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6

“고령자가 마을을 바꿨다” 일본의 노후주거지 재생 해법

입력 2026-06-26 16:00

건물보다 공동체…주민 참여가 만든 지역 재생

▲26일 국토연구원 도시재생·정비연구센터가 개최한 '노후주거지 정비방향 국제세미나'에서 토시오 오오츠키 일본 도쿄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박지수 기자 jsp@)
▲26일 국토연구원 도시재생·정비연구센터가 개최한 '노후주거지 정비방향 국제세미나'에서 토시오 오오츠키 일본 도쿄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박지수 기자 jsp@)

초고령사회에서 노후주거지 재생의 핵심은 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닌 사람을 남기는 데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일본은 고령 주민들이 직접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빈 공간을 주민 거점으로 바꾸며 돌봄과 일자리까지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지역 재생에 나서고 있다.

26일 국토연구원 도시재생·정비연구센터가 개최한 ‘노후주거지 정비방향 국제세미나’에서 토시오 오오츠키 일본 도쿄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일본 지방도시 노후주거지 재생 전략’을 주제로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며 “지역을 살리는 주체는 결국 주민”이라고 강조했다.

오오츠키 교수는 일본의 지방도시가 고령화와 인구 감소, 빈집 증가라는 복합적인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1990년 이후 사망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2040년까지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망자가 늘면서 상속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주택은 빈 집으로 남고, 이는 지역 쇠퇴를 가속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한 자녀 가구 증가와 인구 감소가 겹치면서 지방도시 곳곳이 소멸 위기에 놓였다. 그는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워질 경우 지역사회 유지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의 최근 국세조사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확인된다. 최근 5년 동안 인구가 약 300만 명 감소했고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약 60만 명씩 인구가 줄어든 셈이다. 그는 앞으로도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남은 시간을 활용해 지역 스스로 대응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오오츠키 교수는 지역 재생 대표 사례로 일본 사가현 키야마시를 소개했다. 약 1300가구 규모의 단독주택 단지인 이 지역은 1990년 JR 역 개통 이후 안정적인 주거지로 성장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주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전환점은 2015년이었다. 키야마시는 행정종합계획을 수립하면서 경험이 풍부한 고령 주민들을 지역의 자산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주민들이 직접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건강 프로그램과 여가 활동을 기획했으며 농가와 연계한 텃밭 활동과 지역 카페, 커뮤니티 센터 운영 등을 통해 일자리도 만들었다.

▲도쿄 하치오지시 메지로다이 단지 주민들이 줌(Zoom)으로 비대면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토시오 오오츠키 교수 발표 자료 화면)
▲도쿄 하치오지시 메지로다이 단지 주민들이 줌(Zoom)으로 비대면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토시오 오오츠키 교수 발표 자료 화면)

단지 복지사업이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지자체는 필요한 재정과 행정 지원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눴다. JR이 역사를 무인화하자 주민들이 역 운영 일부를 위탁 받아 관리했고, 시각장애인 고령자를 위한 이동 지원과 돌봄 서비스도 지역 안에서 마련했다.

오오츠키 교수는 이러한 활동의 핵심은 시설이 아니라 주민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또 다른 사례인 도쿄 하치오지시 메지로다이 단지에서는 주민과 전문가가 함께 마을 재생을 추진했다. 마을 만들기 협의회를 구성해 매달 워크숍을 열었고 코로나19 시기에는 온라인 회의로 전환해 활동을 이어갔다. 고령 주민들은 줌(Zoom) 사용법을 배우며 비대면 회의를 지속했고 공동체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주민들은 역 앞 빈 점포를 카페와 도서 공간, 주민 모임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곳은 세대 간 교류와 돌봄이 이뤄지는 지역 공동체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오오츠키 교수는 “초고령사회에서 지역 재생은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지역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과정”이라며 “행정은 주민의 자발적인 활동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발표는 노후주거지를 정비 대상이 아니라 고령자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생활 기반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건물을 새로 짓는 것보다 주민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지역 재생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 역시 빈집과 지방 소멸, 고령자 돌봄 문제가 동시에 현실화되고 있는 만큼 주민 참여를 기반으로 한 지역 재생 모델에 대한 논의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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