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 이야기] 1947년생 질곡의 편린 한 조각

기사입력 2015-04-28 16:57 기사수정 2015-04-28 16:57

고루살이를 꿈꾸는 작가 김성동(金聖東)이 말하다

▲일러스트=윤민철 작가

간신히 연락이 닿아 원고를 청탁했더니 “나는 컴퓨터도 안 하고 육필로 쓰잖여. 글씨도 못 알아볼 건데 그냥 됐시유. 내가 보니께 나랑 안 맞는 것 같유. 그 책하고는. 난 부족한 사람인디. 글 못 쓰니께 다른 선상 알아봐유. 난 하루도 술 없이는 못 사는구먼그려.” 구수한 충청도 말씨에 그대로 외로움이 묻어났다. 그렇게 사양하던 작가 김성동은 고색창연한 200자 원고지(金聖東이라고 인쇄돼 있다)를 노끈으로 묶은 글을 우편으로 보내왔다.

“문학은 삶과 우주의 본질을 통찰하려는 인간의 몸부림이지”라는 그의 육성을 다시 듣고 싶어졌다. 아카시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막걸리 받아 큰 슬픔을 안고 사는 그를 만나러 가야겠다. <편집자 주>



총소리였다. 총소리는 잇달아서 들려왔다. 사타구니에 꼬랑지를 말아들인 삽살개가 마룻장 밑으로 숨어들었고, 삼키면서 길게 끄는 동네 개들 울음소리만이 높이 떠서 흩어지고 있었다. 불에 덴 것처럼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고, 아낙이 속적삼을 헤쳐 아이에게 젖꼭지를 물렸다. 등꼬부리 노파가 두 팔로 일곱 살짜리 계집아이를 끌어안았고 공포에 질린 눈길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던 식구들 눈길이 사방으로 돌려졌다.

*해설피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1950년 첫 때. 조선 나이로 네 살이었으니, 이 누리에 벌레몸을 받아 태어난 지 꼭 2년 8개월 되던 때였다. 다른 이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이 중생에게 맨 처음 떠오르는 그림은 네 살 적부터인데, 총소리이다.

맨 처음 떠오르는 그림이 총소리라는 것이 얄망궂다. 꼭 무슨 팔자소관인 것만 같아 눈앞이 부우옇게 흐려오니, 운명인가. 전정(前定)된 명운(命運) 말이다. 저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 같은 것. 그것으로부터 이 중생 살매는 비롯되었으니까. 아직 이빨도 다 솟지 않은 네 살짜리 어린 것 넋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던 그 총소리 말이다.


아버지는 원초적 그리움의 대상

총소리를 듣던 때가 여름이었을 것이다. 그때까지 이 중생은 영 입을 열지 않는 것이어서 벙어리인 줄 알고 큰 걱정들을 하시는 판이었는데, 느닷없이 입을 열더라는 것이다. 마당에 깐 멍석에 둘러앉아 식구들이 막 저녁상을 받는데, 멍석 가장자리를 기어 다니던 아이가 한밭[대전]쪽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세 차례나 부르짖더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조선정판사 사건’이라는 미 군정과 그 사냥개들이 쳐놓은 덫에 치여 절망적 ‘피고회의’나 하던 리관술(李觀述)·송언필(宋彦弼) 선생 같은 선배 독립운동가들이며 인민 계관시인 유진오(兪鎭五)선생, 그리고 10월항쟁·여순항쟁·4·3항쟁을 비롯한 지리산·태백산·일월산 같은 재산인민유격대 *싸울아비들과 함께 총하지혼(銃下之魂)이 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정(而丁)선생[朴憲永]의 비선(秘線)으로 대전·충남 지역 조직장인 아버지가 대전형무소로 끌려가셨던 것은 당신 나이 서른두 살 때인 1948년 늦가을이었다. 리승만이 남조선 단독정부를 세운 뒤였다. 평양행과 지리산 입성을 놓고 손톱여물을 썰던 끝에 얼굴도 못 본 자식놈 손이라도 잡아보려고 들렀던 고향집에서 당신을 맞이한 것은 벌써 몇 달째 그물을 치고 있던 서청(서북청년단) 출신 서울시경 특별경찰대였던 것이다.

뒷동산으로 피란 갔던 그때 이야기를 썼던 것이 『그해 여름』이라는 단편소설이다. 군사깡패들한테 잡지를 폐간당하고 나서 무크지로 박아냈던 <창비신작소설집>에 실렸던 것이니, 꼭 30년 전이다. 그 소설이 어떤 유명한 친왜작가 이름을 딴 문학상에 후보작으로 올랐으나 심사위원 모두 입을 다물었다고 하니, ‘반미소설’이라는 것이었다. 조치원·대전 방어선이 무너지며 금강방어선으로 뒷걸음질하던 북미합중국 병대가 보령·청양 경계인 화성장터에서 양키병정·토인병정 구경나온 아녀자 여남은 명을 죽였던 참이야기를 바탕삼은 소설이었던 것이다.

