루 등의 음식들은 자극적이고 중독성 있는 맛으로 젊은 층에게 뜨거운 인기를 얻으며 MZ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 탕후루와 마라 음식은 지난해 한 배달 어플리케이션의 인기 메뉴 1위와 2위로 각각 선정됐으며, 특히 탕후루의 경우 주문 증가율이 2022년 대비 약 1만4000%나 늘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맵단짠(맵고 달고 짠)’ 식습관은 위장에 큰 부담을 준다. 맵고 짠 음식의 과도한 섭취는 위염, 위산과다 등의 위험을 높이고 고당류의 음식은 중성지방과 혈당을 증가시킬 수 있다. 마라탕의 경우 1인분 열량이 보통 1800kcal 정도로, 밥 한 공기가 약 300kcal인 것을 감안했을 때 엄청난 고열량 음식이다. 나트륨 수치도 약 2000~3000mg으로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루 전체 섭취 권장량과 비슷하거나 더 높다.
맵단짠 음식은 젊은 세대의 고혈압, 당뇨 등 심혈관계 및 대사 질환 발생에도 일조한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30대 당뇨 환자는 지난 2018년 13만 9682명에서 2022년 17만 4485명으로 24.9% 증가했고, 고혈압 환자는 21만 3136명에서 25만 8832명으로 21.4% 늘었다. 특히 평소 잦은 음주나 흡연 등의 생활 습관으로 혈압이나 혈당 수치가 높다면 저염식 식단으로 관리에 나서는 것을 권장한다. 또한 자극적인 양념을 배제하고 포만감이 높은 통곡물과 야채를 중심으로 구성된 저염식 식단은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음식 섭취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바디프로필’ 열풍…극단적 다이어트, 영양 밸런스 챙겨야
멋진 몸매에 대한 MZ세대의 관심도 매우 증가했다.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SNS 인증을 통해 운동에 대한 열정을 뽐내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멋진 몸을 만들어 사진으로 기록하는 ‘바디프로필’ 촬영도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다양한 컨셉의 바디프로필이 유행하며 인스타그램 내 관련 게시글은 현재 500만 개 이상에 달한다.
그러나 무리한 바디프로필 촬영은 오히려 건강에 독이 되기도 한다.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몸을 단기간에 만들다 보면 다이어트에 극단적으로 몰입하게 되는데, 이는 바디프로필 촬영 이후 체중 요요현상이나 근골격계의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 과한 다이어트는 촬영 당시의 체지방은 줄일 수 있겠지만, 오히려 뼈와 근육의 영양결핍 상태를 초래하고 전신의 근육과 인대를 약화시키는 등 골관절염의 유발 가능성도 높인다.
따라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언제나 균형 잡힌 운동 습관이 필요하다. 무산소와 유산소 운동 모두 병행함과 동시에 충분한 단백질, 칼슘 등의 섭취를 통해 뼈와 근육에도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줘야 한다. 바디프로필의 목적은 건강한 몸을 기록하는 것인 만큼 내·외면 모두 아름답게 관리하도록 하자. 또한 바디프로필 준비 중 관절이나 몸에 통증이 생기면 촬영을 미루더라도 치료에 나서 증상 악화를 방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스우파’, ‘슬릭백’ 등 너도나도 ‘댄스 챌린지’….관절 부상 요주의
지난해 바디프로필만큼이나 유행한 트렌드는 바로 ‘댄스 챌린지’다. 댄스 챌린지란 유튜브 쇼츠, 틱톡 등 영상 기반 SNS 플랫폼을 통해 노래 하이라이트 부분의 안무 영상을 게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반인들을 비롯한 유명 연예인들도 적극 참여하면서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종영한 유명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유튜브 누적 조회 수가 5억회를 돌파한 바 있으며, 이른바 공중부양 춤으로 알려진 ‘슬릭백 챌린지’도 2억뷰를 넘기는 등 큰 유행을 끌었다.
그러나 아무리 젊다고 한들 영상 속 춤을 여과 없이 따라 하다 보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발목, 무릎과 같이 체중을 지탱하는 관절은 같은 춤 동작을 반복하다 쉽게 손상될 수 있는 부위로 꼽힌다. 실제 한 국내 대학에서 스트릿댄서 100명의 부상을 조사한 결과 ‘발목’이 67.7%로 부상이 가장 빈번한 부위로 꼽혔으며, 그중에서도 ‘염좌’의 비중이 제일 높았다.
자생한방병원 홍순성 원장은 “멋진 영상을 위해 무리한 연습을 강행하다 관절에 염좌가 발생했다면 근육과 인대의 손상이 더 악화하기 전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그중 약침 치료는 한약재 성분을 체내에 직접 주입해 염증을 빠르게 가라앉히고 손상된 조직을 회복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격투기’에 ‘풋살’까지….땀 흘리며 성취감 느끼는 여성, 골절 부상 주의
재밌게 건강을 추구하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가 MZ세대를 중심으로 떠오르며 헬스 외에도 다양한 스포츠에 눈을 돌리는 MZ들도 많아졌다. 특히 이들은 새로운 문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기존 남성 위주였던 스포츠에 여성 MZ들의 참여율을 크게 높였다. 치열한 몸싸움이 동반되는 격한 종목임에도 땀 흘리며 이루는 성취감과 공동체 의식이 성별의 장벽을 뛰어넘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중 풋살의 경우 여성 연예인들의 풋살 경기를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으며 여성 풋살 동호인들이 급격히 증가했다. 2022년에 개최된 한 여성 풋살 대회에는 약 3400여 명의 선수가 참여할 정도였다.
하지만 풋살, 격투기 등 격한 스포츠는 빠르게 움직이며 온몸의 힘을 써야 하는 만큼 상대방과 부딪히거나 넘어졌을 때 강한 충격으로 골절과 같은 부상을 입기 쉽다. 골절의 종류에 따라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단순한 골절 형태인 ‘외상성 골절’의 경우에는 한방통합치료와 같은 보존적 치료로 회복할 수 있다. 실제 자생한방병원의 논문에 따르면 외상성 골절에 대한 침·약침 치료, 한약 처방 등의 한방통합치료는 통증 감소와 기능 개선에 효과적이며 환자들의 만족도 또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운동 전에는 스트레칭을 통해 근육과 관절을 충분히 유연하게 하고 손목, 무릎 등 관절보호대를 착용해 외부 충격으로부터의 부상을 방지하도록 하자.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실력에 맞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을 즐겨야 한다. 도전하며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하게 오래 즐기는 것이다.
