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시니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취미 중 하나는 사진이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70~80년대 장롱 속 깊숙이 모셔두었던 은색 니콘은 지금은 은퇴자가 된 시니어들의 로망이었다. SNS가 발달하면서 사진은 이제 개인 생활을 기록하는 도구가 됐고, 가벼운 외출이나 여행을 할 때 좋은 정보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다 보면 다른 욕구가 생긴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은 사진을 찍고 싶다. 막연한 바람은 아니다. 스톡사진의 세계를 이해하면 그 바람을 이룰 수도 있다.
스톡(stock)사진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평상시 보고 읽는 모든 것의 재료로 사용되는 유료 사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온라인에 올라가 있는 블로그의 외국인 사진이나 신문 지면광고 속 아름다운 자연 배경, 잡지 기사의 맛있어 보이는 음식 등 우리가 만나는 사진 중 상당수는 유료로 판매하는 것을 사서 쓰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지금 독자들이 읽고 있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도 스톡사진 업체와 공식 계약을 맺고 유료 사진을 활용하고 있다.
왜 사진이 팔릴까
보통 팔리는 사진은 갤러리의 액자 속 사진이라고 상상하지만 실제로 팔리는 사진들은 ‘작품’이 아닌 것이 많다. 즉 구매자가 필요로 하는 주제가 있기 때문에 용도에 따라 구매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신문이나 잡지 같은 매체는 별도의 사진기자를 두고 필요한 사진을 필요할 때마다 촬영해 쓰지만, 모든 사진을 일일이 촬영하는 것은 어렵다. 예를 들어 스테이크 사진이 필요하다고 날고기를 사와 요리를 한다든가, 저 멀리 북아프리카 모로코 사진 한 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사진기자를 비행기에 태워 보내 직접 찍어오게 할 수는 없다.
장소의 제약뿐만 아니라 시간적 제약도 문제가 된다. 여름에 겨울 사진이 필요하다든가, 얼마 전 지진으로 무너진 성당 사진이 필요한데 갖고 있지 않다면 판매용 사진을 사서 써야 한다. 별도의 사진기자가 없는 작은 매체나 개인 역시 저작권법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스톡사진을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광고사진도 역시 초상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스톡사진을 쓰는 경우가 많다. 모델과 별도의 계약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손쉽게 사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박’을 친 스타 작가도 적지 않아
스톡사진 업계에서 소위 ‘대박’을 친 대표적인 사진작가는 유리 아커스(Yuri Arcurs)다. 덴마크인인 그는 2005년에 스톡사진을 시작해 연매출 20억원 정도를 올리는 스타 작가가 됐다.
이 밖에 특정 주제의 사진들로 큰돈을 버는 작가들도 있다. 예를 들어 나뭇잎만 전문적으로 찍어 올리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각종 그래프를 일러스트로 창작해 큰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사진은 경제신문이나 주간 경제지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미지다.
스톡사진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사진작가들이 올리는 사진의 주제가 대부분 명확하다. 전문성이 확보되면 사진의 품질을 올리기도 하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주제를 소화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유사한 주제를 다룰 경우 그 작가의 작품을 먼저 찾는 ‘단골’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시니어들이 스톡사진 작가라는 직업을 노려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니어들은 대부분 은퇴 전까지 특정 분야에서 수십 년간 일한 전문가들이다. 전문적인 시설이나 장소에 접근하기도 용이하고, 어떤 것들이 가치가 있는지도 금세 파악할 수 있다. 또 일반 사진가들은 엄두를 못 내는 촬영 협조도 쉽게 받아낼 수 있다.
스톡사진 작가가 되는 방법은?
스톡사진 작가가 되려면 일종의 심사를 위한 사진 작품집(포트폴리오)을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는 스톡사진 업체마다 차이가 있는데, 일부 업체의 경우는 작가 등록 과정에서 100장의 사진을 요구하기도 하고, 회원가입만 하면 바로 사진 업로드가 가능한 업체도 있다. 전문가들은 스톡사진 심사용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주제를 다루는 게 좋을지, 업체를 어디로 선정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할지 심사숙고하라고 조언한다.
스톡사진 업체는 일반적으로 매크로 사이트와 마이크로 사이트로 나뉜다. 매크로는 독점적 권한을 갖는 사진만 취급하는 업체들인 반면, 마이크로 사이트의 사진들은 다른 업체에서도 볼 수 있다. 작가 입장에선 여러 사이트에 사진을 팔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각 업체의 제도와 약관 등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외국 업체들도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해 일부 스톡사진 사이트는 번역 없이 계약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수익은 계약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매크로 사이트의 경우는 50%까지 수익 배분을 보장해주기도 하지만, 비독점 작가들을 상대로 하는 사이트의 수익 배분은 15%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사진이 판매되는 비용도 제각각이다. 매크로 사이트의 경우 사진 가격은 500달러까지 올라가지만, 마이크로 사이트의 사진가격은 10달러 내외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한 업체를 통해 큰 물고기를 잡을 것인지 여러 업체를 통해 작은 물고기를 많이 잡을 것인지는 각자가 판단해서 결정할 일이다. 해외에는 여러 업체에 한꺼번에 사진을 올려주는 picWorkflow 같은 프로그램과 각 업체에서의 수익 관리를 도와주는 Stockperformer.com과 같은 사이트가 인기를 끌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하나?
어떤 종류의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대표적인 스톡사진 사이트를 둘러보라. 인쇄물의 배경으로 많이 쓰이는 잔디 사진 같은 자연을 소재로 한 사진에서부터 명함을 들고 있는 비즈니스맨, 청진기를 들고 있는 의사 같은 인물사진, 특정 장소와 위치를 보여주는 사진 등 그 종류는 무척 다양하다.
이 중 자신이 자주 접할 수 있는 혹은 자신 있는 분야의 주제를 정한 뒤 기존 작가의 작품들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즉 매체나 광고주, 디자이너들이 좋아할 만한 사진들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고, 배경은 어떻게 처리를 하는지 등을 참고해 작품활동을 해나가라는 조언이다.
사진 촬영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 중 하나는 사진 구매 고객을 한국인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상당수 스톡사진 업체들은 전 세계의 매체들과 광고기획사, 출판사 등을 고객으로 상대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한국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 또 인물사진의 경우는 모델이 초상권을 허락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동의서 같은 문서를 반드시 받아놔야 판매가 가능하다.
사진 품질에 대해서는 큰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 광고 제작사를 주요 고객으로 하는 스톡사진 업체들은 고품질의 사진만을 요구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DSLR 카메라가 소화할 수 있는 정도의 품질만으로 충분하다. 고객이 원하는 주제가 담겨 있는 사진이라면 명암이나 밝기 등 간단한 보정만으로도 충분히 팔릴 수 있다.
물론 전문가들은 적어도 6개월 정도는 팔리지 않을 것도 각오하고 처음부터 높은 소득을 기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또 꾸준히 작품을 올리는 것이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비결이라고 귀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