딴 이야기인데- 요즈음 이른바 문학상이라는 것이 4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등단해서 십년만 되면 적어도 서너 개씩 문학상을 목에 걸고 흰목 잦히는 작가들이다. 작가를 장삿속으로 써먹으려는 속셈을 보고 어떤 문학상을 거부했던 것이 1983년이었다. 물론 소설 됨됨이가 모자라서 그런 것이겠지만 이른바 등단 40년임에도 무슨 창작기금과 절집동네에서 주는 무슨 상 말고는 하나도 받아보지 못한 중생이므로, 더구나 눈에 밟히는 『그해 여름』이다.

아버지를 목 놓아 부른 다음부터 떠오르는 것은 배고픔이다. 할아버지는 손님이 오면 꼭 아비 없는 손자를 사랑방 명색으로 불러 “이 으른께 절허구 뵙거라.” 그리고 식구들은 쫄쫄 굶는데도 꼭 진지대접을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들여놓는 손님 진짓상을 보며 이 중생은 눈을 꼭 감았다.

주칠이 벗기어져 희뜩희뜩한 개다리소반에는 보리가 조금 섞이고 검정콩이 박힌 옥 같은 쌀밥과 췻국 한 대접, 그리고 김치와 호박무침에 간장과 고추장 보시기가 놓여 있었다. 재게 오르내리는 수저를 바라보던 이 중생은 미주알을 눌러 막고 있던 두 발꿈치에 힘을 주어야만 하였으니, 거시침이 흐르면서 그만 힘도 내음도 없는 물방귀가 비어져 나왔던 것이다. 서른 날에 아홉 끼밖에 못 먹는 *애옥살이일망정 손이 오면 꼭 진지대접을 하고 먼 길 온 과객한테는 *사슬돈푼이나마 노잣닢까지 쥐어주는 할아버지가 계시는 우리 집은 가난도 비단가난이었다.


나의 소설은 어머니를 위로해 주기 위한 수단이었다

*살그미 눈을 떠보니 밥주발은 반 넘어 주욱 밑으로 내려가 있었고, 얼른 다시 눈을 감았다. 그때 목예반에 숭늉대접을 받쳐든 어머니가 들어오셨고, 아흐. 저이가 숙냉이로 입가심을 하고 나서 남겨진 밥은 내 차지가 되는 겨. 그만 상을 내가라는 할아버지 말씀이 떨어지기만을 목젖이 녹아들게 기다리고 있는데, 얼라? 숭늉 한 모금을 마시고 난 그 늙은 과객사람은 숭늉을 밥그릇에 부어버리는 것이었고, 으아앙! 꼴깍 소리가 나게 생침만 삼키고 있던 이 중생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소설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써보았던 것은 국민학교 5학년 때였으니, 업(業)이었던가. 배고픔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외로움이었고, 외로움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리움이었다. 그리움 때문이었지만 백지에 먹물이 찍힌 것이라면 콩나물을 싸온 신문지 쪼가리까지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백자 원고지로 쉰 장쯤 될 소설을 써보았던 것은 온전히 끔찍한 고문후유증의 우울증으로 괴로워하시는 어머니를 위로해주기 위해서였다.

“슬프구먼그려. 겁나게 슬프다니께.”

“온 삭신 사대육신 팔만사천마디가 죄 자귀루 죅여놓은 조긧대갈 같다”고 네 방구석을 맴돌면서도 자식이 지었다는 소설을 낭독으로 들으며 엷은 살푸슴(미소)을 보여주시던 기억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떠오르는데, 주인공이 서울로 가는 장면에서 그 소설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으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서울을 그려볼 재주가 없었던 때문이었다. 문학에서 말하는바 리얼리즘이 뭐고 모더니즘이 뭔지 알 리 없는 때였으나, 그렇게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것이 아니고는 땅띔도 못 하는 것은 그때부터 이미 비롯된 것이었다. 이른바 소설이라는 것은 상상 곧 *수꿈 꾸는 이야기지만, 그러나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역설의 변증법을 알았다고나 할까. 그때에 어머니한테 들었던 말이다.

“얘기든 노래든 그저 모름지기 슬퍼야 혀. 그게 진짠 겨.”


칠순 다 된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림

망팔(望八)이 다 되어가는 오늘까지 잊히지 않는 그림이 있다. 이 많이 모자라는 하늘 밑에 벌레를 소설가로 만들어준 말이기도 하니, 운명인가. 할아버지 손에 잡혀 쫓기듯 고향을 떠나온 날 열두 살짜리 그 어린아이는 아버지가 잠시 갇혀 있었다는 경찰서 구경을 나섰다가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던 끝에 이사 간 집으로 갔는데, 철 이른 가죽잠바를 걸치고 완강한 어깨에 눈매가 사나운 사내가 할아버지를 잡고 일장 훈시를 하던 것이었다. 왜 이곳으로 이사를 왔느냐고 꼬치꼬치 캐묻다가 누가 찾아오는지 한 달에 한 번씩 대전경찰서 대공과에 신고를 하라는 것이었다. 송판쪼가리로 해 단 대문명색 앞까지 배웅 나간 어린아이를 훑어보며 사내는 말하였다.

