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미국 CNN은 ‘굿바이 어린이집, 헬로 요양원’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의 인구 위기 문제를 보도했다. 당시의 기사 제목은 실상을 그대로 담았다. 어린이집·유치원 등 영유아 시설이 문을 닫은 그 자리에 요양원·주야간보호센터 등 노인 요양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한 초등학교 옆에 있는 학원 상가 건물이 눈길을 끈다. 아이들로 붐빌 것 같은 이곳에 ‘우리함께요양원 포유 수원점’(이하 ‘우리함께요양원’)이 있다. 갑작스런 요양원의 등장이 뜬금없다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 이곳은 과거 정원 200명의 대형 유치원이었다.
과거 아이들이 오순도순 모여 놀던 놀이터는 어르신들의 휴식 공간이 됐고, 동요 대신 구수한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아이들이 신나게 오르락내리락하던 계단은 이제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고, 대신 그 옆에 생긴 엘리베이터가 주요 이동수단이 됐다.
저출산·고령화로 타의 반 변신
매년 2월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졸업식이 열린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원내의 마지막 졸업식이 진행되는 경우가 상당했다. 출산률 0.78명 시대.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원장들은 직격타를 그대로 맞았다. 급격히 줄어든 원생 수로 인해 운영이 힘들어진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폐원을 선택했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 어린이집은 2018년 3만 9171개소에서 2022년 3만 923개소로 8248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유치원은 9021곳에서 8562곳으로 줄었다. 반대로 노인 복지시설은 2018년 7만 7395개에서 2022년 8만 9643개로 5년 사이 1만 2248개나 늘었다. 노인 복지시설은 요양원, 재가노인복지시설, 경로당, 노인복지관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영유아 시설이 노인 요양시설로 바뀌고 있어 눈길을 끈다. ‘손주가 다니던 유치원이 할머니의 노치원이 됐다’는 말은 통계를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영주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에서 제출받은 ‘장기요양기관 전환 현황’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으로 운영되던 곳이 장기요양기관으로 전환한 사례가 총 194건인 것으로 확인된다.
형태별로는 요양원 같은 입소시설 89곳, 주야간보호·방문요양센터 같은 재가시설이 105곳이다. 시도별로는 광역도 기준 경기도가 36곳으로 가장 많이 전환됐다. 이어 경상남도(25곳), 충청남도(20곳) 순이다. 광역시는 광주(17곳), 인천(15곳), 대전(9곳) 순으로 나타났다.
전환사례 비율이 가장 높았던 해는 2022년(50건)으로 전체의 26%를 차지한다. 2023년은 9월 말 기준 전환사례 34건(17.7%)으로 2023년 1월부터 9월까지의 건수가 이미 2020년과 2021년을 뛰어넘은 것으로 분석됐다. 산후조리원이 장기요양기관으로 바뀐 사례도 나왔다. 2021년 11월 충북 충주시, 2023년 8월 전북 정읍시에서는 산후조리원이 장기요양기관으로 전환됐다.
우리나라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는 점이 실감된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17년 말 735만 6000여 명에서 2022년 말 926만 7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고령화가 현재 속도로 지속될 경우 2030년까지 주·야간보호기관 약 3만 1000개소, 입소시설 약 1만 6000개소 등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인 인구 진입이 본격화되면서 질 좋은 공립 요양시설이 대폭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영주 의원은 “최근 저출산으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경영이 어려워지고 고령화로 인해 노인 장기요양시설 수요가 증가하면서, 어린이집 등의 요양시설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출생 아동이 급감하고 있어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정부는 장기적으로 유치원 폐업과 노인 돌봄시설 수요를 조사하여 적정 규모의 전환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영유아 시설이 노인 요양시설로 탈바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신속하게 업종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 건축법상 건축물은 9개 시설군으로 나뉜다. 영유아 시설과 노인 요양시설은 모두 6군인 ‘교육 및 복지시설군’ 중 ‘노유자시설’에 속한다. 이에 따라 복잡한 허가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업종 전환을 할 수 있다.
또한 어린이집과 유치원 원장의 입장에서는 돌봄 대상이 영유아에서 노인으로 바뀔 뿐 업무 자체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노인 요양시설을 설립하기 위한 조건은 의료면허 소지자(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 등), 요양보호사 취득 후 경력 5년, 사회복지사 2급 또는 1급 중 하나 이상 부합해야 한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원장의 자격과 경력은 직접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다만 대부분의 영유아 시설 원장들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사 없더라도 그들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불어 폐원을 앞둔 원장들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하는 추세다.
“우리도 전환” 리모델링 문의 늘어
‘우리함께요양원’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이곳을 운영하는 지인그룹의 김창환 대표는 20년 넘게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해왔다. 현재 노후 건물을 요양시설로 개발·운영하는 데 주목하고 있는 그는 이곳에 요양원을 세우면 성공하겠다고 판단했다. 유치원이 폐원한 지 2년 넘었는데 매도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김창환 대표는 “이곳 인근 아파트, 빌라 등을 합치면 1만 세대 이상 거주한다. 고령화 시대에 승산이 있을 것이라 봤고, 요양시설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주민들의 거부 반응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이 요양원의 장점은 초등학생들의 소리가 들려서 정겹고 야외 텃밭과 휴식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면서 “보통은 영유아 시설 원장이 노인 요양시설로 사업을 이어가는 경우가 80% 이상이다. 나머지는 나처럼 요양 관련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원장들의 컨설팅 문의가 많이 오는데, 요즘은 요양원보다 주야간보호센터를 선호하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인 요양시설로의 전환이 쉽지만은 않은 이유는 노인 요양시설은 설계 기준이 있어 리모델링을 필수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인 요양시설은 입소 어르신 1인당 연면적 23.6㎡(약 7.14평), 1인당 침실 면적 6.6㎡(약 2평)로 정해져 있다. 또한 지하층에는 부대시설 외에 침실을 둘 수 없다.
‘우리함께요양원’의 경우 유치원 시절 연면적이 1420㎡(약 430평) 규모였는데, 지하층만 660㎡(약 200평)에 이른다. 이에 따라 김창환 대표는 3층 상가 전용 130㎡(약 40평)를 추가로 매입해 정원 49명 수용이 가능한 요양원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요즘은 영유아 시설뿐만 아니라 초등학생 수도 많이 줄어 학원 상황이 많이 어렵다고 한다. 우리 상가 학원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들려온다”면서 이와 같은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계속되면 요양원의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노인 요양시설에는 모든 층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야 하며, 휠체어를 타고도 이동이 편하도록 주 출입구에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엘리베이터 설치는 리모델링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는 부분이다. 김 대표는 “엘리베이터 설치가 필수인데 이곳은 도저히 자리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외벽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고, 이에 따라 대문부터 내부로 들어오는 동선이 유치원 때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김창환 대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선택한 원장들의 도전을 응원하는 한편, “어쨌거나 요양 사업을 시작하는 것인데, 복지 사업에 대한 비전이 확실하고 자산이 있는 분에게 추천한다. 단지 돈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시설 전환을 원하는 이들은 영유아 시설 원장으로 쌓은 경력과 돌봄의 지혜를 기반으로 노인을 대할 때는 또 다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경영자를 할 것인지, 운영자를 할 것인지 정하고 비전을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요양 사업을 시작하면 어르신을 섬겨야 하고 직원을 모셔야 합니다. 영유아 시설 교사들과 비교해보면 요양시설 재직자들은 연령대가 높은 편입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직원을 대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처음부터 돈을 벌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1~2년 지나면 순환 구도가 만들어져 행복한 삶이 가능할 것입니다.”