‘e스포츠’ 게임 열풍…일자목증후군 주의해야
e스포츠에 대한 MZ세대의 관심도 매우 뜨겁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30세대 게임 이용률은 80%를 넘겼으며 최근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한 게임 대회의 누적 시청자 수는 4억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특히 e스포츠 사상 최초로 대규모 거리 응원이 진행된 광화문에서는 추운 날씨였음에도 ‘페이커’ 이상혁 선수를 연호하는 팬들의 응원이 이어져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페이커를 선망하며 멋진 플레이를 펼쳐보려는 MZ세대도 건강 관리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일자목증후군(거북목증후군)’은 한 대회에서 선수들이 전부 일자목 자세로 서 있는 사진이 아직도 화제가 될 정도로 프로게이머들에게 자주 보이는 증상 중 하나다. 장시간 앉아서 화면에 몰입하다 보면 머리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쏠리며 뒷목에 상당한 부담을 안기는데, 이는 일자목증후군을 야기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또한 일자목증후군은 경추(목뼈)를 충격과 하중에 취약하게 해 목디스크 등 각종 경추 질환의 발생 위험도 높인다.
자생한방병원 홍순성 원장은 “앉은 자세에서 고개를 뒤로 15초, 좌우로 15초씩 젖혀주는 스트레칭을 평소 반복해 주면 경추 관리와 일자목증후군 예방에 효과적”이라며 “모든 질환은 치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듯 다양한 취미를 즐기는 MZ세대들이 건강에 더욱 관심을 갖고 역동적인 새해를 보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기부자들은 나서길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좀 도와달라’고 내미는 손길에 곤란해지기 일쑤여서다. ‘붕어빵 아저씨’ 김남수(67) 씨는 인터뷰를 마다하는 법이 없다. 모두를 도울 수는 없지만, 본인을 보고 한 사람이라도 더 기부에 동참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얼굴을 팔겠다는 각오다. 그는 오늘도 외친다. “붕어빵 장수도 기부합니다!”
‘붕어빵 아저씨’는 불특정 다수가 될 수 있지만, 전라북도 익산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익산에서 ‘붕어빵 아저씨’는 한 사람을 가리킨다. 바로 김남수 씨다.
김 씨의 또 다른 이름은 ‘기부 천사’다. 10여 년 전 익산에 터를 잡은 그는 하루에 1만 원씩, 1년 365일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어머니께 배운 작은 기부론
김남수 씨의 일터는 원광대학교병원 정문 맞은편에 있는 ‘쿠키 붕어빵’이다. 쿠키와 빵 사이 절묘한 맛의 조화를 이룬 붕어빵 맛집을 운영 중이다. “우리 집 붕어빵 정말 맛있어요. 겉은 쿠키처럼 바삭하고 속은 빵처럼 부드럽거든요. 붕어빵 하나를 팔아도 나만의 맛을 만들고 싶어서 직접 반죽을 개발했어요. 배합 노하우가 담긴 반죽을 써요.”
붕어빵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 태도에서 과거 김 씨를 엿볼 수 있다. 한때 그는 레스토랑, 노래방 등 3개 업소를 동시에 운영할 정도로 여유 있는 사업가였다. 남부러울 것 없던 그의 삶은 1997년 IMF 외환위기와 함께 무너졌다. 극심한 불경기에 소비가 얼어붙으면서 매장은 헐값에 남의 손에 넘어갔고 재산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영세민(기초수급자) 신세가 된 건 순식간이었다.
김남수 씨는 전주 지하보도에서 노점을 하며 재기를 꿈꿨다. 계란빵과 오징어 다리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고, 익산으로 가면서 ‘쿠키 붕어빵’을 개발했다. 그즈음 유난히 베풀길 좋아했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남을 참 많이 도우셨어요. 못사는데도 나눠 먹는 걸 좋아하셨지요. 불만이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머니의 나눔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저도 베푸는 걸 좋아하나 봐요.”
지난해까지 김남수 씨가 익산시에 전달한 성금은 3000만 원이 넘는다. 2012년 인연을 맺은 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있다. 강원도 산불 화재와 메르스 사태, 코로나19 확산 등 나라에 굵직한 일이 발생했을 때는 물론, 익산의 일에도 두 손을 걷어붙인다. 그의 익산 사랑은 시청 직원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신정아 익산시청 복지정책과 주무관은 “익산시를 정말 사랑하는 분”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무척 적극적이세요. 익산시에 일이 있으면 몸이 먼저 움직이시는 것 같아요. 성금이나 물품 기탁도 하시고, 홍보 문구를 제작해 오기도 하시죠. 지난해 ‘다이로움’이라고 밥차 발대식을 할 때는 붕어빵 기계를 가지고 오셔서 300개를 현장에서 구워주셨어요. 김남수 선생님은 기부가 생활이세요.”
정작 김남수 씨는 무엇을 얼마나 기부했는지 알지 못한다. 30여 년 전 전주 오목대 산동네에 사비 100만 원을 들여 난간을 설치한 일, 2004년부터 전주종합사회복지관에 기부해온 일 등을 머릿속 어딘가에 넣어두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얼마를 기부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계산하지 않으니까요. 솔직히 나 혼자 한다고 해서 몇 푼이나 되겠어요? 결코 크지 않을 겁니다. 그저 붕어빵 장수도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이 가지지 않아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요. 많은 사람이 동참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금액이 적으면 적은 대로 기부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살면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이에요.”
김남수 씨의 기부에는 기약이 없다. 언제까지 기부하겠다는 다짐도 하지 않는다. 1997년 별안간 거리로 내몰린 것처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보다 어려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행복을 안고 하루하루 살아가겠다고 했다. “연말에 365만 원을 들고 익산시청 가는 게 재밌어요. 정말 행복해요.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약하지 않아요. 하루에 만 원씩 내놓지 못할 날이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또 10년 후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아무도 모르죠. 할 수 있는 날까지 할 생각입니다.”
한동안 한 달 살기나 일 년 살기가 유행처럼 퍼졌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주를 여행해도 일주일 살기라 하듯 하루이틀을 지내도 그 지역에 스며든 여행을 선호한다. 목포에 머물면서 요즘 새로운 여행 패턴인 짧게 살아보기를 경험했다.
목포의 골목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쪽문 옆을 지나고 작은 텃밭을 지나 그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2박 3일을 살았다.
1897년 목포항 개항 이후 ‘목포는 항구다’라는 말은 지금껏 불변이다. 목포 유달산 중턱엔 가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그 거리를 걷다 보면 지금도 구슬픈 가락이 어디선가 들려오기도 한다. 잔잔한 바다 옆으로 갓바위가 전설을 품었고, 바닷가 마을의 저녁노을에 전율했다.
목포해상케이블카는 고하도 전망대를 거쳐 발밑으로 목포 원도심과 다도해를 짜릿하게 선사했고, 평화의 광장으로 몰려든 커플들은 밤바다에 넋을 잃는다. 목포 주변 섬 여행도 손쉽고, 해산물 노포 맛집도 지천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목포의 변화 역시 만만찮지만 빛바랜 듯 옛 발자취가 여전히 남아 있는 목포다.