“붉은 씨앗이로군.”

두 손을 모아 앞으로 잡고 깊숙하게 허리를 숙이며 소년은 이렇게 말하였다.

“안녕히 가셔유우우.”

어둑어둑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축댓돌 밑 아랫집에서는 굿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친 듯이 타오르는 황덕불빛을 뚫고 무당 사설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허어이이. 리로 리런나. 로리런나. 라리런나. 로런나. 리런나. 어허어이이. 두 발 가진 즘생에 살생부정이로구나. 총 맞은 원혼이요 칼 맞은 원혼이요. 몽둥이 맞은 원혼이요. 포탄 맞은 원혼이요. 신실히 적적히 물리쳐 줍소사. 시위들 하소사. 원통히 죽고 서럽게 죽은 중음신들아. 어서 속히 이승으로 나가서 만인적선하고 돌아오너라.”

다음은 4월 17일 뼈잿골에서 읽을 님들을 기리는 글이다.


뼈잿골의 제망혼문(祭亡魂文)

조선공산당 창건 90주년인 단제개천(檀帝開天) 환기(桓紀) 9285년 4월 17일을 맞아 불초(不肖) 김 아무개와 그 동무(同務)들은 삼가 쓴술 한 잔과 몇 점 보잘 것 없는 제물(祭物)로 눈물의 골짜기에 누워 계신 님들 혼령(魂靈) 앞에 엎드려 슬피 고하나이다.

아, 님들이시어. 님들 떠나신 지 어즈버 65년이 되었으나 못난 뒷자손들은 여태도 그 체백(體魄)조차 건져드리지 못하고 있음이니, 그야말로 비단할아버지에 거적자손이올습니다.

아, 님들은 아주 돌아가시렵니까. 저희들은 상기도 님들이 돌아가셨다고 믿어지지 않으니, 아마도 슬픔이 지나쳐 미쳐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세월을 떠올리면 어찌 차마 말을 다하겠나이까.

아, 님들을 생각하니 가슴은 떨리고 손끝은 흔들려서 차마 붓을 놀릴 수 없어 1950년 7월 27일치 <조선인민보> 기사를 읽어보겠나이다.

(......)

大田市에서도 7月 三,四일 경부터 련 五일간 尾軍의 지휘아래 人民들을 대량 학살하였다. 周知하는 바와 같이 大田刑務所에는 濟州道麗水順天太白山事件 등의 우수한 祖國 아들딸들이 收監되어 있었다. 이들을 비롯한 七천여명의 人民들을 野獸들은 뒤로 결박하여 명태같이 트럭에 눞혀놓고 최고 一日 八十臺까지 동원하여 대덕군 사(산)내면 랑울(월)리로 운반하여 가소린을 퍼붓고 불질러 방공호로 몰아넣어 참살하였다.

(......)

(*인용된 신문기사는 맞춤법, 띄어쓰기, 종지부 없는 것, 한자 노출 등 그때대로임)

아, 서럽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동무들과 힘을 모아 님들이 이루고자 하셨던 그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기 위하여 힘을 다할 것이오니, 너무 걱정을 마옵소서. 이 중생이 사바에 있는 만큼 님들은 너무 슬퍼하지 마옵소서.

아, 인생이 상수(上壽)를 누리는 이는 백년을 살 수 있다지만 그 나머지는 흔히 팔구십세를 넘지 못하는데 이 중생 나이 망팔이 다 되었으니, 인간에 있을 세월이 또 얼마나 되오리까. 아, *고루살이 세상을 위하여 짓는 밥이 채 뜸도 들지 않았는데 한 세상은 살같이 가고, 천지(天地)도 그 끝이 있다는데 산천은 말이 없습니다.

가마귀는 끊어진 솔언덕에 울고 묵은 풀은 우거졌는데, 쓸쓸한 산자락에 엎드려 한소리 통곡을 하니, *푸나무도 함께 슬퍼합니다. 와서 흠향(歆饗)하소서.



*해설피: 해가 질 때 빛이 약해진 꼴, *싸울아비: 전사(戰士)

*애옥살이: 가난한 살림살이

*사슬돈푼: 싸거나 꿰지 않은 흩어진 엽전, 얼마 안 되는 작은 돈

*살그미: ‘살그머니’의 준말로 그루박을 때 쓰던 말. 살그니, 살그래

*수꿈: 낮에 깨어서 꾸는 꿈이라는 죄수들의 은어로 상상을 이르는 말

*고루살이: 고조선 이전부터 우리 겨레가 추구했던 ‘평등세상’. ‘공동체’는 기독교 세상에서 나온 서구 개념임.

*푸나무: 초목(草木)


▲김성동 소설가의 육필 원고

김성동(金聖東) 소설가

194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1965~1976년 승려생활. 1975년부터 창작생활. 창작집 『彼岸의 새』 『오막살이 집 한 채』 『붉은 단추』, 장편소설 『길』 『만다라』 『길』 『국수(國手)』 『꿈』, 산문집 『염불처럼 서러워서』 『외로워야 한다』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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