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열심히 늙어가고 있습니다. 늙는 게 두렵지 않아요. 나이에 맞는 역할과 연기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50대 중반은 엄마로서, 여자로서, 성숙한 어른으로서 고민이 많은 시기입니다. 그 고민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좋겠어요. (시니어 매거진 2023년 7월호 인터뷰 중) 에디터 조형애 취재 손효정 디자인 이은숙
지금의 대한민국 테니스 열풍 뒤에는 이형택이 있다. 묵묵히 불모지를 개척해 씨를 뿌리고 꽃을 피운 인물이다. 올림픽 4회 출전, 아시안게임 2회 연속 금메달, 한국인 최초 ATP 투어 대회 우승, US오픈 16강 진출, 세계 랭킹 36위 등. 테니스 선수로 그가 이룬 기록은 기적에 가깝다. 선수 생활을 은퇴한 그는 현재 주니어 선수 감독으로 테니스와 함께하고 있다. 아홉 살 때 테니스를 시작하던 마음을 기억하며, 명맥을 이어줄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다. 테니스 열풍 뒤 고민 테니스 코트를 배경으로 화보 촬영한 소감이 어떠셨나요? 코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mylifemag)님의 공유 게시물 자신을 사랑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자기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주겠어요. 이게 문제가 크지 않습니까? 나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나’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왜 나한테 소중할까요? 내가 소중하니까 어머니가 소중한 거예요. 누구 엄마예요? 내 엄마잖아요. 우리나라가 왜 소중해요? 내 나라니까 소중한 거예요. 그래서 자기를 아끼는 마음. 이기주의를 이야기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mylifemag)님의 공유 게시물 18~28세 여성만 출전할 수 있었던 미스 유니버스 대회. 2024년, 나이 제한을 폐지했다. 그리고 발생한 이변. 미스 유니버스 아르헨티나 ‘최고의 얼굴(Best Face)’에 60세 여성, 알레한드라 로드리게스가 선정됐다. 변호사이자 기자인 알레한드라 로드리게스는 지역 예선 격인 미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변화의 첫걸음이다. 나의 도전이 하나의 분기점이 되길 바란다. 아름다
국내 중장년 정책은 최근 급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 속에 늘 새로운 정책 모델을 제안하고 발전시켜온 이가 있다. 바로 남경아 경기도 베이비부머기회과장이다. 과거 서울시 중장년 정책의 태동기부터 성장을 도모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관련 사업이 안정궤도에 접어들었을 즈음, 그는 시들시들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고, 홀연히 퇴사를 결정했다. 그렇게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자, 이내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시 어떤 힘이 차올랐을 때, 경기도와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처음 시작된 중장년 활동은
1950년, 10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그 시절 사회는 남편 내조 잘하고 아이 잘 키우는 현모양처가 되라고 했다. 꿈은 아득히 먼 단어였다. 대학 졸업장이 거의 결혼 자격증 같았다. 그렇게 결혼하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충실하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내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외국을 많이 다니는 직업을 가졌다. 국제부인회에 갔더니 해외 나가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게 있다고 했다. ‘마인드 스포츠’ 브리지*였다. 1982년, 그렇게 브리지를 알게 됐다. *브리지: 4명이 2인 1조가 되어 겨우는 카드 게임. 130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이라면 산뜻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 죽음을 자주 생각해야 한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더욱 소중해진다. 안 죽을 것처럼 사는 인생처럼 무모한 것이 어디 있을까? - 유재철, 장례 명장 1호 장례지도사 (시니어 매거진 2020년 6월호 인터뷰 중) 에디터 조형애 취재 박원식 디자인 유영현
