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귀향은 그만, 머무르지 않는 ‘귀촌’ 증가

기사입력 2022-08-03 08:11 기사수정 2022-08-03 08:42

[관계인구 기획 ①] 거주 방식 다양화가 ‘귀촌=이사’ 공식에 변화

귀촌(歸村), 촌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오는 것. 보통은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지방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귀촌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역에 살지 않고도 귀촌한 것처럼 그 지역에 참여하는 새로운 인구가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귀촌이 본격화됐다. 도시로 상경했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U턴, 지방 출신이지만 다른 지방에서 정착하는 J턴, 도시 출신인데 지방으로 이주하는 I턴이 가장 흔했다. 경제적 이유, 가족의 사정, 한가로운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 등이 주된 이주 이유였다.

이제는 ‘그 지역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어서’ 귀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 지역에 가서 반드시 살아야지’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어느 동네에 놀러 갔다가 그곳 사람이 혹은 마을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물들듯 귀촌하는 것이다. 혹은 그 지역에 살지 않더라도 도시와 지역, 근교와 지역을 오가며 머무르지 않는 귀촌 생활을 하기도 한다.

여러 지역과 관계 맺는 사람들

어떤 지역에 살지는 않지만, 그 지역에 호감과 관심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든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사람을 ‘관계인구’라고 말한다. 관계인구는 관심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가고 지역 발전을 응원한다. 지역 특산물을 구매하거나 커뮤니티에 참여하기도 한다. 일종의 ‘팬’이 되는 것. 그런 지역은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일 수도 있다.

‘관계인구’라는 말은 식품 생산자와 생산품 정보를 제공하는 일본 소식지 ‘도호쿠 먹거리 통신’의 다카하시 히로시 편집장이 그의 저서 ‘도시와 지방을 섞다 : 타베루 통신’에서 처음 사용했다. 2016년 처음 소개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역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지역의 행복까지 생각한다.

‘인구의 진화’ 저자 다나카 데루미는 책에서 “관계인구는 이주·정주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도 넓힌다”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지역을 오가면서 결국 정착하는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지역재생 전문 잡지 ‘소토코토’의 사시데 가즈마사 편집장은 ‘미래 시대는 관계의 시대’라고 말하며 관계인구를 네 부류로 나눈다. 지역에 살며 행정기관과 협력해 마을을 만들어가는 디렉터형, 도시와 지역을 홍보하는 허브형, 도시에 살지만 지역에도 거점이 있는 더블로컬형, 무조건 그 지역이 좋다고 하는 단순 소통형이다.

관계인구 개념이 지역 소멸을 해결할 열쇠가 될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도쿄에 모여 ‘시마코토 아카데미’를 열었다. ‘이주하지 않아도 지역을 배우고 싶고 참여하고 싶다’는 모토로 관계인구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장소,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는 일이다. 아카데미에 참여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지역에 관심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이면 마음에 변화가 생긴다. 6년 동안 6기를 진행해 수강생 83명 중 29%가 지역에 정착했다. 다나카 데루미는 이 아카데미의 목적이 ‘이주를 촉진하기 위함’이 아니라, ‘떨어져 있더라도 관계를 맺고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있다고 평가한다. 각자가 삶의 문제의식을 고민하면서 전진한 결과라는 것. 그는 관계인구를 ‘동료’라고 표현했다.

지역에 얽매이지 않는 '관계 귀촌'

일본 정부도 관계인구에 관심이 많다. 정주인구 증가를 목표로 했던 지방창생정책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관계인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주요 3대 도시권에 있는 관계인구는 약 1800만 명이 넘는다. 1800만여 명이 대도시에 살면서 크든 작든 다른 지역에 직접 이바지하는 활동을 한다는 뜻이다.

일본과 똑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농산어촌에 유동인구로 존재하는 관계인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농산어촌 마을 패널 조사사업’(2/10차연도)에 따르면 농산어촌 마을 평균 77.4호 중 5.6호는 지역에 주소지를 두지 않은 가구다. 보고서는 관계인구가 있는 마을의 비중이 30.4%라고 분석했다. 마을당 약 20명의 관계인구가 있는 셈이다. 행정안전부는 2018년부터 ‘청년마을 만들기’라는 청년 정착 지원 프로그램으로 청년과 마을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사시데 가즈마사 ‘소토코토’ 편집장은 지역이 관계인구를 만들려면 ‘관계안내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관광안내소가 지역의 명소나 맛집을 안내한다면, 관계안내소는 지역에서 재미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소, 지역과 연결될 수 있는 방법 등을 안내하는 곳이다. 관광안내소 같은 어떤 건물이 아니라 마음 편한 장소나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앞서 언급한 ‘시마코토 아카데미’가 대표적인 예다.

인구 감소 시대에 새로운 귀촌으로 관계인구가 떠오른다는 건 귀촌이 더 이상 지역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서울에 살면서 제주의 농부를 응원하고, 강원도의 커뮤니티에 참여하며, 충남 공주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활동을 하는 식의 관계 귀촌을 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말이다.

이번 호에서는 공주 원도심의 관계인구가 되었거나 귀촌한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새로운 귀촌이 어떤 모습인지 들여다보려 한다. 공주 원도심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치를 가지고 곳곳을 느슨하게 연결하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귀촌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역을 보여줄 뿐이다. 그렇게 공주와 연결된 사람들은 지역에 살지 않아도 마치 지역에 사는 것처럼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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