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필자와 친구들의 아지트는 등나무 밑이었다. 그런데 5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등나무 밑에 몇 명의 아저씨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작은 짐 보따리 앞에서 웅성거리다가 한 명이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열쇠를 가지고 와서 옆에 있던 건물의 쪽문을 열었다.
우리는 호기심에 모두 그리로 달려가서 안을 들여다봤다. 아저씨들은 상자를 열어 책을 꺼내기 시작했고 보따리를 풀어 옷들을 열심히 정리했다.
그때 아저씨들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갔다가 또다시 그곳으로 갔다. 수십 번을 그렇게 하면서 놀이처럼 즐겼다. 나중에는 아저씨들이 주는 과자도 받아먹고 이름을 물으면 대답하면서 친해졌다. 어머니한테 얘기하니 자취생들이겠지 했다.
아저씨들은 가끔 기타를 치면서 노래도 했고 우리에게 동화도 들려줬다. 그 뒤 아저씨들이 서울대 1학년이라는 것도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가 겨울방학이 되었고 그 다음해는 6학년이라 입학시험 대비로 바빠 아저씨들에 대해선 까맣게 잊은 채 중학생이 되었다. 중2 때 혼자 집에 오는데 한 아저씨가 “야아~ 너로구나 많이 컸네!”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부끄러움이 부쩍 많아진 필자는 그 말에 놀라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뛰어갔다. 씩씩거리는 필자에게 동생들이 “언니 왜 그래?” 하고 물었지만 “몰라!”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날부터 가끔 그 아저씨를 길에서 만났다. 자취생들 중 한 명이었는데 제대하고 복학했다고 들었다. 키가 무척 컸고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별명이 개고기였다. 종종 우리 집에 와서 어머니랑 얘기도 하고 동생들과는 시시덕거리다가 가곤 했는데 필자는 특별하게 할 얘기도 없어 무시하고 지냈다. 이후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 아저씨는 장학생으로 대학원까지 들어가 연구원이 되었다.
필자는 그 아저씨가 어느 과 학생이며 이름은 뭔지 동생들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특별한 관심은 없었다. 당시 이성에 관해서는 무조건 멀리 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 아저씨는 형제가 없어 필자가 여동생이 되어줬으면 했던 거 같다. 물론 필자도 오빠가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눈치만 보다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필자가 결혼하고 몇십 년 뒤, 뜬금없이 개고기 아저씨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부터 오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개고기 아저씨가 떠올랐다. 뭔가 의논하고 싶을 때, 어려운 일을 겪을 때면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는 오빠라는 존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어느 날 그 친구분을 어느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났다. 필자를 알아보고 인사를 하고는 개고기 아저씨가 폐가 안 좋아 고생하다가 갔다는 얘기를 해줬다. 지금이라면 살갑게 대해줬을 텐데… 그렇게 해주지 못한 게 미안해졌다. 친구와 묘소라도 찾아가볼 걸 그랬나? 왜 그런지 친구분을 만난 뒤로 개고기 아저씨 생각이 더 났다. 필자 오빠가 되어줄 사람이 이젠 영원히 떠나버렸다는 생각까지 들고, 아저씨가 “이제 내 마음 알겠니?”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억울한 마음은 또 뭔지 알 수가 없고. 어쨌든 만나보고 싶은 마음만큼은 진실이다. 이제는 마음껏 스스럼없이 굴 수 있는데… 아저씨가 이 세상에 없어 슬프다. 아니 그립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