인공지능(AI)이 음악도 만들고, 그림도 그린다. 인간 고유의 재능으로 여겨졌던 ‘창작’이라는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AI가 더욱 고도화될 거라는 건 정해진 미래다. 사람들이 ‘어떻게 AI를 활용할 것인가’ 고민할 때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변호사가 있다. 아니, 그는 소설가다. 장편소설 ‘밤의, 소설가’는 “AI와 공동 집필에 몰두했던 소설가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한 작가는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상징적 죽음’이라는 평을 내놨다. AI의 발달로 인간 고유의 영역을 빼앗기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mylifemag)님의 공유 게시물 ‘성공한 작곡가’로 불리는 김형석에게 성공이란: 인생에 있어서 성공이란 단어는 좀 무의미한 것 같아요. 성공은 아무래도 비교되는 것이고 스스로 성공했다는 그 충족감은 갖기 힘든 것 같아요. 하루하루 행복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 해내가는 성취감. 성공보다는 성취가 훨씬 중요한 단어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저는 작곡가이기 때문에 ‘내 곡이 히트가 됐다’고 하면 그다음에는 또 그만큼 양날의 칼처럼 뭔가를 또 해야 되는 압박감이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는 ‘모던춘지’라는 이름의 건물이 있다.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것이 무엇일까 싶어 문을 활짝 열어보니 라디오 1000여 대가 얼굴을 드러낸다. 나이도 국적도 달라 보이는 라디오가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건물의 규모는 작지만 라디오 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없는데, 이곳 주인 김형호 기자는 “그냥 라디오가 좋아서 모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전시나 수익의 목적이 아니라 취미 수집의 결과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덕후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이 붐박스는 마돈나가 ‘Hung-Up’이라는 노
김광석 ‘사랑이라는 이유로’, 김건모 ‘아름다운 이별’, 박진영 ‘너의 뒤에서’, 성시경 ‘내게 오는 길’, 신승훈 ‘I Believe’, 엄정화 ‘하늘만 허락한 사랑’, 임창정 ‘그때 또 다시’…. 1990~2000년대 부드러운 리듬으로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주던 김형석 작곡가. 특유의 감성은 어쩌면 여름 초입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 피아노 선율을 곱씹으며 옛 추억에 잠겨 있노라면 귀를 시원하게 때리는 전자음악과는 또 다른 기분을 느끼게 될 테다. 김형석의 여름 ‘작곡가의 여름’을 주제로 화보 촬영을 진행했는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입니다. 선생님 글을 회보에 실어도 되겠습니까?” 가슴이 철렁했다. 그 말인즉 친일파 자손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하라는 뜻이다. 내가 쓴 글 제목은 이러했다. ‘저는 친일파의 손자입니다. 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드립니다.’ 2011년, 글쓰기를 배우기 시작한 내가 처음 받은 과제는 가족을 주제로 에세이 쓰기였다. 난 한 번도 뵌 적 없는 할아버지가 늘 궁금했다. 1890년대 일본 유학을 다녀와 대한제국 농상공부 관리를 하고, 나중에 군수까지 했다는 나의 할아버지. 무척 영특했다던 사진 속 그를 찾아 나섰다. 할
우리는 120세를 사는 시대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라면 4명 중 1명이 노인인 시대를 맞게 될 겁니다. 남 이야기 같지만 결국 나의 이야기예요. 그러니 지금부터 노인에 대한 가치관을 잘 갖춰야 합니다. - 박건우, 고려대학교 노인건강연구소장 (시니어 매거진 2024년 3월호 인터뷰 중) 에디터 조형애 취재 이연지 디자인 유영현
40인치. 넉넉한 허리둘레를 가진 수학 교사였다. 운동과 담쌓고 살던 어느 날. 아이들이 짓궂은 장난을 쳤다. 책상과 교탁 사이 간격을 좁혀놓은 것이다. 그날이 계기였다. 퇴근 후 매일같이 학교 운동장을 뛰었다. 마흔일곱에 보디빌딩에 입문했다. 지금처럼 유튜브가 있지 않은 시절이라 운동방법을 인쇄해서 파일철에 들고 다니며 몸을 만들었다. 대회도 꾸준히 출전했다. 마그마치 8번. 그러던 2014년, 서울시장배 마스터즈(50~59세)급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퇴직 후 생활스포츠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때가 예순셋이었다. 평소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던 이어령(1933~2022년) 전 문화부 장관이 영면한 지 2년이 넘었다. 어느덧 구순을 넘긴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남편과의 만남을 다시 떠올린다. 그이만이 아니라 서로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격동기 예술가 부부의 뒤얽힌 삶의 흔적을 차곡차곡 더듬어 신간 ‘만남’에 담았다. 까까머리를 기르고 있는 대학 신입생의 모습으로 그는 내 앞에 나타났다. 이름을 안 것은 신입생 환영회 자리였던 것 같다. 머리가 짧아 얼굴이 네모로 보였다. 무언가가 안에 꽉꽉 차서 터질 것 같은 느낌을 주