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본의 한국 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가 급증했습니다. 근래 들어 연평균 10%대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 콘텐츠 시장이 한국 콘텐츠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중국 레드 머니와 시장의 역습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윤호진 정책개발팀장은 2016년 콘텐츠 산업을 전망하면서 올해 두드러질 10대 트렌드 중 하나로 ‘레드 머니의 확산과 레드 콘텐츠의 역습’을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중국에서 연출 제작해 후난(湖南) TV가 방송하고 있는 12부작 예능 프로그램 <폭풍 효자> 제작비는 한국의 한 지상파 방송사(KBS, MBC, SBS)에서 1년 동안 만드는 모든 예능 프로그램 제작비와 맞먹을 정도로 엄청납니다. 이는 중국 방송 시장의 규모를 바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1월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김영희 전 MBC PD의 말이다.
“이번 사건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 일인지 본사 스태프도, 어린 쯔위도, 심지어 저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 가장 후회스럽고 죄송스럽게 생각됩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다른 나라와 함께 일하는 데 있어 그 나라의 주권, 문화, 역사와 국민 감정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JYP 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 박진영이 지난해 11월,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가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흔든 것에 대해 중국인의 비난이 쏟아지고 중국 기업의 트와이스 광고 모델 취소가 잇따르자 공개사과했다.
중국 자본과 시장의 공습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증언들이다. 중국 자본과 시장의 위력이 대단하다. 중국 자본과 시장의 공습은 우선 중국 기업의 국내 제작사와 기획사의 인수 및 투자로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한국 인력 및 콘텐츠 중국 진출 봇물, 콘텐츠 제작 관행의 변화, 한국 인력과 노하우가 투입된 중국 콘텐츠의 세계 진출 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근래 들어 중국 자본의 방송, 영화, 게임 등 한국 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와 기업 인수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2월 2일 한국 인터넷 음원 사이트의 원조 소리바다가 100억원에 중국 기업 ISPC 리미티드에 넘어갔다. DMG 엔터테인먼트의 방송 콘텐츠 제작사 초록뱀 미디어 인수, 베이징 싱아이 쟈정 인베스트먼트의 연예기획사 겸 제작사 씨그널 엔터테인먼트 인수, 쑤닝 유니버설의 레드로버 인수, 화처 미디어의 영화 투자배급사 NEW에 536억원 투자, 소후닷컴의 연예기획사 키이스트 150억원 투자, 산다게임스의 게임업체 Eyedentity Games에 1112억원 투자, 텐센트 홀딩스의 CJ 게임스에 4877억원 투자 등 중국 자본의 게임 업체, 콘텐츠 제작사, 연예기획사의 인수와 투자가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대증권 윤정선 연구원의 보고서 ‘2016년 응답하라 콘텐츠 산업’에 따르면 2010년 9월부터 2015년 9월까지 5년 동안 한국 콘텐츠 기업 인수와 투자 등에 투입된 중국 자본은 무려 1조92억원에 달한다. 또한, 영화 <미스터고>, 드라마 <사임당, 더 허스토리>등 콘텐츠 제작 등에도 막대한 중국 자본이 유입되었다.
중국에서 콘텐츠 및 연예인 에이전시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배경렬 이사는 “최근 중국 기업의 한국 연예기획사, 제작사에 대한 투자나 인수 작업이 급증하고 있다. 중국 기업을 사칭한 투자 사기가 자주 일어나는 것은 중국 투자의 현주소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가 지난해 11월 22일 공개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전 인터넷 방송에서 자신이 대만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태극기와 대만기(靑天白日旗)를 함께 흔들었다. 이에 대해 중국인과 중국 매체에서 비판과 비난을 쏟아내고 중국 기업들이 쯔위의 광고 모델 계약을 취소하자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트와이스의 소속사 JYP 엔터테인먼트, 박진영, 쯔위의 공식 사과가 이어졌다. 쯔위 논란은 한류의 가장 큰 시장으로 부상한 중국의 현재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현재 한류 콘텐츠가 가장 많이 수출되고 한국 제작진의 진출이 가장 왕성하게 이뤄지는 곳이 중국 시장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게임 전체 수출액 29억7383만 달러 중 중국 수출이 32.2%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게임뿐만 아니다. <태양의 후예> <너의 목소리가 보여> <꽃보다 할배> <1박 2일> <썰전> <런닝맨> 등 다양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수출, <아빠, 어디가> <삼시 세끼> <나는 가수다>등 예능 프로그램 포맷 판매 등 방송 콘텐츠, 웹툰, 캐릭터 등 한국 문화 콘텐츠의 가장 큰 수출 시장이 바로 중국이다.
