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공무원으로 살았지요.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사진도 정형화된 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젠 공무원이 찍은 사진 같다는 말은 듣지 않으려고요. 제가 셔터를 누르던 찰나의 느낌을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사진을 찍고싶어요.” 그렇다. 그는 한평생 공무원이었다. 1972년 3월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초급 공무원부터 시작해 2007년 4월 행정도시건설청기반시설본부장(국장급)으로 퇴직하기까지 35년간 국토정책 전문가로 나라의 녹을 받고 국가에 봉사했다. 퇴직 이후 2012년 4월까지 몸담은 건설공
세상이 메마를수록 순수한 감성에 목이 마른다. 가슴을 적시는 애잔한 사랑이야기에 울컥해보고 싶을 때도 있다. 눈물로 이별을 고했던 나의 지난 사랑도 짠하게 아름답기만 하다. 가 생각나는 까닭도 그러하다. 김하인의 감성멜로에 추억을 떠올리는 이가 있듯, 그에게도 순수하던 그 시절의 책갈피 같은 책 한 권이 있다. 볼프강 보르헤르트(Wolfgang Borchert)의 다. 폐허냄새가 나는 아름다움을 지닌 아이로부터
금융권 생활 20년, 돈 냄새를 누구보다 잘 맡는 사람이 있다. 퇴직 후 10년, 불운의 연속으로 실패에 쓴 맛을 본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NGO단체 (사)러브 월드에서 삶의 보람을 찾고 있는 박근배 사무국장이다. 그는 자신을 한때 ‘잘 나갔던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표했했다. 그러나 전혀 거만하거나 거북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본 경험도, 바닥에서 헤메던 경험도 있던 사람의 여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은행연합회에서의 20년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끼거나 후회하지도 않는다
나이를 먹고 인생의 경험치가 쌓여도 늘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다. 특히, 은퇴한 중년 남성은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 변화가 생기며 관계 앓이를 하게 된다. 이덕신 이사를 만나 은퇴이후 관계리스크를 슬기롭게 넘어설 수 있었던 방법을 들어봤다. 듣고 싶은 말을 먼저 하라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남편 때문에 볼멘소리를 하는 아내들이 늘고 있다. 빈둥거리며 가사 일을 돕지 않는 남편에 서운한 아내와 잉여인간 취급당하는 남편 사이의 갈등은 깊어
“(서킷 코너링을 위해) 바이크와 함께 몸을 옆으로 점점 뉘이다가 급기야 뺨이 지면에 닿으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바로 그때 느껴지는 짜릿함이란 말로 형언하기 어렵죠.”(웃음) 전국 바이크 족들이 모여 실력을 뽐낸다는 경기도 가평 유명산 정상. “크앙~”하는 거친 굉음과 함께 날렵하면서도 묵직한 기운이 느껴지는 슈퍼 바이크(배기량 1000cc이상) 한 대가 멈춰섰다. 이 바이크에 앉은 라이더가 헬멧을 벗자 마초(남성) 라이더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머리를 단아하게 뒤로 빗어 넘긴 준 연예인급 미모의 여성이 시선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돈은 중요하지 않다. 일자리가 나를 움직인다. 대기업 임원에서 숲 해설가가 된 김용환씨를 만났다. 많은 돈을 받지 않지만, 퇴근하면 다시 출근할 생각에 설렌단다. 두 번째 직장에서 퇴직한 후 약 4년이 흘렀다. CJ 제일제당 상무, 스파클 CEO. 화려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명함들은 집안 한구석에 켜켜이 쌓여 있다. 이 명함의 주인공 김용환씨는 이제 화려한 직함이 새겨진 명함 대신 ‘국립수목원 숲 해설가’라고 써진 명함을 내민다.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니 더 큰 세상이 보이더라고요. 그것 중 하나가 숲입니다. 자연이 우리에
한국 신무용의 대모 김백봉(87) 선생의 70년 춤 인생을 담아낸 '청명심수(淸明心受), 김백봉 춤의 아리랑'이 오는 12~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이번 공연은 김 선생의 제자들이 스승의 춤사위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그의 춤을 올곧게 이어가겠다는 뜻을 담아 마련했다. 이날 김 선생은 객석에서 제자들의 공연을 지켜볼 예정이다. 김 선생은 최승희의 수제자로,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공연한 '화관무', 최승희의 '보살춤'을 재해석한 '만다라' 등 수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1966년에는 경희대 무용학과 개설에 앞
유재철 씨를 설명할 때는 꼭 붙는 명칭이 있다. 바로 ‘대통령 염장이.’ 최규하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염하고 장례 전반을 진행한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장례와 같은 국가적 행사뿐만 아니라 서경보 스님, 정몽헌 회장, 정대 스님, 법장 스님, 법정 스님, 여운계씨와 같은 큰스님들과 유명인사들의 장례도 도맡아서 진행했던 유재철 연화회 대표지만, 시작은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염장이였을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어떻게 해서 그는 염습이라는 쉽지 않은 분야를 자신의 업으로 받아들이고 장인의 소명의식으로 최고 전