‘모두 위한 내 꿈, 다시 뛰는 40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서울시 보람일자리사업을 통해 인생의 재도약을 꿈꾸는 4050 세대를 응원하기 위해, ‘모두 위한 내 꿈, 다시 뛰는 4050’ 캠페인을 펼칩니다. 본지는 서울시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공공에 기여하고 있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15년 가까이 사회복지사로 일해온 윤소진(62) 씨. 은퇴 후 이웃돌봄지원단 활동으로 이웃의 삶의 질과 인권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꾸준히 힘쓰다 보면 모두에게 더 나은 미래가 찾아올 거라 기대하면서.
퇴직할 무렵 윤소진 씨에게 고민이 생겼다. 사회복지사로서 다른 사람을 위해 힘써왔지만 정작 자신의 여생을 어떻게, 무엇을 하며 보낼지 깊이 생각해본 적 없었던 것이다. 막막한 마음을 안고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를 방문한 어느 날, 보람일자리 이웃돌봄지원단 공고를 발견하고 ‘이거다!’ 싶었다. 평소 돌봄 서비스에 관심이 있어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나를 위해 다시 일해보자’고 결심했다.
경험에 기반한 열정
윤소진 씨는 이웃돌봄지원단으로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정다운우리의원 재택의료센터에서 활동한다. 이웃돌봄지원단은 돌봄 관련 사회 경험과 역량을 가진 중장년층을 위한 사회공헌 일자리다. 주거, 교육·문화, 사회적 안전망 강화 등 손길이 필요한 지역사회 이웃의 돌봄을 보조하는 활동을 한다. 주로 해당 활동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 참여하기 때문에 업무 활동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다운우리의원 재택의료센터는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 찾아와 진료받기 어려운 사람을 대상으로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가 방문 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윤 씨는 주로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전화 상담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일정을 조율하며, 회의 자료를 정리한다. 재택 치료를 위한 준비물을 챙기고, 종종 의사나 간호사와 함께 나서기도 한다. 정다운우리의원은 관악정다운의료복지 사회적협동조합에서 개설한 센터라 사례 관리, 복지 체계 안내 등 폭넓은 사회적 서비스 지원 관련 업무도 수행한다.
“현역 시절 상담 및 행정 관련 부서에 있었어요. 이웃돌봄지원단에서도 장점을 발휘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지역사회 복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활동한 경험이 실제로 도움이 됐어요. 환자들 가정에 직접 찾아가 보면 진료 외에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아요.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라든지 불편한 요소들이 꽤 있거든요. 최대한 자세히 살펴보고, 지역 센터와 연계해주기도 해요. 곰팡이 핀 벽지나 헐거워진 문고리 교체 등을 요청하죠. 특별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굉장히 보람 있어요. 제가 만난 재택의료 신청자들은 병원에 가지 않아도 진료를 받을 수 있어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한번은 어느 노부부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남편은 다리가 불편해 누워 있었고, 아내는 인지 장애가 있는 듯했다. 이들을 제대로 보살펴줄 보호자가 없어 어렵게 생활하는 걸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다른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우연히 담당 요양보호사를 통해 손주가 있다는 걸 들었어요. 그분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앞으로 치료를 어떤 방향으로 하면 좋을지 의논하도록 했죠. 이외에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무척 많더라고요. 센터에서는 매주 사례 관리 진단을 하는데, 각기 다른 상황이라 어려움에 처한 환자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치료할지 함께 고민해요.”
대상과 시스템의 확대를 꿈꾸며
윤 씨는 이웃돌봄지원단으로 활동하면서 환자뿐 아니라 그 가족도 돌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환자를 돌보면서 취미나 일상을 소화하지 못해 스트레스가 쌓이고, 우울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들과 남편을 동시에 보살펴야 할 상황에 놓였다거나, 보호자 생활을 오래 한 경우 등이다. 동네 사랑방처럼 같은 처지인 사람들끼리 모여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담 없이 서로 대화하고 공감하며 환기할 시간을 갖는 셈이다.
“물론 나라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지원 정책을 통해 더 나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앞으로 노후 생활에 걱정이 없는 통합 시스템이 생겼으면 해요. 환자뿐 아니라 그 가족, 넓게는 지역사회가 모두 돌봄의 범위 안에 있도록요. 나이가 들어가니 저보다 더 나이 많은 어르신들께 자연스레 관심이 가요. 그들의 모습이 제 미래를 보는 것 같거든요. 앞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더 많이 해볼 생각이에요. 더불어 이웃돌봄지원단과 같은 다양한 지원 사업이 더 잘 되어 자리를 잡았으면 합니다. 더 나은 사회가 되면, 저도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겠죠!”
고령화 시대, 장기 요양 시설은 매년 600개씩 늘어난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믿고 맡길 만한 시설이 어딘지 궁금할 테고, 시설 운영자 입장에서는 효율적이면서도 이용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운영을 하고 싶을 테다. ‘헬씨누리’는 보호자와 운영자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헬씨누리는 CJ프레시웨이의 케어푸드 브랜드다. 요양원, 요양병원, 데이케어센터, 복지관 등의 급식과 관련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한다. “생각보다 많은 보호자들이 시설에서 어떤 밥이 나오는지 관심이 많이 없으세요.” 헬씨누리가 ‘급식 운영’ 전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묻자, 장기 요양 시설 운영을 담당하는 정지영 헬씨누리 케어솔루션팀 팀장이 말했다.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시설의 급식비는 평균 8000원으로 정부에서 전액 보조해준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시설 급식비는 평균 3500~4000원. 정부 지원이 없어 모두 보호자 부담이다. 그렇다 보니 100원이라도 저렴한 곳을 찾는 게 현실이란다. 애호박 한 개에 2000원이 넘어가는데 급식비 평균을 맞추려니 운영자 입장에서도 식단을 구성하는 데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저희는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 안에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급식 운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돕습니다. 어르신들은 아무래도 건강에 취약하다 보니 획일화된 식단이 아니라 개인의 기저질환을 고려한 맞춤형 식단과 서비스가 필요하거든요.” 실버사업 총괄 신승윤 헬씨누리사업부 사업부장이 어르신 이용 시설의 급식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전국에 있는 3800여 개의 요양원 중 75%는 식수 50인 미만의 소규모 시설이다. 문제는 각 시설에 급식을 담당할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다. 식단 단가가 낮다 보니 부실한 급식이 제공되는 곳도 많다. 이에 헬씨누리는 시설 급식 운영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시설 종사자 복지, 어르신 건강으로 연결돼
노동력의 고령화는 요양 시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급식실에서 일하는 조리사 대부분이 베이비붐 세대다. 요양 시설은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끼를 1년 365일 제공해야 해 연차나 휴가를 쓰기가 어렵고 하루 업무 시간도 길다. 업무 강도를 이기지 못해 많은 조리사들이 근무를 포기한다. 요양 시설의 인력난이 이어지는 이유다.
