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철훈의 사진 이야기] 이 짧은 기간에 만나는 삶의 완성

기사입력 2015-07-23 21:34 기사수정 2015-07-23 21:34

▲사진=함철훈 사진가

이 칼럼을 시작하면서 ‘행복을 찾아 나선 한국 실버의 몽골 정착기’라는 표현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 몽골로 오게 된 이야기를 언급하였습니다. 사진가로 늦은 나이에 새롭게 만나고 있는 또 다른 땅과 문화입니다. 제2, 제3의 삶을 생각할 기회가 예전보단 훨씬 많아진 우리 주변의 요즘 화두이기도 합니다.

아주 짐을 쌌습니다. 아내에게 무리인 줄 알면서도 고국에 펼쳐놓은 살림살이를 정리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여행은 인기 있는 오락이며, 취미, 그리고 유익한 공부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여행을 사진가로 평생 해온 우리 부부는, 이름 난 관광명소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으며 돌아갈 집을 위해 필요한 물건을 쇼핑하는 여행이 아니라, 여태까지 살면서 점검하며 궤도수정해온 가치에 우리를 던지는 임상적이며 실험적인 삶을 살아내기 위해 낯선 몽골에 20피트 컨테이너로 부친 짐을 풀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삼십 칠년간 쌓아 온 가치는 그동안 두 아이를 낳아 키워 결혼까지 시키며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의 생각을 바탕으로 시도하는 여행입니다. 일시적인 여행을 사진가로 많이 해온 우리가 더 짙은 재미를 만들기 위해 소꿉장난처럼 삶 자체를 던지는, 실버부부의 진한 여정입니다.

그렇게 두 해가 지나고 있습니다. 이젠 여기도 저기도 아닌, 어디에도 돌아갈 고향이 없는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있는 곳이 내 집이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형제이길 바라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처음 시작하면서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을 만날지, 어떤 작품을 만들지 스스로도 모르는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앞길이 뻔히 보이는 안정된 미국에서의 삶이 그리 재미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진가로의 방향 전환이 지금부터 스무해 전이었으니 우리 나이 사십대 초반이었습니다.

지금 이곳은 긴 겨울을 이겨낸 생명들이 외치는 삶의 환희가 하늘과 땅을 그득 채우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것들의 아우성이 몽골 중앙아시아 초원에 나담축제라는 이름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서로 만나고 있는 현장입니다.

아들네가 손자 손녀와 함께 저희를 방문하고 싶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반가운 소식을 받고 아내는 미리 걱정을 했습니다. 아들네가 살고 있는 곳보다 좋지 않은 이곳의 환경 때문입니다. 부모를 안쓰러워할 자식을 향한 에미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기우였습니다. 긴 겨울을 이겨낸 이곳에서 지천으로 뿜어내는 생명력 그 자체가 무엇과 비길 수 없는 원초적인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생명이 번성할 수 있는 짧은 기간에 삶의 모든 과정을 완성시켜야 하는 땅에서만 감지할 수 있는 귀함이 곳곳에서 풍겨났습니다. 갓 낳은 망아지를 둘러싸고 다니는 말들, 어미 곁에 꼭 붙어 있는 낙타, 야크, 염소, 송아지, 양들이 연한 풀을 뜯고 있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소리치는 생명력을 저흰 함께 선물 받았습니다. 베토벤이 들리지 않는 귀로 세상에 알린 마지막 교향곡의 울림입니다. 디 프로이데(Die Freude)! ∼ ∼ ∼

나이를 먹어보니 우리의 삶 그자체가 모두 여정입니다. 고향과 지역적인 떨어짐이나, 또 다른 형태의 문화적인 거리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여행입니다. 우리 모두 시간과 공간이 우연히 만나 예기치 못한 기쁨에 바람처럼 설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아들네와 우연처럼 만난 이 몽골 땅의 한 표정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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