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0주년을 앞둔 미술 전문지 ‘퍼블릭아트’의 발행인이자, 올해 3월 한국잡지협회 제46대 회장에 취임한 백동민 회장. 미술계의 현장을 20년 넘게 기록해온 그는, 잡지를 향한 사랑이 단순한 업(業)을 넘어 ‘삶의 언어’로 굳어진 인물이다. 백 회장은 대학 시절부터 미술 전시 기획과 평론 활동에 깊이 관여해오며 미술이 일상의 언어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깊이 있고 따뜻한 경청의 매체’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잡지는 그런 매체였다. 그는 미술 잡지 창간의 꿈을 ‘퍼블릭아트’ 발행을 통해 현실로 만들었을 때가 바로 ‘브라보 마이 라이
백동민 한국잡지협회장 "전문지 시대, 잡지의 힘은 더 강력해졌습니다" 에 이어 백 회장에게 ‘퍼블릭아트’ 창간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사명이었다. “창간호를 손에 쥐던 날, ‘이 길이 내 사명’임을 알았습니다. 현대미술이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로 여겨질 때, 대중과 진중하게 소통하는 매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2년여의 준비 끝에 나온 창간호는 미술의 대중화와 공공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이후 20년 동안 퍼블릭아트는 신진작가 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유망작가를 세상에 알렸고, 현대미술의 변화와 쟁점을 단행본·연재기사를 통해 기록해왔
김일준 스핀택 대표는 오랜 시간 금융 IT 분야에서 일했던 전문가 출신이다. 은행 애플리케이션과 비대면 계좌 개설 시스템을 만들던 개발자였던 그는, 어느 날 시니어 금융 서비스를 기획해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시장 조사를 시작하며 느낀 첫 인상은 다소 당혹스러웠다. “방카슈랑스, 신탁, 연금 정도 말고는 시니어를 위한 상품이 별 게 없더라고요.” 그가 본 시니어 금융 서비스는 ‘건강하지 않은 노인’만을 가정한 채 만들어진 상품들이었다. 그러나 그가 본 시장은 달랐다. 그는 ‘시니어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발견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대학에서 환경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해외에서 상하수도 설계를 담당했던 한무영 박사. 손꼽히는 수처리 전문가인 그가 ‘처리할 필요가 없는 깨끗한 물’을 연구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처럼 느껴진다. 그에 따르면 복잡한 수처리 과정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이상적인 수자원은 바로 ‘빗물’이다. ‘빗물로 모두를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우리(雨利) 한무영의 눈엔 빗물의 가치가 보인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은 비가 아닌 ‘금’이다. 거저 내린다고 그저 흘려보내면 거지꼴 태양열에 의해 증발했다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비는 깨끗한 증
사회, 여가, 소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액티브 시니어’의 부상은 국내 시니어 산업 지형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니어의 삶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더 나아가 브랜드화하는 전략으로 주목받는 기업 FOCC(Future of Community Contents)의 김덕영 대표를 만났다. FOCC는 콘텐츠 기획에서 여행, 커뮤니티 운영, 인플루언서 브랜딩, 글로벌 콘텐츠 IP 수출까지 아우르는 독특한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FOCC는 2022년 설립된 시니어 커뮤니티
1인가구가 급증하고 있는 일본에서 ‘삶의 마지막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는 점점 더 절실한 화두가 되고 있다. 보호자가 없는 고령자, 개호필요등급(要介護認定)을 받지 못해 공공요양시설 입소조차 어려운 독거노인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인지기능 저하와 함께 이들의 재산과 신상 관리가 사실상 공백으로 남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일본에서는 주목할 만한 민간 주도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전국고령자등종신서포트사업자협회(全国高齢者等終身サポート事業者協会, 이하 협회)’라는 긴 이름의 단체다. 이들은 출범 준비를
노인 돌봄시장에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생활연구소의 연현주 대표를 만났다. IT업계에서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청소 O2O 서비스’를 주력으로 창업해 이름을 알린 그가 어르신 돌봄 방문 서비스 ‘청연케어’를 출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신선하면서도 당연해 보였다. 생활연구소에는 매일 가정을 방문하며 가사를 돕는 수만 명의 매니저들이 있었다. 돌봄 분야로의 확장은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연 대표는 2001년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시작으로 엔씨소프트, 카카오에서 굵직한 사업을 맡으면서 국내 IT 업계를 두루 거쳤
고령자의 삶을 지원하는 일을 우리는 ‘돌봄’이라고 표현한다. 이 단어를 잘 들여다보면 타인에게 서비스나 재화를 전달한다는 의미로, 노인의 입장에선 남의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뜻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입장에선 내 방식대로, 내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늙는 것이 좋을까? 일본에서 발간된 ‘自分で自分の介護をする本(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요양의 책)’ 시리즈는 이런 고민을 담고 있다. 일본 고령자 독자들 사이에서 꾸준한 반향을 불러일으켜, 영향력 있는 실용서로 평가받고 있다.
