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라는 새로운 시사용어가 회자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조장하는 표현으로 웃어넘기기보다 거북하게 다가오는 것은 ‘네오 계급론’의 냉소적 내음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같은 동양 문화권인 한중일 삼국의 식탁 중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왜 숟가락을 볼 수 없으며, 왜 우리는 숟가락 없는 식탁을 상상할 수 없을까 곰곰 생각해본다.
일본 나라(奈良) 현 도다이지(東大寺)에 자리한 일본 왕실 유물들의 보관 창고 쇼소인(正倉院)에는 “756년 쇼무 왕이 죽자 왕비는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숟가락을 비롯한 칼·거울·무기·목칠 공예품·악기 등 600여 종의 애장품을 49재(齋)에 맞춰 헌납하였다”(참고: <두산대백과사전>)는 기록이 있다. 즉, 옛 일본 왕가에서는 숟가락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수년 전 일본 나라 현 소재 덴리교(天理敎) 대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안견(安堅, ?~?)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1447)’를 비롯해 그곳에 소장된 조선 시대 귀인(貴人)들의 초상화를 연구하기 위해 덴리교 대학교 도서관을 찾은 것이다. 그때 대학 부속 세계민속박물관에서 일왕의 식탁을 찍은 영상 자료를 보았는데, ‘놀랍게도’ 우리의 잔치 밥상을 연상케 하는 그 식탁에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놓여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컨대 일본 식탁에서 숟가락을 볼 수 없는 것은 일본 왕실의 생활 문화와 평민의 생활 문화 간에 넘지 못할 장벽이 존재했음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숟가락을 사용하는 풍습이 왜 없을까? 필자는 오래전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중국 송(宋)나라(960~1279) 휘종(徽宗, 1082~1135) 시대에 그려진 ‘문회도(文會圖, 184.4×123.9cm, 1100~1125?)’에서 숟가락을 본 적이 있다.(참고: 사진 자료 1,2) ‘문회도’는 당시 궁중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인데, 상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5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하는 숟가락이 출토되기도 했다. 이런 사실로 보아 중국인은 숟가락을 오랫동안 생활 용기로 사용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명나라 이후 차츰 기름지고 뜨거운 음식에 숟가락보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게 보편화되면서 숟가락이 설 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이와 달리 한국은 온갖 찌개류와 국물류가 주도하는 식탁에서 숟가락을 빈번하게 사용해온 것이다.
숟가락과 관련해 흥미롭게도 중국의 경우에는 ‘진화 의식’을, 일본의 경우에는 ‘순응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에는 예나 지금이나 사회를 지배하는 ‘평등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금수저’, ‘흙수저’ 논쟁을 보며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중국과 일본의 사회 계층 간 갈등은 어떤 양상을 띠고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편집자 주> ‘한중일 식탁 문화의 차이점을 찾아서’, 월간지
>>>글 이성낙 현대미술관회 회장
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 교수, 아주대학교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現),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現), 간송미술재단 이사(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