북교동 예술인 골목과 옥단이길의 레트로 정서
도시의 매력은 그곳을 지키고 있는 유형무형의 것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목포는 예부터 예향이었다. 유달산을 중심으로 몇 갈래로 뻗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우리 근현대사를 이어나갔던 예인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문학의 향기가 좁은 길마다 연결되어 있고, 화가의 집도 가수 이난영 일가의 전시관도 함께한다.
목포를 대표할 만한 인물로는 대통령도 있고 유명 연예인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1930년대 초반부터 해방 무렵까지 목포에 살았던 옥단이를 빠뜨릴 수 없다. 옥단이는 이 지역 출신 차범석 작가의 작품 속 실존 인물이다. 옥단이길에 들어서면 물지게를 진 여성 캐릭터 안내판이 맞이한다. 척박했던 시절의 순박한 물지게꾼 옥단이. 목포 사람들의 허드레 물장수를 하며 좁다란 골목길 일대를 누볐던 밝고 당찬 여성이었다. 목포역에서부터 유달산 부근까지 오래된 옛집들 사이로 4.6km에 걸쳐 11개 골목의 옥단이길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처음엔 탐험하듯 걷던 길이 옥단이라는 이름의 정겨움으로 그저 푸근하다.
옥단이라는 인물을 문학 캐릭터로 세상에 내놓은 차범석 작가의 ‘작은 도서관’은 말 그대로 자그마하다. 작가의 오래된 잡지와 대본집, 희곡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도슨트가 없어도 누구나 들러서 조용히 책을 보고, QR 코드로 관광 해설과 목포 시민들의 목소리로 낭독한 오디오북을 들어볼 수 있다. 차범석 작은 도서관이 자리한 골목은 차범석길 27이다. 이 길 곳곳에서 수필가 김진섭, 문학평론가 김현, 극작가 김우진, 여성 문학을 대표하던 작가 박화성 등 문인들의 자취를 보여준다. 현재 예술인 골목이 있는 북교동은 지금의 목원동 일대지만 목포 사람들은 여전히 북교동이라 부른다.
골목 안에는 1970년대 감성을 소환하는 흑백사진 속의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도 여전히 건재하다. 개항과 함께 하루 품팔이를 하던 사람들의 계 모임으로 한때 성황을 이루었던 마인계터 골목, 그 옛날 노라노 패션학원으로 유명했던 건물이 미술관으로 재생된 모습도 보인다.
유달산 자락의 노적봉과 근대역사문화공간
북교동 예술인 골목 옆으로 조금 넓게 트인 길을 따라가 보자. 법정 스님과 고은 시인이 만났던 ‘목포 정광정혜원’을 지나게 된다. 김환기, 남농 허건, 박수근, 천경자 등 남도 출신 예술인들이 그려진 벽화가 쭉 이어지는 오르막을 오르면 곧바로 우뚝 솟은 유달산이다. 유달산을 빼고 목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지략이 떠오르는 노적봉이 언덕 위에서 맞아준다. 저편으로 목포 앞바다가 시원하다.
유달산을 내려가기 전에 들러볼 곳이 있다. 바로 옆 숲을 이룬 산 아래 1982년에 조성된 국내 최초의 야외 조각공원이다. 자연, 문화, 조각이라는 주제로 설치된 조각 작품들로, 국내 작가는 물론이고 예술성 높은 외국 조각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의외로 찾는 사람이 적어 호젓하다.
노적봉과 조각공원을 뒤로하고 유달산 저쪽 아래로는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비롯한 옛이야기들이 기다린다. 근대역사관 1, 2관과 일본영사관,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은옛 모습 그대로다. 또한 전시관마다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비인간적 야욕 및 잔인함을 증언하고 있다.
주변에는 일본인들이 남긴 적산가옥과 일제 잔재들이 있고, 골목마다 아픈 역사의 상흔을 만나게 된다. 목포는 호남 곡창으로 일본인들이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발걸음하는 골목마다 일본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묻어 있다. 지금은 타임머신을 탄 듯 옛날이야기를 돌아보며 거니는 역사의 거리가 되었다. 알고 걸으면 더 재미있는 목포의 골목길은 역사와 함께하기에 더 의미 있다.
하늘이 가까운 보리마당로의 골목 이야기
유난히 낡은 풍경의 골목이 많은 목포다. 유달산에 기대어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 골목길이 감성을 품었다. 한때 넓은 보리밭이었고 보리타작을 주로 했다던 보리마당로는 현재의 서산동으로 지대가 높은 윗자락이다. 영화 ‘1987’에서 연희네 슈퍼로 알려진 서산동 골목은 좁기도 하지만 가파른 오르막이다. 영화 속에서는 연희(김태리)와 이한열(강동원)이 무심한 척 속 깊은 시국을 주고받고, 삼촌(유해진)은 조카에게 보안상 위험한 부탁을 하던 곳이다. 우리 모두에게 뜨거웠던 1987년의 이야기가 촬영된 골목이다.
이제는 인문도시 서산동 시화골목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예스러운 사진관이나 작은 미술관, 벽화가 그려진 오밀조밀한 골목 안의 자잘한 정서가 그곳 사람들과 하나가 된다. 다닥다닥 붙은 골목 양옆의 담벼락 사이로 주민들이 지나가며 살짝 옆으로 비켜주기도 하는 게 자연스럽다. 좁은 골목을 오르내리는 동네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며 안부를 주고받으니 정겹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골목은 좁은 계단이었다가 누군가의 대문 앞이기도 하다. 가끔 고양이가 까무룩 졸다가 인기척에 놀라 도망간다. 비탈진 마을을 오르다 보면 시선 끝엔 늘 하늘이다. 하늘이 가까운 동네다.
공간의 전환, 누스테이에서 살아본 2박 3일
유달산 자락에 앉힌 보리마당로의 너른 공터에서 골목에 이르니 손바닥만 한 텃밭을 일구던 마을 사람이 반겨준다. “여기는 내비게이션에 번지수보다는 한빛교회로 치는 게 가차워요. 거기가 주차하기도 좋으니께 글루 오믄 더 편치.” 뭐라도 도움이 되려는 마음이 진심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트렌드로 떠오른 말 중 하나가 ‘워케이션’이다. 워크(Work)와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원하는 곳에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근무하는 것을 말한다. 머무름으로 업무와 그 지역을 충분히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목포 ‘누스테이’는 인구 소멸이 심화되는 지역에서 재생 건축을 통해 거주와 일이 가능토록 했다.
새벽 잠결에 나지막한 뱃고동 소리에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도심 재생 건축으로 생겨난 목포의 숙소 ‘누스테이’는 자신만의 시간을 담은 여유로운 워케이션이 가능하다. 골목 안 서늘하도록 정갈한 2층집에 모든 게 갖추어졌다. 쉼과 일이 진행되는 공간 1층, 계단참을 밟으며 올라간 2층에선 테라스의 푸른 식물들과 함께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바다가 보이는 발코니에선 차를 마셔도 좋고, 캠프파이어가 가능한 루프톱에선 불멍의 시간이다. 동네의 따스함이 남아 있는 공간에서 나만의 속도대로 살며 크리에이티브한 효과를 기대해볼 만하다.