헬씨누리는 급식 운영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먼저 조리가 편한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전반적인 시설 환경, 운영 등 컨설팅과 함께 손질된 식자재 납품부터 전문 영양사의 식단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시설의 요청이 있다면 헬씨누리 전담 영양사가 시설 내 어르신의 건강에 맞춘 식단을 별도로 구성해준다. 조리 과정도 더 편하게 바꿔나가고 있다. 일본의 요양 시설 역시 인력난에 시달리는데, 벤치마킹을 해보니 조리 후 냉동한 음식을 납품받는 곳이 많았다. 냉동식품이 아니라 영양을 갖춰 조리한 음식을 잠시 냉동해 유통하는 식이다. 헬씨누리는 일본처럼 냉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식단에서 두 가지 반찬 정도는 조리하지 않고 간편하게 데워서 낼 수 있는 식단을 제안한다.
정지영 팀장은 “식자재 전처리 등의 과정을 간편하게 해 조리사 편의를 높이는 식단을 기획해드리고, 영양도 풍부하면서 맛도 좋은 식사를 지향한다”며 “한두 가지 반찬의 조리 부담이 줄어든 만큼 다른 요리를 집중해 개발할 수 있다. 이로써 종사자들이 어르신들에게 더 좋은 식사를 제공한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만약 시설에서 일할 조리사 인력이 부족하다면 각 지역별 제휴 업체를 통해 인력 구인을 돕는다. 또 시설에서 특별한 날 급식 이벤트가 필요할 때 헬씨누리 소속 셰프나 조리장을 파견한다.
더불어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등 시설 종사자의 복리후생 차원에서 ‘프레시 마켓’이라는 폐쇄몰을 운영한다. 시설에서 일하는 임직원의 만족도가 높아지면, 어르신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질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일까, 식사를 제공하는 복지관 중 30% 정도는 헬씨누리와 함께하고 있다. 또한 삼성이 운영하는 실버타운 ‘노블카운티’, 대교에서 운영하는 인지개선 전문 ‘FC데이케어’, 종근당에서 운영하는 요양원 ‘헤리티지너싱홈’, 국내에서 가장 병상이 많은 ‘호세요양원’도 헬씨누리의 급식 솔루션을 선택했다.
신승윤 사업부장은 “안타깝게도 급식 운영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요양 시설은 드문 편”이라면서 “헬씨누리 급식을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질 좋은 식사와 투명한 급식 운영을 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어르신 급식이 운영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개인 건강 맞춤형인 고품질 식사를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헬씨누리의 목표다. 정지영 팀장은 “어르신들이 시설에서 맛있고 양양가 높은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꾸준히 급식 운영 환경을 개선해나가고자 한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서울 코엑스에서 오는 6월 4일부터 6일까지 ‘2024 홈케어·재활·복지 전시회’(2024 Reha·Homecare, 레하홈케어)가 열린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의료기기유통협회, 위엑스포가 공동 주최하는 2024 레하홈케어 전시 주제는 ‘건강한 삶, 행복한 인생!’이다.
초고령사회를 맞이해 건강을 증진하고 고령화·장애로 인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건강 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행복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의미다.
전시에서는 국내외 우수 재활·복지 기자재와 홈케어 용품 및 콘텐츠 등을 소개한다. 가정용 의료기기, 침대 관련 기구, 목욕 관련 기구, 화장실 관련 용품, 이동·보행 관련 기구, 차량 관련 기구, 장애인 보조기기, 재활의학 물리치료, 생활 관련 기자재, 바이오 헬스케어, 식사 관련 용품 및 서비스, 주택 개선 관련 기구, 시설용 설비 및 기자재, VR 및 힐링 관련 제품, 유관기관 및 서비스 정보 등을 볼 수 있다.
△1:1 비즈니스 상담회, △전문 세미나 개최, △맞춤형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1:1 비즈니스 상담회는 국내외 시장 확대를 위해 유통△바이어와 다양한 전문가들이 상담을 통해 참가 업체의 판로 개척과 전문 컨설팅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최신 산업 동향과 전망을 제시하고 시설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전문 세미나를 연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더해 재활·복지 산업 종사자들이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만들 계획이다.
전시 부스 중에서도 분야별로 관람을 할 수 있도록 맞춤형 투어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참가 업체가 제품과 콘텐츠를 설명하고 상호 정보 교류를 할 수 있는 장이 될 예정이다.
지난해 열린 2023 레하홈케어 전시에는 제조·서비스·유통업계 종사자(22%)가 가장 많이 방문했다. 그 외에도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15%), 일반 관람자(14%), 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13%), 연구기관·학계·학생(11%), 시설운용자(10%)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시를 둘러봤다.
전시회에서 가장 관심을 가진 분야는 가정용 의료기기가 15.3%로 가장 높았다. 이어 바이오헬스케어(11.6%), 재활의학 물리치료(10.2%), 장애인 보조기기(9.7%), 이동·보행 관련 기구(9.6%) 순이었다.
올해 열릴 2024 레하홈케어 역시 지난해 열린 전시회만큼 다양한 분야를 소개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장년의 노후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으로 사회공헌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법적으로 ‘노인’은 65세부터라지만, 현장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60대까지 중장년이라고 봤다. 100세 시대에는 인생 3막을 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는데, 특히 사회공헌 활동에 50~70대 시니어들이 필요하단다.
