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6

[윤나래의 세대 읽기] 오늘 밤, 달릴까? 회식 말고 러닝

입력 2026-04-06 06:00

‘소버 라이프(Sober Life)’ 젊은 세대의 취하지 않는 삶

(챗GPT 생성 이미지)
(챗GPT 생성 이미지)

한때 회식은 ‘끝까지 버티는 자리’에 가까웠다. 자정은 기본이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가 자연스러웠다. 주량을 넘는 술을 이기지 못해 취한 모습이 다음 날 농담처럼 회자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고 힘든 시기를 함께 견디는 끈끈한 정이 쌓인다고 여겼다. 이른바 ‘전우애’라는 말이 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이 장면은 다르게 읽힌다. 젊은 세대에게 술 소비는 ‘금주’라기보다 ‘절주’에 가깝다. 술자리를 즐기더라도,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마시지 않는다. 이들에게 회식 자리에서 오래 버티는 것은 미덕이기보다, 다음 날의 컨디션을 해치는 비효율로 받아들여진다. 술자리에서의 실수는 웃고 넘길 일이 아니라 불편한 기억으로 남는다. 관계 역시 ‘얼마나 오래 함께 있었는가’보다 ‘서로를 얼마나 존중했는가’로 평가한다.

▲글로벌 논알콜 맥주 시장 규모 및 전망(삼일PwC경영연구원 'K-음료, Zero or More')
▲글로벌 논알콜 맥주 시장 규모 및 전망(삼일PwC경영연구원 'K-음료, Zero or More')

줄어든 술자리를 보여주는 지표들

이들은 저녁 시간을 휴식이나 술자리보다 건강관리와 몸의 감각을 되찾는 데 쓰는 모습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규칙적으로 체육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운동 가운데 달리기 비중은 2024년 4.8%에서 2025년 7.7%로 뛰었다. 걷기, 보디빌딩, 등산에 이어 달리기가 빠르게 상위권으로 올라온 셈이다. 운동에 참여하는 이유 역시 ‘건강 유지 및 체력 증진’이 79.9%로 가장 높았고, ‘체중조절 및 체형관리’는 48.5%로 전년보다 상승했다.

회식 문화의 약화는 결제 데이터에서도 드러난다. KB국민카드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연말과 2026년 연초 법인카드의 회식 시간대 매출 건수는 전년 대비 11.5% 감소했다. 특히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의 이른바 ‘회식 주요 시간대’만 떼어 보면 감소폭은 8.7%다. 회사 법인카드가 저녁 식당에서 덜 긁히고 있다는 뜻이다. 같은 흐름은 소상공인 매출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신용데이터의 ‘2025년 2분기 소상공인 동향 리포트’는 술집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2% 하락했다고 짚었다.

술 소비 쪽 풍경도 예전 같지 않다. 질병관리청의 ‘2025년 지역사회건강조사’에서 월간음주율은 57.1%로 전년보다 1.2%p 낮아졌고, 고위험음주율도 12.0%로 0.6%p 줄었다. 코로나19 이후 반등하는 흐름 속에서도 2025년에는 다시 소폭 꺾인 것이다.

주류업계도 이 변화를 모른 척하지 않는다. 삼일PwC 경영연구원 보고서 ‘술 즐기는 시대’는 무알코올·논알코올 시장의 확대와 ‘소버 라이프(Sober Life, 취하지 않는 생활방식)’ 확산을 한국 주류시장의 핵심 변화로 꼽았다. 보고서는 무알코올·논알코올 시장 규모가 국내에서 2021년 200억 원 수준에서 2025년 2000억 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추정했고, 이 흐름을 특히 MZ세대 중심의 건강 지향 소비와 연결해 설명했다. 식당에서도 무알코올·논알코올 주류를 공급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뀐 점 역시 시장 확장의 배경으로 지목됐다. 술을 아예 거부하지는 않지만, 덜 취하고 덜 부담되는 방식으로 마시려는 수요가 분명히 생긴 것이다.

가벼운 술자리가 오래 간다

여러 세대가 어울리는 즐거운 술자리를 만드는 현실적인 방법은 저녁 회식을 점심 식사로 대체하는 것이다. 점심은 시간의 한계가 분명하고, 꼭 술을 마셔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가벼운 사담이나 업무와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 나누기에도 좋다.

저녁 회식을 유지해야 한다면, 1차 식사 중심으로 끝내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2차는 각자’라는 원칙을 미리 공유하거나, 시작 시간을 앞당겨 1~2시간 내외로 마무리하는 것도 좋다. 술은 중심이 아니라 선택지로 준비한다. 소주·맥주만 놓기보다 무알코올 음료나 저도주를 함께 두면, 마시지 않는 사람도 어색하지 않게 어울릴 수 있다. 이런 작은 배려가 회식의 분위기를 바꾼다.

젊은 세대는 음료를 택할 때 맛이나 가격뿐 아니라 ‘내 몸에 어떤 부담을 주느냐’를 묻는다. 칼로리, 알코올 도수와 당을 함께 계산한다. 러닝을 하고,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고, 제로 음료를 고르는 선택은 서로 다른 장면처럼 보여도 사실은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다. 덜 취하고, 덜 무겁게, 더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의미다.

핵심은 회식을 ‘오래 붙잡아 두는 자리’가 아니라 ‘부담 없이 참여하고 빠져나올 수 있는 자리’로 바꾸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퇴근 후 운동이나 자기 관리, 휴식 등의 스케줄을 짜두고 지키려 한다. 즉 내일의 컨디션을 미리 당겨 쓰지 않으려는 시간이고, 몸을 회복하는 시간이며, 관계보다 리듬을 챙기는 시간이다. 이를 존중하는 회식일수록 참석률과 만족도가 높아진다.

회식이 사라졌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술자리가 저녁을 대표하던 시대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젊은 세대는 잔을 비우는 대신, 오늘의 체력을 채우는 방식으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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