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유감

기사입력 2016-08-17 10:48 기사수정 2016-08-17 10:48

▲바둑은 배울 점이 많은 두뇌스포츠다. (최원국 동년기자)
▲바둑은 배울 점이 많은 두뇌스포츠다. (최원국 동년기자)
바둑을 접한 지 47년이 되었다.

중학교 무시험제 시행으로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부모님 바둑 두시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 곳에 빠지면 몰입하는 개인적 습성 과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으로 열심히 하다 보니 6개월만인 중학교 1학년 때 5급이 되었다. 학교에 가서 바둑을 잘 둔다고 하는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가서 대국하면 상대가 되지 않게 졌다. 이게 소문이 나서 2학년 때 기우회를 운영하는 친구들이 시합에 초대하였다. 여기서 이겨 우승 트로피를 타고 보니 이를 되찾으러 방과 후에 기다리는 친구 B가 생겼다.

B와 수업만 끝나면 기원으로 다니다 보니 공부는 뒷전이 되었다. 이때 급격히 기력이 늘어 1급이 되었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수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입단도 가능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자신이 없어 고등학교 입학 시까지 바둑을 끊고 학과공부에 매진했다. 다행히 고등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바둑을 두려니 대학입시로 잠시도 틈을 주지 않아 겨우 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 끝나는 날 친구들을 집으로 초청해 제자를 키우는 작업만 하였다.

대학에 들어 와 본격적으로 바둑을 두어 보니 영 늘지가 않아 더 이상 실력 키우는 것은 포기하였다. 그래도 과거의 실력에 힘입어 단체나 학교의 대표로 선발되어 참가하였다. 대학 이후는 많은 시간 바둑에 빠져 학업에 소홀하였다. 바둑은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썪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바둑에 투자한 시간을 다른 데 투자했으면 무엇가기 하나 이루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바둑에 빠져 자신의 일에 소홀히 하여 노후에 고생하는 지인도 많이 보았다. 다행히 어느 정도 절제하여 폐인이 되는 단계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바둑을 통해 기쁨과 슬픔을 다 맛보았다. 기쁜 일은 바둑시합에 나가 바둑판과 트로피를 탄 일이다. 슬픈 일은 단체전 선수로 참여하여 유리한 판을 실수로 지고 나면 자책하며 밤을 새우는 것이다. 바둑승부를 중시할 때는 열심히 두어 이기는 경우가 많았고 상대의 바둑을 인정하지 않았다. 필자가 이기면 실력이고 상대방이 이기면 필자가 실수하는 행운이 따랐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바둑 친구들의 공적(?)이 된 적이 있었다. 겨우 이기면 실력도 안 되는 데 운이 좋아 이겼다는 악평을 들었으니 겉으로 말은 안 해도 상당히 기분이 상했던 가 보다. 필자와 바둑을 두는 친구들은 모두 다른 판은 포기하고 필자하고 두는 판만 이기기로 하고 나왔다. 왠지 바둑을 한 판 이기기가 힘들고 시간이 무척 걸리는 현상이 나타났다.넌지시 술을 한 잔 하면서 이유를 알아냈다. 바둑실력과 인격이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후부터 절대로 이긴 친구에게 악평도 안하고 축하해 주는 일을 상당기간 하고서야 공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바둑에 아직도 정신 못 차리게 빠져든다. 그러나 온통 천장이 바둑판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는 시간이 될 때만 바둑을 둔다. 승부에 대한 욕심도 더 실력을 기르겠다는 미련도 버렸다. 단지 상대방과 수담하는 재미로 둔다. 바둑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는 게임이다. 이를 더 철저히 할수록 승률이 높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집중력이 떨어져 수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집계산도 부정확해져서 승률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바둑 두는 사람은 치매에 잘 안 걸린다는 말이 있다. 기다릴 일이 생기면 바둑 두다 보면 초조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바둑은 노후 취미로 바람직하다. 승부를 떠나 몰입하는 재미로 바둑 두는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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