기존 ‘사회공헌’이 독거노인, 치매 노인 등 취약 계층에 있는 이들을 지원하는 성격이었다면, 이제는 은퇴자의 인생 2막, 인생 3막을 위해 개인의 욕구를 반영하고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2017년 고용노동부는 생산가능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50·60세대를 ‘신중년’으로 정의했다. 우리나라 고도성장의 주역이면서 부모 부양과 자녀 양육의 이중고를 겪는 마지막 세대이고, 이들의 노후 준비를 위해서는 맞춤형 지원이 절실하다고 봤다. 고용노동부는 보람 있는 노후를 보내고자 하는 신중년의 사회공헌 활동 수요가 많은 데 비해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신중년의 자원봉사 활동은 질이 높지만 참여율은 낮았다. 이들의 노하우나 전문지식을 활용한 재능봉사가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노인의 실질은퇴 연령은 약 71세이며 일하기를 원하는 이유 1위는 생활비(58.3%)였지만, 2위는 보람(34.4%)이 차지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사회공헌 활동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이전 세대보다 고학력자와 전문직이 많은 신중년이 은퇴 후 더 많은 영역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는 주된 직장에서부터 인생 3모작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공헌 활동이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면서 보람과 만족을 얻는 활동이다. 크게 자원봉사와 사회공헌 일자리로 나뉜다. 자원봉사는 노력봉사, 재능기부, 프로보노 세 가지가 있다. 노력봉사는 자신의 경력과 관계없이 할 수 있는 일로 ‘연탄 배달’과 같이 과거에 주를 이뤘던 영역이다. 재능기부와 프로보노는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서 대가 없이 하는 것으로, 최근 이 영역이 활성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서울시50플러스재단 등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소정의 급여도 받고 전문성을 살려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공헌형 일자리도 늘었다. 민간 기업에서는 은퇴 전 전직지원 교육을 통해 어떤 사회공헌 활동이 있는지 안내하는 곳이 많아졌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국립세종수목원은 ‘신중년 사회공헌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세종시 일자리정책과 주도로 이뤄지는 사업인데, 국립세종수목원에서는 식물 관리와 고객 서비스 부분에 신중년이 참여하고 있다. 의무실의 경우 양호교사, 간호사 자격증이 있는 신중년이라면 재능기부로 참여할 수 있다. 노동에 대한 대가가 주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자원봉사 성격을 띤다. 권진온 수목원운영실 실장은 “비영리집단에서 신중년의 사회공헌 참여를 원하는 수요가 많다. 외국의 수목원은 자원봉사자들이 운영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시스템이 미비한 실정”이라면서 “중장년분들은 1년, 2년 단위로 오랜 시간 활동에 참여하시기 때문에 장기적인 수목원 운영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통계청 자료를 보면 50세 이상 응답자 중 80~90%는 봉사활동 참여 의지가 있다고 답했지만, 실질적인 매칭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아직 약하다”면서 “사회공헌 활동이 더 알려져서 더 많은 신중년이 보람도 느끼고 사회공헌에도 이바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돈·시간·보람 세 마리 토끼 잡는 ‘징검다리’
그동안 쌓아온 경력·경험·노하우를 녹여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사회공헌 활동은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사회공헌 활동이 무조건 일자리로 연결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새로운 영역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중장년이 은퇴 후의 삶을 그리는 데 사회공헌 활동이 매우 적합한 활동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영록 이음길 사회공헌 뉴스타트팀 팀장은 “일단 재능기부 활동을 해보라”고 권한다. 한 달 살기를 하더라도 그곳에서 ‘보람’을 주는 일을 찾아야 한단다. 취미 활동과는 또 다른 영역이다.
“재능기부 활동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에요. 내가 원하는 단체나 기관에서 자원봉사 성격의 재능기부 활동을 하고, 교육을 받아 동호회를 구성해 사회공헌 활동에 참여하고, 이후에는 협동조합 등으로 조직을 구성하면서 영역을 확대하는 거죠.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 느끼고, 큰돈은 아니더라도 노후에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목표로 삼으면서 보람도 얻어요. 사회공헌 활동은 돈·시간·보람 세 가지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일입니다.”
박 팀장은 중장년이 재취업에 성공하더라도 퇴장이 빠르다고 지적했다. 풀타임 근무가 생각보다 힘들어지는 나이이기에 몸이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박 팀장은 인생 3모작 설계를 하면서 차근차근 사회공헌 활동을 징검다리 삼아 신중하게 나아가기를 권했다.
프로보노의 경우 변호사·회계사 등 전문 직종 중장년의 재능기부 활동이 주를 이룬다. 전오석 상상우리 프로보노팀 팀장은 “전문직 종사자라면 전문성을 살려 현직에 있을 때부터도 프로보노 활동으로 사회공헌을 할 수 있다”면서 “은퇴한 중장년이라면 사회공헌 활동이 재취업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팀장은 “재능기부라고 하면 나의 경험으로 누군가를 돕는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이 활동을 통해 중장년분들이 많이 배워간다”면서 “대부분 직무의 최고 정점에서 은퇴하기 때문에 다시 실무 감각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기업과 라포를 쌓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드문 경우긴 하지만 기업과 합이 잘 맞아 해당 기업으로 재취업 되는 사례도 있다.
박영록 팀장과 전오석 팀장은 다만 사회공헌 활동 영역에서의 ‘매칭’이 아직은 쉽지 않다고 아쉬움을 보였다. 중장년의 전문성이 필요한 기업의 구체적인 수요와 실제 적용 가능한 전문성을 가진 중장년을 정확하게 이어주는 게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간에서 이들을 연결해줄 ‘코디네이터’가 필요하고, 매칭을 위한 또 하나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그럼에도 앞으로 사회공헌 영역에서 중장년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60대 이후 실질적으로 주된 일자리를 이어가거나 취업 시장에서 다시 활동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기에, 돈·시간·보람 세 가지를 얻을 수 있는 사회공헌 활동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MINI INTERVIEW
‘경력단절’ 사회적 죽음 ‘선택’으로 살아나다
강남의 고층 빌딩이 내려다보이는, 해가 잘 드는 교육장. 이음길 사회공헌 뉴스타트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다. 교육하는 강사도, 수업을 듣는 수강생도 눈을 반짝였다.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수강생들의 모습에서 열의가 느껴졌다. 이곳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았다는 이경원(61) 씨를 만났다.
이경원 씨는 경력단절 여성이다. 육아에 전념하다가 공부를 해 사회복지사로 15년 남짓 일했다. 그리고 정년이 되어 퇴직한 순간, 이 씨는 죽음이 이런 것일 수 있겠다고 느꼈다. 사회적인 죽음 말이다.
“출근도 못 하죠. 활동도 못 하죠. 처음에는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우울했고요. 내가 자발적으로 그만둔 것이 아니라 아직 더 활동할 수 있고 재미있는데, 법적으로 환경적으로 정년이니까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고 하니 더 힘들더라고요. 나는 갈 수 있는데, 가면 안 되니까요. 다시 재취업하려니 기업이 저를 원하지 않더라고요. 나이가 있으니까요.”
어느 날 인터넷 쇼핑을 하던 이 씨 눈에 문구 하나가 들어왔다. ‘사회공헌 뉴스타트’라는 두 단어다. 이경원 씨는 “두 단어가 딱 와 닿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처음 교육을 오기 전까지 긴가민가했단다. ‘그냥 한번 들어보자’는 마음이었다.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에요. 내가 120세까지 산다고 하면 살아온 만큼 앞으로 더 살아야 하는데, 어떤 사회공헌 활동이 있는지 알려주는 이 수업이 저의 인생 방향을 잡아주더라고요. 수업이 제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않아요. 하지만 우울하고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던 저의 숨을 잠시 트이게 해주면서 ‘앞으로 내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는 방향성을 제시해주더라고요. 심폐소생술이랄까요?”
물론 수업을 막상 들어보니 사회공헌 활동이라는 게 쉽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사회적기업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 씨는 수업을 들으면서 ‘그럼 스스로 나의 일자리를 만들어볼까?’ 생각하게 됐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모여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돕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졌다. 사회복지사로 일했기에 사회공헌 활동에는 일찍이 관심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고민해본 건 처음이다. 이경원 씨는 퇴직 후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 혹은 60대를 맞이한 이들에게 “선택하세요”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인터넷에서 문구를 보고 기본 정보를 입력한 후 이곳에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에는 선택이 있었잖아요. 도전은 선택이더라고요. 도전해보라고 하면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선택하라고 하면 해볼 만할 것 같죠? 우리 중장년이 고집이 참 세요. 그동안 해온 것들이 있어 그렇죠. 그런데 제 생각에는 고집을 부리면 선택을 못 하더라고요. 다른 분들도 내가 판단하기에 좋든 나쁘든 일단 선택하고 도전해보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 역시 앞으로도 선택할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매일 선택하고 실행해보시면 어떨까요?”
