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가면서 왠만한 걱정거리나 별별 소리를 들어도 귓전에 바람소리처럼 흘러들을지 알았다. 아니다.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겨야 할 일도 마음에 맺혀지고 심한 가슴앓이를 한다. 예전에도 나쁜 일은 어른들 모르게 쉬쉬했다. 아시면 괜히 마음고생 하신다면서 철저히 숨겼다. 내가 겪어보니 참으로 맞는 말이다. 헌혈과 관계되어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지금까지 헌혈을 66회 했는데 이제 와서 헌혈 부적격자로 딱 걸렸다. 그것도 아주 기분 나쁜 매독항체 검사에서 판정보류를 받은 것이다. 양성 반응이면 양성반응이고 음성반응이면 음성 반응이
2018년 1월 1일. 짝지의 60세 생일이다. 이제는 헤아리기도 버거운 시간을 지내왔다는 사실이 낯설다. 그 많은 시간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어쩌다 보니 같이한 세월도 34년이다. ‘인생 금방’이라는 선배들의 푸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그 시절 데이트는 대부분 ‘두 발로 뚜벅뚜벅’이었다. 좋아서 걷고, 작업하려고 걷고, 돈이 없어서 걷고, 사색하느라 걷고. 애꿎은 다리만 중노동하듯 시달렸다. 남자 친구가 학교에서 여자 친구를 만나 집까지 데려다 주다가 통금에 걸려 파출소에서 잤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남산, 능
필자는 국립공원인 북한산과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다. 요즘 등산하는 인구가 많아져서 산은 항상 붐빈다. 남들은 자가용이나 버스로 이곳까지 와서 산에 오르지만, 필자는 운동화 끈만 질끈 매고 문을 나서면 언제라도 산에 오를 수 있으니 비록 땅값 집값이 싼 동네라지만 만족하고 공기 좋은 우리 동네를 사랑하고 있다. 잠시 전에도 산에 다녀왔다. 흰 눈이 내린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하얀 눈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보석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설경이었다. 계곡을 따라 눈이 많이 쌓였고 군데군데 작은 폭포도 흐르던 모양 그대로
‘아사히 맥주 CEO 히구치 히로타로의 불황 돌파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이 사람은 1986년 스미토모 은행에서 아사히 맥주 사장으로 부임한 사람이다. 당시 아사히 맥주는 소주 열풍에 1984년만 해도 회사 맥주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마이너스 5%에 달해 맥주 시장은 포화 상태 또는 사양산업이라고 보던 때이다. 아사히 맥주는 한자로 ‘조일(朝日:뜨는 해)맥주’라고 쓰는데 당시 시장 점유율이 10%대 이하로 떨어지면서 ‘석일(夕日:지는 해) 맥주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랬다가 공전의 히트 상품 ’슈퍼드라이 맥주‘를
그냥 개띠가 아니다. ‘58년’ 개띠라야 진짜다. 개띠 앞에 ‘58년’이 붙으면 마치 대단한 인증 마크를 받고 태어난 것만 같다. 전 세대를 아울러 태어나면서부터 기 쎈(?) 아이콘으로 살아가고 있는 58년 개띠가 올해 벌써 환갑을 맞이했다. 베이비부머로 불리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한국 사회 속 이야깃거리이자 사회 현상 지표가 됐다. 이들의 특별했던 인생 이야기와 지금의 모습을 담기 위해 58년 개띠 모임 현장에 찾아가 봤다. 58년 개띠 형님들 문 좀 열어주세요!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5
나이 들어 난청으로 잘 안 들리는 경우, TV를 시청하는 거 이외에는 별 답답할 일이 없다. 젊을 때처럼 회사를 다녀서 여러 사람과 소통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만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니 불편할 것이 별로 없다. 또 옛날 같이 손주랑 함께 사는 대가족 시대도 아니고 노인네 단둘이만 사니 답답한 일이 없다. 정작 불편한 사람은 같이 사는 사람이다, 웬만하게 말해서는 알아듣지도 못하니 몇 번 다시 말해야 하고 또 큰 소리로 말을 해야 하니 여러 가지로 피곤하다. 결국 아내인 언니가 여러 번을 권유해서 80세이신 형부의 고집을
“58년 개띠입니다.” 어느 모임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첫마디다. 개띠의 당당함과 그들의 파란만장한 세월이 그 한마디에 포함되어 있다. 1953년, 전쟁이 끝나고 아기가 많이 태어났는데 그 절정기가 1958년이다. 개띠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뺑뺑이 추첨으로 배정받아 들어갔다. 58년 개띠라는 말은 사회 여러 방면에서 이전 세대와 차별되고, 이후 세대와도 분명하게 구분되어 생긴 용어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운동장에 가득했다. 교실이 모자라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뉘었다. 필자는 비 오는 날 잠시 낮잠을 잤다
아침에 눈을 뜨니 째깍째깍 소리를 내고 움직여야 할 탁상시계가 죽어있다. 가까이 가서 귀 기우려보고 손바닥으로 탁탁 쳐봐도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다.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모양이다. 시계 뒤 뚜껑을 열고 배터리를 확인해보니 1.5V AA타입 1개가 들어있다. 방전된 배터리를 빨리 꺼내지 않으면 배터리 액이 흘러나와 전기접점에 녹이 나게 한다. 길게는 기계내부 소자(素子)에 흘러들어가 기기를 망가뜨린다. 먼저 배터리를 뽑아내야 했다. 집에는 이 배터리가 없다. 집 가까이 있는 천 원짜리 물건을 주로 파는 ‘다이소’에 갔다.
