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째 무료 결혼 올려주는 노부부의 특별한 예식장

기사입력 2021-07-21 08:00 기사수정 2021-07-26 09:36

[뉴노멀의 백년가약] PART5. ‘신신예식장’ 백낙삼·최필순 부부

▲1967년부터 무료 예식장 '신신예식장'을 운영 중인 백낙삼·최필순 부부(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1967년부터 무료 예식장 '신신예식장'을 운영 중인 백낙삼·최필순 부부(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으리으리한 웨딩홀과 값비싼 예물까지 자녀의 완벽한 하루를 위해 정신없이 준비하다 보면 결혼의 진정한 의미가 등한시될 때가 있다. 반면 이곳의 예식은 소박하지만 늘 한결같고 경건하다. 가난 때문에 결혼식을 미뤄야 했던 아픔을 교훈 삼아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이들에게 무료 예식을 올려준다. 그 철학은 50여 년째 현재진행형이다. 누군가에게는 유명 호텔보다 더 근사하고 특별한 추억으로 기억되는 이곳, 경상남도 마산의 ‘신신예식장’을 찾았다.


▲예식장을 찾은 날은 결혼 50주년을 맞은 이광현·박숙자 부부의 리마인드 웨딩이 진행되었다.(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예식장을 찾은 날은 결혼 50주년을 맞은 이광현·박숙자 부부의 리마인드 웨딩이 진행되었다.(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자, 여기 보세요. 찍습니다. 김치, 참치, 꽁치~” 늦지 않게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식장으로 들어섰을 땐 이미 ‘찰칵’ 하는 셔터음이 울린 뒤였다. 백낙삼(90) 사장이 들고 있는 카메라 맞은편에는 나이 지긋해 보이는 부부가 어색하게 서 있다. 최필순(80) 이사는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신부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이날은 이광현(78)·박숙자(74) 부부의 리마인드 웨딩이 있는 날이다. 순백색 드레스를 차려입은 신부는 아이처럼 “가자”며 신랑을 재촉했다. 신부가 옷을 갈아입으러 간 동안, 신랑에게 이곳을 찾은 사연을 물었다.

“6년 전 오늘, 아내가 사고를 당했어요. 뇌를 다쳐서 6개월 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다가 기적적으로 일어났죠. 올해가 결혼 50주년이기도 하고, 오늘이 다시 태어난 날이잖아요. 그래서 겸사겸사 기념하려고 서울에서 예약하고 왔어요. 기분이 참 묘하네요.”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부터 보통의 식장은 아니구나 싶었다. 삼색 페인트가 칠해진 건물 외벽과 ‘완전 무료’라고 큼직하게 적힌 간판이 그 비범한(?) 분위기를 증명해주는 듯했다. 내부로 입장하면 1960년대로 돌아간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웨딩홀은 드라마 세트장이 아닌 그 시절의 잔상이다. 백낙삼·최필순 부부는 1967년부터 이곳에서 예식을 올리고 있다. 직원에게 들어가는 수고비 70만 원을 제외하고 예식에 드는 비용을 받지 않는다. 그렇게 백년가약을 맺어준 부부만 1만4000쌍이다.


▲신신예식장의 외관과 입구. 50여 년 째 자리를 지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신신예식장의 외관과 입구. 50여 년 째 자리를 지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거리의 사진가에서 예식장 사장으로

“삼국사기는 들어봤어도 ‘신신사기’는 처음이지요? 허허.” 식을 마치고 몇 시간 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백 사장은 한숨 돌리기도 전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식업을 시작한 계기를 묻자 대답 대신 두꺼운 사진 앨범을 꺼내왔다. 겉표지에 ‘신신사기’란 글자가 한자로 적혀 있었다. 이곳의 50년 역사를 모아둔 그의 보물 1호다. 낡은 종이를 넘기며 그는 90년 인생을 회고했다.