◇사회공헌 뉴스타트 보건복지부,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이음길HR이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기업 퇴직(예정)자들에게 교육과 현장실습을 통해 사회서비스 분야 일자리 진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초고령화 시대에는 1인 노인 가구, 노인 부부 가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 시설 이용이 어려운 노인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방문 진료, 재택 의료 등 다양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에서는 이미 다양한 방문 진료, 재택 의료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지난 11월 7일 진행한 ‘바람직한 재택 의료 정책 방안 토론회’를 참고해 우리나라 재택 의료 시범사업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정책이 일본처럼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실효성에 대해 들여다봤다.
지난 11월 보건복지부가 제3차 장기요양 기본계획에 따라 2024년 2차 시범사업에서 장기요양 재택 의료센터를 100개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장기요양 재택 의료센터 시범사업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집으로 의료진과 사회복지사가 방문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필요한 지역 사회 자원을 연결해주는 사업이다.
2차 시범사업에서는 참여 대상을 기존 장기요양 수급자 1~4등급과 함께 5등급과 인지 지원 등급까지 포함할 계획이다. 치매로 병원 방문이 어려운 노인도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2022년 12월 시작한 이번 사업에는 28개 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서울 7곳, 경기 10곳, 충북 2곳이 있고, 나머지 9개는 각 시도별로 1개 의원이 참여했다. 다만 부산, 대구, 울산, 세종, 경북에는 참여 의원이 없는 상태다.
환자 만족도 높지만, 유지 어려워
우리나라 장기요양 재택 의료센터 시범사업에 참여하려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로 의료팀을 구성하고 의사는 월 1회, 간호사는 월 2회 가정 방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복지사는 통합 돌봄서비스 연계 관리를 담당한다.
현재 2차 시범사업 시행을 앞두고 있으며 지난 9월 기준 1993명이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하지만 2024년 100군데의 의원 참여가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재택 의료를 위해 병원 진료를 포기해야 하는 의료진의 의료 수가(진료비)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환자와 보호자는 집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았지만,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를 진료하는 대신 1명을 방문해 진료하는 데 있어서 진료비가 그리 높지 않다 보니 참여 의원이 적을 수밖에 없다.
방문 진료보다는 재택 의료 진료비가 높지만 앞서 언급했듯 3명이 팀을 이뤄야 해서 인건비 유지비가 크다는 문제가 있다. 더불어 간호사가 아닌 간호조무사가 동행할 경우 간호조무사에 대한 수가는 책정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사업 참여율을 낮추는 요인이다.
또한 본인부담금이 10% 수준인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현재 3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해 관련 비용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재택 의료 사업은 왕진료에 재택 의료 기본료 14만 원이 추가된다. 만약 6개월 이상 지속 방문하거나 추가로 방문 진료를 원한다면 돈을 더 내야 한다. 비용에 대한 환자의 부담도 있는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의 ‘방문 진료·재택 의료 의사 인식조사’에 따르면 재택 의료보다 먼저 시범 사업을 한 방문 진료의 경우 참여하고 있는 의료 기관이 전체의 1.3%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범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겪은 부분은 ‘방문 진료가 필요한 환자 발굴이 어려움’(32.3%)이었고,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로는 ‘외래 환자 진료시간 감소에 대한 기회비용’(22.6%)때문이라는 답변이 가장 높았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추가로 장기요양 재택 의료센터 시범사업에 참여한 6개 기관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을 진행했다. 조사 결과 이 사업이 유지되려면 한 센터당 환자가 50~70명이 유지되어야 하고, 사업 홍보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방문 진료와 마찬가지로 활성화가 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유로는 △환자 발굴 한계 △필수 인력 기준에 따른 인건비 부담 △환자 본인부담금 높아 참여 저조 △홍보 부족으로 환자가 기관 찾기 어려움 △급여비 청구 시스템 시간 소요 많음 △ 지방자치단체의 시범사업 개념 부족 △의료서비스 필요 기관(치매안심센터, 복지관 등)과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협력 부족 등이 문제로 꼽혔다.
의료·보험·기관 등 협업 있어야
국내의 방문 진료와 재택 의료를 발전시키기 위해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지난 11월 7일 ‘바람직한 재택 의료 정책 방안 토론회’를 열고 일본의 사례를 공유하며 국내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 케어)을 제시했다. 일본에서 2013년부터 시작한 ‘지역포괄 케어시스템’과 같은 것인데, 일본의 지역포괄 케어시스템의 핵심은 재택 의료다. 재택 의료는 치료보다 질환 관리와 질병 예방 등을 지역 자원과 연계해서 이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의료·보험·기관 등 각 영역의 협업이 필수라는 의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카미가이치 리에 재택클리닉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재택 의료 수요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일상적 요양 지원, 증상 급변 시 대응, 퇴원 지원, 케어 등 네 가지 기능이 요구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개호서비스와 의료서비스 연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방문 진료의 경우 외래와 비교하면 비싼 편이지만, 입원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라고 일본의 현황을 설명했다.
이어 “지역포괄케어 시스템이란 간호가 필요한 상태가 되더라도 익숙한 지역에서 본인다운 삶을 마지막까지 지속할 수 있도록 의료, 개호(간호), 예방, 거주, 생활 지원을 일원화해 제공하는 시스템”이라며 “한정적인 자원과 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지역사회 내에서 고령자 생활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장기요양 재택 의료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이충형 대한의사협회 커뮤니티케어 특별위원회 위원은 “(우리나라는) 커뮤니티 케어, 돌봄 재택 의료 등 용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부족하고, 합의도 부족한 것 같다”면서 “재택 의료 수요는 늘고 있지만 재택 의료 대상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통계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짚었다.
수요가 늘어날 거라는 가정만 하는 것이지 정확한 수요 예측은 안 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 보니 서비스 공급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정책 준비도 미흡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충형 위원은 “사망 전 1년 동안 쓰이는 의료비가 마지막 3년 동안 사용하는 의료비의 8~90%에 해당하지만, 대부분 국민은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머물던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면서 “재택 의료가 활성화된다면 시설 입소를 줄일 수 있고, 임종까지 1년이 남지 않은 분들에게 존엄한 죽음과 의료비 절감 두 부분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이를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한데, 국민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 양쪽에서 지원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한 지금까지 1차 의료 기관이 질병을 치료하는 데 목적이 있고, 병·의원 시설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건강관리와 예방, 재활과 재택 의료를 포함하고 의료 인력 외의 전문가 인력까지 팀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서 주로 문제로 꼽힌 것은 ‘수가’다. 팀으로 움직여야 하지만 인건비도 충당하기 어려운 수가 때문에 의료진의 참여가 적을 수밖에 없고, 혹여 좋은 마음으로 참여한다 해도 고립된 환자를 발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어려운 점이다.