사방 천지로 빛이 뿌려진 날들이다. 멈출 수 없는 일상은 늘 촘촘하다. 이럴 때 가뿐히 가볼 수 있는 거리에 있어 잘 찾아왔다고 스스로 흐뭇해지는 길 위에 서본다. 굳이 계획을 세우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가볍게 나서거나, 편안히 자동차 핸들을 돌려서 잠깐만 달리면 닿는다. 낯선 듯 낯설지 않은 곳, 기분 좋게 훌쩍 길을 나설 수 있는 곳, 광교다.
수원은 당연히 익숙한 도시인데 같은 지역권의 광교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낯설지는 않은데 옆 도시에 비해 어쩐지 새것 느낌이다. 신상품이라는 뜻의 신조어, 이른바 신상 또는 ‘새삥’ 같달까. 수원이 18세기 조선의 신도시라면 수원시 영통구에 속하는 광교는 21세기에 조성된 또 다른 신도시다.
광교가 특별한 것은 도시의 녹지율이 41.7%에 달하는 자연친화적 도시라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그 안에 엄청난 넓이의 호수가 포함되어 있어 그야말로 쾌적한 주거 환경 속에 살아가는 걸 부러워할 만하다. 인구밀도도 국내 신도시 중에서 최저다. 광교라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호수공원이 도심을 따라 연결돼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산책 코스가 되고 있다. 도서관, 호수, 수목원, 박물관, 미술관, 감성 맛집까지 일상과 이어진다. 그들이 가꾸어나가는 도시의 건물과 건물을 잇는 정감 어린 골목길도 아름다운 것은 라이프스타일의 초점을 문화 기능에 맞추어서인 듯하다.
독서 캠핑을 아시나요, 알싸한 숲속 도서관 책뜰
요즘 각기 다른 레저 활동의 이름으로 호캉스나 차박, 차크닉 등의 다양한 신조어들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독서 캠핑 또는 북캉스라는 말도 생겨났다. 가을이면 책을 읽는 계절이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조용히 집에서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호수를 둘러싼 고요한 숲속 공간에서 책과 함께하는 시간은 어떨까. 광교푸른숲도서관에 가면 정말 이런 곳이 있다.
광교푸른숲도서관은 광교호수공원이라는 멋진 경관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서 힐링을 주제로 한 도서관이다. 푸른숲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비탈의 기울어진 숲 경사를 그대로 살렸다. 숲 사이에 입체감 있게 설계된 열린 공간 형태의 도서관은 외부와 내부 모두 예쁘다. 푸른숲도서관만으로도 충분한데, ‘푸른숲 책뜰’이라는 독서 캠핑장 콘셉트의 독서 힐링 공간이 특별하다.
도서관 옆의 경사진 숲길을 따라 걸어 오르는 길은 비밀스러운 정원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가끔 사람들이 나지막이 말하는 ‘나만 알고 싶은 곳’이다. 그 언덕 나무들 사이에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다섯 개 동의 독립적인 공간 ‘책뜰’이 앉혀졌다. 백리향, 산수국, 바람꽃, 물봉선, 금강초롱(장애인 우선 예약). 각 캐빈마다 붙여져 있는 이름은 광교호수공원 산책길에서 만날 수 있는 계절 꽃인데 시민들의 제안으로 지어졌다.
내부에 드니 초록 이끼로 덮인 굵다란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신비한 트리하우스 느낌이다. 책뜰 주변을 알싸한 숲 내음과 푸른 기운이 감싼다.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작은 새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게 보인다. 3~4평 정도 공간에 편안한 의자 몇 개와 작은 테이블, 그 위엔 책 받침대 하나, 옆쪽으로 안내 자료와 책이 꽂힌 서가가 전부다. 창문을 열면 아담한 전용 테라스도 있다. 문을 닫으면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다. 빈백 체어에 깊숙이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으니 평온함이 온몸에 퍼진다. 이런 호사라니. 비로소 크게 숨을 쉬고 느리게 책장을 넘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사계절 언제나 책을 읽든 숲멍을 하든 오롯하게 사치스러운 쉼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3시간의 이용 시간 동안 자신만의 내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볼 수 있다. 친구나 연인,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독서와 힐링의 시간을 나누기도 한다. 소풍 나온 만족감과 함께 충분한 사색과 쉼을 주는 3시간이다. 여기에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책이 있는 정원 문화, 영흥수목원
빽빽한 빌딩과 아파트의 도심 속에 숲과 연결된 수목원이 자리 잡고 있다. 새롭게 숲속 산책로가 구현되었다. ‘더 살아 있는 정원을 시민의 일상 속으로’라는 의미를 갖고 정원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되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분수가 솟아오르는 온실 앞의 이국적인 풍경을 지나 아열대 식물을 주제로 꾸며진 온실에는 망고 열매가 매달려 있다. 무엇보다 마음을 끄는 것은 수목원 입구의 책마루였다. 이 지역의 식물이나 정원 도구 전시실 등을 돌아보고 나면 계단 형식으로 만들어진 마루에 그냥 앉아 책을 읽는다. 숲과 책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공간이다.
광교 도심을 한눈에, 프라이부르크 전망대
광교푸른숲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몇 걸음 숲으로 나가 산책길에 들어서면 도서관 뒤편으로 우뚝 선 탑이 보인다. 프라이부르크 전망대(Freiburg Observatory). 세계적인 환경 도시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전망대와 같은 형태라고 한다. 환경 도시를 지향하는 수원시와 프라이부르크시가 자매결연을 맺어 의미를 더하는 전망대다.
건물 10층 정도인 33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광교 도심을 360도 조망할 수 있다. 각 층마다 카페, 전시관, 쉼터, 전망대가 이어진다. 남쪽으로 탁 트인 전망으로 내려다보이는 원천호수와 빌딩들의 스카이라인이 압도적이다. 전망대 밑에는 ‘풀빛누리 광교 생태환경체험교육관’이 있어서 환경을 살피는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 호수공원 주변 산책길에서는 자작나무 쉼터와 하늘정원, 수초섬 등 계절별로 변화하는 호수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운치 있는 자연 생태 속으로, 신대호수
광교호수공원 중앙에 조성된 공원 산책로는 원천호수와 신대호수로 연결되어 있다. 프라이부르크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였던 신대호수 쪽으로 걸어가면 금방 이어진다. 도심 속 호수공원을 잇는 순환 보행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을 누린다. 신대호수 쪽 수변 보행 데크에 들어서 둑방길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연꽃이 피어나고 뿔논병아리가 노니는 곳이 나타난다. 이처럼 습지식물과 야생 조류들이 살아 있는 생태계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안개 낀 이른 새벽의 몽환적 풍경과 해 질 무렵의 노을 풍경이 더없이 멋진 신대호수는 모든 시민의 생활 속 휴식 공간이다.
