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나리자(Mona Lisa)>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싶다.
또한 파리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루브르 박물관 관람을 빼놓지 않았을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나리자>에 얽힌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을 정도다. 그중 기억나는 일화는 1963년 <모나리자>가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대형 여객선으로 미국 나들이에 나설 때 전 유럽이 떠들썩했던 일이다.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사고라고 발생할까봐 온통 난리를 피웠던 것이다. 이는 유럽인들이 <모나리자>를 얼마나 소중히 아끼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 유명한 모나리자의 초상화를 아무리 열심히 봐도 눈썹이 보이지 않는다. 모나리자의 눈썹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은 필자의 직업적 본능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필자는 다빈치와 가깝게 교분을 나누던, 순결·사랑·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삼미신>을 그린 화가 라파엘로(Sanzio Raffaelo, 1483~1520)의 작품 막달레나(Maddalena Doni) 초상화와 비교해보기로 했다.
살펴보니 라파엘로 역시 그가 그린 초상화에서 눈썹을 아주 흐리게 처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당시 상류층 여인들 사이에서 ‘눈썹 제거하기’가 상당히 성행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유추(類推)를 가능하게 했다.
그 후에도 여인을 그린 초상화에서 ‘눈썹 없는 여인’들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초상화를 남긴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1세의 초상화들을 보면, 경우에 따라 눈썹이 짙게 그려지기도 하고, 옅게 그려지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리면서 많은 미술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를 감상해보니 초상화의 중심이 되는 소녀의 아름다운 눈초리에 매료되면서도 소녀가 머리에 쓴 ‘터번(Turban)’형 머리덮개가 화려하지만 왠지 어울리지 않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원작을 다시 보았을 때 ‘속눈썹’ 역시 그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소녀가 ‘전신성 무모증(全身性無毛症, Alopecia totalis)’에 시달렸을 거라는 임상적 진단을 내렸다.
새로운 시각으로 그 유명한 ‘북유럽의 모나리자’를 본다는 기쁨은 잠깐, 소녀가 겪어야만 했던 가슴앓이를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웠던 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 애잔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이성낙(李成洛) 현대미술관회 회장
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 의대 피부과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현), 간송미술재단 이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