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영화평론가 윤성은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의 화제작은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촬영상 등을 포함해 무려 9개 부문의 후보에 오른 <버드맨>이었다. 이미 골든 글로브를 비롯한 60여 개의 시상식에서 133개의 트로피를 거머쥔 만큼 작품의 완성도 면에 있어서는 거의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작품이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멕시코 출신 감독이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을 만큼,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는 <21그램>, <바벨>, <비우티풀>에 이어 또 한 편의 천재적 감각이 번뜩이는 작품을 내놓았다. 재치 있는 대사와 시츄에이션 코미디(sitcom)가 연신 웃음보를 자극하는 이 영화는 코미디 장르와 거리가 멀었던 감독에 대한 선입견까지 완전히 깨뜨린다.
주인공 ‘리건 톰슨’은 한 때 슈퍼히어로물인 ‘버드맨’ 시리즈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액션 배우였지만 지금은 낡은 극장 건물에서 연극을 준비하는 신세다. 돈도, 명성도 바닥이 난 육순의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이 연극을 통해 다시 ‘버드맨’처럼 멋지게 날아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연기자이자 예술가로서 인정받아야만 한다는 강박과 불안이 점점 더 리건을 옥죄어 오는 가운데, 프리뷰 공연 전날 대체된 배우는 연신 사고를 쳐대고, 저명한 비평가는 그의 면전에 독설을 퍼붓는다. 게다가 시커먼 버드맨 복장을 한 리건의 또 다른 자아는 계속 그를 맴돌며 속삭인다. “우리 그때 좋았잖아! 넌 버드맨이야.” 라고.
나이를 먹을수록 더 뚜렷이 떠오르는 그 ‘잘 나가던 시기’를 시쳇말로 ‘리즈 시절’이라고 한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퇴물이 됐다고 느낄 때, 리즈 시절의 기억은 우리에게 적잖은 기쁨과 위로가 된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추억을 적당히 즐기면서 현재의 나를 성장시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버드맨>은 이런 질문에 대한 성실하고 긍정적인 답안지와도 같은 영화다. 인생의 두 번째, 세 번째 리즈 시절을 꿈꾸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일정: 2015. 03. 05 개봉
장르: 코미디, 드라마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출연: 마이클 키튼, 에드워드 노튼, 엠마 스톤, 나오미 왓츠 등
배급: 20세기폭스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