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서 만물은 기지개를 펴고, 새싹은 꼼지락꼼지락 땅을 뚫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싹이란 씨앗 속의 생명이 씨앗 껍질과 땅을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씨앗은 싹이 나오기 전 오랫동안, 자신이 세상에 나갈 때를 기다리기 위해 안테나를 켜두고 있다. 씨앗 껍질은 외부 지원 없이 내부의 유전자와 에너지를 장시간 보호해야 하므로 매우 단단하다.
이스라엘에서는 2000년 전 대추야자 씨앗을 발굴해서 발아시키는 데 성공했다. 중국, 일본에서도 2000년 전 연꽃의 씨앗을 발굴해 발아시키는 데 성공했다. 씨앗의 껍질이 2000년의 세월을 버티게 해 준 것이다. 이렇게 단단한 껍질을 뚫고 나오는 싹은 강하게 뚫는 힘, 수류탄과 같은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체기는 뚫고, 독소는 씻어낸다
자연은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 하던 노력을 인체 내에서도 그대로 재현한다. 싹의 뚫는 힘은 인체 내에서는 체한 것을 뚫어서 소화가 잘 되도록 도와준다. 가슴이 답답하고 막힌 것, 젖가슴이 막혀서 부은 것, 옆구리나 아랫배가 뭉친 것, 음식에 체한 것을 뚫어주는 것이다. 혈관이 막힌 것과 종양도 뚫어 주는 효과가 있다. 보리길금(맥아), 조길금, 벼길금, 새싹나물, 콩나물, 숙주나물 등이 대표적이다. 길금이란 땅 속에 묻지 않고 싹을 낸 것을 말하는데, 길금은 모두 성질이 따뜻하고 소화가 안 된 것을 삭히는 효능이 있다.
이시진 선생은 <본초강목>에서 이런 효능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보리길금, 벼길금, 조길금은 모두 쌀, 면, 과일 등의 체기를 풀어준다. 다만 체기가 있는 경우에는 소화를 시키지만, 체기가 없는데 오래 먹으면 도리어 사람의 원기를 소모시킨다. 만약 오래 복용할 경우에는 백출 등과 같이 쓰면 해가 없다.’ 식후에 보리길금으로 만든 단술을 마시는 것도 소화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세상을 놀라게 한 발아 식물의 힘
1993년 독일의 막스 플랑크(Max Planck) 식품연구소의 발표로 전 세계가 발아 곡식에 주목하게 되었다. 곡물이 싹을 틔우면 원래 씨앗과는 다른 영양소들을 머금게 된다. 발아현미는 비타민·아미노산·효소·SOD(superoxide dismutase) 등 몸에 유용한 성분들이 증가하는데, 이런 영양소들은 자연치유력을 높이고 성인병을 예방하며 몸의 독소를 씻어내는 작용을 한다.
컴퓨터를 처음 샀을 때는 속도가 빠르지만, 이것저것 다운받다 보면 속도가 느려진다. 사람의 몸 역시 마찬가지다. 먹은 것을 다 소화하지 못해 남은 찌꺼기나, 소화할 수 없는 강력한 이물질은 독으로 변해 질병을 일으킨다. 곡물의 싹은 막힌 것을 뚫고 독소를 씻어내어 내 몸을 리셋(reset)해준다.
모든 봄나물은 싹이다
새싹만 싹이 아니다. 겨울의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모든 봄나물은 새싹의 기운을 갖고 있다. 냉이, 취나물, 쑥, 씀바귀, 민들레, 두릅, 괭이밥, 돌나물 등에는 기운을 끌어올리고 식욕을 돋우어 주며, 소화시키는 효능이 있어 춘곤증 퇴치에 아주 좋다.
봄기운을 받아 위로 자라 올라오는 새싹은 성장 속도가 빠르다. 칡 순은 하루에 50cm 이상 자라기도 하는데, 사람이 복용하면 성장 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 빨리 자라는 기운이 사람의 몸속에서 재현되기 때문이다. 칡 순과 보리 싹은 특히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성장을 도와준다.
또한 싹은 위로 솟구쳐 올라오는 습성 때문에, 머리까지 기운을 끌어올려준다. 그래서 춘곤증 퇴치에 싹, 봄나물이 좋은 것이다. 보리길금, 벼길금, 조길금은 물론 콩나물, 새싹나물, 칡 순도 좋다. 기운이 올라가면 식욕도 좋아진다. 특히 싹의 쌉싸름한 맛, 새콤한 맛은 몸을 가볍게 하고 식욕을 돋우어 준다.
아래에 소개하는 앤 위그모어(Ann Wigmore) 박사와 하기와라 요시히데(萩原義秀) 박사는 새싹 요법에 지대한 공헌을 하신 분들이다.
썩어가던 다리를 소생시킨 밀 새싹
리투아니아 출신의 자연요법 전문가 앤 위그모어 박사는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정제식품과 가공식품이 원인이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동차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부터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수술을 거부하고 자연요법을 시작했다. 햇볕을 쬐면서 식물의 푸른 잎을 먹는 것이 그의 방법이었다. 그러다 겨울이 되어 채소 구하기가 힘들어지자 실내에서 새싹을 길러 먹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여러 풀을 하나씩 냄새 맡더니 밀 순을 골라 씹는 것을 발견했다. 그 모습을 본 위그모어는 밀 새싹을 먹기 시작했고, 다리의 상처도 아물기 시작했다. 위그모어의 밀 새싹 요법은 당뇨병, 고혈압, 비만, 위염, 위궤양, 췌장 및 간의 질환, 천식 녹내장, 습진, 피부질환, 변비, 치질, 대장염, 관절염, 빈혈, 구취, 여성질환 등 많은 질환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고 한다.
일본의 하기와라 요시히데 박사는 10년에 걸쳐 300종 이상의 채소와 곡류 새싹을 분석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보리 새싹에는 칼륨이 우유보다 55배 이상, 시금치보다 18배 이상 들어 있고, 칼슘은 우유의 11배가 넘으며, 철분 또한 시금치보다 5배 더 많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보리 새싹은 성장 촉진, 면역 강화, 항산화작용에 효과가 있으며 발암 억제, 소화성 궤양과 피부질환 치료에도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
>>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