그럼에도 일본처럼 지역에서 자원들을 연계해 재택 의료를 활성화하고, 잠재적인 재택 의료 수요를 감당하려면 지자체별로 30~50개 정도의 1차 의료 기관이 재택 의료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고령화 시대 의료비 절감과 고령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재택 의료는 꼭 필요한 서비스가 될 것임은 틀림없다. 현재 시범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참여 의원도 많지 않고, 이런 사업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정부, 건강보험공단, 1차 의료 기관 등이 함께 노력해 우리나라도 향후 일본처럼 재택 의료가 잘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
웰다잉(Well-dying)을 직역하면 ‘좋은 죽음’이다. 저마다 삶의 양식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좋은 죽음에 정답은 없지만, 대체로 ‘삶의 마무리 단계에서 자기결정권을 실현할 수 있는 죽음’을 의미한다. 국내에선 자기결정권의 일환으로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다만 이에 따른 실천은 미미한 편이다. 문제는 개인이 실천했음에도 웰다잉 실현은 어려울 수 있다는 점. 무엇이 그들의 존엄한 마무리를 가로막는 것일까?
웰다잉 수요 변화를 충족할 사전적 정책 대응 마련해야
2025년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된다. 베이비붐 세대가 후기고령자(75세 이후)로 대거 편입되는 시점과 맞물린다. 후기고령자는 치매, 중증 질환 등으로 인해 자기결정권 행사에 제약이 있는 노인이 많다. 이에 대비한 생애 말기 지원 정책의 확대가 요구되는 가운데, 웰다잉 지원 정책의 필요성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 정부는 2020년 12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내 세부 항목에 ‘존엄한 삶의 마무리 지원’을 포함했다. 당시 ‘생애 말기·죽음 관련 자기결정권이 구현되는 사회문화적 기반 조성’을 목표로 내세우며 해당 정책의 내실화를 강조한 바 있다. 그보다 앞선 2018년에는 연명의료결정법, 2019년에는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19∼2023)을 발표해 시행 중이다. 그밖에 존엄사법, 성년후견지원제도, 장사제도, 유족연금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생애 말기 케어, 고독사·죽음준비 평생교육과 상담, 유류품 지원 서비스 등 다양한 관련 법과 지원책이 마련되기도 했다.
해외 선진국에 비하면 국내 웰다잉 정책의 역사는 짧지만, 최근의 시도 덕분에 죽음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꽤 높아진 편이다. 그러나 앞으로 늘어날 웰다잉 정책 수요를 충족하는 제도적·물리적 여건이 현실적으로 마련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존엄한 삶 마무리 지원 정책 모니터링 및 과제’(이하 ‘존엄한 삶 마무리’) 보고서에서는 “현시점 이후부터는 웰다잉 정책 수요의 급증이 예상된다”며 “수요 변화를 충족할 수 있는 사전적 정책 대응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상당한 혼란 또는 논란이 대두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내다봤다.
[이슈 1] 고령화·1인 가구 증가, 웰다잉 품앗이해야 할 판
웰다잉의 직접적 정책 대상자는 사망자다. ‘존엄한 삶 마무리’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사망자 수는 초고령사회 진입 시점인 2025년 이후 급증해 그 흐름이 2060년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이와 더불어 65세 이상 노년층 중 1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구 구조 변화로 사회에서 웰다잉을 지원해줄 청장년층의 부담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장차 1인 가구 장례 품앗이 등을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가장 안타까운 건 저소득 독거노인의 죽음이다. 김경환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는 “독거노인의 경우 무연고 사망자가 많은데, 사실 90% 이상은 연고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대부분 경제적 이유로 시신 인수를 포기한다. 생전에 돈이 없어서 소외됐던 이들이, 결국 또 돈이 없어 장례도 못 치르는 설움을 겪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민간에서 해결하긴 어렵다. 결국 정부에서 고민하고 나서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허울만 있는 웰다잉 정책은 ‘공염불’
웰다잉 정책 수급 불균형의 대표적 사례로 ‘화장(火葬)장 부족’을 꼽을 수 있다. 통상적인 화장로 1기당 1일 적정 가동 횟수(3.5회) 및 가동 일수(300일)를 고려할 때 해마다 늘어나는 사망자 수를 감당하기엔 버거운 실정이다. 실제 코로나19 사태 당시 일시적 수요 증가에 따른 화장장 부족으로 인해 4~5일 장으로 장례를 치른 상황만 봐도 실감할 수 있다. ‘존엄한 삶 마무리’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고령화에 따라 연간 1만 명 이상 사망자 수가 늘어날 전망이다. 이를 감안할 때 화장로는 매년 약 10기 이상씩 확충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 5년간 한 해 평균 확충된 화장로는 7.8기에 불과하다. 더구나 화장장은 님비현상이 적용되는 대표적 시설로, 증설에만 약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상황이다.
김경환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존엄한 죽음을 뒷받침할 시설과 제도 확충이 시급하다. 웰다잉 수요를 고려할 때 화장장, 영안실, 호스피스 병동 등이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라며 “법적인 부분도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유언장을 썼더라도 법적 효력을 크게 발휘하지 못하니 죽음 이후 남은 가족끼리 갈등을 겪거나 소송까지 하게 된다. 독거노인의 경우 사망 후 시신 인수나 장례 등을 제3자가 진행하기에 한계가 있다. 때문에 스스로 정해놓은 죽음의 방식이 있더라도 이를 실현하기 어려워, 결국 웰다잉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책적으로 웰다잉을 언급하지만, 실질적인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이나 다름없다.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곧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준다.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분야인데도 정책적 논의에서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잊힌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슈 2] 벼락치기 연명의료중단, 진정한 웰다잉일까?
현행법상 연명의료중단의 경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혹은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거나, 가족 2인의 진술을 통한 환자 의사 추정 혹은 가족 전원 합의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올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영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연명의료결정제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3년 7월 말 기준 연명의료중단 이행 건수는 29만 7313건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본인의 의사에 따라 연명의료중단이 이행된 건수는 39.2%였다. 즉 가족의 진술 또는 합의를 통한 연명의료중단이 과반수인 셈이다.