또한, 이민호, 김수현, 전지현, 송혜교, 송승헌, 비, 김태희 등 한류 스타들의 중국 드라마와 영화 출연이 붐을 이루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의 장태유, <풀하우스>의 표민수, <파리의 연인>의 신우철 등 드라마 PD와 <나는 가수다>의 김영희, <런닝맨>의 장혁재, 조효진 등 예능 PD, 곽재용, 허진호, 안병기, 오기환 등 영화감독을 비롯한 한국 제작진의 중국 진출이 급증했다. 최근 들어서는 한국 유명 1인 방송 BJ들도 속속 중국 YY, 롱쥬 같은 1인 방송 서비스 업체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보고서 ‘2016년 콘텐츠 사업 전망’에 따르면 중국의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시장 규모는 2014년 1473억달러로 추산되고 2019년 2421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세계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8%에서 2019년 11%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규모의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현대증권 윤정선 연구원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시장은 단연 중국이다. 중국은 전 세계 콘텐츠 시장 규모 10위 국가 중 2018년까지 연평균 11%의 독보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나라다. 한국 콘텐츠 기업들이 중국에 주력해야 할 이유다”라고 지적했다.
중국 자본과 시장의 위력은 한국 콘텐츠 제작 시스템의 변화를 초래하는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바로 한국 드라마의 사전 제작제 도입이다. 중국에서는 동영상 사이트나 방송에서 당국의 사전 심의를 받은 드라마나 동영상 콘텐츠만을 내보낼 수 있다. 또한, 중국 방송사와 동영상 업체들은 대부분 한국과 동시에 중국에 방송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최근 사전 제작 드라마가 많아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는 ‘쪽대본’으로 대변되는 당일치기식 제작 형태가 주류를 이뤘다. 드라마의 초반 3~4회만 제작하고 방송을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지만 중국 시장 때문에 <태양의 후예> <사임당, 더 허스토리> <보보경심: 려> <화랑: 더 비기닝> 등 적지 않은 드라마가 방송 전 제작을 완료하는 사전 제작을 하고 있다.
중국 자본과 시장의 위력은 한국 인력과 콘텐츠 노하우가 투입된 중국 영화나 드라마, 프로그램의 세계 진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송혜교가 출연한 오우삼 감독의 중국 영화 <태평륜>이 칸영화제에 진출한 것을 비롯해 한국 연예인이 출연하거나 한국 PD와 감독이 작업에 참여한 중국 콘텐츠들이 세계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 CJ E&M과 공동 제작한 영화<이별계약> <중반 20세> 등으로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시장에 진출했다. 중국 화이브라더스는 향후 3년간 한국 쇼박스와 최소 6편의 합작 영화를 제작할 예정이고, 중국 화처 미디어는 한국 NEW와 중국에 공동회사를 설립해 본격적인 한중 합작 영화를 제작 할 계획이다. 한중 합작 영화들은 중국과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을 겨냥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중국에서 예능 프로그램 <폭풍 효자>를 제작해 후난 TV에서 방송하고 있는 김영희 PD는 “중국은 엄청난 규모의 콘텐츠 시장이 있다. 뛰어난 콘텐츠만 있으면 막대한 수익을 낼 수 있다. 중국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해외로 속속 수출되고 있다. <폭풍 효자>는 오는 4월 열리는 세계 최대 콘텐츠 마켓인 칸 MIP TV 2016에도 진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막강한 중국 위안화를 바탕으로 위력을 더해 가고 있는, 한국 콘텐츠 산업에 대한 중국 레드 머니와 시장의 공습에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바로 양질의 인력 유출로 인한 국내 콘텐츠 제작 역량의 약화와 중국 콘텐츠의 경쟁력 상승으로 인한 국내 콘텐츠 경쟁력 하락이 그것이다.
또한, 대만처럼 한국 콘텐츠 기업이 중국 자본의 인수와 투자로 인해 중국 콘텐츠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콘텐츠의 우수 인력이 계속 양성되고 있어 중국 콘텐츠의 하청기지로의 전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윤호진 정책개발팀장은 “한국 콘텐츠의 중국 시장 의존도가 매우 높은 것은 분명 우려할 만한 문제다. 동남아 등 다른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