젊은 시절 백 사장은 교육자를 꿈꾼 포부 가득한 청년이었다. 마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밥을 굶주리면서도 중앙대학교 교육학과에 진학해 여섯 학기를 다녔을 정도로 학구열이 높았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웠지만, 자동차 정비소부터 공장까지 허드렛일을 하며 밤낮없이 교육 사업을 준비했다. 그러나 정부의 검열로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한 채 무산됐다.

그는 좌절할 틈도 없이 밥벌이를 찾아 나섰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한강에서 보트 타고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보트장에 놀러 온 이들을 상대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거리 사진가로 일을 시작했다. 먹고살 만큼의 돈이 모였을 때쯤, 서른한 살 노총각이 돼 있었다.

“고향 사람들이 나보고 몽달귀신 되겠다고 난리가 난 거야. 그래서 중매를 해줬어요. 지금의 아내가 나왔지. 아내한테 ‘내가 가진 건 이 몸뚱이 하나뿐이다. 고생 많이 해야 될 거다. 그래도 고생 안 하게 최선을 다해보겠다’ 말했어요. 그 한마디 믿고 시집을 온 거예요.”

가난한 부부의 예식장은 작은 초가집 마당이었다. 축가는 새들의 노랫소리로 대신했다. 백 사장은 아무려나 행복했지만, 식을 올린 후 아내와 생이별하는 아픔을 맞아야 했다. 있는 집이라고는 열세 명의 식구가 생활하는 작은 단칸방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니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 그는 1년 만에 아내와 함께 살 셋방을 마련하고, 뒤이어 3·15의거기념탑 뒷골목에 세워진 건물을 매입했다.

“이 건물에 무얼 할까 하다가 나처럼 돈이 없어서 결혼 못 하고 애만 태우는 사람들 결혼시켜줘야겠다 생각했어요. 돈은 사진값만 받아도 충분했지.”


▲예식과 사진 촬영이 이뤄지는 웨딩홀.(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예식과 사진 촬영이 이뤄지는 웨딩홀.(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1만4000쌍의 웃음과 눈물이 깃들다

1967년 6월 문을 연 신신예식장은 얼마 되지 않아 요즘 말로 ‘핫플레이스’가 됐다.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손님이 물밀 듯 밀려왔다. 사진값 6000원만 내고 예식을 올릴 수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한창 잘될 때는 하루에 17쌍씩 식을 올려줄 정도였다. 그간 수많은 이들이 거쳐간 만큼 다양한 사연이 예식장을 채웠다.

“11시 30분에 식을 예약한 신랑이 미용사에게 신부 패물을 전해달라 부탁했는데, 나중에 보니 신부는 받은 게 없다는 거예요. 내가 다른 주례를 보는 사이 미용사가 도둑으로 몰려서 파출소 가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알고 보니 11시 신부 것인 줄 착각하고 잘못 건네준 거였죠. 이 일로 부부끼리 의형제를 맺었다고 하더라고요. 참 재미있는 인연이지요.”

유쾌한 에피소드만큼 뭉클한 기억도 많다. 자신이 식의 주인공인지도 모르고 멍하니 서 있는 아픈 신랑의 주례를 봐준 적도 있고, 6년 전 가출한 큰딸이 둘째 딸 결혼 전날 기적적으로 돌아와 자매의 결혼식을 한날한시에 올려준 적도 있다. 그러나 가난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백 사장이 잊을 수 없는 손님은 따로 있다.


▲백 사장이 자필로 적은 인생 회고록을 가리키며 예식장의 역사를 풀어내고 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백 사장이 자필로 적은 인생 회고록을 가리키며 예식장의 역사를 풀어내고 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사진 값을 안 내고 도망간 부부가 있었어요. 당시에는 휴대폰 번호 대신 주소를 적었던 때라 집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집에는 아픈 사람이 누워 있고, 너무 어렵게 살고 있는 거야. 차마 돈을 받을 수가 없어서 쌀 한 말 사주고 돌아왔어요. 도울 수 있어 그저 행복했지요. 지금도 이렇게 좋은 직업이 세상에 또 있겠나 싶어요. 내가 그동안 행복했던 일을 죽 적어봤는데, 행복하다는 말만 백스물일곱 개가 나와.”