텔레파시는 한 사람의 생각, 말, 행동 따위가 멀리 있는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는 심령 현상을 말한다. 동네에 당구를 종종 같이 치는 선배가 한 분 있다. 스케줄이 없는 날, 당구나 칠까 하고 전화를 하면 마침 전화 걸려던 참인데 희한하게 먼저 전화가 왔다며 반가워하는 것이다.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했다. 아마 동네 가까이 살고 있어 아무 때나 연락해서 만나기 편하고 나이 차이는 있으나 비슷한 연배이니 스케줄이 비슷할 것이다. 스케줄이 비는 날이나 비는 시간대도 비슷할 것이다. 이 선배가 당구를 치자고 하는 이유는 필자가 아
당구 방송을 즐겨 본다. 일부 의학정보 외에 24시간 거의 당구에 관한 방송을 한다. 세계 유일의 당구 전문 TV방송이라고 한다. 당구 계 뉴스는 물론 레슨도 해주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프로 선수들의 경기를 녹화 중계 한다. 덕분에 배우는 것이 많다. 그런데 개국 4주년을 맞아 ‘노 코멘터리’ 방송을 한다고 해서 봤다. ‘노 코멘터리’라는 것은 말 그대로 캐스터와 해설자 없이 하는 방송이다. 이 방송국은 캐스터 2명, 해설자 2명이 거의 전 방송을 맡는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들도 질력이 날 만 하다. 늘 같은 사람이 나오고 말투
이른 아침이다. 간밤에 내린 눈이 소복소복 쌓여 세상이 하얗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에도, 들녘을 구비 도는 길에도 빈틈없이 내렸다. 평평한 대지 위에는 하얀 종이를 깔아놓은 듯하다. 아침마다 산책하는 들판 길옆 꽁꽁 얼음이 얼어붙은 농수로(農水路) 위에도 하얗게 내려 마치 화선지 두루마리를 펼쳐놓은 듯하다. 수로의 중간쯤 얼음 사이로 뚫린 숨구멍이 마치 글자의 한 획을 그은 듯하다. 화선지 위에 붓으로 힘차게 내려쓴 글씨를 빼닮았다. 눈이 부실 듯 하얀 종이 위에 단숨에 쓴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처음 한 획, 삐칠 ‘별(丿
필자의 집안은 3대가 개띠다. 아버지가 34년 개띠, 필자가 58년 개띠, 둘째아들이 94년 개띠다. 말티즈도 한 마리 키우고 있어 집안이 온통 개판이라고 가끔 농담을 한다. 34년 개띠이신 아버지 세대는 일제강점기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겪으며 생사의 갈림길을 수없이 지나온 분들이다.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하지만 58년 개띠도 나름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았다. 필자의 초등학교 4학년 성적표를 보면 104번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한 반이 104명 정도는 되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학생이 너무 많아 3부제 수업을 했다. 콩나물시루 같은
서울 어느 단체에서 어르신 무료취업 상담실을 운영한다고 광고를 이곳저곳에 내 걸었다. 모집직종을 보니 경비,청소,주차관리,요양보호사,식당보조,지하철택배,치과기공배달,기타직종이라고 적혀있는데 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직종이 총 망라되어있다. 더 추가한다면 농어촌 일손 돕기 외에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어르신을 모신다고 하면서 나이제한으로 70세까지만 뽑는다고 한다. 70세 초과는 명함도 내밀지 말라고 미리 공고문에 못을 박았다. 다른 말로 하면 70세가 넘으면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말이다. 아침에 테니스장에 나갔더니 여기저기
우리 생활 주변에 보면 아직도 일본어가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해방 된지 반세기가 넘었는데도 여전히 대체할 단어를 못 찾고 있거나 아예 그런 노력도 안하는 것이다. 시니어들의 부모세대가 일제 식민지 교육을 받은 영향으로 일본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경우도 많다. 지속적인 정화 노력으로 많이 바꾸긴 했지만, 아직도 찾아보면 일본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다. 요즘 방송에서는 우리말이긴 한데 일본식 표현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걱정이다. 필자도 당구를 치지만, 필자 나이 또래의 시니어들은 대부분 일본 용어를 쓴다. 당구가
선어(禪語)에 나오는 말이다. ‘차를 마실 때는 차 마시는데 집중하고, 밥을 먹을 때는 밥 먹는데만 집중하라’는 말이다. 몇 해 전 댄스동호회 파티에 초대되어 간 일이 있다. 그때 회장을 맡았던 사람이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의전부터 시작해서 안 끼는 데가 없었다. 메인 파트의 시작은 그 회장의 시범댄스를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회장이라는 사람이 루틴 순서를 완전히 까먹고 헤맸다. 다시 시작했으나 마찬가지였다. 망신은 망신대로 당하고 그 파티는 엉망이 되었다. 혼자 이것저것 다 하려다 보니 집중이 안 된 탓이었을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