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공연은 탄둔이라는 중국 작곡가 겸 지휘자가 출연했다. 그가 작곡한 중국 영화 ‘영웅’, ‘와호장룡’, ‘야연’에서 OST로 흐르는 음악 장면과 함께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로 생음악으로 감상하는 형식이었다. 영화 감상과 음악 감상을 겸한 자리였다.
탄둔이라는 사람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래미상, 오스카/아카데미 상 등으로 수상한 상만 해도 한 페이지를 넘는 세계적인 작곡가라고 했다. 이번 공연 이전에 이미 세계적인 뉴욕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등 쟁쟁한 오케스트라와 작업 한 경력이 있다.
탄둔의 지휘로 한국계 피아니스트 지용, 바이올린에 조진주, 첼로에 중국 계 주린이 출연했다. 인터미션을 30분이나 갖는 동안에 8층에 마련된 야외 테이블에 나가 바깥바람을 쐴 수 있었다. 높은 곳에 위치한 별세계였다.
중국 영화 ‘영웅’, ‘와호장룡‘, ’야연‘을 다 보지는 못했으나 중국영화의 특성으로 대규모 병력의 전쟁장면과 칼솜씨가 뛰어난 무인의 무협 장면이 주요 포인트이다. 땅이 넓고 인구도 많으니 전쟁도 크게 한다. 2000년 전 진나라 군사들이 광활한 대륙을 휩쓸고 다니는 전쟁의 웅대한 스케일을 화면으로 보면서 오케스트라 음악을 듣는다. 고수들의 마지막 대결에서 숨 막히는 긴장감과 화려한 동작들이 어찌 보면 식상하면서도 오케스트라 음악과 함께 들으니 심오하게 와 닿았다.
중국 영화라 해서 음악도 중국풍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 가요가 트로트가 특색이고 일본은 엔카이니 중국도 잘 알려진 ‘야래향’ 방식의 음률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니 탄둔이 세계적인 작곡가라는 것이다. 클래식에 익숙한 우리 서울 시립교향악단이 중국 무협영화의 OST 곡을 연주하는데 안 맞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아주 좋은 조화를 이루었다. 클래식에서 조용한 소리를 들려주던 북소리가 자주 나오고 타법도 북 가운데보다는 옆을 두드리는 기법 등이 달랐다. 점잖은 소리만 내던 바이올린, 첼로, 트럼펫 등이 특이한 소리를 냈다. 탄둔의 음악은 요란하게 클라이맥스로 달려가다가 마지막에 '꽝"하며 동시에 끝나는 음악이 많다. 그래서 연주가 끝난 것을 쉽게 알수 있다. 지휘르르 끝낸 탄둔이 만면에 웃음을 띄며 관중을 향해 돌아선다.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탄둔은 영화의 OST를 오케스트라 협주곡 수준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마지막 공연은 ‘세 번의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전 출연자가 나와서 바그너 탄생 200주년 헌정곡으로 준비된 것이다. 탄둔은 바그너에 대해서 특별한 철학적 공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영화음악에 대한 그의 철학이 귀를 기울이게 한다. 영화 음악이라고 해서 경시할 것이 아니라 영화 음악은 영상 속 숨은 감정까지 끌어내야 하고 영화의 리듬을 끌고 가는 엔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