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처음으로 혼자서 외출을 했다. 버스와 전철을 타고 혼자 볼일을 보고 와야만 하는 일이었다. 필자는 남편 혼자 보내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지만, 철저하게 채비를 갖추고 나가도록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간 지 15분 만에 벨이 울린다. 무슨 일인가 해서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전화를 열었다. 갑자기 기가 막힐 일이 벌어졌다.
“당신! 빨리 이리로 와. 지금 버스 안에 있는데 나, 눈이 찢어졌어!” 라며 벌벌 떨고 있었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어 정신을 못 차리겠다. 필자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 차분하게 물었다. “뭐야? 갑자기 무슨 말이야. 일단은 버스 기사를 꼭 붙잡고 병원으로 가요. 지금 바로 출발을 할 테니까.”서둘러 아파트 주차장으로 향했다. 다시 전화를 했다.
연락이 안 되니 궁금하기만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난감했다. 지하 주차장 차에 앉아 전화만 기다렸으나 속이 타오른다. 병원은 다행히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차를 몰고 단숨에 달려갔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을 모르니 답답하기만 했다. 덜덜 떨려와 차를 대충 세워놓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남편은 대기실 의자에서 어느새, 눈 옆에 두툼한 거즈를 대고 퉁퉁 부어 넋을 잃고 있었다. 피가 너무 많이 흘러, 급하게 지혈만 시키고 대충 치료를 했다고 했다. 다시 몇 바늘 꿰매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병원에 남편이 덜렁 혼자 와서 앉아 있었다. 필자는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이냐고 물었다. 남편은 너무나 어이가 없다며 멍하니 말을 하지 못 했다.
정거장이 다가와서 버스 안에서 막 내리려고 하는데 기사는 급정거를 했다고 했다. 당연히 승객들의 몸은 흔들렸고 또 버스가 완전히 정지가 되지 않았는데,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문 앞에 서있는 남편의 얼굴을 문짝이 때린 것이다. 안경이 깨지고 그 안경 유리에 눈 옆이 찢어진 것이었다. 얼굴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고 했다.
운전기사는 다친 남편을 몰랐는지 무시하고 다음 정거장으로 향했다. 남편이 앞으로 다가가 다쳤다고 하니, 무조건 내리라고 했단다. 못 내린다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니, 전화번호만 달랑 주고는 무작정 또 내리라고 했단다. 다행히 한 여자 승객이 손수건을 주었다고 했다. 또한 증인이 되어주겠다며 연락처도 주었다고 했다.
남편은 하는 수 없이 혼자 내려서 한 손으로 눈 옆을 손수건으로 감싸고, 길거리에 서서 택시를 잡았다고 했다. 이윽고 한참 만에 근처 병원에 겨우 와 있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듣고 보니 너무 황당한 일이라 말문이 막혔다.
필자는 우선, 남편이 받아온 전화번호로 연락을 취했다. 기사는 자기 소관이 아니니 사고 담당에게 하라고 퉁명스럽게 말을 한다. 다시 전화를 받은 남자는 버스회사 사고 담당 과장이라고 했다. 그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단호하게, 자기들이 아무 잘못이 없으니 한 푼도 물어줄 수가 없다고 하며 아주 기분 나쁘게 전화를 끊었다. 아마 기사가 먼저 무슨 말인가 서로 소통을 한 모양이었다.
말할 수 없이 참으로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환자가 우선이니 담당 의사를 만났다. 상처에 대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이야기했다. 의사는 경찰서에 신고를 먼저 하고 사고처리를 하라고 했다. 임시 처치를 했으니 빨리 신고 한 후에 수술을 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필자 부부는 관할 경찰서로 달려갔다. 담당 형사를 만나 서둘러 접수를 하고, 다시 병원으로 달려갔다.
무려 10바늘이나 꿰맸다. 바로 눈 옆이 너덜너덜 찢어져 아주 힘이 들었다고 했다. 의사는 천만다행이라며 하마터면 눈을 다쳐 큰일 날 뻔했다며 위로를 했다. 바로 눈 옆이라 위험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랐다. 필자 부부는 일단은 모든 수습을 하고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곰곰이 생각을 해보아도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미국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버스 안에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기사는 일단 모든 승객들을 다 내리게 하고 무조건 정차를 한다. 바로 신고만 하면 구급차가 달려오고, 아무리 작은 사고도 사람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 가. 다친 사람이 혼자서 피를 감싸고 모든 일을 다 수습해야 했다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더구나 아무 잘못이 없는 승객이 무슨 죄란 말인 가. 필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인터넷을 찾았다. 시민 콜 센터라는 곳이 있었다. 혈압을 올리며 설명을 했다. 결과야 어떻든 간에 우선은 친절하게 접수를 해주니 그나마 고마웠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또 버스회사를 찾아 연락을 취하고 하소연을 했으나 답은 헛수고였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약이 올라 밤잠을 한숨도 못 자고 대책을 궁리했다. 나라가 겉으로는 놀랍도록 눈부신 발전을 했으나, 사람을 위한 기본적인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무언가 분명한 진실을 규명하고 조금은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언젠가 누군가는 또 다칠 것이고 그때마다 버스회사의 갑 질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당당할 것이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필자는 끝까지 가보자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헛수고 짓이라며 버스회사의 횡포를 묵인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