광교박물관, 아트스페이스 광교
실내에서 즐겨볼 만한 곳으로는 광교박물관이 있다. 광교의 역사와 도시 변천사를 알려주고 다양한 체험도 준비되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2층에는 대한체육회장을 역임했던 소강 민관식 님의 이야기와 올림픽을 비롯해 한국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 가득하다. 유명 선수들의 기증품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문화예술 공간 아트스페이스 광교는 지역의 풍부한 문화예술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갤러리아 광교 옆 수원컨벤션센터 지하 1층에 위치한다. 광교중앙역에서도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전시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대부분 무료 관람이다.
광교푸른숲도서관 책뜰 이용 방법
대상 수원시도서관 관외대출회원(정회원) 이용 인원 최대 4명 운영시간 1회 09:30~12:30 2회 14:00~17:00 / 3시간 예약 신청 수원시도서관 홈페이지(www.suwonlib.go.kr) ‘푸른숲 책뜰’ 예약 기간 매월 1일 10시부터 선착순 이용료 1만 원
숲속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볼 수 있는 곳, 완주 경천면 싱그랭이 요동마을로 떠난다. 자연이 일상의 휴식 공간이 되어주는 싱그랭이 마을, 산속 가득 서늘한 바람이 쉬어가는 고적한 절집 화암사와 자연 생태 환경의 싱그랭이 에코 정원, 그리고 마을 주변으로 너른 콩밭이 펼쳐진 완주 싱그랭이 요동마을에서 순한 힐링의 시간을 맞이한다.
마을 입구에 들자마자 오래된 노거수가 대뜸 마을의 역사를 알려주는 듯하다. 500년 넘도록 마을의 수호신으로 든든하게 그 자리를 지켜온 느티나무다. 나무 그늘 아래엔 마을 어르신들이 한낮 일손을 멈추고 휴식 중이다. 마침 마을에서 만난 홍성태 싱그랭이 영농조합 이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싱그랭이 요동(堯洞)마을은 그 옛날 전라도 지역에서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갈 때 잠시 쉬어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장승길 옆으로 서 있는 커다란 시무나무는 표시목으로 20리마다 심었는데 완주 고산현이라는 지점에서 딱 8km 지점입니다. 여기에 돌 하나 던져놓고 ‘발병 나지 않게 해주세요.’ 하면서 나그네가 잠시 쉬었다 떠나는 곳으로, 새 짚신으로 갈아 신고 헤진 짚신 하나 고을 어귀 나무에 걸어놓고 가는 풍습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신거(新巨)렁이 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렸죠. 그런데 신거마을을 지역 방언 등의 이유로 편안하게 부르는 대로 쓸까 어쩔까 투표를 했어요. 15년 전이죠. 그때 마을 주민들이 정감 있고 부드러운 어감의 싱그랭이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싱그랭이 마을은 사방으로 콩밭이다. 홍성태 이사가 설명을 덧붙인다.
“저기 콩밭에서 새를 지키는 아주머니가 보이네요. 주변의 모든 밭이 콩밭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곳이 산골이잖아요. 천수답이나 관개시설이 안 되어 있어요. 옛날부터 콩 농사를 지었는데 어느 날 수매가 줄고 콩값이 반 토막이 되기도 했고 판로가 마땅치 않았어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모여 작게나마 두부 공장을 해보자 의견을 모아 매일 두부 만들어내기에 이른 겁니다. 완주는 로컬 푸드가 유명한데 우리 영농조합의 두부를 많이 좋아하십니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콩밭식당은 환경부 인증을 받은 친환경 제조법으로 재배한 두부 요리 전문점이다. 천연 간수를 사용해 조금 거친 듯 고소한 두부로 만든 들깨순두부와 두부전골 등의 두부 요리가 일품이다. 노포 맛집 느낌의 깊은 맛이 난다. 소박한 밥상인 듯하지만 반찬 하나하나까지 모두 손끝 여문 솜씨로 정갈하고 맛깔나다.
싱그랭이 에코 정원의 자연 생태
마을의 느티나무와 콩밭길을 지나 화암사로 가는 길의 ‘싱그랭이 에코 정원’에서 잠깐 멈췄다. 완주의 생태 활동은 이곳 요동마을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아늑한 산 아래 야생화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싱그랭이 에코 정원 앞마당엔 제철 맞은 꽃들이 지천이다.
마을의 자연 생태와 역사 문화 보존을 위해 마련된 곳, 또한 관광자원으로도 활용되는 싱그랭이 에코 정원은 지속 발전이 가능한 자연을 가꾸어나가기 위한 공간이다. 150여 종의 야생화와 복수초, 댑싸리 등이 자라고 있다. 요동마을이 있는 경천면은 완주의 북쪽 지역인데 복수초 군락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전문성을 지닌 에코 매니저의 친절한 설명과 안내에 따라 식물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자연과 생태에 관심 있다면 자연 소재를 이용한 석부작(石附作) 만들기 등의 생태 체험도 가능하다.
싱그랭이 에코 정원은 주변 들판과 언덕에서 자라는 야생화가 자연스럽다. 정원 양옆으로 자리 잡은 두 개의 온실은 천장까지 온통 유리로 둘러싸였다. 자그마한 다육이와 꽃을 피운 화분들, 그리고 풀인 듯 자연스러운 식물들과 다양한 모양의 석부작들이 가득하다. 다른 쪽 공간은 씨를 파종하여 키워내는 육묘장이다. 도심에서 자라는 식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마을 사랑을 실천하는 주민들과 싱그랭이 요동마을 생태활동가의 땀과 노력이 엿보인다. 산골 정원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생명의 신비로움과 자연 사랑을 이곳에서 느껴본다.
“초반엔 여러 가지 종을 키웠는데 이제는 몇 가지로 압축해가려고 합니다. 지금은 다알리아가 꽃을 피웠는데, 서리 내릴 때까지 이어지는 데다 번식력도 좋아 구근을 키워서 심었어요. 또 허브는 수입 희귀종이 많은데, 사실 저쪽 산모퉁이만 돌아가도 많거든요. 하지만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재배하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채취 가공하고 방향제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죠. 5년 전부터 시작해서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차츰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잘 늙은 절집, 느린 발걸음으로 화암사
완주의 싱그랭이 마을에 간다면 가장 먼저 화암사 절집을 갈 생각에 설렌다. 싱그랭이 요동마을이 화암사가 있는 불명산 아래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마을을 거쳐야만 갈 수 있다. 화암사는 산속에 숨어 있다고 할 만큼 유난스러움 하나 없이 숲속 깊이 파묻혀 있다. 규모도 소박하다. 단청의 화려함 같은 것도 없다. 수수함에 먼저 마음이 당기는 절집이다.
