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탁재산 총액, 3월말 기준 1경7000조 ‘천문학적’ 규모
신탁법 개정, 신탁산업 기반 마련…정부 세제 혜택이 본격적 성장 견인
교육자금, 결혼육아 등 증여세 면제되는 특수 신탁…세제혜택 적극 제공
민사신탁제도 허용, 신탁계약 자유 확대…향후 성장 가능성 높아

19일 삼성증권에 따르면 이창희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 ‘일본의 신탁시장은 왜 그렇게 발달했을까?’를 통해 “(일본의) 신탁법 개정이 신탁산업의 성장의 기반이 됐다면, 본격적인 성장을 이끈 것은 정부의 세제 혜택 및 제도적 지원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신탁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일본의 신탁 재산 총액은 1826조 엔 규모로 원화 환산 시 약 1경7000조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국내 신탁 수탁고는 작년말 기준 약 1388조 원이다. 이 연구원은 두 나라의 인구 차이, 신탁시장 구조를 감안하더라도 일본의 신탁시장 규모가 한국의 5배 이상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일본 신탁시장이 성장 발판에 올라선 계기를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전 총리의 경제정책)’로 짚었다. 당시 일본 정부가 금융완화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예금 금리는 마이너스 금리로 떨어졌다. 기업, 기관 투자자들이 예금을 통한 자금 운용이 불가능해지자 운용 수익을 낼 가능성이 큰 신탁으로 자금을 이동했다.
이 연구원은 “일본 신탁 재산의 높은 성장을 견인한 것은 법인과 기관 투자자의 자금임을 알 수 있다”며 “일본은행 통계에 따르면, 금융기관 중 은행 등 예금 취급기관, 일본 국내 비금융 부문(기업법인), 보험 및 연기금의 신탁 수익권 추이는 2013년을 기점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인 자금이 토대를 마련했다면, 개인은 신탁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일본의 가계가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은 일본 신탁 재산 총액 약 1826조 엔 중 약 7%로 추정된다. 2004년에 실시한 신탁업법 및 신탁법 개정은 일본의 개인 신탁시장이 확장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당시 주요 개정안은 △수탁가능재산 범위제한 철폐(지적재산권 등) △신탁기관 다양성 확대 △신탁회사 행위 기준 마련( 신탁 제3자 위탁 인정 등) △신탁회사의 의무 및 책임 명확화 △신탁 서비스 이용자 창구 확대 △외국 신탁회사 일본 영업 허용 등이다.
이 연구원은 일본 신탁시장의 본격적인 성장을 이끈 배경으로 정부의 세제 혜택과 제도적 지원을 꼽았다. 교육자금, 결혼·육아 등의 목적으로 신탁할 경우 일정 금액에 한 해 증여세를 면제해준 것이다.

이 연구원은 민사 신탁이 주목받고 있는 점도 짚었다. 민사 신탁이란 가족 간 또는 개인 간의 사적인 계약을 통해 재산을 특정 목적에 따라 관리, 운용하는 구조를 말한다. 이 연구원은 “고령자 인구가 급증과 후견제도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가족 중심의 유연한 대체 수단으로 민사 신탁이 주목받기 시작했다”며 “일본공증인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민사 신탁 공정증서 작성 건수는 연간 5000건 수준으로 급증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신탁시장이 일본과 같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민간계약형을 도입하고, 다양한 생애주기별에 맞춘 상품 설계를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연구원은 “한국 신탁업이 질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일본처럼 민간계약형 신탁의 제도적 도입이 선결돼야 하며, 다양한 생애주기별 니즈에 맞춘 유연한 상품 설계가 가능해야 한다”며 “한국도 고령사회 대응형 신탁, 개인자산 보호형 신탁, 지역사회 연계형 신탁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하며, 이를 통해 투자자들에게도 새로운 테마형 금융상품 및 장기 자산관리 솔루션으로 신탁이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