그 따뜻한 인심 덕분일까. 어느 날부터 ‘신신예식장에서 결혼하면 잘산다’는 소문이 돌며 장사는 더 번창했다. 백수 생활을 하던 큰아들이 식을 올린 뒤 직장을 구하자, 여섯 남매가 줄줄이 이곳에서 결혼을 했을 정도다. 그 소문은 최근까지도 이어지는 듯했다.

“작년에 부산에서 전화가 왔어요. 1977년에 선생님 은덕으로 겨우 결혼식을 올렸는데, 이제는 부자가 됐다며 사례를 하겠다는 거예요. 아내가 그 얘기를 듣더니 보이스피싱이라는 거야.(웃음) 괜히 겁이 나서 밤에 자다가 ATM기기 가서 돈을 빼왔어요. 그리고 자고 일어났는데 휴대폰에서 띵 소리가 나대. 100만 원이 들어와 있더라고. 고마워서 가족사진, 리마인드 웨딩, 영정사진까지 다 찍어줄 테니까 언제든 오라고 했지요.”


▲앨범을 보여주며 결혼 사진 트렌드를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열정은 예식장 문을 열던 그때 그대로다.(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앨범을 보여주며 결혼 사진 트렌드를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열정은 예식장 문을 열던 그때 그대로다.(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100세까지 즐겁게, 성실하게, 보람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어느 추억의 장소를 회고하는 것 같지만, 신신예식장은 오늘날도 여전히 씩씩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성기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예약 문의도 꾸준히 들어온다. 2014년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에 등장한 후로는 젊은 사람들도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 덕에 두 사람은 요즘 유행하는 웨딩 트렌드까지 공부하느라 바쁘다. 인터뷰를 하던 날에도 연구(?)는 계속됐다. 어느새 백 사장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최 이사는 앨범을 펼쳐 보이며 열띤 설명을 했다.

“옛날에는 부케가 이렇게 길었어. 바닥까지 왔다고. 그러다 조금씩 길이가 줄어들면서 짧아졌지. 드레스도 얼마 전까지 치렁치렁 뭐가 많이 달린 게 유행이었는데, 지금은 액세서리랑 큐빅을 거의 안 붙여. 아주 옛날에 유행했던 게 다시 돌아오더라고. 여보, 이 사진 괜찮지 않나. 우리도 젊은 신랑 신부 오거든 이렇게 찍어주자.”

나이가 나이인 만큼 힘이 들 법도 한데, 두 사람의 열정은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사무실 벽 한쪽에 붙여둔 생활신조가 젊게 사는 비결인 듯했다. ‘생활은 즐겁게, 임무는 성실하게, 인생은 보람되게.’ 그래도 이제는 노후를 즐길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100살까지는 일하고 싶어요. 앞으로 10년! 그다음에는 자식, 손주가 대대로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은퇴하면 이 장부를 배낭에 넣어 메고 아내와 전국 일주를 하면서 예식장에 와주었던 손님들을 만날 겁니다. 그 얘기를 하면, 다들 우리 집에 꼭 오래요. 다 보러 가야지요.”

맞잡은 손 놓지 말고, 서로 깊이 이해하고, 꽃길 따라 함께 걸어가야 한다. 50년 동안 백 사장의 주례사에 빠지지 않은 단골 멘트다. 이 덕담을 한평생 지켜온 부부가 있을까. 잠시 의심했지만 그 주인공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초가집 앞마당에서 두 손 맞잡은 순간부터 수많은 이들의 앞길에 꽃을 수놓아준 오늘까지 두 사람이 걸어온 인생 여정이 그 자체로 ‘꽃길’이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브라보 마이 라이프 DB)

<이 기사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2021년 7월호(VOL.79)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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