같은 자료에서 주목할 사항이 하나 더 있다. 연명의료중단을 위한 서식 작성과 이행이 같은 날 이뤄진 건수가 전체의 80%가 넘는다는 것. 이에 서영석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제도가 시행되고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살펴보면 나의 선택보다 가족의 선택으로 더 많이 이뤄지고, 준비하기보다 벼락치기가 더 많은 현실”이라며 “많은 국민이 제도에 참여하며 관심을 보이는 만큼 전체적으로 제도를 돌아보고 본래의 취지와 목적을 반드시 지켜낼 수 있도록 개선 및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관습적 문제, 가족 눈치 보지 말아야
근래 웰다잉 관련 선행 연구들에서 언급됐던 좋은 죽음에 대한 공통된 개념 중 하나는 ‘자녀(혈연)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이다. 웰다잉은 개인의 처지와 시대적 상황, 문화 등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 노인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은 전통적 가족주의 문화가 반영됐다는 걸 알 수 있다. 남은 가족에게 심리적 부담은 물론 돌봄이나 장례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고 떠나려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웰다잉의 일부이겠으나, 심할 경우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죽음 교육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유경 사회복지사는 “웰다잉 실천을 어려워하거나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로 ‘지나친 가족 중심 문화’를 들 수 있다”며 “가령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핵심인데도,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보호자(가족) 쪽으로 결정권이 넘어가는 편이다. 환자의 치료 경과나 예후에 대해서도 당사자보다는 보호자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뤄진다. 때문에 자신의 상태를 몰라 시의적절하게 마지막을 준비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제도나 인식이 무르익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는 환자가 미리 연명의료중단 의사를 밝혔더라도 의료진으로선 추후 분쟁을 대비해 가족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남은 가족의 부양이나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쓴다는 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자신의 마지막을 선택하기보다는 오롯이 ‘자기결정권’으로 주체적인 고민을 해보시길 바란다”며 “그 이후 가족들을 위해 할 일은 자신의 결정을 알려두는 것이다. 그래야만 갑자기 이별이 찾아오더라도 가족들이 우왕좌왕하거나 갈등하지 않고, 고인의 생전 뜻대로 마지막을 순조롭게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슈 3] 노인 중심 웰다잉 교육, 중장년도 외면 말길
웰다잉 분야 전문가들은 ‘죽음 교육’에 대한 수요 증가 및 활성화는 뚜렷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후기고령자 중심으로 정책 집행(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따른 생애 말기 준비·설계 교육 등)이 이뤄져 다소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장소의 특성상 중장년은 교육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을뿐더러, 평생교육과의 연계 또한 어려운 실정이다. ‘존엄한 삶 마무리’ 보고서에서도 “부모의 장례를 준비하는 40~60대를 핵심 정책 대상층으로 선정해놓고 있음에도 (이에 따른 교육 등이) 소극적이라는 점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유경 사회복지사는 “중장년은 죽음을 먼 이야기로 여겨,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도 막상 실천으로 이어가지 못한다. 노년기에 죽음을 생각하면 주로 삶에 대한 회고지만, 중장년기에는 회고와 더불어 다가올 노년기를 계획해볼 수 있다. 즉 중간점검 기회인 셈이다. 다가오는 연말에는 나의 죽음을 떠올려보고, ‘웰다잉’을 내년 버킷리스트로 삼아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김경환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 유경 사회복지사(죽음 준비교육 전문강사)
참고 존엄한 삶 마무리 지원 정책 모니터링 및 과제(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모두 위한 내 꿈, 다시 뛰는 40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서울시 보람일자리사업을 통해 인생의 재도약을 꿈꾸는 4050 세대를 응원하기 위해, ‘모두 위한 내 꿈, 다시 뛰는 4050’ 캠페인을 펼칩니다. 본지는 서울시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보람일자리 사업을 통해 사회 곳곳에서 공공에 기여하고 있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중년 이후 찾아온 여유. 그러나 무료하게 보내는 ‘빈 시간’이 계속되자 일상은 무기력해졌다. 나를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마침 보람일자리 도서관지원단이 눈에 띄었다. 접수 마감 1시간을 남긴 때였다. 정신없이 서류를 작성하면서도 망설임은 없었다. 결과는 합격. 김요경 씨는 “이 일을 하게 된 건 운명과 같다”고 말한다.
더브릿지 작은도서관. 아담한 공간에는 아이들을 위한 도서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도서관 업무는 난생처음이지만,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은 낯설지 않은 김요경 씨다. 두 자녀의 엄마이자 수학학원 강사로 지낸 경험 덕분이다. 최근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왔지만, 그는 소위 말하는 ‘경단녀’(경력단절 여성) 시절을 겪었다. 본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당시는 개인용 PC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로, 각광받는 직업 중 하나였다. 전산통계학과 졸업 후 공장자동화 프로그램을 주로 개발했는데,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일을 그만두게 됐다. 자녀 친구들을 가르치다 학원 강사까지 했지만 원하던 길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의 경력은 쓸모를 잃어가는 듯했다.
“프로그래머나 수학 강사나 해온 일은 이과 쪽인데, 도서관지원단 일은 문과에 가깝잖아요. 막상 내 적성에 맞을까 걱정되더라고요. 사실 여기 관장님께서도 보람일자리 파견을 처음 받아보신 터라, 제게 어떤 일을 맡겨야 할지 고민하셨죠. 일단 제가 잘하는 일이면서 도서관에 도움이 될 일을 찾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보니까 도서관 홈페이지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제가 만들어보겠다고 했죠. 관장님께서도 만족해하셨고, 그렇게 만든 홈페이지가 지금 쌩쌩 잘 돌아가고 있답니다.”
자신감 심어준 ‘보람’일자리
물론 그는 도서관 본연의 업무인 서가 정리 및 도서 관리, 북큐레이션 지원 등의 업무도 소화한다. 그러면서 프로그램 홍보물을 직접 제작하고, 도서관과 연계된 그룹홈 아이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등 그간의 경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자신의 모든 걸 할애하면서도 역으로 더 많은 걸 얻어가는 요즘, 하루하루 보람을 채워가고 있다.
“보람일자리에서 ‘일’도 중요하지만, ‘보람’이 주는 게 더 큰 것 같아요. 특히 관장님이나 담당 사회복지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어요. 사실 노후에 뭘 할까 고민하다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거든요. 경제적인 부분을 고려한 선택이었죠. 그런데 이제는 ‘나도 작은도서관을 한번 만들어볼까, 어떤 봉사활동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답니다. 노후 계획도 결이 많이 달라진 셈이죠. 그렇게 보람일자리는 저를 또 다른 세상으로 연결해줬어요.”
보람일자리 참여 후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묻자 “바로 지금”(인터뷰하는 것)이라 답했다. 그렇게 매 순간 새로운 경험과 마주하고, 새록새록 호기심이 생겨나며 무력했던 일상도 활력으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존감도 생겨났다.
“여기 와서 관장님께서 칭찬도 많이 해주시고, 서울시50플러스재단 담당자분들도 북돋아주신 덕분에 상당히 자신감을 얻었어요. 잘한다고 하니 어린애처럼 더 열심히 하고 싶고, 동기부여도 되더라고요. 앞으로 꼭 뭐를 하겠다고 정해두진 않았지만, 이것저것 둘러보고 배워가며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계획입니다.”
긴 노후, 실현 가능한 도전을 향해
젊은 시절 못지않은 의욕을 불태우지만, 아무래도 나이 때문에 체력의 한계는 무시 못 한다는 김요경 씨. 인생 1막과 2막의 차이를 ‘건강’에서 느낀다고 했다. 무모한 도전보다는 심신을 돌보며 차분히 노후를 준비하겠다는 다짐이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엄청나게 무리했어요. 어지럽고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다가 뇌경막하수종 진단을 받았어요. 그때 비로소 나이를 체감했죠. 인생 1막과 2막의 경계도 아마 그런 것 같아요. 뭔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있겠구나 깨달았습니다.”
의욕과 달리 체력이 부족해 도전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을 테다. 자칫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는 오히려 욕심을 비워내고 감사하는 마음을 들여놓기로 했다.
“저희 시어머니께서 103세까지 장수하셨는데, 100세 때 그러시더군요. 마음만큼은 열여섯이라고요. 제 마음도 그래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마음이야 그렇지만 무모하게 도전해서 건강 잃으면 손해잖아요. 이제 노후는 길게 봐야 하니까요. 욕심을 내려놓고, 어떤 목표나 기준점도 살짝 낮추려고 해요. 대단하지 않더라도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앞으로도 성실하게 살아가려 합니다.”