“이 더위에 슈트차림하고 나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테니, 아마 눈에 확 띌 겁니다.” 30도를 웃도는 폭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정갈한 슈트차림에 중절모와 나비넥타이로 한껏 멋을 낸 중년신사가 유유히 걸어온다. 시원하게 쭉 뻗은 다리와 꼿꼿한 자세, 힘 있는 걸음걸이는 그야말로 모델포스가 넘친다. 그의 말대로, 아니 그의 말보다 더 확실히 눈에 확 들어온다. 지난 한해 시니어 모델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라 9편의 광고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뽐낸 곽용근(76)씨다. 남다른 표현력과 연기력으로 광고뿐만 아니라 가수
※ “이게 진짜 멋있는 삶이지.” TV를 보던 기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그리고 무릎을 세게 치며 다짐했다. 저 사람을 만나 꼭 우리 독자들에게 소개 하리라. 수천만원 가량의 쌀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한 황규열 씨다. 그런데 이 양반. 살아온 길이 드라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십시일반 쪼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그에게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어머니의 팔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다친 어머니는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해 팔이 점점 썩어 들어가다 끝내 하늘의 별이 됐다. 그 때 소년의
오선영 미래미술관 관장과 인터뷰를 하는 내내 감탄했다. 그녀가 보여주는 나이를 지워버리는 젊은 아우라에. 전업주부였지만 자기계발을 거듭하여 자신의 삶을 완성해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는 예술을 즐기고 배우면서도 내조를 잘하는 한국적 마담의 이상적인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처음 나온 질문이 ‘브라보 라이프 스타일이 무엇이냐’는 건 그러한 모습에 대한 의문이 그대로 나온 결과였다. 스타의식과 끼 넘치는 그녀에게 삶을 즐기는 법에 대해 물어봤다. 사진 장세영 기자 photothink@etoday.co.kr “자기가 좋
※ 만능 스포츠맨이 있다. 스킨스쿠버, 사막 울트라 마라톤, 등산, 축구, 자전거 하이킹까지. 자칭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다. 때문에 건강한 신체를 얻었고, 건강한 정신이 따라왔다. 몇 살이냐고? 화투로 따지면 ‘6땡’ 66세 주름 많은 늦청년이다. 건강한 신체로 250km나 되는 사하라 사막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했다. 건강한 정신으로 파키스탄 오지 마을 사람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을 만났다. 작은 체구 사내의 눈웃음이 환상적이다. 사하라 사막에서 열린 250km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남성이다. ‘이
미국의 억만장자인 워런 버핏이 본인의 기록 중 역대 최고 금액인 28억 달러( 약 2조8700억원)를 기부했다. 버핏 지난 14일(현지시간)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버크셔 헤서웨이의 B등급 주식 2173만주를 5개의 자선재단에 기부했다. 이 가운데 21억 달러어치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1660만주가 교육과 보건ㆍ빈곤 해소에 주력하는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됐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사별한 첫 부인과 세 자녀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4개의 가족재단에 할당됐다. 버핏 회장이 2006년 연례적인 기부 활동을
국내 최초로 개방병동을 시행하고 한국정신치료학회를 설립하는 등 정신과 분야에 큰 족적을 남긴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소탈하고 편안한 얼굴은 맘씨 넒은 이웃집 할아버지 같았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인생은 덤’이라는 생각으로 산다는 철학을 갖게 된 이 교수는 자기 삶의 능숙한 선장으로서의 노하우를 정리한 책 를 베스트셀러로 올려놨다. 서울 신영동 북한산 자락에 있는 ‘가족아카데미아’에서 이 교수를 만나 노년을 재미있게 보내는 지혜들을 들어봤다. 인터뷰 송광섭 편집장 정리 김영
쌈지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하여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예술적 기질을 가진 독자적 토종 패션 브랜드 쌈지. 10년 동안 운영됐던 예술가들의 인큐베이터 쌈지 스페이스,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뮤지션들의 축제의 장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인사동의 쌈지길 등은 쌈지라는 브랜드가 얼마나 혁신적이고 감각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결과들이었다. 그러나 기업으로서의 쌈지는 2010년에 부도가 났다. 쌈지의 주인장이었던 천호균 대표는 ‘장사’를 버리고 ‘농사’로 인생의 두 번째 시작을 드라이빙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