복지용구나 고령친화 제품 등 노인을 위한 제품은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것이 현실이다. 국민건강보험이나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정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가격 내에서 제작해 납품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인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이 제조사들의 하소연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디자인부터 손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바로 최명식 한국디자인고령센터 대표다. 그는 디자인 교육, 정책, 산업 실무를 아우르며, 정년 후에는 다시 '고령사회'라는 새로운 과제를 향해 뛰어들었다. 최명식 교수는 중앙대를 졸업 후 영국 왕립
지난 18일 일본 서점가에 출간된 신간 ‘내가 죽은 후에도 사랑하는 개를 지키는 책’의 저자 토미타 소노코(富田園子) 씨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고양이 잡지의 편집장을 지냈고, 일본동물과학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작가로서 활발하게 고양이와 개에 관한 서적의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자신을 “고양이 열 마리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 소개했다. 2023년 그의 저서 ‘교양으로서의 고양이 - 무심코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고양이 지식 151’의 저자 소개에는 ‘고양이 일곱 마리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되어
인터뷰를 위해 이장우(69) 박사를 만난 곳은 압구정동의 한 스타벅스였다. 커피값을 누가 낼지를 두고 잠깐의 실랑이가 오갔지만, 그는 익숙하게 휴대폰을 꺼내 스타벅스 앱의 사이렌오더(온라인 주문)로 상황을 정리했다. “강의가 많아 늘 서두르다 보니 주문조차 빨리 나오는 방법을 찾아두었습니다. 메뉴마다 걸리는 시간을 파악한 거죠(웃음).” 곧 일흔을 앞둔 그였지만, 세상을 향한 그의 눈빛과 호기심은 청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 박사는 한국 3M에서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미국 본사의 최초 한국인 매니저로 발탁되었고, 이메이션코리아
"중장년은 결코 퇴장해야 할 세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생생히 일하고, 배울 수 있고,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경험 많은 '어른'입니다." 배미경 회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경험’의 가치였다. 간호사에서 시작해 제약 마케팅 전문가로, 그리고 헬스케어 전문 컨설팅사 회장을 거쳐 중장년 일자리 기업의 설립, 한국중장년협회의 초대 회장 취임에 이르기까지. 배미경 회장의 커리어는 단순한 경력의 연속이 아니다. 경험의 힘을 믿고, 변화를 주도해왔다. 배 회장은 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병원에서 간호사로 첫 경력을 시작
최근 38년간의 긴 공직 생활을 마무리한 옥미정 前 복지생활국장을 만났다. 옥 전 국장은 1988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모든 공직생활을 강남구청에서 지낸, 그간의 변화를 꿰뚫고 있는 지역사회 복지의 산증인이다. 지역사회 현장에서 유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복지의 전 생애주기를 직접 경험한 이로서, 그는 늘 주민과 함께 성장해 온 공직자였다. “퇴임이요? 너무 좋아요. 서운하거나 아쉽기보다는 그냥 홀가분해요.” 그는 퇴임 이후 삶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충북에 마련한 텃밭을 가꾸고, 집안 정리를 하며 보내는 매일이
“좋은 돌봄이란 결국, 돌봄의 대상이 되는 그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의 문제입니다.” 김동선 PCC(사람중심케어) 실천네트워크 대표는 오랜 시간 돌봄 현장을 연구해 온 학자이자 실천가다. 그의 말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다. 장기요양 제도가 탄생하기도 전인 2001년, 일본 시골 마을에서 노인 돌봄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며 느낀 강렬한 인상은 지금도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처음엔 어르신들을 잘 대해주나 보다 정도로만 느꼈어요. 나중에서야 알았죠. 사람을 중심에 두는 돌봄이 실천되고 있는 곳이었다는 것을 말이죠.” 그의 표
표영호의 삶은 전환의 연속이었다. 개그맨, 강연자, 부동산 전문가, 그리고 유튜버까지. 다양한 정체성을 거친 그는 ‘인생 2막’의 성공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그런 그가 꼽는 가장 큰 원동력은 ‘실패’다. 실패를 반복하며 방향을 조정했고, 그 과정이 곧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를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표영호는 1993년 MBC 공채 4기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일요일 일요일 밤에’, ‘무(모)한 도전’ 등에 출연하며 화려한 입담으로 시청자를 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