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665년 작 추정)’를 처음 만난 것은 1960년 초였으니 필자가 의과 대학생 시절이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가 거장인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북유럽의 모나리자’로서 미술 애호가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 알았다.
필자는 피부과학을 전공한 후 미술품에, 그중에서도 특히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증상을 찾아내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구미(歐美)의 여러 미술관을 섭렵하며 다니던 중 다시 그 작품을 보게 됐을 때 순간 그림 속 ‘소녀’가 ‘전신무모증(全身無毛症, alopecia totalis)’ 환자라는 사실을 ‘진단’할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겉눈썹은 물론 속눈썹도 없는 소녀였다. 문득 그 ‘소녀’가 너무나 안쓰럽게 다가왔다. 작가 베르메르가 그린 다른 여인에게서는 예외 없이 머리카락이 있는 것을 보면, 필자의 이런 ‘진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믿게 된다(참조: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 이성낙, 눌와, 2018).
근래 인터넷에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패러디한 캐릭터를 종종 보게 된다. 그중 국내의 한 젊은 작가(Kyung Eun Miriam Lee, 1995)가 그린 작품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화제는 ‘요하네스 베르메르를 존경하며(Homage to Johannes Vermeer)’(Color pencil on paper, 21×15cm, 2018). 작가는 원작이 갖고 있는 중요 특징인 ‘특유한 터번’, ‘진주 귀고리’, ‘의상’과 함께 ‘없는 눈썹’을 잘 표현했다. 특히 ‘눈’, ‘코’, ‘입’은 작가 나름대로 새롭게 ‘현대적 풀이’를 했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다른 메시지를 본다. “역사는 그 시대의 산물이며, 그 시대를 말할 뿐”이라는 관점이다. 요컨대 오늘의 관점은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665년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 그로부터 350년이 지난 오늘의 그 ‘소녀’는 결코 같아서도 안 되고, 같을 수도 없다. 이런 사실을 떠올리며, 작금의 ‘역사 풀이 현상’을 돌아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고대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소멸하는 시간을 증명하는 목격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