불명산 화암사에는 신라 왕의 꿈속에서 부처님이 던져준 연꽃으로 딸 연화 공주의 병을 고쳤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그 연꽃이 한겨울 완주 깊은 산봉우리에 피어 있었다고 한다. 불심이 깊어진 왕이 연꽃이 있던 자리에 화암사(花岩寺)라는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바위 위에 꽃이 피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절이다.
싱그랭이 에코 정원에서 마을길을 지나 산을 오르다 보면 가벼운 등산 코스처럼 이어진다. 주차장에서 입구의 연화 공주 정원 숲길은 1km 남짓으로 완만하다. 여기선 느린 발걸음이 어울린다. 산책하듯이 천천히 걷다 보면 불명산 숲길의 운치에 반하고 만다. 좁다란 숲길이 온통 풀섶이거나 오래된 나무들이 울창해서 밀림인 듯 착각하게 하는 포인트가 간간이 나타난다. 물론 급경사의 험한 코스와 너덜길도 있지만 이럴 땐 수행하듯 조심히 걸으면 된다. 골짜기의 물소리와 절로 생겨난 작은 폭포를 지나 숲 사이로 화암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끼가 덮인 바위 절벽에 절집이 앉혀 있어서 우선 놀랄 수밖에. 그러나 천천히 돌아보니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잘 늙은 절’이란 말이 떠오른다. 불명산 화암사라는 현판이 걸린 보물 제662호 누각 우화루 누마루에 걸린 목어의 나무 질이 한참 나이 먹어 잘 늙은 절과 제대로 어우러진다. 절 마당을 중심으로 자리한 극락전, 적묵당, 우화루가 기품 있다. 고적하기만 한 누마루 너머 틈으로 푸르른 신록을 내다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바랄 게 무언가 싶은 순간이다. 우리나라 단 하나뿐인 아앙식 구조 건물 극락전 뜰에 털썩 걸터앉아 숲에 파묻힌 화암사를 내다보니 “아, 좋다”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온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도현 시인은 ‘화암사, 내 사랑’이란 시에서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하면서 끝을 맺는다.
여행 정보
싱그랭이 요동마을 전북 완주군 경천면 경가천길 377/ 지번 가천리 892
싱그랭이 에코 정원 전북 완주군 경천면 경가천길 474
불명산 화암사 전북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길 271/ 지번 가천리 1078
뜻대로 풀려나가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극장이지만, 귀농 드라마만큼 난감한 장면을 복잡다단하게 보유한 장르도 드물다. 폭풍 속의 질주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귀농은 매우 역동적인 인간사의 전시장이다. 자칫 고난과 고통에 갇힐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모험적인 도전이다. 귀농 10년이 지나서도 두 발로 서지 못한 사례가 드물지 않으니까. 이에 비하면 한철영(65, 태경농산 대표)은 순풍에 돛을 매달고 내달렸다. 출발은 소박했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현재는 기세등등하다. 몇천만 원에 불과했던 초기의 매출은 우상향을 거듭해 지난해엔 12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20억 원. 비약이다. 흔치 않은 케이스다.
한철영은 30여 년을 근무한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2012년에 귀농했다. 애당초 귀농에 뜻을 둔 건 아니었다.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한가하게 인생의 가을을 영위할 수 있는 귀촌을 염두에 두었을 뿐이다. 그는 안성시 대덕면의 한적한 농촌에 땅을 미리 마련해뒀다. 시골에 세컨드 하우스를 짓고 전원생활을 맛볼 작정으로. 그러다 상황이 바뀌었다. 그가 미리 사둔 땅은 10년을 묵혀둔 배 과수원이었다. 면적은 1300평. 이걸 주말농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대략 손질하기 시작했는데, 어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푹 빠져들었단다. 의도하지 않았던 귀농에 덜커덕 뛰어든 셈이었다.
“농사 초심자가 배 농사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모든 게 엉성하고 서툴렀지만 다행히 결실이 있어 주변 지인들과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반응이 좋았다. 맛이 아주 좋다며 판매하라는 요구가 많아 내심 놀랐다. 배 농사에 흥미와 의욕을 느낀 계기였다. 이듬해엔 시설을 보완해 본격적으로 농사에 나섰다. 결국 엉겁결에 귀농을 하게 된 것인데, 이듬해 농사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도시 직장인 연봉 수준의 판매수익이 났으니까.”
초기에 생산한 배 품질로 벌써 남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지? 노련한 농부도 품질 유지에 차질을 빚는 게 과수 농사인데.
“미숙한 기술에도 불구하고 10년을 묵어 오히려 좋아진 토질에 힘입어 괜찮은 배를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농사 기술과 물정을 익히기 위해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해 지도를 받아 얻은 성과물이기도 하다. 통장님을 찾아가 도와달라 요청, 배 농사에 조예가 깊은 주민을 멘토로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건 큰 힘이 됐다. 농업이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좋은 인간관계, 믿음을 기반으로 한 유대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하며 살아왔다.”
아무리 돈독한 사이라도 핵심 기술은 잘 안 알려주는 게 일반적인 경향이지 않나? 며느리에게도 안 알려주는 맛집 레시피처럼.
“다년간의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를 노출하고 싶지 않은 심리는 인지상정이라 본다. 사실 주변 농부들에게 물어도 마땅한 답을 들을 수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스로 공부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게 상책이겠지. 따라서 나는 아내와 함께 경기농업마이스터대학에 입학해 2년간 공부했다.”
농업 교육기관의 교육이 이론에 치중돼 실제와 괴리가 있다는 얘기가 있던데.
“교육장에서 접할 수 있는 건 강사의 교육만이 아니다. 수강생들과 교류하며 인맥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장이기도 하니까. 농업마이스터대학엔 수십 년간 배 농사를 지어온 지역 농민 다수가 학생으로 참여했다. 나는 그들의 도움으로 많은 걸 배웠다. 그들을 통해 배 농사의 실제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배나무에게 모차르트 음악을
한철영은 농사에 공을 들이는 일 못지않게 좋은 인간관계 형성에도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그걸 귀농의 리스크를 사전 방비할 수 있는 울타리로 삼았다. 자칫 외로운 섬처럼 고립될 수 있는 무심한 처신 대신, 마음을 열고 사람들 속으로 쑥 들어가 친선을 도모했다. 그건 곧 농사에 활기를 부여하는 동력원이 됐다. 그는 이렇게 귀농으로 바뀐 삶의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다. 능동적으로 관여했다. 농사 기술 확보에도 민첩한 감각을 발휘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다. 신뢰할 만한 기술 정보를 입수하면 바로 농장에 끌어들였다.
“농사의 기본으로 삼은 건 일명 ‘게으름뱅이 농법’으로 알려진 자연농법이다. 이를테면 억세게 올라오는 풀들을 갈아엎지 않고 퇴비를 만들어 활용했다. 유황 퇴비를 투입해 토질을 북돋우기도 했다. 덕분에 한결 풍미 좋은 배를 생산할 수 있었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지? 작물을 애지중지하는 농심은 늘 감동을 주더라.