케어닥 케어홈은 어르신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건강상태 및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케어 서비스를 강화한 주거형 요양시설 브랜드다. 일상 속 가벼운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도 폭넓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전문 인력을 강화한 새로운 실버타운
케어닥은 기존의 요양시설과 프리미엄 실버타운 외에 전문적 건강관리 및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맞춤형 주거 복지시설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주목, ‘케어닥 케어홈’을 선보였다. 국내에서는 병원 입원 및 자택 퇴원, 전문 요양시설 입소 등으로 이어지는 돌봄 여정에서 중간 단계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돌봄 서비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배곧 신도시점을 시작으로 송추 포레스트점, 용인 더퍼스트점이 차례로 개소할 예정이다.
◇세심한 거주 환경
운영 인력은 사회복지사, 간호사, 영양 및 조리사, 간병인 등 돌봄 환경에 꼭 필요한 다양한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면회실, 상담실, 운동실, 커뮤니티실, 프로그램실, 물리치료실, 재활 공간(워크메이트), 찜질방 등 공용 시설을 포함해 독립적인 생활공간을 제공한다. 취향에 따라 개인 가구나 필요한 가전제품을 놓을 수 있다. 안전을 위한 높낮이 조절 세면대, 낙상 방지 알림 및 비접촉식 생체정보 수집 시스템 ‘실버가드’, 스마트 기저귀 등은 필요에 따라 선택 가능하다.
◇개인의 상태를 고려한 맞춤형 서비스
1관은 장기요양급여 비수급자, 2관은 장기요양급여 수급자를 중심으로 조성됐다. 문화 및 여가(텃밭 가꾸기, 노래교실 등), 가정간호, 응급케어, 촉탁의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각 관의 특성에 따라 차별화된 프로그램이 적용된다. 모든 입소 어르신은 케어닥 케어홈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추가 비용이나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1관 입소자가 2관, 2관 입소자가 1관 이용 가능) 은행 업무, 쇼핑 등 외부 활동이 필요할 때는 전문 인력과 동행 가능하다.
국민 모두 행복하기를 꿈꾸며 사회·복지·의료 분야에서 평생을 달려왔다. 202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자리에서 퇴임한 뒤에도 그 꿈은 여전하다. 여유 부릴 새 없이 이듬해 전문가들과 함께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를 설립했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기 위해.
김용익 이사장은 대학 시절부터 지역사회 의료에 관해 무수한 경험을 했다. 의료봉사회에 들어가 본과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매주 주말마다 판자촌 진료를 하고, 방학 때는 무의촌 진료를 다녔다. 다양한 지역을 누비며 환자들을 보살폈다. 당시에는 아파도 가까운 시설이 없어 치료받지 못해 증세가 심해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복지 사각지대를 마주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의료 취약계층을 줄이려면 제대로 된 체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의사 등 의료 종사자들이 환자를 찾아다니며 병원 밖에서 진료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선친께서도 시골에서 왕진을 다니던 의사였어요. 그 영향으로 자연스레 의학을 전공하게 됐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터라 아버지는 주로 자전거로 마을 곳곳을 다니셨습니다. 종종 옛 친구들을 만나면 ‘너희 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나를 살렸다’는 말을 듣기도 해요. 현재는 방문 진료가 몇 가지 예외 상황을 제외하고는 사라진 상태예요. 2008년 장기요양보험의 등장으로 새로운 방문 형태가 생겼지만, 왕진이 다시 활성화돼 이동 기능이 약화된 노인이나 장애인을 돕는 의료와 요양 서비스를 연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가정 환경과 관련 봉사활동은 행보의 기폭제가 됐다.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보건의료 정책을 전공하는 교수로 30여 년간 재직했다. 1980~90년대에는 보건복지 운동에 참여했다. 의료보험의 통합일원화, 의약분업 등을 추진하며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고령화및미래사회위원장과 대통령실의 사회정책수석비서관으로 일했다. 보건의료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사회·경제 정책을 들여다보게 됐다. 이후 제19대 국회의원으로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의정 활동을 했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4년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맡았다. 복지 체계를 정립하려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민과 면밀한 토론, 모색을 거쳤다.
“학자로서 이론과 현장성을 두루 갖출 수 있는 큰 행운을 얻었습니다. 공직에 있을 때도 여러 노력을 했고, 퇴임하고는 방법을 바꿔서 돌봄과 관련한 사회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우리 사회에는 오래된 세 가지 난제가 있습니다.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죠. 역대 정부가 저마다 해결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지만,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붓고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어요. 각각의 요소들은 넓은 교집합을 갖고 여러 고리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종합적으로 들여다보면서 같이 풀어나가야 해요. 돌봄과 미래를 창립한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돌봄의 더 나은 미래
돌봄과 미래는 이론적 연구를 기반으로 대안을 개발해 지역사회 돌봄이 확대·강화되고, 안정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자 만든 사회운동 단체다. 김 이사장은 돌봄 문제가 워낙 큰 의제인 까닭에 여론 조성과 정책 제안,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2025년, 65세 이상 연령층이 총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노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을 돌볼 책임은 그 가족 혹은 당사자에게 있다. 그는 개인이 돌봄 노동과 비용의 짐을 떠안지 않도록 방문 서비스, 주·야간보호 서비스, 주택 지원을 대대적으로 확충해 ‘전국민돌봄’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돌봄 재난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습니다. 노인 인구와 생산가능 인구가 동시에 늘어나는 게 아니라 반비례하고 있어요. 물리적으로 돌봐주거나 돈을 낼 사람이 없는데, 돌봐야 할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돌봄 체계의 실상은 15년 전과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요. 보호자의 책임과 부담, 도움이 필요한 이의 죄책감을 함께 줄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경우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전문 인력이 집으로 찾아가 진료하고, 그 외 공백은 주·야간보호센터를 설립해 채워야 합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봄을 받는 것처럼요. 더불어 건강한 생활을 돕는 주택 지원 및 개조 사업을 진행하면서 주거 환경까지 개선하는 겁니다. 그렇게 시설 입소 인원이 줄어들면, 신체 상태가 악화돼 정말 시설에 들어가야 할 사람들이 질 높은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오랜 시간을 들여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하면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을 거예요.”
유종의 미 거두고 인생 3막 향해
학자, 시민운동가, 정치인, 정책가로 일하는 동안 많이 체험하고 가슴 아파했다. 모든 일이 순탄하게 쉬이 흘러가진 않았어도 굴복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았다. 물론 대한민국 사회정책의 완벽한 대안이라고 자신할 순 없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찾고 합리적으로 해결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만큼 가족에게는 미안한 마음입니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느라 자녀들 얼굴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았죠. 누군가에게 주례를 부탁받으면 모두 거절했습니다. 스스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기에, ‘결혼해서 잘살라’고 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10년이 흘러 80세가 되면 ‘진짜 은퇴’하려 해요. 돌봄과 미래 활동을 마무리하고 나면 가족과 함께 일상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동네 도서관에서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을 실컷 읽고, 산책도 즐기면서요. 그 전까지는 제 노력이 사회정책의 새로운 담론을 세우는 데 작은 초석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