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던 촌놈은 모진 고생을 감내하면서 학업을 이어갔다. 고향에서 14년을 살고 타향인 서울에서는 무려 50여 년 이상을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은 늘 정년퇴직 후의 귀향 생각으로 가득했다. 혼탁한 환경과 인심 사납고 삭막한 서울 생활을 접고 공기 맑고 인심 좋은 귀촌이나 귀향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적어도
기해년(己亥年) 새날이 밝았습니다. 오행(五行)에서 ‘기(己)’ 자는 흙의 기운을 표현하며 색으로는 노란색이기에, 기해년은 곧 60년 만에 돌아온 ‘황금돼지해’라고 합니다. 각별하고 신명 나는 일만 벌어질 것 같은 황금돼지해를 맞아, 노란색 야생화가 황금색 술잔을 높이 들고 원숙미(圓熟美)를 더해가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애독자들에게 경배하며 새해 인
올해 여름휴가에 펜션을 예약해 두었다며 동해안 바닷가와 설악의 계곡에서 보내자는 아들네의 전화를 받았다. 즐거운 제의다. 이제 아기들도 웬만큼 자라서 저희끼리 놀러 가도 될 텐데 엄마를 생각해 같이 가자는 아들이 있어 행복하다. 냉큼 가겠다고 답하고 여행 준비에 나섰다. 딸만 있는 친구들이 들으면 또 눈치 없다고 핀잔할 것이지만 나는 모른 체 따라나서기
산과 산 사이 도로를 줄기차게 달려도 산 첩첩. 깊고 후미진 산간이다. 도로를 버리고 접어든 비좁은 산길 끝자락 산 중턱, 후련하게 탁 트인 거기에 나무선(57) 씨의 거처가 있다. 풍경의 절반은 산, 절반은 하늘. 또는 절반은 청풍, 절반은 구름. 절집 자리처럼 개활하니 명당이렷다.
나무선 씨는 서점을 운영한다. 외진 산골짝 서점을 누가 찾아들
“보험 회사죠? 차가 퍼져서요”
서수지 톨 게이트 갓길에서 바라본 6월 하늘은 맑고 쾌청하다. 구십 노모와 시외나들이 귀가 중에 사달이 난 것이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마주하니 적잖이 당황스럽다.
2003년 산이니 올해로 16년. 298990km, 어림수로 30만 km를 달린 셈이다. 그동안 수고로움에 고맙고, 큰 사고 없이 오늘까지 와주어
대왕암은 울산 동구 해안가에 있다. 오랜 세월 파도에 침식된 기암괴석의 자태는 과연 ‘대왕’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 대왕암과 함께 동해의 세찬 바람을 잘 버텨내고 있는 소나무 숲이 만드는 경관은 신비롭다. 그래서 건축 관련 일이나 강의가 있어 울산에 가면 시간을 쪼개서 그곳을 찾는다.
대왕암이 있는 동구는 접근성이 좋지 않다.
2018년 1월 1일. 짝지의 60세 생일이다. 이제는 헤아리기도 버거운 시간을 지내왔다는 사실이 낯설다. 그 많은 시간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어쩌다 보니 같이한 세월도 34년이다. ‘인생 금방’이라는 선배들의 푸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그 시절 데이트는 대부분 ‘두 발로 뚜벅뚜벅’이었다. 좋아서 걷고, 작업하려고 걷고, 돈이 없어서 걷고, 사색하느라
새해가 밝았다. 오늘도 그냥 추운 겨울의 어떤 하루에 불과하건만, 왠지 이날은 특별한 듯해 보인다. 그래서 너도나도 깊은 밤 추위를 무릅쓰고 산에 오르거나 동해 바다로 몰려들어 새벽에 돋는 해를 바라보곤 한다. 날이 밝으면 만나는 이들에게 덕담을 주고받으며 마치 상이라도 받은 얼굴로 미소가 가득하다. 아마도 이날은 특별한 음식도 먹으리라. 요즘 유행하는 말
인적 드문 시골 마을에 전국 각지에서 하나둘 사람이 모여들었다. 강원도 산골에 누가 오기나 할까 의심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름 알아서 잘들 찾아와 쉬다, 놀다, 힐링했다며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여간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조용하던 이곳에 세상 모든 이들의 쉼터 왕산한옥마을이 소담스럽게 자리 잡았다.
유유자적 시골 체
눈보라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닦아야만 했으니까. 희망이 보이는가 싶더니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망연자실 고개를 떨어뜨렸지만 초석이 다져졌고 단단한 징검다리가 놓였다. 노력은, 꿈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한 달여 남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삼수(三修) 만에 이뤄낸 쾌거’라고 말한다. 세 번의 도전 동안 수많은 사람의 헌신과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