“배나무라는 생명체에게 어떻게 하면 자연 그대로의 생기로운 최적 조건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 생각했다. 배나무가 배를 만든다는 건 후세를 남기는 고귀한 일이니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게 농부의 의무이지 않겠는가. 모차르트 음악을 배나무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듣는 귀가 있으려니 하며.”
사람도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배나무와 사람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애기인가?
“사람에게도 농작물에게도 좋을 게 별로 없는 화학비료는 최대한 배제했다. 자연스러운 생태 환경이 유지되도록 농장의 흙과 경관을 가급적 건드리지 않았다. 덕분에 지렁이들과 두더지들의 천국이 됐다.(웃음)”
귀농인들은 흔히 판로 문제로 고심한다.
“실로 중요한 게 판로 확보다. 귀농 초기에 나는 팔 수 있을 만한 타깃을 미리 설정해 집중 공략했다. 예컨대 규모가 큰 기업에 4년 정도 해마다 배를 무상으로 선물해 관심을 유도했다. 그러면 기업은 마침내 대량 구매를 한다. 우리의 배를 직원들에게 줄 명절 선물용으로 채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맺어진 인연은 오래 이어지게 마련이지.”
한철영은 1300평 배 과수원을 통해 연평균 매출 8000만 원을 올렸다. 남들은 그게 큰 액수라며 곧이듣지 않았다지. 그러나 그는 비좁은 경기장에서 뛰는 게 영 마뜩잖았던 모양이다. 확장 욕구가 그의 내부에서 마그마처럼 들끓었나? 그는 2018년 상당한 규모의 가공공장을 설립해 가공식품 생산에 나섰다. 주도면밀한 연구와 조사가 선행된 뒤의 일이었다. 가공사업의 당찬 개시. 이건 확실하고도 명민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단순한 생과 판매에서 나아가 사시사철 소비될 가공품을 생산하는 게 승산이 있다고 봤다. 고객의 니즈 역시 고품질 가공식품에 있다고 판단했다. 처음엔 위탁 전문업체에 맡겨 배를 재료로 한 즙과 농축식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품질에 문제가 있더라. 이건 아니다 싶어 직접 가공하기로 하고 가공공장을 설립한 거다.”
어떤 식품들을 생산했나?
“주력 상품은 배와 도라지를 섞어 만든 발효 농축액 4종이다. 생강, 무말랭이, 맥문동, 감초 등을 넣은 발효식품 다종류도 생산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좋은 판매 성과를 거두었다. 가공품 생산 첫해부터 순항했다.”
차질이 빚어지진 않았나?
“뜻한 대로 일이 진행됐다. 시장의 트렌드와 소비자의 요구를 나름대로 분석해 타기팅을 정확하게 한 덕분이었다. 상품 개발을 할 때면, 이게 과연 시장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부터 숙고했다. 식품의 내용은 물론 포장 디자인을 고급화해 어디에 내놔도 뒤질 게 없는 상품을 만들었다. 현재 백화점 납품은 물론 수출도 하고 있다.”
‘고난의 서사’가 없다
한철영의 실력은 해외까지 알려졌다. 2021년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국제 식음료 품평회’(International Taste in Stitute)에 ‘통째로 갈아 만든 오미자’를 출품해 ‘최우수 미각상’(Superior Taste Award)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둔 것. ‘통째로 갈아 만든 음료’ 시리즈엔 오미자, 청귤, 생강, 매실, 유자 등으로 만든 제품 8종이 있다. 그가 만든 가공식품은 어쩌면 창의의 산물이다. 시장을 유심히 관찰하고 고안한 아이디어의 힘, 풍미를 담은 상품, 게다가 매력적인 디자인까지 가미한 디테일 요소로 차별화를 구현했다. 그는 자못 새로운 유형의 농산물을 개발한 것이다. 새롭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으랴. 혁신하지 않고 멀리 갈 수 있으랴. 그는 삼성전자에서 쌓은 경륜과 재능을 끌어모아 농업에 쏟아부었다. 체질처럼 뇌에 정착한 과학적 사고를 풀가동해 귀농이라는 게임을 흥미진진한 쪽으로 밀어붙인다. 공부는 또 어떻고? ‘열공 모드’를 상시 가동한다.
“가공공장을 설립한 뒤 단국대 죽전캠퍼스에서 식품영양학 석사과정을 공부했다. 지금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식품공장 경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심도 있는 식품 공부가 필수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귀농 장정엔 ‘고난의 서사’가 거의 없다. 매사 잘 풀려나간 것 같다. 어떤 배경이 있다고 보나?
“운이 좋았을 뿐이다. 좋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보내준 선의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사실 내가 잘 아는 게 얼마나 되겠나? 다만 남들이 하는 방식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했다. 농업의 프로세스를 과학적으로 파악해 손실과 차질을 사전에 차단하기도 했다. 나의 스타일, 나의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고수해왔다. 그래야 새로운 걸 빨리 흡수할 수 있어서.”
누군가 귀농을 하겠다고 할 경우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나?
“사실 귀농으로 뜻을 성취하기란 쉽지 않다.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서기가 매우 어렵다. 도시에서의 직업 활동보다 한결 고달픈 게 귀농 생활이다. 하루치 일을 하루에 마치기가 버거운 게 농사다. 난 예전 직장에서보다 서너 배쯤 더 많은 노동력을 쏟으며 뛰었다. 이처럼 팽팽한 생존 여건을 감내할 자신이 없다면 아예 귀농을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그러나 도시보다 더 풍부한 기회가 농촌에 내재해 있다.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얘기다.”
그의 음성은 나직하고 태도는 수굿하다. 내놓는 언설엔 옹골찬 차돌이 박혀 있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무엇을 향해 그토록 맹렬히 달려가는 걸까? 돈? 아니다. 행복? 이 역시 아직은 아니란다. 그의 얘긴 이렇다.
“지금의 목표를 말하자면 ‘보람’이라고나 할까? 행복은 어느 정도 레벨이 됐을 때 찾아도 늦지 않을 테고.”
한철영이 주는 귀농 Tip
•귀농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고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자. 작목 선택, 판로 문제, 투자자금 규모 등에 관한 연구를 미리 충실히 하라.
•귀농 뒤 농업 소득이 발생하기까지 긴 세월이 걸린다. 최소 4~5년은 버틸 수 있는 여유자금을 마련해 귀농하자.
•소비 시장은 냉정하다. 내가 좋아하는 작물을 생산하기보다 소비자가 좋아할 작물을 선택하자.
•특수작물에 섣불리 뛰어들지 말자. 시장성을 예측하기 힘들어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미리 1~2년 정도 농사를 지어보고 귀농을 추진하자. 그래야 정착이 수월해진다.
•귀농교육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라.
