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7

[현장에서] 고령자 자기결정권 어떻게 지킬까? 후견제도 개혁 해법 모색

입력 2026-06-17 17:28

현행 성년후견제도 한계 진단…미국·영국처럼 ‘의사결정지원’ 확대 제언

▲17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후견 등 의사결정지원기본법 심포지엄'이 열렸다.(박지수 기자 jsp@)
▲17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후견 등 의사결정지원기본법 심포지엄'이 열렸다.(박지수 기자 jsp@)

치매와 인지기능 저하를 겪는 고령자가 늘어나면서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가 새로운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성년후견제도가 당사자의 의사보다 대리결정에 무게가 실려 있다고 지적하며, 후견을 최후의 수단으로 제한하고 고령자와 장애인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17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후견 등 의사결정지원기본법 심포지엄 ‘의사결정지원으로, 성년후견제도 개혁’에서는 현행 후견제도의 운영상 한계와 미국과 영국 등 해외 제도 운영 사례를 살펴보고 의사결정지원 체계 도입 방안이 논의됐다.

▲17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후견 등 의사결정지원기본법 심포지엄'에서 배광열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가 발표를 하고 있다.(박지수 기자 jsp@)
▲17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후견 등 의사결정지원기본법 심포지엄'에서 배광열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가 발표를 하고 있다.(박지수 기자 jsp@)

후견 개시는 정체, 감독 사건은 증가

배광열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는 현행 성년후견제도가 당사자 의사 존중보다 후견인에 의한 의사결정 대행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배 변호사에 따르면 성년후견 개시 사건은 연간 4000~4500건 수준에서 정체돼 있지만, 후견 감독 사건과 각종 관련 사건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후견 사건은 피후견인 사망이나 종료 심판 등이 없는 한 장기간 유지되게 때문에 감독 업무가 누적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그는 “후견 개시부터 감독, 후견 진행 과정 전반에서 당사자의 의사가 충분히 보장되거나 발현될 기회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후견사업 역시 발달장애인, 정신질환자, 치매 고령자 등 대상별로 분절돼 운영되면서 전문성 축적과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별 후견인 부족과 법원의 감독 부담도 문제로 꼽았다.

배 변호사는 “후견 감독은 사실상 행정적 성격이 강한 업무인데 현재는 법원이 이를 담당하면서 과부하가 발생하고 있다”며 통합적 관리 체계 마련 필요성을 제기했다.

▲17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후견 등 의사결정지원기본법 심포지엄'에서 윤태영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박지수 기자 jsp@)
▲17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후견 등 의사결정지원기본법 심포지엄'에서 윤태영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박지수 기자 jsp@)

재산관리보다 더 많은 ‘일상 지원’ 수요

윤태영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후견제도가 실제 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후견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구가 약 129만 명에 이르지만 실제 제도 이용률은 4%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후견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고도의 법률행위보다 재산관리, 행정절차 지원, 일상생활 상담과 같은 지원 업무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후견인 상당수가 피후견인의 생활 전반을 돕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후견은 재산관리 중심으로 인식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일상적인 의사결정 지원 수요가 훨씬 크다”며 “후견인의 도움을 받아 피후견인이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행사하고 사회에 참여하도록 돕는 것이 후견의 핵심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후견이 필요한 상황도 있지만 단순히 옆에서 도와주는 지원 체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후견은 최후의 수단으로 두고 그 이전 단계에서 의사결정지원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영국은 후견보다 의사결정지원 우선

윤 교수는 미국과 영국 사례를 소개하며 국제적 흐름이 대리결정에서 의사결정지원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후견 개시 이전에 ‘지원된 의사결정제도(Supported Decision-Making·SDM)’나 ‘지속적 대리제도(Durable Power of Attorney·DPOA)’와 같은 덜 제한적인 수단을 우선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대안이 충분하지 않을 때만 법원을 통한 후견제도를 활용한다.

영국 역시 성인의 법적 능력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가운데 지속적 대리권 제도와 다양한 지원 장치를 운영하고 있다.

윤 교수는 “미국과 영국은 자기결정권 우선, 최소 제한 원칙, 기능별 맞춤 지원이라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의사결정 능력 결여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구조에서 지원 중심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7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후견 등 의사결정지원기본법 심포지엄'에서 토론자들의 토론과 질문이 이어졌다.(박지수 기자 jsp@)
▲17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후견 등 의사결정지원기본법 심포지엄'에서 토론자들의 토론과 질문이 이어졌다.(박지수 기자 jsp@)

문제는 패러다임보다 인프라

이어서 진행된 토론에서는 의사결정지원 체계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은정 중앙치매센터 변호사는 치매 공공후견 사업 사례를 소개하며 “치매 환자의 잔존 능력과 의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후견 활동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치매 환자가 원하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도록 지원하거나 요양병원 입원 중에도 귀가 의사를 존중해 주거 계약을 유지한 사례 등을 소개하며 자기결정권 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형률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는 “현재 후견제도 역시 본인의 의사와 잔존 능력 존중을 기본 이념으로 설계돼 있다”며 “문제는 패러다임이 아니라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정과 조사 인력 부족, 공공후견 체계 미비 등을 언급하며 “후견이 필요함에도 이용하지 못해 발생하는 위험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강원 법무법인 디엘지 공익인권센터 부센터장은 “후견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최후의 수단으로 제한하고 의사결정지원 체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보영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고령사회정책총괄과장은 “치매 환자의 재산 보호와 법률 지원 체계 강화를 위해 관계 부처가 관련 과제를 검토하고 있다”며 “지속적 대리권 제도나 등록 체계 등도 향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토론자들은 후견제도 폐지 여부보다 당사자의 의사와 선호를 최대한 존중할 수 있는 의사결정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향후 제도 개혁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는 데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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