•농토를 서둘러 살 일 아니다. 바가지 쓰기 쉽다. 수도권 외의 지역에 있는 농지 구입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투자가치가 낮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타공인 한국 문화 지킴이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울림을 주는 홍보 영상, 잘 정리된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을 어언 30년 가까이 해보니 깨달은 점이다. 기존의 방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더 효과적인 방식을 찾았기 때문에, 그는 2019년부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저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홍보학자입니다.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해왔어요. 누군가 제게 가장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현장’이라고 답할 겁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자타공인 한국 문화 지킴이다. 주변국의 역사 왜곡 시도에 항의하고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홍보 영상을 만들거나 독립운동 유적지에 비치할 안내서를 발간하고 한국어 간판을 제작해 기부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다.
서 교수는 일 년 중 여섯 달은 해외에 있을 정도로 출장이 잦다. 그는 아무리 일정이 빡빡해도 여유 시간으로 반나절 정도는 꼭 마련해둔다고 한다. 관리를 전혀 받지 못해 방치돼 있거나, 이름은 알려져 있으나 안내 시설 등이 노화돼 찾기 힘든 유적지가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서 교수는 다니면 다닐수록 관리가 부족한 지역이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했다. 하지만 유적지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려면 지속적인 관심과 방문이 필요하다.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지면 현지에서도 해당 장소를 관리하기 위해 신경을 쓰게 되고, 관리가 잘 된 유적지를 방문해 좋은 인상을 받은 관광객들은 입소문을 내며, 그로 인해 점차 방문객이 늘어나는 흐름이 만들어지기 때문. 이러한 선순환이 많은 유적지에서 동시에 일어난다면, 시민들의 전반적인 역사 인식도 향상되는 결과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
그가 다크 투어 분야에 뛰어든 것은 2019년. 여태 해오던 일을 확장시켜 ‘이제는 내가 직접 나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각지를 돌며 직접 보고 느낀 점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뜻이 맞는 여행사를 찾은 그는 직접 다녔던 루트 그대로 여행 코스를 짰고, 다달이 진행되는 모든 프로그램에 재능기부 차원에서 참여하며 정성을 들였다. 지금까지 서 교수와 함께하는 여행사 ‘자유여행기술연구소 투리스타’ 역시 실비만 받고 다크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홍보학자, 현장에 직접 나서다
첫해의 성공으로 시즌2를 계획하던 2020년 2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아쉬움을 삼키며 온라인으로만 활동해야 했던 서 교수는 지난 2월 말, 3년 만에 오프라인 다크 투어 프로그램 ‘항일운동 역사투어’를 진행했다. 삼일절을 기념하고자 기획한 프로그램이라 목적지는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도로 결정했다.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주민만 스무 명이 넘고, 그 후손들은 일 년 내내 태극기를 걸어둔 채 생활해 ‘항일의 섬’, ‘태극기의 섬’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곳이다. 함경도 북청군, 부산시 동래군과 더불어 국내 3대 항일운동 성지로 불리지만 인지도는 훨씬 낮다는 점이 아쉽던 차, 이번 기회에 소안도를 제대로 소개해보리라 마음먹은 것.
“이번에는 45인승 차 한 대를 빌렸어요. 이 차만 다 채워도 성공이라고 생각했죠.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일본 하시마 섬(군함도)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고, 배우 송혜교 씨의 후원으로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를 소개하는 안내서를 온·오프라인으로 발간하는 등의 활동이 매체를 통해 많이 소개되면서 다크 투어에 관심 갖는 분위기가 고조되던 2019년과는 상황이 다르니까요. 그런데 웬걸, 막상 신청을 받아보니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함께할 분들을 ‘선정’해야 했어요. 놀랄 수밖에 없었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안도의 항일운동 유적지를 찾아온 것은 처음입니다.” 소안도에서 만난 지역 해설사의 한마디는 서 교수를 포함한 모두의 마음에 큰 울림을 남겼다. 그는 40여 명과 함께 소안도 외에도 국내 최대 강제노동 지역인 ‘옥매광산’, 안중근 의사 위패가 있는 ‘해동사’를 찾았다. 사람들은 설명을 들으며 함께 분노하고 슬퍼했다.
성공적인 다크 투어의 필요조건으로는 좋은 스토리텔링이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를 방문해 그곳에 대한 단편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어땠는지, 우리 조상들은 하필 이 지역에서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짜인 하나의 이야기처럼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 교수는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 발발 당시의 현장 사진을 큰 종이에 출력해오기도 하고, 지역 해설가를 섭외하기도 한다. 좋은 스토리텔링을 위한 사전 준비가 탄탄해야 관광객들이 현장에서 더욱 감명받고, 그렇게 느낀 교훈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적재적소에 더해지는 서경덕 교수의 너스레는 분위기가 과열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또 일정이 끝난 뒤 지역 대표 맛집에서 여행의 고단함을 해소하는 시간을 꼭 가졌다. 아무리 의미와 교훈이 중요한 여행이라도, 여행만의 잔재미를 느낄 구간 또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여행 전문가도 아니에요. 역사적 지식을 어떻게 해야 잘 홍보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이죠. 다크 투어를 통해서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깨닫고 교훈을 얻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핵심은 입소문이죠. 그래야 좋은 후기들이 퍼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유적지를 찾고, 그렇게 우리의 소중한 유적지를 지켜 후대에 물려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소안도를 함께 방문했던 분들도 ‘SNS 홍보단’이라고 부르면서 많이 공유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앞으로 3년이 적기인 이유
서경덕 교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국내 유적지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명소를 돌아보는 여행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홍보 방식으로 다크 투어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떠올린 갈래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오히려 K-콘텐츠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제 해외여행도 자유로워졌으니 그 어느 때보다 우리나라에 관심을 갖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예상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2025년까지의 행보가 중요해요. 그들이 관심 있어 하는 먹거리, 화려한 경복궁, 대도시 서울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당신들이 관심을 가지는 우리나라에는 사실 이런 아픈 역사도 있습니다’ 하고 유적지도 방문하게끔 하는 거죠. 당장 올해는 정전 70주년이자 한인 이민 120주년이에요. 그러니 한국전쟁과 연관 있는 배우들을 초청해 기념행사를 진행하거나, 유해 발굴 현장을 외국인이 직접 방문하는 식의 프로그램을 기획해도 괜찮겠죠.”
공식적인 행사나 프로그램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아쉽겠지만, 그렇다고 귀중한 시기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이 진행한 다크 투어 코스를 SNS에 모두 공개하고 있다. 한국 문화 알림이로 유명세를 탄 서 교수의 개인 SNS 계정을 구경하던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한 번이라도 더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크 투어는 굉장히 효과적인 홍보 방식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참여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3040 부부가 아이와 함께 가족 여행으로 다른 지역을 방문할 때 그 지역의 유적지를 짧게나마 다녀오는 일이 일상화됐으면 해요. 이런 문화가 자리 잡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저도 최선을 다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